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가진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 지난 대통령 선거 직전인 2007년 12월7일 이명박 후보는 이렇게 약속했다. 선거 기간 내내 이명박 후보는 BBK·다스·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으로 골치를 앓았다.

2009년 7월6일 이 대통령은 재단법인 청계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그러고는 자신 소유의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과 대명주빌딩, 양재동 영일빌딩을 청계재단에 내놓았다. 빌딩 세 채에 대한 감정평가액은 395억원. 총 기부액은 임대보증금 등 부동산 연관 채무 64억3000여 만원을 뺀 331억4200만원이었다. 


 

기부 당시 이 대통령은 ‘재단법인 청계 설립자 이명박’이라는 이름으로 ‘재단법인 청계의 설립에 즈음하여’라는 글을 발표했다. “제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를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로서만 아니라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제 진실한 소망입니다.”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연 청계재단 송정호 이사장은 “이제 대통령은 물질적 욕심이 없을 것으로 믿는다. 오직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욕심 하나밖에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개인 철학이 있었다. 최고지도자 재임 중에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한 것은 세계 정치사에 유례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재산 기부는 큰 화제였다.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연합뉴스〉는 “이 대통령의 재산 기부는 어제 입적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에서 영향을 받았다”라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부유한 부모들이 후손들에게 재산의 대부분을 상속하는 한국 내 부유 계층의 행동과 비교할 때 이 대통령의 재산 기부는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후 청계재단의 활동은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2010년 6월15일이 되어서야 재단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러나 ‘홈페이지를 오픈했다’는 공지사항 이외에는 아무런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재단을 소개하고 있다. “재단법인 청계는 이명박 대통령께서 약속한 전 재산 출연으로 이루어진 재단입니다.” 송정호 이사장 인사말에도 “이명박 대통령께서 출연하시기로 약속한 전 재산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넓혀주기 위하여 설립된 공익재단입니다”라고 밝혔다.

자기 재단에 돈 내는 게 기부인가?

찬양 일색이던 언론 보도와 달리 일각에서는 청계재단 설립 때부터 논란이 있었다. 특히 재단을 직접 만들어 기부한 방식을 두고 진정한 기부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 장학재단 관계자는 “재벌이 재단을 만들어 생색을 내면서 상속이나 증여의 수단으로 삼곤 했다. 이 대통령이 다른 재단에 재산을 기부했다면 기부의 의미가 한층 빛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계재단 이사장은 이 대통령의 절친한 대학 동기이자 후원회장을 지낸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이 맡았다. 이사를 맡은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류우익 서울대 교수(전 대통령실장)도 ‘절친’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 밖에 김도연 울산대 총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문애란 퍼블리시스웰콤 대표,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전 청와대 수석), 유장희 이화여대 교수, 이왕재 서울대 교수, 이재후 김앤장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이상주 변호사 등 9명이 이사진에 포함됐다. 이 중 이상주 변호사는 대통령의 사위로, 그가 이사진에 참여한 것을 두고 편법 증여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재단 감사는 김창대 세일이엔씨 대표와 주정중 삼정컨설팅 회장이 맡았다. 김창대 감사는 포항 동지상고 동창으로 이 대통령 후원회인 ‘명사랑’ 회장을 지냈다. 다스 주식의 4.16%(1만2400주)를 갖고 있어서, 이 대통령 집안과는 사업적 파트너 관계다. 주정중 감사는 1997년 국세청 조사국장으로 일할 때 100대 기업인을 사무실로 불러들여 한나라당 대선 자금에 쓸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현재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 1층에 자리한 청계재단은 이 아무개 청계재단 사무국장과 여직원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아무개씨는 이 대통령이 소유한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을 관리하던 대명기업 직원으로, 도곡동 땅 매각 대금도 관리했던 인물이다. 대선 당시 대명기업은 대통령의 큰딸 주연씨와 아들 시형씨가 위장 취업했던 곳이기도 했다. 주연씨는 이상주 변호사의 부인이다.

‘편법 증여용 재단’ 의혹도 

청계재단 설립 당시 한 청와대 관계자는 “청계재단 사람들은 대통령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이들로 직접 선정했다”라고 말했다. 서울교육청 평생교육과 담당자는 “재단 이사에 설립자의 친구와 지인을 임명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공익재단의 경우 가족이나 고용 관계에 있는 특수관계자가 이사의 5분의 1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지만, 재단 직원에 대한 규정은 없다”라고 말했다.

청계재단의 재원은 대통령이 내놓은 건물 임대료로 마련된다. 재단 출범 당시 청계재단 송정호 이사장은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과 대명주빌딩, 양재동 영일빌딩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 수입이 월 9000여 만원, 연 11억원가량 된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사돈 기업인 한국타이어에서 재단에 3억원을 냈다. 올해 초에는 이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씨가 죽은 후 다스 주식 5%를 청계재단에 출연했다. 송정호 이사장은 “원래 다스가 주식 10%를 내놓으려 했는데 재단이 생긴 지 3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5%밖에 받을 수 없었다. 최근 몇 년간 다스가 배당한 적이 없어서 실질적으로 재단 수입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누가 주식을 내놓았는가”라고 묻자, 이 아무개 사무국장은 “김재정씨 사후에 사모님이 송정호 이사장께 주식을 더 많이 내놓고 싶다고 상의했다. 주식 5%는 100억원 상당의 액수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 소유의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과 대명주빌딩, 양재동 영일빌딩(위 왼쪽부터)을 자신이 설립한 청계재단에 내놓았다.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 서류에 따르면 청계재단은 2009년 총자산 456억9000만원을 보유했다. 그 가운데 금융자산이 53억3000만원이었다. 재단은 부동산 임대수익으로 2억3000만원 등 총 2억4000만원 수입을 신고했다(청계재단은 2009년 9월부터 공익법인으로 신고를 시작했다. 재단 설립 후 청계재단은 은행에서 50억원을 대출받아 세금을 정리하고 채무를 변제했다). 청계재단은 2010년 현재 토지·건물·금융자산 등을 합해 총자산 404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2010년 부동산 임대료로 12억2677만원, 고유목적 사업으로 6억9927만원, 금융이자로 3억300만원, 기타수익 사업으로 1368만원 등 총 19억3000만원(제 경비 차감)의 수입을 올렸다. 다스 주식 5%는 제외한 액수다.

청계재단은 2010년 첫 장학금을 수여했다. 국가유공자·다문화가정·북한 이탈 주민·소년소녀가장 등 445명에게 총 6억2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한 것이다. 장학재단 총수입(19억3000만원)의 3분의 1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2011년 청계재단은 408명에게 장학금 6억500만원을 전달할 예정이다.

“대통령이 전 재산을 출연한 것치고는 장학금 액수가 적은 것 아니냐”라고 기자가 묻자 청계재단의 한 관계자는 “재단 부동산은 3년간 매도할 수 없어서 재단 활동에 제약이 있다. 그나마 공익법인이어서 세금우대 혜택을 받아 겨우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20년이 넘은 영포빌딩과 영일빌딩은 기계실이 낡아서 건물관리비와 수리비가 많이 든다. 보일러 기사, 경비들 급여 비용도 상당하다. 재단이 출범한 뒤 비용을 줄여보려고 경비 1명을 내보냈다”라고 덧붙였다.

“건물 소유자들, 재단 설립해 ‘세테크’한다”

그러나 공익재단이 받게 돼 있는 세금우대 혜택 등을 감안하면 청계재단의 이 같은 설명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세청 한 고위 관계자는 “비영리 재단의 경우 비영리 공공 목적에 사용하는 돈에 대해서는 소득세와 법인세·주민세 등이 면제된다. 총수입의 30~35%에 해당하는 액수다”라고 말했다. 그의 셈법에 따르면 청계재단의 경우 한 해 면제받는 세금이 총수입(19억3000만원)의 30~35%인 6억원 안팎에 달하는 셈이다. 윤종훈 회계사는 “재단 수익사업의 경우 비용으로 인정받아 세금을 내지 않는 방법이 있고, 비수익 사업의 경우 세금이 아예 없다”라고 말했다.

 

 

 

 

 

 

 

ⓒ뉴시스2009년 7월5일 송정호 청계재단 이사장(가운데)이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환원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 대통령이 재단을 설립한 의도를 순수하게 보지 않는 시각이 일부에 존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초동 영포빌딩 근처의 한 건물주는 “건물을 공익재단 소유로 돌리면 소득세 22%를 감면받고 주민세·보유세 일부도 면제받는다. 건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재단을 만든 사람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건물주 서 아무개씨는 “자식에게 건물을 상속하면 재산의 40% 가까이를 세금으로 뺏긴다. 재단을 만들어 넘겨주면 10%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 재단에서 직업도 생기고 돈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정호 이사장은 “청계재단은 본래 부동산 임대료 수입 11억원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이사들은 월급을 전혀 받지 않고 모두 봉사활동으로 일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단 관계자는 “기업체로부터 기부금을 받자는 이사님도 있지만 대통령으로 계실 때는 기업 기부금도 받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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