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올해 1월5일 파업을 하고 현장을 떠났으니 꼭 여덟 달하고 열흘 만에 다시 기자로 돌아온 셈이다. 한동안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작정을 하고 신문을 아예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고 살아보니 사실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다. 오늘 신문 머리 기사가 뭔지, 정치면과 사회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사가 뭔지 몰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저 바람결에 들리는 소식만으로도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편집국장을 맡고 나서 다시 신문에 코를 파묻게 됐다. 조간이건 석간이건 기사 면은 말할 것도 없고 텔레비전 예고란까지 샅샅이 살펴보던 그 버릇이 되살아났다. 어느 결에 신문을 보면서 욕을 해대는 고질병까지 도지고 말았다. 신문 기사에 나오는 사람을 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신문 그 자체에 육두문자를 퍼붓는 것이다.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아침 밥상에서도 발작하고 만다.

여덟 달이 넘어서 만났지만 이 친구들은 정말로 하나도 안 변했다. 백 살이 가까운 친구들이나 채 스무 살도 안 되어 얼굴이 살구 빛인 친구나 하는 짓은 다 비슷하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 만큼 자제력도 약해져가는 듯하다. 사람이 비뚤어져서 그런지 몰라도 자기가 미는 후보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가 이 친구들이 뉴스의 경중과 면 배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때로는 사로잡히게 된다.

정몽구, 김승연, 그리고 신정아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잊는다. ‘법은 이상일 뿐’이라며 법 집행을 사실상 포기한 재판부와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들고 웃고 있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은 이 친구들에게는 뉴스 가치가 없다.

그보다는 신정아씨가 백 배는 더 중요한 인물이다. 하물며 그녀의 누드야 말해 뭣하겠는가. 상투적으로 표현해보자면 이것이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뒀다는 대한민국의 언론 현실이다.

〈시사IN〉의 편집 방향을 놓고 고민하느라 밤잠을 많이 놓쳤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지구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화되어 가는 이 전대미문의 시대에 어떤 매체를 내놓아야 하는지가 화두였다. 하지만 괜한 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 친구들 따라 하지만 않아도 당분간 상품성은 충분하겠다. 여러 모로 준비가 부족한데도 창간호를 내보낼 용기가 생겼다. 친구들, 다시 만나서 반갑다.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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