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반대를 한국전쟁의 ‘낙동강 전선’에 비유했다. 서울이 한번 밀리면 부산까지 내려간다는 심정으로 지켜내겠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부산은 이미 ‘뚫렸다’.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이 실시되는 중이다. 오 시장 ‘홀로’ 전선 사수 투쟁을 벌이는 셈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의제는 최대의 정책 이슈이자 ‘복지 포퓰리즘’ 논쟁에 불을 지핀 도화선이었다. 교육감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도 친환경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1년. 새 학기가 시작된 3월부터 전국 229개 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약 80%에 해당하는 181개 시·군·구에서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다.

무상급식은 그 대상이 소득별인지, 무차별인지에 따라 성격이 갈린다. 선거 당시 한나라당은 저소득층 위주의 선별적 적용을 주장했고 민주당은 일괄 적용을 말했다. 무상급식은 단일 공약이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국 지방자치단체장의 리더십 유형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6·2 지방선거의 뚜렷한 특징으로 꼽히는 여소야대 형태의 지자체에서는 특히 그렇다.

서울·경기·충남·경남·강원 5개 광역자치단체는 단체장의 당적과 광역의회 다수당이 서로 다르다. 단체장의 주요 정책이 시·도 의회의 벽을 넘기 어려운 구조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교육청이라는 단위가 더해져 조율 주체가 삼각관계를 이룬다. 세 단위의 이익과 갈등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단체장의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뉴시스5월24일 ‘복지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청구를 위한 서명(위)이 40만명을 넘어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극한대립형’이라 할 수 있다. 벌써 5개월째 서울시의회와 대치 중이다. 지난해 연말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37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손질했다. 초등학교 무상급식비 695억원을 신규 편성하는 동시에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비를 증액했다. 반면 서해뱃길 사업(752억원), 한강예술섬 조성공사(406억원) 등 오세훈 시장의 역점 사업은 전액 삭감되었다. 오 전 시장은 ‘타협에도 정도가 있다’며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16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복지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의 무상급식 주민찬반투표 서명이 현재까지 40만명을 넘어섰다. 서울시민 중 투표권자의 5%인 41만8000명의 서명을 받으면 주민투표가 가능하다. 이들은 6월 중 주민투표 청구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나 홀로 투쟁이었던 만큼 주민투표가 성사돼 반대를 끌어낸다면, 성과 역시 온전히 그의 몫이다.

대권 주자로서의 차별화 심리 또한 ‘극한대립형’ 리더십을 부추긴 요인으로 보인다. 서울시의 한 민주당 서울시의원은 계속된 오 시장의 의회 출석 거부에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조차 밀리고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연성 이미지에 갇혀 있는 본인의 이미지를 강성 소신파 이미지로 각인시키고, 대선 후보 지지율을 한 계단 업그레이드해보려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유력 대권 주자로서 전국을 상대로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주고받기형’

역시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무상급식 문제에서 ‘주고받기형’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도는 진보 교육감의 선두주자이자 무상급식 공약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김상곤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한 곳이다. 김 지사는 과거 ‘무상급식은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며 김 교육감을 겨냥한 바 있다. 6·2 지방선거 결과 도의회 131석 중 76석은 민주당이 차지했다. 예산안 처리를 두고 갈등이 예상됐다. 하지만 일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지난해 경기도의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예산수정안(약 13조8000억원)을 통과시키면서 친환경 급식 예산액을 기존 58억원 규모에서 342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무상급식 대신 친환경 급식 예산으로, 이름은 다르지만 타협안을 제시했다. 대신 원안에선 전액 삭감됐던 국제보트쇼, 국제항공전 등 김문수 지사의 역점 사업이 일부만 삭감된 뒤 통과됐다. 의회와 지자체가 서로의 숙원 사업을 두고 빅딜을 벌인 셈이다.

싸워서 힘을 빼는 것보다 실리를 얻겠다는 김 지사 측의 의도가 엿보였다. 김문수 지사는 당내 안팎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올해 초 경제인단체연합회 모임에서 “서울시처럼 싸움을 못해서 안 하는 거 아니다. 그러나 우리 경기도는 할 일이 많다. 우리는 싸울 시간이 없다”라며 오 시장과 은근히 각을 세우기도 했다.

친노 대표 주자인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서울시·경기도와 입장이 정반대다. 여소야대라는 구조는 같지만, 단체장이 앞장서서 무상급식을 추진하려는 데 반해 도의회가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두 사람은 ‘타협형’ 리더십을 발휘해 주요 공약이었던 무상급식을 이행하고 있다.

안희정 지사의 타협 상대는 시의회와 교육청 양쪽 모두다. 충남도의회는 자유선진당이 21석(전체 45석)으로 다수당이다. 한나라당처럼 무상급식에 대해 뚜렷한 당론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도의회는 취임 직후부터 무상급식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지난해 9월, 도의원 32명이 서명한 친환경 무상급식 추진특위 구성 결의안이 자유선진당 의원이 과반 이상인 운영위원회에서 부결됐다. 지난해 말, 충남도의회는 4시간 이상 이어진 난상토론 끝에 올해 도내 초등학교 무상급식에 필요한 충남도의 소요액 75억원(전체 625억원 중 충남도 부담액)을 가결했다.

무상급식안을 지지하지만 예산 지출을 부담스러워한 교육청과의 조율도 관건이었다. 도 교육청은 처음 지자체가 70% 부담할 것을 요구했지만 결국 50%로 타협했다. 그로써 충남도는 초등학생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한 지자체에 이름을 올렸다. 충남도청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안 지사가 수차례 시의원을 따로 만나 설득한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유아까지 무상급식 대상을 확대하는 등 내용을 담은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 개정안은 의회에서 수개월째 표류 상태다. 지역 시민단체는 도와 도의회 양쪽의 소극적인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교육청과의 적극적인 타협을 통해 도의회를 압박했다. 지난해 김 도지사와 고영진 경남교육감은 2014년까지 의무 교육기관인 도내 모든 초·중학교로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지사는 도의회의 무상급식 예산 삭감에 대한 유감의 뜻을 분명히 했다.

경남도의회 다수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무상급식 관련 예산안 중 올해 경남도가 부담해야 할 235억원 가운데 85억원을 깎았다. 그 결과 도교육청은 애초 18개 시·군 총 605개 학교 19만8000명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려 했지만 읍·면 단위의 중고생 3만7000명은 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대상은 줄었지만 추경예산을 감안하면 비교적 무난히 시행 첫해를 맞이한 걸로 평가받고 있다. 6·2 지방선거의 승패를 갈랐던 무상급식 프레임은 선거 1년을 돌아보는 지표로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전국 15개 광역 지자체 중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곳은 대구·울산·경북·강원을 제외한 11곳이다. 전면 무상급식에 회의적인 서울·경기·부산·울산·대구·경북 중 의회와 충돌을 빚는 곳은 단체장의 당적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서울뿐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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