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씨 이야기〉에는 종일 걷는 남자가 나온다. 주인공 좀머씨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어찌나 멀리, 오래 걷는지 사방 60㎞ 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햇빛이 너무 뜨겁거나 날이 흐리거나 상관없이 줄기차게 걷고 또 걷는다. 그가 걷는 이유는 하나, 세상의 간섭이 견딜 수 없어서다.

목적은 다르지만, 여기 좀머씨처럼 온종일 걷고 또 걷는 이가 있다.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 원장(63)이다. 그는 검정 운동화를 신고 거리에서, 병원에서 걷고 또 걷는다. 혼자만 걷는 게 아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직원 1200여 명과 함께한다. 병원 내 걷기운동을 주도하는 것이다(국립암센터 원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금연운동을 벌여 안팎으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시사IN 포토걷기운동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이 속한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다.

그게 끝이 아니다. 병원 밖에서는 ‘걷기 전도사’를 자처한다. 만나는 기업가나 의사들을 붙잡고 끝없이 걷기 예찬을 한다. 얼마 전에는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운동화를 벗어 들고 걷기 예찬을 하기도 했다. 걷기 예찬론 중에는 걷기 효과가 포함되어 있다. 가장 ‘기본적인 효과’는 에너지를 적당히 소모하게 만들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고,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고,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어주는 것. 그에게 그 이상의 효과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언제부터 걷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2년6개월 전이다. 눈이 많이 와서 며칠간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는데, 의외로 심신이 개운했다. 이후 줄곧 운동화를 신고 있다.

우연히 시작한 걷기가 국립중앙의료원 내 걷기운동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직원에게까지 권유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스포츠의학 권위자인 박원하 교수(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가 내 운동화를 보더니 ‘걷기 캠페인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데, 박 원장께서 앞서 나간다’며 부러워했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걷기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직원 1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운동 이름이 ‘운출생운’이다.

운출생운이라니?
‘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생활 속 운동’을 줄인 말이다. 운이 나가서 없어도 운이 살아 돌아온다는 뜻도 품고 있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반발하거나 따르지 않는 직원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에게 이로운데 안 따를 이유가 없다. 게다가 우리 병원은 국민을 건강하게 만드는 곳이다. 솔선수범해 건강을 도모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에게 건강한 생활을 하라고 할 수 있겠나.  

많은 기업가나 의사들에게도 걷기 예찬이나 ‘전도’를 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구두를 신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면, 대부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과 진익철 서울 서초구청장은 이미 내 말을 듣고 1300여 회사 직원과, 구청 직원 수백 명에게 운동화를 나눠주고 걷기운동을 시작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과 기관들이 걷기운동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걷기는 어디에 어떻게 이로운가?
모든 스포츠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이 속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하도록 돕는다. 물론 건강에도 꽤 이롭다. 특히 걷기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혼자서 돈 안 들이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손쉬운 운동이다. 그러면서 사망률이 높은 5대 질환(암·뇌혈관질환·심혈관질환·자살·당뇨병)과 대장암(박 원장은 대장암 전문가이다)의 발병률을 10~40%까지 떨어뜨린다. 게다가 걷기는 국민 건강을 증진시켜, 노인들을 더 오래 살게 만든다. 노인들이 병원에 덜 가면, 결국 건강보험 재정이 살찌게 되어 개인이나 국가에 여러모로 득이 된다.   


ⓒ시사IN 조남진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은 직원 1200명에게 운동화를 신게 할 정도로 걷기 전도에 열심이다.

2년6개월 동안 줄기차게 걸어서 어떤 효과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원래부터 빠르게, 멀리 걷곤 했다. 그래서인지 하체가 엄청 단단하다. 잘 모르는 사람은 헬스클럽에 다니느냐고 묻는데, 오로지 빨리 걸은 덕이다.

어느 정도 걸어야 효과가 높나?
하루에 30분 정도. 약간 숨이 차거나, 땀이 적당히 날 만큼 걸으면 된다.

인터넷에는 올바르게 걷는 자세가 소개되어 있다. 어떤 자세로 어떻게 걸어야 효과를 높일 수 있나?
나 같은 경우에는 복장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구두 같은 트레킹화를 신고 출근해 수시로 걷는다. 자세가 이상하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면, 평소 걷는 대로 (빨리) 걸으면 된다.


박 원장이 소개한 효과 외에도, 걷기가 인체에 주는 미덕은 거의 무한하다.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은 걷기가 “지방과 당을 연소하고, 근육을 강화해주고, 폐에 산소를 풍부하게 공급하고, 혈액이 영양소를 원활히 운반하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말한다.

일찍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현대의 일상이 주는 속박에서 벗어나, 숲이든 산이든 들판이든 어디에서나 적어도 하루 네 시간을 산책한다면 누구나 건강해진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라고 〈산책〉에 썼다. 박 원장은 ‘…숲이든 산이든 들판이든’ 문장 다음에 ‘도심에서든’ ‘거리에서든’을 보태고 싶지 않을까.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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