학생들이 성폭행당했다. 약 5년 동안.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피해자는 9명. 일곱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 모두 같은 학교 청각장애인 학생이다. 드러난 가해자만 6명.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한 조력자가 2명. 모두 이 학교 교직원과 교사이다. 학교가 뭐 이래?

MT 가서 교사들이 돌아가며 여학생을 성폭행한 일도 있다. 남학생도 당했다. 행정실장과 교장도 성폭행을 했다. 다른 교직원에게 알렸지만 묵살됐다. 교장은 재단 이사장의 큰아들, 행정실장은 작은아들. 또 어떤 교사는 이사장의 처남이고 또 어떤 교직원은 동서였다던가?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설립이념’이 이렇다. ‘그리스도 정신에 입각한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자주 자활 근면 활동하는 자활인 육성.’ 아니, ‘그리스도 정신에 입각한 사랑’이 뭐 이래?

2005년 이 학교 성폭력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그해 11월 MBC 〈PD 수첩〉이 사건을 보도했다. 곧 재판이 시작됐다. 하지만 누구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풀어주고, 누구는 집행유예로 풀어주고. 결국 제대로 죗값을 치른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참 나… 사법부가 뭐 이래?


사건이 알려지고 6년이 흐른 지금. 가해자는 대부분 복직되었다.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보육교사는 해임됐다. 대책위에 참여한 다른 교사들도 임용 취소, 정직, 감봉 같은 중징계를 받았다. 재단은 피해 학생들에게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사건은 잊혔고 가해자는 무사하고 학교는 건재하다. 아, 이놈의 나라… 뭐 이러냐?

작가 공지영은 신문기사 한 줄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되었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이 기사 한 줄이 소설 〈도가니〉의 시작이었다.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리고 싶었다. 이제 그 사건이, 그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강인호(공유)는 무진 자애학원(이라 쓰고 우리는 ‘광주 인화학교’라고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에서 청각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교사다. 그러다 학내 성폭력 사건을 알게 되고 무진인권센터 간사 서유진(정유미)에게 도움을 청한다. 둘이 함께 사건을 세상에 알린다. 가해자를 법정에 세운다. 하지만 사학재단의 족벌체제와 판사 출신 변호사에 대한 전관예우, 기독교의 제 식구 감싸기, 그리고 시청과 교육청의 직무유기와 맞서 싸우는 게 쉽지 않다. 정의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어질 무렵 서유진이 강인호에게 말한다.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오버’하지도, ‘간과’하지도 않는 연출

실화를 영화로 만들 때 늘 걱정이 앞선다. 피해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잘 만들어야 할 텐데…. 내심 실제 사건의 25.7%만 재현해도 ‘사실상’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영화 〈도가니〉는 내 기대치의 125.7%를 달성한 수작이었다. 다니엘 헤니가 주연한 〈마이 파더〉(2007년)의 연출자 황동혁 감독은 또 한 번 ‘오버’하지 않으며 ‘간과’하지도 않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사실’의 손을 잡고 ‘진실’의 법정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관객은 배심원이고 판사이며 때론 검사였다가, 결국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을 내지르는 피해자들과 함께 소리치고 싶어진다. 이런 XX, X 같은 대한민국!

우리가 ‘외면’하면 그들이 ‘모면’한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최소한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도가니〉를 외면하지 말 것. 지금 ‘서영학교’로 이름을 바꿔 과거를 세탁하려 드는 ‘인화학교’의 야만을 잊지 말 것. 이제서야 ‘악마를 보았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들의 ‘부당거래’를 감시할 것.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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