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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이 친일파 되살리는 까닭은?

현 정부 들어 역사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를 이승만 정부에서 찾으려 하고, 친일파와 5·16 쿠데타 세력을 재조명한다. 국민의 역사의식을 왜곡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2011년 09월 30일 금요일 제2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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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서울 여의도 KBS 앞 도로에 앉아 있다. 8월2일부터 릴레이 단식도 하고 있다. 8월4일 새벽에는 영등포구청에서 들이닥쳐 이들이 머무르던 천막을 걷어갔다. 하지만 팔순이 넘은 노인들은 길바닥에 앉아 꿈쩍도 않는다.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한다. KBS가 8·15를 맞아 기획한 이승만 특집 다큐멘터리 때문이다.

항일 독립운동단체 등 총 97개 단체로 구성된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서에서 “악질 친일파를 단죄는커녕 비호했고, 친일 경찰을 시켜 백주대낮에 반민특위를 습격해 친일파 청산을 정면으로 거부한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닌 친일파의 실질적 비호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탄압하다 결국 4·19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정동익 전 동아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친일 행위를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하려고만 한다”라고 말했다.

KBS, 친일 행적 백선엽 다큐 방영

이 같은 논란은 지난 6월에도 벌어졌다. KBS는 지난 6월 <전쟁과 군인>(백선엽 다큐멘터리)을 방영한 바 있다. 방송은 시종 백선엽의 기억과 발언에 의존해 그의 전쟁 활약상을 집중 조명했다.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라는 한마디로 넘어갔다. 가장 문제가 되는 이력, 곧 항일 세력을 무력 탄압한 조선인 특수부대 ‘간도특설대’의 장교로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는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KBS가 친일 행적이 있는 백선엽을 전쟁 영웅으로 미화해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어겼다고 민원을 제기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나라당 추천 몫의 한 심의위원은 “백선엽 장군을 좀 미화한들 뭐가 문제 되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역사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강조한 것이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를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아니라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에서 찾은 것이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핵심 이론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3개월 만인 2008년 5월 국무총리 산하에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발족했다. 한나라당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기관 홈페이지와 정부 청사 간행물에서 ‘광복절’은 ‘건국절’로 바뀌었다.

정부는 2008년 8월15일을 광복절 행사가 아니라 ‘건국절’ 행사로 치르고자 했다. 결국 보수는 ‘건국절’로, 진보는 ‘광복절’로 각각 행사를 치러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홍보 책자를 발간해 전국 중·고등학교와 공공기관에 배포했다.

2008년 3월 보수 우익 학자들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보수 진영은 그동안 국사 교과서를 ‘좌파 편향적’이라고 비판해왔다(34~36쪽 딸린 기사 참조). 뉴라이트 계열 역사 교과서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축적되는 시기였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항일 테러 활동’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보수 우익의 움직임에 대해 광복회 회원과 민족운동가 진영에서 훈장을 반납하겠다고 맞서면서 건국절 논란과 역사 교과서 문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 보였다.


보수 언론 “4·19와 5·16 정신은 하나다”


이후에는 KBS와 보수 언론이 앞장섰다. 2010년에는 한국전쟁이 화제로 떠올랐다. 전쟁 영화와 전쟁 드라마가 쏟아졌다. MBC 20부작 <로드 넘버원>,  KBS 20부작 <전우>가 텔레비전 전파를 탔다. 또 <포화 속으로> <고지전> <60년 전, 사선에서> 따위 전쟁 영화가 10여 편 제작되었다.

특히 영화 <포화 속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청와대에서 이 영화에 출연한 탑(그룹 빅뱅 소속)과 함께 보기도 해서 화제를 모았다. 이후 공무원들의 단체 관람이 줄을 이었다. 한 영화감독은 “전쟁 영화만 만들면 제작비는 정부에서 책임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ㄱ감독은 정부 측에 줄을 서서 한몫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라고 말했다.

잠잠하던 보수 우익의 역사 왜곡 논란은 올해 들어 다시 점화됐다. 지난 4월 4·19혁명 51돌을 앞두고 보수 신문들이 일제히 이승만 띄우기에 나서면서부터다.

<조선일보>는 양아들 이인수씨의 증언을 들어 “아버지 이승만, 불의에 항거한 학생들 장하다 했다”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승만-4·19 역사적 화해 모색’이라는 기사를 1면 머리로 다뤘다. “‘불의를 보고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라는 말도 남겼다”라는 이인수씨의 주장을 실었다. <중앙일보> ‘내일 4·19 51주년-활발해진 이승만 재평가’라는 기사에서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한강의 기적은 이승만 시대의 유산을 활용한 덕분이다. 4·19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라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훼손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승만과 4·19는 같은 세력이다”라고 주장했다.

5월에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5·16 군사쿠데타 50주년 특집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두 신문은 5·16 군사쿠데타 핵심 인물인 김종필 전 공화당 의장 인터뷰를 크게 실었다. <조선일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 <중앙일보>는 특히 칼럼에서 박 전 대통령과 5·16 세력은 산업화와 자주국방을 내걸고 한국 사회의 변혁을 주도했다며, 4·19와 5·16 정신은 결국 하나이고 특히 5·16은 우국충정의 순수한 거사였다고 기술했다.


“내년 선거 앞두고 역사의식 왜곡”


지난 5월 <동아일보>가 주도한 현대사학회가 출범했고, 6월에는 백선엽 KBS 다큐멘터리 방영, 8월에는 이승만 KBS 다큐멘터리 방영, 9월에는 박정희 기념관 개관, 12월에는 대한민국 역사기념관 개관 등 역사의 나침반을 오른쪽으로 돌려놓으려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 우익의 움직임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사학과)는 “이승만 치하에서 횡행했던 반공 테러 집단을 활용한 마녀사냥이 이제는 방송의 세몰이 여론화를 통한 극우 세력의 색깔 공세로 재현되고 있다. 내년 두 번의 선거를 앞두고 역사의식을 왜곡하여 국민을 상대로 야바위 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사학계의 원로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사학과)는 “분단 노선을 합리화하는 보수 우익은 친일파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뤘으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보수 언론에서 백선엽과 이승만을 띄우지만 국민과 역사의 조롱거리만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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