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16일 작성된 문건에는 버시바우 대사가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간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 사진)을 접견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만남 내내 불편해 보였다고 미국 대사는 전했다. “현 정치적 논쟁과 격리된 듯한 인상을 주었고 봉하로 찾아온 팬과 관광객을 만나는 데 가장 열중하는 것 같았다”라고도 밝혔다. 8개월 뒤인 2009년 5월29일 작성한 문서에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 풍경이 담겨 있다. “대사관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은 분노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였다고 한다”라고 장례 분위기를 전했다.
“최시중은 MB 측근임을 자랑해”
2009년 6월5일에는 2건의 문서를 통해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정치적 배경과 향후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유교 전통과 전태일·최진실의 자살 등을 언급하며 노 전 대통령 자살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분석했다. 더불어 “깨끗한 정치, 지역감정 타파, 대북 화해의 상징인 노무현은 그가 이루려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국민들이 그의 정치적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은 그의 약속이 실현된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노무현의 자살은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여당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는 야당을 변하게 하지는 못했다”라고 분석해놓았다.
박근혜(왼쪽 사진)·이상득 등 이명박 정부 정치 실세들에 대한 평가도 이번에 공개된 미국 대사관 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5월9일 문서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 “국내 정치에 대한 얘기를 꺼려했지만 아직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입후보를 놓고 싸우는 것처럼 이 대통령과의 사이가 험난해 보였다”라고 적혀 있다.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은 대통령의 친형이라 가장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으로 간주되지만 동생 이 대통령과의 긴장 관계 또한 존재한다고 묘사됐다(2008년 5월29일자). 국회 정보통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국회의원 6선에 나서지 말라”는 자신의 충고를 형이 무시한 것에 상처를 받았고, 그 사건 이후로 형이 주는 정치적 의견을 무시하게 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왼쪽 사진)은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이던 2008년 1월17일 스탠턴 미국 부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워낙 당선자와 생각이 일치해 이명박의 인터뷰에 내가 대신 나간 적도 있다”라며 자신이 이 대통령의 최측근임을 자랑했다. 미국 대사관 문서에 표현된 고건 전 총리는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지 않는 노련한 정치인’이고(2010년 2월5일자),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대선 출마 욕심을 숨기지 않는 강력한 도전자’이다(2010년 2월11일자). 2009년 12월16일 만나 당시 철도노동자 불법 파업을 강하게 규탄하던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 대해 스티븐스 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관도 아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불법인 위장전입을 한 적이 있다”라는 논평을 붙이기도 했다.
정치인의 영어 실력도 미국 대사관의 주요 관심거리이다. 미국 대사관 문서는 정운찬 총리에 대해 “미국에서 유학하고 교수 생활을 했음에도 통역관 없이 직접 미국 관료와 영어로 대화하기를 꺼렸다”라고 밝혔다(2009년 11월13일자). 영어 몰입 교육을 주장한 이경숙 전 인수위원장에 대해서는 “때때로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struggled)”라고(2008년 1월15일자), 자원 외교의 성과에 대해 대화를 나눈 이상득 의원의 영어는 ‘매우 제한적(very limited)’이라고 표현했다(2010년 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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