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법기관에는 ‘중수부’ 없다
  • 고제규 기자
  • 호수 196
  • 승인 2011.06.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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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거악 척결’을 위해 중수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외국 사례와 견주었을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중수부 폐지 논란에서 검찰이 승리할 것이라는데….
“중수부 폐지는 검찰 수사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검찰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의도이다.” 2011년 6월 김준규 검찰총장의 말이 아니다. 2004년 6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대검 중수부) 폐지에 반발한 송광수 검찰총장의 말이다.

꼭 7년 만에 중수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공수 주체만 바뀌었을 뿐이다. 2004년에는 참여정부가 검찰 개혁 차원에서 중수부 폐지를 밀어붙였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한다는 복안도 마련했다. 그때 수비진은 검찰과 국회였다. 2011년, 국회가 먼저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이번에는 청와대와 검찰이 수비 진용을 짰다.

그때나 지금이나 적극 수비에 나선 검찰 논리는 똑같다. 이른바 ‘거악 척결론’이다. 거악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소총수(지검 특수부)’ 대신 ‘거포(대검 중수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논리뿐 아니라 대검 중수부를 둘러싼 수사 환경도 엇비슷하다. 2004년 대검 중수부는 대선자금 수사로 중수부 폐지 여론을 잠재웠다. 참여정부가 대검 공안부와 중수부 폐지를 준비하는 와중에 대선자금 수사가 시작되었고, 이 사건 수사를 대검 중수부가 맡았다. 폐지 대상이던 중수부가 ‘안대희(당시 중수부장) 팬클럽’이 생길 만큼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여론을 업은 송광수 검찰총장은 “중수부 수사가 잘못되면 내가 먼저 목을 치겠다”라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결국 참여정부는 중수부 폐지 대신 축소 방안을 선택했다. 중수부 5과 체제를 3과로 줄인 것이다. 

   
ⓒ연합뉴스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 팬클럽 회원들이 지지 촛불 시위를 했다.

2011년 지금, 수사 상황도 유사하다. 부산저축은행 수사로 대검 중수부가 양수겸장 효과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수사 외 중수부 폐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여론전 성격도 짙다는 것이다. 지난 6월7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중수부 폐지를 반대하며 국회와 대검 앞에서 108배를 올렸다. 검찰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수부 존치론은 ‘제 얼굴에 침뱉기’

그런데 중수부 폐지론이 불거질 때마다 검찰이 내놓는 모범답안, ‘거악 척결 거포론’에 대한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국외 사례와 견주어도 검찰의 논리가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사법 제도, 특히 형법이나 형사소송법은 일본에서 따왔다. 일본은 한국으로 치면 대검찰청에 해당하는 최고검찰청에 수사기구가 없다. 최고검찰청은 수사 지휘만 할 뿐 직접 수사를 담당하지 않는다. 대신 도쿄지검 특수부가 한국으로 치면 대검 중수부 노릇을 한다. 일본 검찰에서 특수부는 50개 지검 가운데 도쿄·오사카·나고야 3곳에만 설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큰 도쿄지검 특수부는 ‘살아 있는 권력’을 베기로 유명하다. 1976년 록히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계의 실력자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무너뜨리면서 일본 검찰의 신화로 남았다.

이런 도쿄지검의 특수부 신화도 지난해 무너졌다. 마에다 쓰네히코 오사카지검 특수부 검사가 증거를 조작해 검찰 기소 내용을 짜 맞췄다. 검사 3명이 구속되고 지검장이 사퇴했다. 도쿄·오사카·나고야의 특수부마저 없애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일반 형사부와 달리 특수부 검사들은 수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각본을 짜놓고 증거를 끼워 맞춘다는 비난 여론이 높았다. 최고검찰청은 최근 지검 특수부 폐지 대신 특수부에 증거 검증 검사를 파견한다는 보완책을 내놓았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중수부 대신 지검 특수부로 사건을 넘기면 거악 척결이 쉽지 않다는 검찰의 논리는, 동료(지검 검사)를 비난하는, 제 얼굴에 침뱉기이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지검·고검·대검 체계를 갖춘 상태에서 대검까지 수사 기능을 가진 국가는 없다. 중수부 대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안이다”라고 덧붙였다.

검찰 일각에서는 영국의 중대사기범죄수사청(SFO)을 중수부 존립의 근거로 들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은 예이다. 공무원 범죄를 전담하는 이 조직은 우리로 치면 오히려 검찰이 설립을 반대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가깝다. 중대사기범죄수사청을 비롯해 홍콩의 염정공서(ICAC)나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수사국(CPIB)도 모두 검찰에서 분리되어, 공무원의 뇌물과 비리를 겨냥한 특별 사정기구이다. 천수이볜 타이완 전 총통을 사법처리한 타이완 최고법원검찰서(대검)의 특별수사팀이 그나마 대검 중수부에 가깝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6월6일 대변인 대신 이례적으로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는 성명을 직접 발표했다. 부산저축은행 수사로 얻은 여론의 지지를 반영하듯, 김 총장은 “항해가 잘못되면 선장이 책임지면 된다”라고 말했다. 2004년 송광수 총장의 “내 목을 치겠다”와 똑같은 의미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중수부 존폐 여부는 ‘어게인 2004’가 될 것이다. 이번에도 중수부는 존치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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