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머니(중국계 자본)’ 쓰나미가 유럽을 휩쓴다. 3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이 지금 재정위기에 허덕이는 유럽에 경제협력과 금융 지원 등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전략적 동반자’ 구호를 외치며 곳곳에 자본 투자와 기술제휴도 넓히는 중이다.

중국 원자바오 총리와 각료 13명은 지난 6월25~29일 헝가리·영국·독일 3개국을 돌면서 국가 간 경제협정을 체결하고 순수 민간 투자계약과 구매 약속을 쏟아냈다. 원자바오 총리 일행은 첫 방문국인 헝가리에서 약 14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 매입을 약속하고, 12개 무역 협상을 통해 긴밀한 경제협력을 다짐했다. 영국에서는 23억 달러어치의 무역 거래를 성사시켰다. 상하이자동차산업공사가 소유한 로버자동차 생산공장이 있는 롱브리지를 둘러보고 내몽골에 지하 전기발전소를 합작해 건립키로 했다. 두 나라는 또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는 경협을 더욱 확대키로 합의했다.


ⓒAP Photo6월27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오른쪽)는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에게 ‘큰손’다운 투자를 약속했다.

중국, 2000여 독일 기업에 자본 투자

독일에서는 현재 약 1300억 유로(약 198조원)에 달하는 양국 간 교역량을 2015년까지 2000억 유로(약 305조원) 규모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에어버스 A320 62대를 포함해 150억 달러에 이르는 상품 구매 거래를 성사한 후 국가 간 협력 10건과 경제협력 4건을 체결하기도 했다. 중국과 독일은 상호 투자액도 계속 증대키로 했다. 다임러·폴크스바겐·BMW·아우디 등 자동차 회사와 지멘스·BASF 등 독일 대기업이 2010년까지 약 207억 유로(약 32조원)를 중국에 투자했고, 중국은 2006~2009년 독일에 6억5000만 유로(약 9900억원)를 직접 투자했다.

중국은 현재 독일에 있는 미국 GM자동차 자회사인 오펠을 인수하기 위해 입질을 계속하는 중이다. 중국의 컴퓨터 업체인 레노보는 지난 6월 독일의 메디온을 6억3000만 유로에 인수했다. 독일 업체 로스만의 지분 40%도 중국이 가지고 있다. 그 밖에 중국은 융한스, 골드파일, 에스프리 등 독일 유명 메이커의 지분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이 자본을 투자한 독일 중소기업은 무려 20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2020년까지 독일 투자액을 50억 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중국이 이미 투자했거나 또 투자하겠다는 유럽 국가는 모두 18개국에 이른다. 북쪽으로는 아이슬란드, 동쪽으로는 몰도바와 벨로루시·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비롯한 발칸 제국, 남쪽으로는 그리스와 터키,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등 유럽 전역에 걸쳐 있다. 유럽연합(EU) 27개국과 중국의 연간 교역량은 2010년도 3950억 유로(약 602조원)에 달했다. 중국은 2010년까지 전 세계 129개 국가에 총 3800억 달러를 투자했다.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 컨설팅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까지 무려 1조 달러를 해외 투자에 쏟을 것으로 알려졌다.


ⓒAP Photo6월26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영국 MG 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시승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정부의 지원을 받은 국영은행·국영기업과 투자기관을 통해 돈을 풀어왔다. 터키에는 300억 달러를 투자해 4000㎞에 이르는 고속전철을 건설 중이고 원자력발전소도 세우고 있다. 재정위기로 흔들리는 포르투갈에는 51억 유로에 이르는 국채 매입을 약속했다. 또한 스페인 국채 75억 유로어치를, 그리스 국채 수십억 유로어치를 구입하기로 약속했다. 2008년에는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의 컨테이너 하역항에 33억 유로를 투자해 35년간 임대계약을 맺고 운영 중이다. 그 밖에 북부 테사로니키항과 아테네 인근의 엘레우시스항, 그리스철도(OSE) 투자 계획도 밝혔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와 독일 베를린을 잇는 A2 등 2개 고속도로 건설도 규모가 큰 공사로 꼽힌다.

중국의 투자 손길은 아이슬란드까지 뻗어 있다. 어업 가공공장인 ‘시푸드’에 43%를 투자해 공장을 짓는가 하면, 노르웨이에서는 15억 유로를 투자해 규소 생산업체인 엘켐을 인수했다. 스웨덴의 볼보자동차도 중국에 넘어갔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 다뉴브강을 관통하는 1.5㎞ 길이 ‘우정의 교량’을 짓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중이다. 스위스에도 손길을 뻗어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시노펙이 스위스 석유 탐사회사인 아닥스와 합작 투자를 하기로 약정을 맺었다. 불가리아에서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 중이고 루마니아에는 트랙터 제조공장을 짓고 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항 보수 공사도 맡았다.
2005~2010년 중국은 영국에 85억, 스위스에 72억, 프랑스에 40억, 그리스에 50억, 벨기에에 27억, 스웨덴에 18억 달러를 각각 직접 투자했다. 인수합병(M&A) 및 직접 투자 대상은 대부분 정보통신(IT)·금융·자동차·화학·제약·기계 분야이다.


“우리 미래를 중국에 팔고 있다” 경고 나와

중국이 천문학적인 액수를 풀어놓으며 유럽을 휩쓸고 있는 데 대해 유럽에서는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YouGov)’가 독일인을 상대로 최근 실시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8%가 중국의 ‘차이나 머니 풀기’에 우려를 나타냈다. 환영한다는 응답자는 11%에 지나지 않았다. 또 전체 응답자의 58%가 중국에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적으로 본다는 응답률은 22%에 불과했다.

중국의 대유럽 투자 가운데는 허장성세인 것도 없지 않다. 한 예로 북부 독일의 함부르크와 베를린 중간에 있는 파르킴 공항의 경우는 중국의 ‘링크 글로벌’이 1억 유로를 투자해 인수하기로 해놓고도 투자액을 제대로 입금하지 않아 주정부가 개입해야 했다. 독일에서는 자동차 부품, 기계, 전기, 화학, 제약, 전자, 재생에너지 분야의 첨단 핵심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운영난에 처하면 다른 중국 기업이 잽싸게 달려들어 이를 인수하거나 투자하려 든다. 이들은 독일의 첨단기술과 경영 노하우, 고급 인력에 특별히 큰 관심을 보인다.

“독일이 대기업 위주로 중국에 200억 유로가 넘는 대규모 투자를 해온 데 비해 중국은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점에 주목하라”고 일간지 〈빌트〉는 경고한다. 이 때문에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통신·전기·기계 및 방산 분야에서 민감한 핵심 기술의 통제되지 않은 이전은 금지되어야 한다”라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귄터 외팅거 EU 통상집행위원은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제3자에게 팔고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더크 모엔즈 중국 주재 EU 상공회의소 소장 또한 “유럽이 한목소리로 차이나 머니 공세에 대처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전략적 가치가 있는 유리섬유 생산업체인 드라카를 중국이 인수하는 것을 네덜란드 정부가 나서서 막은 일도 있다.
세계 수출 1위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해외 근로자만 77만명이 넘는다. 경제력도 곧 미국을 앞지를 전망이다. 경제교류 확대와 ‘돈 자루 풀기’로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자국에 대한 유럽의 경제 의존도를 더욱 높이려는 중국에 유럽의 경계심은 커져만 간다.

기자명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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