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돈이다. 지방정부의 정책 집행 능력이란 결국 예산 확보 능력이나 마찬가지다. 설문에 응한 광역단체장(시장·도지사) 14명은 여당과 야당, 초선과 재선 이상을 가릴 것 없이 “지방재정 개혁이 시급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미묘한 온도차는 감지됐다.

지방정부의 재정 문제만 보면, 한국의 지방자치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지방정부 재정자립도는 1998년 63.4%를 정점으로 계속 하락해 2010년에는 52.2%까지 떨어졌다. 전국 246개 지방자치단체 중 절반이 넘는 137곳은 지방세 수입이 지자체 인건비조차 밑돌았다. 단체장이 의지를 갖고 사업을 벌인다는 건 엄두도 내기 힘들다.

많은 시장·도지사가 ‘재정 비대칭’ 문제를 지적했다. 현재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은 8대2 수준. 하지만 중앙정부 대 지방정부의 세출 비율은 4대6으로 뒤집힌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방재정이 부실한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선진국의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보면 미국 5.5대4.5, 일본 6대4, 독일 5.1대4.9이다. 우리만 8대2다”라며 우리 지자체의 재정 비대칭이 심각하다고 짚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지방정부 수장들의 최대 숙제는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위는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청와대에서 만난 MB(오른쪽 네 번째)와 단체장들.

 


이른바 ‘MB노믹스’의 핵심 기조인 감세 정책도 지방 재정이 빡빡해진 원흉으로 꼽혔다. 감세로 세수가 줄어들면 지방정부 재정이 직격탄을 맞는데, 정작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감세 정책에 개입할 방법은 없다. 그저 ‘처분만 바라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감세 정책은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에게도 인기가 없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경기도 세수의 65%나 되는 부동산거래세가 정부의 감세 정책과 부동산 거래 위축 때문에 줄어들었다”라고 답했다. 박맹우 울산시장도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지난해 울산에서만 지방세 1400억원이 줄었다”라고 답했다. 박 시장은 “세제를 개편할 때 지자체와의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MB 정부의 ‘상징적 감세’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과세대상 축소를 문제 삼았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종부세는 세수가 지방정부로 가도록 고안된 세금인데, 종부세 축소로 지방재정이 말라버렸다는 지적에 한나라당 단체장조차 공감을 표한 셈이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3월22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경기부양 대책의 핵심은 취득세 감면인데, 취득세는 국세가 아니라 지방세다. 중앙정부가 별다른 상의 없이 지방정부의 주머니를 또다시 쥐락펴락하는 셈이다. 여야 지자체장이 한목소리로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5월19일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가보조금 늘어난 탓에 재정 자율성 줄어

이런 상황에서 복지사업까지 급증해 예산 압박이 심하다는 고충을 털어놓는 단체장도 적지 않았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사회복지비, 국고보조 매칭부담 등 의무 세출수요가 급증해 지방재정이 악화된다”라고 답했다.

정부가 복지 등의 지출을 확대하면 이른바 ‘매칭 구조(정부 지출분만큼 지자체가 지출해야 하는 구조)’로 묶인 지자체의 부담도 따라서 커진다. 지방세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국고보조 사업이 늘면 그게 그것처럼 보이지만, 이 매칭 구조 때문에 지방재정 운영에 제한이 커지는 것이다. 김완주 전북도지사는 “1995년 이후 지방세는 3배 증가한 반면 국고보조금 등은 4.7배가 늘었다. 이렇게 되면 지방재정은 늘어도 재정 자율성은 오히려 줄어든다”라고 밝혔다.

결국 단체장들이 말하는 해법은 ‘매칭 구조에 묶인 국고보조 대신 자체사업 운용이 가능한 지방세 비중을 높이는 세제 개혁’으로 모인다. 구체적 수치를 제시한 단체장도 꽤 있었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지방세 비율을 30%까지는 올려야 한다”라고 답변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와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지방세 비율 40%’를 주장했다. 차기 대선 주자군으로 분류되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세·지방세 비율을 G20 수준인 5대5 구조로 전면 개혁해야 한다”라는 급진적인 답을 내놓았다.

지방세 비중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세목으로는 지방소비세를 꼽는 단체장이 많았다. 현재 국세인 부가가치세 중 5%가 지방세로 이전되며, 2013년까지 이 비율을 10%로 높이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이 상향 조정을 조기 집행하거나 비율 자체를 올리자는 것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20%까지 상향하자고 주장했고,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장기적으로 100%를 지방세로 돌릴 필요가 있다”라고 답했다.

지방정부 재정 건전성을 위한 개혁이 시급하다는 데는 모든 단체장이 입을 모았지만, 비교적 재정이 여유로운 수도권과 그렇지 못한 지방의 미묘한 의견 차이도 있었다.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수도권 이외의 지방정부에 가중치를 적용해야 한다”라고 답했고,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지방정부의 재정력에 따라 지역별로 국고보조율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기자명 이숙이·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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