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대한 성찰, 현재를 읽는 지혜
  • 차형석 기자
  • 호수 19
  • 승인 2008.01.2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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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인문 출판사의 올해 화두는 과거에 대한 성찰과 현재에 대한 조망이다. 파고가 드세질 신자유주의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도 깊어간다.
   
  5·18(위) 등 한국 현대사를 다룬 책이 많이 출간된다.  
 
인문학은 느리다. 현안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반성과 성찰의 토양을 쌓는다. 그런 점에서 2008년 인문학 출판은 과거를 통해 오늘을 되새길 만한 묵직한 대작을 예비하고 있다. 우선 도서출판 길이 펴낼 마르크스의 <자본>이 눈에 띈다. 그동안 나온 판본은 영어 중역본이었다. 이번에 나올 <자본>은 강신준 교수(동아대)가 독일어 원전을 번역한다. 말이 필요없는 서양 고전,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도 민음사에서 출간된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저작 <러시아 지성사>(생각의 나무)는 러시아의 사상 궤적을 유장하게 살핀다. 이슬람 문화권 전체의 역사를 해설하는 <이슬람의 세계사>(이산)와 <홀로코스트>(개마고원)는 각각 1800쪽과 1400쪽에 이르는 주목할 만한 ‘대작’들이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기억을 웅숭깊게 떠올리는 기획들도 ‘지금-여기’를 살피는 데 밑받침이 될 수 있을 듯하다. 5·18민주화 운동의 역사·사회학·문학·철학 의미를 짚은 <5·18 그리고 역사>(길)는 5·18 30주년을 2년 앞두고 반드시 나와야 할 책으로 주목되고 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이문영(고려대 명예교수) 교수가 일기와 자료를 바탕으로 쓴 <이문영 회고록>(삼인)이나 일본 <세카이>에 ‘T.K.생’이라는 필명으로 군사독재 실상을 고발하는 글을 기고했던 지명관 선생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창비)은 한국의 어두운 1970년대사를 다시 환기할 태세다. 정해구 교수가 쓰는 <전두환과 제5공화국>(역사비평사)도 주목할 만하다.

2008년에 출간될 책 목록을 살펴보면, 몇몇 국내외 필자가 눈에 띈다. 왕성한 필력을 보이며 ‘2008년 활약 기대 1순위’로 꼽히는 필자는 우석훈 박사이다. 그가 박권일씨와 함께 쓴 <88만원 세대>는 2007년 인문·사회과학 출판계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는데, 2008년에도 그와 관련한 책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개마고원에서 한·중·일 세 나라의 평화경제학을 다루고 있는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이명박 정권의 의미와 진로, 대응책에 대한 책 <괴물의 해체>를 2008년 상반기에 펴낼 계획이다. 그리고 같은 출판사에서 자신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생태경제학> 3부작을 연내에 출간한다. 여기에 ‘인터뷰집’이 하나 추가된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가 우석훈 박사를 인터뷰한 <지승호-우석훈> 인터뷰집이 시대의창에서 나온다.

   
  자크 랑시에르(오른쪽)가 소개되고 김우창 교수(왼쪽)의 전집 출간도 시작된다.  
 
김상봉 교수(전남대)도 2008년 활발한 저작 활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양과 우리의 ‘주체’ 문제를 다루는 <만해와 르네>(길)를 펴낸다. <5·18 그리고 역사>(길)에는 필자로 참여해 5·18에 대한 ‘철학적’ 논문을 수록하고, 홍윤기 교수와 공동으로 편집인을 맡아 비정기 철학 잡지 <철학의 전선>(돌베개)을 만든다.
‘한국의 지성’ 김우창 교수의 저작도 주목할 만하다. 한길사에서 김우창 교수와 제자 문광훈 박사의 대담집이 나오고. 생각의나무에서는 올해부터 ‘김우창전집발간준비위원회’와 더불어 김우창 전집을 발간한다.

소명출판에서는 임화 작품을 총망라하는 기획이 진행 중이다. 전집 발간에 맞춰 임화문학상도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명순의 시와 소설, 수필을 한데 묶는 작업과 김남천 전집 발간 등 국문학계 굵직한 기획이 숨가쁘게 돌아간다.

인권운동가 오창익씨가 올해 3권의 인권 교양서를 준비하는 것도 눈에 띈다. <인권을 보는 눈>(개마고원), <인권 없는 대한민국>(사계절) <한국에만 있는 60가지 풍경>(삼인).

해외 철학자로 모리스 블랑쇼, 자크 랑시에르, 조르조 아감벤 등이 2008년에 본격적으로 소개된다. 모르스 블랑쇼 선집 1차분 <기다림, 망각> <우정>이 그린비에서 나오고, 알튀세르의 제자로 독특한 사유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자크 랑시에르의 책 <정치의 가장자리에서>가 도서출판 길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새물결에서 출간된다.

역사적 인물의 평전도 꾸준히 예비되어 있다. <나의 아버지 루쉰>(강), <히틀러 평전>(교양인), <루소 평전>(교양인), <여운형 평전 2>(역사비평사), <미하일 바쿠닌>(이매진), <매창 이야기>(한길사) 등등. 평전은 아니지만 가수 조영남이 시인 이상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조영남의 이상론’(한길사)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2008년 인문학 출판계에서 비정기 간행물인 ‘무크’의 등장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인문학이 현실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무크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 연상된다. 그린비가 <부커진 R> 2호를 낸다. 수유+너머에서 기획하는데, 19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지금-여기’의 시각에서 새로운 틀로 제시한다. 진보성향 철학자가 주축이 되어 만드는 비정기 철학 잡지 <철학의 전선>(돌베개)은 현실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통해 철학이 상아탑의 공리공담이 아니라 현실의 변화를 견인하고 주도하는 담론임을 보여주겠다고 벼른다. 산책자에서는 당대비평 편집위원회가 펴내는 사회비평서를 상·하반기에 상재한다. 여기에 외국의 진보 잡지 <뉴 레프트 리뷰> 선집이 번역 기획 중이고, 외국의 진보 잡지에서 주요 글을 발췌 번역하는 ‘번역 잡지’가 기획되고 있다. ‘무크형’ 잡지의 등장이, 인문학이 느리게 대응하기에는 2008년 한국의 신자유주의화가 염려된다는 출판계의 대응으로 읽힌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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