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직업을 소개하는 직업도 있다”
  • 임지영 기자
  • 호수 201
  • 승인 2011.07.3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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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ink는 직업을 소개하는 직업이다. 어려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면 20대가 달라질 것이라며 청소년에게 각양각색의 직업을 소개한다.
7월13일, 온종일 비가 내렸다.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은 서울시내 중학생 수천명으로 붐볐다. 청소년에게 다양한 직업을 소개해준다는 업체 8ink를 찾았다. 마침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2011 서울진로직업박람회’에서 직업 체험 부스를 운영 중이었다. 적성 테스트를 통해 진로 상담을 받은 아이들이 야외에서 바리스타·자동차 디자이너 등을 체험했다. 8ink가 준비한 건 아나운서였다. 얼마 전 종영한 MBC <신입사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상주 대표(27)가 이날은 ‘호객’ 담당이었다. 기자도 옆에서 목소리를 보탰다. 학생들이 어디를 들어갈지 고민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아나운서 되면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아나운서 안 될 건데요.” 다섯 명 무리가 일제히 답했다. 발칙한 십대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사람만 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여학생들은 수줍음이 많았다. “얼굴이 안 돼요”라며 발을 뺐다. 호감을 보이며 적극 나서는 학생도 있다. 이날 강사는 김소현 KBS 리포터였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기자·아나운서·리포터·PD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한참을 소개하던 김씨가 “저분이 기자예요. 무슨 일을 하는지 들어볼까요?”라며 나를 가리켰다.

학생을 모으다 엉겁결에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일제히 한곳을 향했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도 아니고, 얼마나 자세히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최대한 발랄하게 말을 이었다. “안녕하세요. <시사IN>이라는 주간지 기자예요. 기자가 뭐 하는 직업인지 아는 사람 있어요?” 의외로 학생들이 집중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기자가 하는 일이라는 걸 설명했다.

   
ⓒ시사IN 조우혜
8ink 직원 김수현씨, 기자, 이상주 대표(위 왼쪽부터).

3개월마다 프리스타일 래퍼, 전문 인터뷰어 등 초대

학생들이 차례차례 가상 스튜디오에 나와서 앞에 쓰인 원고를 읽었다. 화면으로 보면 그럴듯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유독 잘하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황선범군(14)은 “또박또박 읽으려고 노력했어요. 정말 신기해요. 방송하는 사람을 본 게 처음이에요”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교사가 꿈이지만 아나운서를 체험해보니 재미있다고 했다.

강사 섭외부터 프로그램을 짜는 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전날 밤을 꼬박 새웠다. 진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해서 이날처럼 직업 체험이 주를 이루는 건 아니다. 8ink는 몇 가지 진로 정보 제공사업을 한다. 대표적인 게 강연이다. 3개월에 한 번,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초대해 ‘가치나눔 콘퍼런스’를 한다. 프리스타일 래퍼, 전문 인터뷰어 등 다양한 사람을 초대했다. 가치 있는 일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직업을 청소년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1000개의 직업’ 중개자 노릇을 하는 것.

8ink를 함께 이끌어가는 이상주씨와 김수현씨는 군대 동기다. 각 분야 명사를 초청해 아이디어를 나누는 ‘가치나눔 콘퍼런스’를 2009년에 시작했다. 강사는 7개 국어 능통자, 사막에 나무를 심는 나무숲 대표, 긴급구호팀장 등 다양했다. 처음에는 중·고생을 대상으로 구상했지만 막상 행사를 치르고 보니  학생은 입시 때문에 ‘가치나눔’에 관심 가질 여력이 없었다.

10대의 진로 교육이 오로지 대학 입시에만 맞춰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꿈도 부모가 원하는 게 대부분이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직업군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콘퍼런스로 수익 모델이 생기면 직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지인 다섯 명이 뭉쳐 3개월 전 회사를 차렸다. ‘방과 후 학교’ 프로젝트와 직업 정보를 담은 잡지 <Woud you(우주)>도 발행했다.


   
ⓒ시사IN 조우혜
7월13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8ink의 아나운서 직업 체험에 학생들이 참여했다.

강연료 얘기 듣자마자 전화 뚝 끊는 유명인도

김수현씨(27)는 “대학에 와서야,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데 그러다보니 내용이 똑같은 스펙 경쟁이 된다. 중학교 때부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면, 20대의 생활이 달라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섭외 과정에서 상처받은 경험도 적지 않다.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강연료 얘기를 듣자마자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유명인도 있었다. 난생처음 공무원을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빗줄기가 약해진 오후, 이 대표가 짐을 챙겼다. 사뭇 비장한 표정이다. 부천문화재단에 발표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을 지역 주민에게 설명하는 자리다. 랩, 매듭공예, 일러스트레이트 따위 직업교육과 관련한 방과 후 수업이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 홍보가 중요하다. 지역에서 구심점이 되는 사람이 모이는 자리라고 하니 중요한 기회다. 잠실에서 부천까지 1시간30분. 전철 안에서 발표 내용을 암기하며 쉴 새 없이 연습했다. ‘씨앗포럼’이라는 자리였다. 지역문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작은 모임이다. 이 대표는 8ink의 의미부터 설명했다. 옆으로 뉘면 무한대를 의미하는 8. 좋은 생각(think)이 잉크(ink)처럼 번져간다는 의미였다.

발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주민의 질문이 이어졌다. 가장 많은 질문은 어떤 강사를 보유하고 있는가였다. 포럼에 참가한 한 카페 운영자는 자기도 시간을 내어 바리스타 교육을 하겠다고 자원했다. 이 대표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청소년에게 직업 정보를 소개하지만 청소년 말고도 만나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치나눔 콘퍼런스를 지방까지 확대하는 게 8ink의 목표다. 세상에 직업은 많다. 그 직업을 소개하는 직업까지 있다.

이 직업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다양한 영역의 직업군을 발굴하고, 청소년·교육 공무원과도 대면해야 하기 때문에 외향적 성격에 적합하다. 박원순 변호사는 “진로 정보 분야는 블루오션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예비 체험을 하려면 8ink에서 재능기부자 및 자원봉사자 문의를 받는다(8ink.org).

   


이 지면은 세상을 바꾸려는 ‘대안 직업’의 세계를 기자들이 직접 체험하는 난으로,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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