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3일 민주당 최고위원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 사이 ‘시청료 회의’가 열린 곳은 당 대표실이다. 국회 본관 2층에 있다. 민주당 대표실은 실제 건물 층수로 따지면 1층이다. 1층인데 2층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이다.

17대 국회 시절 1층에 있던 기자실을 지하 1층으로 확장해 옮겼다. 당시 기자들이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쫓겨나는 것이라며 집단 반발하자, 국회 사무처가 묘안을 냈다. 지하 1층을 1층으로 표기만 바꾼 것이다. 민주당 도청 의혹의 장본인으로 의혹을 산 KBS 장 아무개 기자도 1층(지하 1층) 기자실에 속해 있다.

현재 국회 사무처에 등록된 국회 출입기자는 403명이다. 중앙 일간지, 방송사를 비롯해 주간지, 월간지, 인터넷 매체 소속 기자까지 다양하다.

 

ⓒ시사IN 조우혜


〈시사IN〉은 이들을 상대로 온라인 긴급 설문조사를 벌였다. 특별한 소프트웨어 설치 없이도 온라인 여론조사가 가능한 서베이몽키(http://ko.surveymonkey.net)를 이용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서베이몽키는 기자나 연구자 등이 자체 설문을 짜고 분석할 수 있는 이른바 ‘DIY 여론조사’ 사이트이다.


“출입 기자 여론 확인할 수 있는 조사”

〈시사IN〉은 7월13~14일 서베이몽키를 이용해 전자 메일이 확인된 국회 출입 기자 375명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도청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되고, 직접 해명서를 낸 KBS 소속 국회 출입 기자들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응답의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KBS’를 특정하지 않고 ‘방송사’로 표현했다. 응답자는 73명, 응답률은 19.5%였다. 응답자는 방송·일간지·인터넷 매체·주간지 기자 등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모집단이 특정되면 답변율이 모집단에 근접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조사처럼 특정 성향의 언론사 소속 기자만 응답하지 않고 골고루 답변이 들어왔다면, 응답률이 낮더라도 출입 기자들의 여론은 확인할 수 있는 수치이다”라고 평가했다.

먼저, 출입 기자들에게 최근 나온 KBS의 해명에 대한 신뢰도를 물었다. 사건 초기인 지난 6월30일 KBS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식의 이른바 도청 행위를 한 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7월11일 KBS 소속 정치부 기자들은 ‘KBS 정치부는 이러한 (취재) 노력들을 종합해서 회의 내용을 파악했으며 그 과정에서 회의에 관련된 제3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점을 부득불 확인한다’고 해명했다. 제3자의 도움을 받아 취재했을 뿐, 도청하지는 않았다는 일련의 해명이었다.

 

 

 

 

 

ⓒ연합뉴스이번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82.9%가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위)이 확보한 녹취록에 KBS가 연루되었다고 봤다.

 

 

그러나 응답자 가운데 32명(44.4%)이 이 같은 KBS의 해명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라고 답했고 31명(43.1%)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해, 모두 63명(87.5%)이 KBS 해명을 신뢰하지 않았다. 반면 ‘신뢰하는 편이다’라는 대답이 7명(9.7%), ‘매우 신뢰한다’는 응답이 2명(2.8%)으로, 모두 9명(12.5%)만이 KBS 해명을 신뢰했다.

특히 언론사에 몸담은 경력이 길수록 더 KBS 해명을 믿지 않았다. 7년차 이상 기자 응답자 가운데 52.4% (22명)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질문에 답변한 3년차 미만 기자 가운데 25%, 3~7년차 기자 가운데 35.3%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과 비교해보면 뚜렷이 높다. 한 국회 출입 기자는 “정당 취재와 국회 시스템을 잘 아는, 경력이 긴 기자일수록 사안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경력 긴 기자일수록 KBS 주장 신뢰 안 해

KBS 정치부 이름으로 낸 해명에 앞서, KBS 보도본부는 7월8일 경찰의 압수 수색 직후 보도자료를 냈다. 이날 경찰은 장 아무개 KBS 기자 집을 압수 수색했다. KBS 보도본부는 경찰 압수 수색을 ‘언론기관 KBS에 대한 모독이자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또 “압수 수색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특정 정치 집단의 근거 없는 주장과 일부 언론 등이 제기한 의혹에 근거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반발했다. KBS 기자협회도 지난 6월30일 자체 진상 조사 결과 “카메라나 녹취 장치를 이용한 도청은 없었다”라고 결론 내렸다. KBS는 정당한 취재 활동을 벌였고, 이는 언론 자유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이번 사건이 취재와 언론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정당한 취재 행위로 취재·언론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답한 응답자는 3명(4.2%)에 그쳤다. ‘정당한 취재 행위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취재·언론의 자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61명(85.9%)이었다.

 

 

 

 

 

 

 

 

 

이 질문에서도 연차가 높은 기자일수록 취재와 언론 자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답변한 비율이 높았다. 설문에 응한 3년차 미만 기자 가운데 66.7%, 3~7년차 기자 가운데 82.4%가 KBS의 언론 자유 주장을 반박했다. 그런데 7년차 이상 기자 그룹은 무려 92.9%가 취재와 언론의 자유에서 벗어났다고 답했다.

도청 의혹 장본인으로 의혹을 받는 장 아무개 KBS 기자는 7월14일 저녁 9시 변호사와 함께 경찰에 나왔다. 장 기자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도청을 한 혐의이다. 그는 이날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이 압수한 휴대전화와 노트북도 별다른 증거가 되지 못했다. 경찰 조사 결과 도청 당시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아닌 새 제품이었다. 도청 의혹과 별개로 증거 인멸 논란이 잇달아 불거지자, KBS는 장 기자가 회식 중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모두 분실했다고 해명했다.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이번 사안에 대한 경찰 수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응답자 5명(7.1%)만이 ‘언론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므로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55명(78.6%)은 ‘사안의 명백함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므로 별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출구’는, 경찰 수사보다 KBS 자체 진상 규명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 게 낫다고 보는가’라고 물었더니, ‘경찰 수사 등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는 응답은 21명(29.6%)이었다. 반면 ‘의혹을 받는 언론사가 직접 밝혀야 한다’는 응답자가 50명(70.4%)으로 훨씬 많았다.

 

 

 

ⓒ뉴시스KBS 도청 의혹 사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묻는 질문에 ‘김인규 KBS 사장(위)이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응답이 56.3%로 가장 많았다.

KBS 관계자 “때를 놓쳤다”

국회 출입 기자들의 이런 바람과 달리 KBS 내부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KBS 노동조합은 7월14일 노보를 통해 ‘회사 측은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한 실체적 진실 규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새노조로 불리는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도 연일 회사가 진상 규명에 나설 것을 압박했다. 하지만 KBS 경영진은 일단 경찰 조사를 지켜본다는 태도이다. KBS의 한 중견급 기자는 “기자협회 내부에서 진상조사단을 꾸리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조사의 한계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또 하나의 의혹은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확보한 녹취록에 KBS가 관여되어 있는가이다. 도청과는 별개로 권언 유착 의혹이 불거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KBS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도 면책특권을 들어 경찰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한 의원은 제3자로부터 녹취록을 확보했다고 해명했다.

국회 출입 기자들에게 ‘정치인에게 녹취록이 건네진 사안(도청)에 해당 언론사가 연루되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응답자 58명(82.9%)이 ‘연루되었다고 본다’고 답했다. ‘연루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2명(2.9%)에 그쳤다. 이 질문에서도 연차가 높을수록 ‘연루되었다’고 보는 비율이 높았다. 질문에 응한 7년차 이상 기자 가운데 92.7%가 ‘연루되었다’고 응답했다.

한선교 의원과 관련한 의혹은 KBS 내부에서도 ‘유구무언’이라는 반응이 많다. 수신료 인상이라는 숙원 사업을 해결하려는 KBS 처지에서, 한 의원에게 녹취록을 건넸을 개연성이 높다는 의견이 안에서부터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KBS 관계자는 “수신료 인상 정국에서 KBS에서는 비이성적인 상황이 만연했다. 옳고 그르냐는 기준이 아니라 회사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모든 사항을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을 상대로 수신료 인상을 설득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비상식 상황이 워낙 많아서 녹취록을 정당에 넘겼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이다”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 소재도 물었다. ‘이번 사건이 도청으로 밝혀지면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해당 방송사 기자가 져야 한다’는 답변은 5명(7%)에 그쳤다. ‘해당 방송사 보도국장 등 간부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25명(35.2%)이었고, ‘해당 방송사 사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답변이 40명(56.3%)으로 가장 많았다. 이 설문에서는 연차가 낮은 기자와 연차가 높은 기자가 사장 책임론을 가장 높게 꼽았다. 설문에 응한 3년차 미만 기자 가운데 75%, 7년차 이상 기자 가운데 59.6%가 사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했다.

 

 

 

 

 

 

 

 

 

 

KBS는 지난해 방송 예정이던 〈추적 60분〉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 편 방송을 보류했다. 경영진은 이때 방송을 보류하며 1990년에 제정된 KBS 방송강령을 근거로 들었다. ‘법원의 판결이나 공적 기관의 판정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보도나 논평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방송강령 제20항 규정을 제시한 것이다. 같은 방송강령 제35항에는 이번 도청 의혹과 관련한 내용이 들어 있다. “모든 방송 자료는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하며, 위장이나 속임수로 취재나 촬영 협조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의혹에 대해 KBS는 공식적으로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김인규 KBS 사장 역시 이번 사건과 관련한 어떤 의견 표명도 하지 않았다. 사건 초기 김 사장이 KBS 이사회 야당 측 인사들과 만나 “벽치기는 취재 기법으로 다 해왔던 것인데 문제 될 게 있느냐”라는 발언을 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하자, KBS는 “김인규 사장이 ‘도청’에 대해 우회적으로 시인한 것 아니냐는 보도는 명백한 오보다”라며 선을 그었다. KBS 한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진상 조사를 위한 태스크포스가 필요하지 않으냐는 말도 나왔지만 잦은 말 바꾸기로 수세적으로 대응하다, 결국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때를 놓쳤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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