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오랫동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종이 신문으로만이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보지 않았다. 〈조선일보〉야 그 ‘악명’이 워낙 유구해 1990년대부터 인연을 끊고 살았지만, 지난 세기말까지 〈동아일보〉는 구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9월 ‘대구·부산에는 추석이 없다’는 너절한 기사가 1면 머리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즉시 이 신문을 끊었다. 올해 들어서야, 가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한겨레〉나 〈한국일보〉의 오피니언 면을 훑다가, 내친김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오피니언 면에도 눈길을 주는 것이다. 놀랐다. 한때 ‘안티조선 운동’이라는 것을 우호적으로 관찰한 바도 있어서, 나는 〈조선일보〉를 한국 최악의 신문으로 여겼다. 그러나 오피니언 면만을 놓고 볼 때, 이젠 〈조선일보〉가 〈동아일보〉에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듯싶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어떤 종류의 리버럴리즘이나 진보적 논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니까.
사내외 막론하고 〈동아〉엔 격조 있는 필자 없어
그러나 보수든 중도든 진보든, 직업적 저널리스트의 글이라면 최소한의 격조라는 게 필요하다. 물론 ‘김대중 칼럼’이나 ‘강천석 칼럼’은 예상대로 노인정 잡담 수준이지만, 〈조선일보〉에는 적어도 송희영이라는 고급 논객이 있다. 마치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듯 스타카토의 단문으로 이어지는 송희영 논설주간의 경제 칼럼은 넓은 안목과 깊은 통찰력으로 독자를 계발한다. 그러나 〈동아일보〉에서는 사내외(社內外)를 따질 것 없이 그런 필자를 찾을 수 없다.
이 신문의 오피니언 면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신문사 논설위원이나 직업적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차마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한 논설위원의 글은 칼럼이라기보다 숫제 주정이다. 그 옛날의 〈동아일보〉는 어디로 갔는가? 한 주가 빨리 가기를 기다리게 했던 ‘최일남 칼럼’ ‘김중배 칼럼’은 어디로 갔는가? 삼성 재벌의 잘못을 준엄히 꾸짖던 홍승면의 〈동아일보〉는 어디에 있는가? 이 신문의 ‘횡설수설’ 난만이 아니라, 사설을 포함한 오피니언 면 전체가 횡설수설이다. 〈조선일보〉, 분발해야겠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동아일보〉는 ‘특별한’ 신문이었다. 물론 그 시절 정부에 눈 부릅뜨고 맞설 신문은 하나도 없었다. 〈동아일보〉 역시 1974년 정부의 광고 탄압에 굴복해 이듬해 일백수십 명의 기자들을 쫓아냈고, 1980년에도 전두환 신군부의 압력으로 많은 기자를 내보냈다. 그러나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동아일보〉는 ‘특별’했다. 이 신문은 1단 기사나 행간을 통해서라도 시대의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에서 다른 신문들에 앞섰다. 말하자면 그 시절 〈동아일보〉는 ‘신뢰할 수 있는’ 신문이었다. 한국의 〈아사히신문〉이 될 수도 있었던 신문이었다. 그러나 이 신문은 〈산케이신문〉의 아류로, 〈조선일보〉의 ‘머저리 아우’로 전락했다.
반면에 제5공화국 시절 〈경향신문〉은 친정부 신문을 넘어 그냥 정부 신문이었다. 그것도 시르죽은 정부 신문이었다. 그 시절의 〈경향신문〉 지면은 지금의 〈동아일보〉 지면 못지않게 추레했다. 그러나 지금 〈경향신문〉은 한국 저널리즘의 양식을 대표하는 신문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경향신문사가 지난 1998년 사원 주주 회사로 새롭게 출발한 것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기업의 지배구조와 자본의 운동력이 저널리즘의 질과 성격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다는 증거다. 일정한 물적 토대는 독립 언론의 필요조건이지만, 비대화한 자본은 자기 증식을 위해 저널리즘을 꼭두각시로 부린다. 〈경향신문〉 기자들의 살림살이는 분명히 거대 보수 신문 기자들의 살림살이에 견주어 애옥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한국 신문 저널리즘의 자존심이다. 힘내라,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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