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에 티셔츠 차림. 딸기 파티를 갓 마친 김남길씨(가명·19)가 학생회관을 향해 뛰어왔다. 유난히 마른 몸에 앳된 얼굴이다. 대학교 2학년인데 열아홉 살, 아직 십대다.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했다. 그의 모교는 학생 90%가 조기 졸업을 한다. 카이스트 학생의 60%가 김씨처럼 과학고나 영재고 출신이다.

 해마다 벚꽃이 피는 계절, 대전 카이스트 교정은 꽃향기와 딸기 향이 뒤섞인다. 동아리, 학과끼리 모여서 학생복지위원회가 헐값에 파는 딸기를 나눠 먹으며 찰나의 봄을 즐긴다. 딸기 파티라고 부른다. 파티의 계절이 오기 직전 김씨 동기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개월 사이 네 명이다. 1월8일 첫 전문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로봇 영재라 불리던 1학년 조 아무개씨(19)가 약물복용으로 숨졌고, 3월20일 2학년 김 아무개씨(19)가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3월29일 4학년 장 아무개씨(26), 4월7일 2학년 박 아무개씨(19)의 죽음이 이어졌다. 조씨를 제외한 세 명은 영재고와 과학고 출신이었다.

ⓒ시사IN 백승기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4월13일 기자간담회에서 “학생·교수들과 소통하는 데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김남길씨에게 2010년은 좌절의 해였다. 오전 9시부터 밤 11시30분까지 시간표가 빡빡했다. 9시부터 6시까지는 물리·생물·미적분학 등 영어로 된 전공 수업에다 저녁 7시부터는 연습 시간이 이어졌다. 연습 시간은 전공과목에 대한 예·복습 시간으로 대학원 조교들이 담당한다. 말이 ‘연습’이지 이때 보는 퀴즈가 성적에 반영된다. 퀴즈를 준비하느라 저녁을 거를 때도 많았다. 자정에 돌아오면 과제가 쌓였다.

신입생을 위한 ‘디자인 코스’가 특히 악몽이었다. 팀을 이뤄 한 가지 주제를 탐구하는 코스로, 빛을 이용한 기구 만들기, 암흑물질을 찾는 방법 따위 탐구 주제를 연구한다. 창의성을 계발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일주일 강의   3시간 외에 조모임과 실험 등에 10시간 이상이 소요되어 시간을 채우기 급급했다.

딱 한 주, 동아리 활동 때문에 수업을 소홀히 한 적이 있었다. 한 학기 내내 결국 수업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평생 또래보다 앞서기만 하다 처음 경험한 좌절이었다. 영재 혹은 천재라 불리는 아이들이 캠퍼스에 널려 있었다.

학생들 죽음, 등록금 제도 탓만은 아니다

일반고 출신인 정수연씨(가명·20)는, 과학고 출신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저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인터뷰 내내 그는 이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과학고에서는 미리 배우는 복잡한 수식을 영어로 처음 접했다. 시험 전 2~3주 동안 잠을 거의 안 잤다. 도서관에서 졸았던 게 전부다. 그는 고생스럽지만 학교가 공부를 시키는 데 불만이 없다. 단지 “비민주적으로 우리를 완전히 배제하는 정책을 쓰는 학교에 불만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백승기교내에 마련된 분향소에 학생들이 조문하고 있다.

 자살이 잇따르자,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개혁적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4월10일에는 교수가 자살을 했다. 2006년 서남표 총장의 취임 이후, 〈더 타임스〉 세계 대학 순위에서 카이스트는 2006년 198위에서 2009년 69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 방식이 징벌적 등록금제, 100% 영어강의제 등 학생들의 부담을 높이는 방식이라 원성을 사기도 했다.

 카이스트 수업료는 원칙적으로 면제다. 하지만 전체 학점 4.3점 중 3.0 미만일 경우 0.01점당 6만3000원 ‘벌금’을 낸다. 모든 학생이 2.95점 이상이면 기숙사비가 포함된 기성회비 150만원을 장학금 형태로 지원받는다. 3.0이 넘으면 아예 무료인 것이다. 대신, 두 번 이상 3.0을 넘지 못하면 영구적으로 기성회비 장학금 대상에서 탈락한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수업료 징수 대상이 2008년 302명에서 2010년 1006명으로 급증했다. 학교 측은 절대평가제도라고 하지만 교수들은 사실상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상대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8학기 이상 학교를 다닐 경우 800여 만원에 달하는 납입금을 납부하는 연차초과제도도 있다. 한 졸업생은 올해 2월 졸업식에서 서 총장이 세금으로 공부하게 해준 국민을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세 번 외치게 했던 걸 기억했다.

김남길씨는 ‘죽어라 달리는 말에 계속 채찍질을 하는 것’이라고 비유한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바로 돈으로 연결되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장짤’(장학금 대상에서 잘렸다는 표현) 커밍아웃은 쉽지 않았다.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 보태는 친구도 있다. 과거 그렇게 꺾여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다.

 
4월14일 저녁. 카이스트 본관 앞에서는 1971년 개교 이래 첫 학생총회가 열렸다. 1000석 규모의 자리가 꽉 찼다. 전교생은 3961명이다. 학생들은 4가지 안건을 투표했다. 비표를 들어올리는 공개투표 방식이었다. ‘학교정책 결정 과정에서 학생 대표들의 참여보장’ 등 학교에 건의할 안건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핵심 사항이던 ‘경쟁 위주 제도개혁의 실패 인정을 요구한다’라는 안건은 찬성 48.8%(416명), 반대 37.2%(317명), 기권 14.0%(119명)로 50%를 넘지 못해 부결됐다. 10표가 모자랐다.

부결 결정은 학내에서 만난 학생들의 생각과도 통했다. 학생들은 학생의 죽음이 곧 등록금 제도 때문인 것으로 여기는 외부 분위기를 못마땅해했다. 죽음에는 여러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쟁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교내 창의라운지에 마련된 학생 분향소에 헌화를 하고 돌아선 조은혜씨(건설 및 환경공학과 4학년)는 “자살이 하나의 옵션이 된 것 같아 무섭다. 하지만 경쟁 자체는 불가피하다. 제도를 폐지하는 게 아니라 방향을 수정하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대학원생 김난도씨(가명·28)는 며칠 전 선배들을 만났다. 이른바 ‘서남표 세대’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07학번인 김씨는 “내가 1학년일 때도 공부하는 게 어려웠지만 선배가 끌어주고 토닥였다. 서남표 총장 취임 후의 세대들은 무한 경쟁의식이 더 강화되면서 누구도 서로를 돌보지 않게 된 것 같아 아쉽다”라고 말했다.

ⓒ시사IN 백승기징벌 등록금제·영어강의제 등 서남표 총장이 추진한 제도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교내 곳곳에 붙어 있다.

교수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네 학생의 죽음 이후, 앞으로 영어 강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한상근 교수(수리과학과)는 자과 학생의 비보에, 예전 성적표를 뒤져봤다. 혹시 성적 비관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B+를 준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는 과거와 달리 죽음을 재촉한 학생 대다수가 1, 2학년 어린 나이라는 데 주목했다. 올해 자살한 4명 중 3명이 열아홉 살이었다. 가뜩이나 조기 졸업을 한 데다 가족들과 떨어져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방치된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이다. 최광무 교수(전산학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통해 경쟁하며 자라온 학생들이라 인간관계도 한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서 총장의 개혁을 지지한다는 한 젊은 교수는 테뉴어(종신 재직권) 제도 등 그의 혁신을 지지했다. 하지만 첫 번째 전문계 고교 출신 학생의 죽음은 전적으로 학교의 책임이라며 눈물을 떨구었다. “입학사정관제 등 다양한 형태로 학생을 뽑았으면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를 해야 했다. 총장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 역시 카이스트 출신이다. 사회에 나와보니 경쟁보다 협력이 중요한 걸 알았다고 한다. 학생들에게도 그걸 가르치고 싶지만 본인도 어렸을 때부터 조직 안에서의 경쟁에만 몰두해온 터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답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늘 경쟁만 해온 터라 협력을 모른다

학교 측은 결국 교수협의회가 제안한 혁신비상위원회를 수용해 교수·학생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 총장은 차등적 등록금제도를 없애고 한국어 수업을 늘리겠다면서도 사퇴 압력에는 단호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 4월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여전히 “자살의 원인은 복잡하다. 카이스트가 이렇게 잘되고 있는데 내가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라며 지속된 혁신을 강조했다. 박희경 카이스트 기획처장은 “한 총장은 미국 국적이다. 미국식 사고를 하는 분께 한국이 말하는 도의적 책임을 요구해선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벚꽃 만개한 카이스트 교정을 빠져나오며 한 대학원생과 마주쳤다. 학부를 서울에서 나온 그에게 카이스트라는 공간은, 낯설고 답답한 곳이다. “예방 차원에서 매주 서울에 있는 집에 가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예방은 자살 예방을 이르는 말이었다.

ⓒ시사IN 백승기4월14일 열린 학생총회 모습.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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