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북한 김정일이 중국에 가면 실시간으로 알았다. 아무리 남북 관계가 막혀 있더라도 현 정부에서 한·중 관계만 괜찮았다면 이런 황당한 정보 헛발질은 없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외교안보 계통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최근 벌어진 ‘김정은 방중’ 오보 소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는 ‘김정은 국방위 부위원장 방중(訪中)’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오보 소동을 순전히 언론 탓으로 떠넘기고 있지만 군색하기 짝이 없다. 5월20일 아침 〈연합뉴스〉발로 ‘김정은 방중’이라는 첫 오보가 나간 뒤 청와대와 통일부 등 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 실세들은 내외신 기자들의 쏟아지는 문의에 ‘김정은 방중의 의미와 배경’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김정은이 아닌 김정일 위원장이 방중했다는 정보를 정부가 미리 알았다면 있을 수 없는 사태 전개였다. 중국 정부는 한참 뒤에야 우리 정부에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알려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보 소동은 흐지부지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보 헛발질’은 이명박 정부의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의 난맥상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Xinhua국정원은 지난 3년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위)의 건강이상설을 확대·재생산했다.

 


뒤늦게 알려졌지만 이번 소동의 진원지는 국가정보원과 일부 청와대 관계자였다. 이날 아침 청와대에 보고된 ‘김정은 방중’이라는 국정원 제1보를 외교안보 라인 관계자들이 비공식으로 일부 언론에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북 정보수집 총괄 기관인 국정원은 왜 이토록 중대한 오류를 범했을까.

정보 전문가들은 현 정부 들어 원세훈 국정원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인적 청산을 대북 정보 난맥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집권 후 ‘잃어버린 10년 청산’을 기치로 내건 MB 정권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햇볕정책과 연관된 국정원 내 인력·기능을 대폭 축소했다. 그 결과 10년간 쌓아온 대북 정보 자산이 상당 부분 사장됐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는 남북 관계를 활성화하면서 사람 대 사람을 접점으로 이뤄지는 인적 정보인 ‘휴민트’를 극대화했다. 햇볕정책으로 남북한 사이에 다양한 접점이 이뤄지면서 그로부터 정보 극대화라는 부수입을 얻어낸 것이다. 참여정부 때 국정원에서 일했던 한 고위 관계자는 “그때는 대북·대중 관계를 협력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의 다방면에서 고위층 동향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왔다. 정보 출처와의 신뢰 훼손을 우려해 이를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망명 공작 강화

북한 수뇌부 동향 관련 인적 정보를 전문으로 관리하던 국정원 3차장실은 대북 정보의 산실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3차장실의 이 같은 기능을 없애면서 대북 고급 정보 수집과 분석 판단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고 한다.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은 기존 1·2·3차장의 임무를 바꾸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종전에 해외(1차장)-국내(2차장)-북한 담당(3차장)이던 체제를 해외·북한(1차장)-국내(2차장)-산업정보 입수 및 공작 담당(3차장)으로 바꿨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대북 고립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변변한 대북 막후 접촉 채널조차 만들어두지 않았다. 대신 황장엽씨처럼 북한에 불만을 품은 주요 인사를 한국에 데려오는 망명 공작을 다시 강화했다. 우리 쪽 특수요원을 중국·북한 국경지대에 잠입시키거나 공작을 통해 고위급 탈북자를 망명케 하고 이를 통해 얻는 정보를 중시하던 과거 방식으로 국정원의 정보 마인드가 회귀한 것이다. 올해 초부터 이렇게 취합된 국정원의 북한 수뇌부 관련 정보는 ‘김정은 방중’에 안테나가 맞춰져 있었다. 원세훈 원장은 지난 3월부터 국회 정보위 등을 통해 중국 정부가 김정은을 공식 초청했다는 정보를 전하는 등 일찌감치 김정은 방중 임박설에 무게를 실었다.

 

 

 

 

 

 

ⓒ시사IN 백승기원세훈 국정원장은 올 초부터 ‘김정은 방중’에 무게를 두었다.

 

 

비단 ‘김정은 방중 오보 소동’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오랫동안, 대표적으로 정보 헛발질을 한 사례로는 ‘김정일 건강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유고가 임박했다는 각종 정보 분석을 토대로, 대통령이 나서서 북한 조기 붕괴와 급변 사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빨리 (흡수)통일이 될 것이라며 ‘통일세’ 신설을 서두르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 건강이상설 및 조기 유고 가능성이 높다는 국정원의 정보 보고가 바탕이 되었다.

이런 정보는 특히 공작을 통해 남한에 들어온,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들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이들이 중국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약점이 잡혀서 국정원의 공작 표적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들의 주장을 지나치게 믿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은 ‘북한 급변’에 집착했다. 보수적 대북 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듣고 싶은 정보만 편식한다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현인택 통일부 장관,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대표 3인방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009년 7월 미국 관리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이 3~5년밖에 못 산다. 북한은 그 뒤 붕괴한다. 흡수 통일을 위해 미국도 협력해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외교통상부 차관 시절이던 2010년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나 “중국의 신세대 관료들은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 뒤 중국에서 인력을 대대적으로 받아들이고 무역을 확대한다면 중국도 한국 편이 될 것이다”라고 설득했다. 이는 2010년 11월29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한국 관련 미국 국무부 외교 전문에 담긴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들 대북 강경파의 ‘희망’과 달리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에 장기간의 중국 방문 여정을 소화했다. 지난 수년간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보 라인이 풀가동돼 줄기차게 주장해온 건강 이상 및 조기 유고설, 권력 조기 승계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열차에서 먹고 자며 3000여㎞의 여정을 강행한 것이다. 이번에 확인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회복과 자신감은 이명박 정부가 추구해온 북한 굴복시키기와 북한 붕괴 대망론이 얼마나 속 빈 강정인지 잘 보여준다.

북한 체제 유지가 불안하고 후계 문제도 불안하기 때문에 김정은이 서둘러 ‘세자 책봉’을 받으러 중국에 갈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희망적 사고’는 결국 희대의 오보를 낳았다. 한국 정부 관계자와 언론을 인용해 ‘김정은 방중’ 보도를 내보낸 일본 〈아사히 신문〉은 곧바로 독자에게 오보를 사과했다. 그러나 최초 오보를 만들어낸 한국 언론은 정부 탓만 하고, 정부는 또 언론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청와대도, 국정원도 치욕스러운 정보 헛발질에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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