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면서도 까칠한 깍쟁이 유빈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가무잡잡하고 윤기 있는 얼굴. 종종 길게 늘어뜨린 금발. 많은 이에게 그의 첫인상은 건강하고 활동적인 느낌이었을 것이다. 원더걸스에서 맡은 역할도 래퍼이자 드러머. 그가 무뚝뚝하게 쪼아대는 듯한 목소리로 내뱉는 랩에는 조금 엉뚱한 구절이 들어갔다. “어때 88 나이도 딱 맞아 모두 다 맞아” “언제나 어디서나 날 따라다니는 이 스포‘트’라이‘트’” 같은 것들이다. 노골적인 라임과 리듬에 귀를 의심케 하는 가사. 팬들이 작사가를 원망하게 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흥이 일어나는 대목들이다. 유빈은 의기양양하게 이 구절들을 소화... 서부 개척 방불케 하는 철원군 66가구 이야기 김형민(SBS Biz PD) 아빠가 어렸을 때 선생님들은 가끔 이런 농담을 했어. 이를테면 ‘아무개가 모범생입니다’라고 누가 칭찬을 하면 우스갯소리로 ‘모범생들은 다 사라호(號) 태풍에 날려갔나?’ 하며 눙치는 식이었지. ‘사라’는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부인 이름이야. 1959년 발생한 태풍 번호 5914, 합동태풍경보센터(JTWC) 지정 번호 14W 태풍에 그 이름이 붙은 거지. 사라호 태풍이 한국을 강타한 지 수십 년 뒤에도 사람들이 농담의 소재로 써먹었으니 그 태풍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겠니. 사라호 태풍이 들이닥친 건 195... 글 없는 그림책이 주는 자유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여우가 내 인형을 훔쳤어〉 표지는 정말 제목 그대로입니다. 범죄자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귀엽게 생긴 여우가 인형을 안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목격자들도 보입니다. 도대체 귀여운 여우는 왜, 누구의 인형을 훔치고 있는 걸까요? 이제 앞 면지를 봅니다. 면지 그림을 보니 이야기는 어느 방 선반에서 시작됩니다. 선반에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습니다. 책 오른쪽에는 인형들이 앉아 있습니다. 꽃을 든 토끼 인형, 고양이 인형, 곰 인형 그리고 여우 인형이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 속표지가 나옵니다... “요번에 성과급 뭐 받았어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요번에 뭐 받았어요?” 지난해 같은 학년에 근무한 선생님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A 받았어. 선생님은?” 답변을 듣고 고개를 떨구었다. 선생님의 성과급은 B였다.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어서 우리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협의했다. 선생님은 통합 학급의 담임을 맡아 수업과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많았다. 나만 A를 받아서 무척 미안하고 면목 없다고 하자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이게 우리만의 일이냐며 오히려 위로했다. 성과급이 입금되는 5월 말이면 이런 상황을 자주 만난다. 매년 반복되는 교원성과급 문제를 겪으며 나는 무척... 슬기로운 연차휴가 사용법 양지훈 (변호사·〈회사 그만두는 법〉 저자) ‘점심시간에 식당에 조금이라도 빨리 체킹하면 개인 평가점수 감점’ ‘점심시간 외엔 양치하지 마라’ ‘컴퓨터 본체는 아래로 내려 내가 모니터를 볼 수 있게 하라’ 등등. 어떤 기업 임원이 직원들에게 지시했다는 근무 수칙이다. 뉴스로 나올 만큼 화제가 되었지만, 실제 회사에서 ‘소시오패스’ 상사의 일상적 업무 지시에 비추어보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하루 여덟 시간 동안 회사에 대한 종속을 노동계약을 통해 자발적으로 약속한 노동자는, 인권 침해적이거나 굴욕적인 어떤 지시에도 일단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회사를 주치의 제도 도입 하루가 급하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얼마 전 의대 재학 시절의 친구들을 만났다. 안부를 묻는 친구에게 내가 답했다. “내가 너한테 전화 안 하면 우리 집에 별일 없는 거야. 그동안 모처럼 평화로웠다는 뜻이지!” 풀이하면 이렇다. 그 친구는 의대 부속병원에서 내과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부모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가 전화로 조언을 구하는 전문가이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다는 것은 우리 부모님한테 별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 부모 ‘담당의사’는 따로 있다. 아버지의 경우 심장질환과 그 합병증 때문에 오래전부터 대학병원 심장내과와 신장기내과 단골... 문재인 정부는 쓴소리를 해야 한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출범 3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는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먼저 북한발 딜레마다. 남북한 사이의 접촉이 끊겼다는 점뿐 아니라, 평양이 내보내는 메시지의 내용 또한 심상치 않다. 4월12일 김정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재개하고, 철도 연결 사업도 과감히 추진하라는 주문인 셈이다. 미국에 끌려 다니지 말고 30주년 [굽시니스트 시사만화] 굽시니스트 결론은 사람이 불러온 재앙 [취재 뒷담화] 고제규 편집국장 지난해 7월 댐 붕괴. 5억t 물 범람. 19개 마을 피해. 공식 집계 사망자 40여 명, 피해 주민 1만3000여 명. SK건설이 주도하고 한국 정부까지 지원한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그 보조댐 새들 D 붕괴 사고 현장 취재. 당시엔 붕괴 원인 불분명. 최근 라오스 국가조사위원회가 독립전문가위원회(IEP) 조사 결과를 발표. 라오스 현지 르포를 했던 김연희 기자입니다. IEP 조사 결과 간단히 요약하면?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연재해, 불가항력적인 사고로 볼 수 없다는 거죠. IEP는 ‘적절한 조처로 막을 수 있었던... 이 주의 신간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우리가 딸들에게 해줘야 할 말들 멜리사 벤 지음, 정해영 옮김, 오월의봄 펴냄 “나는 모든 진보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우리 자신과 딸들에게 상기시켜줄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아동복을 파는 백화점 매장 안에는 ‘어린이용’ 화장대가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여덟 살 아이가 관심을 보이자 직원은 무해한 성분을 강조하며 발라보라고 권유하기까지 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디자인의 옷을 애써 고르고 있던 나는 벌컥 화를 낼 뻔했다.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과 문제점을 일일이 설명하며 피곤함을 감수할 것인가, 체념할 것인가. 대개 후자를 택하... “대한민국이 강간의 왕국이냐” 오수경 (자유기고가) 봉준호 감독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는 〈기생충〉이 한국적 소재를 다루었지만 세계에 “보편적으로 이해되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수상으로 그의 생각이 증명된 셈이다. 그의 수상이 더 반가운 이유는 그가 ‘표준근로계약’ 사항을 지키며 촬영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그의 작품 세계는 사회의 나쁜 관습 중 하나에 저항하며 새로운 표준에 따르면서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보편과 표준의 승리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의 보편은 무엇이고, 표준은 무엇일까? ... 프랑스, 녹색당의 전진 반갑네 파리∙이유경 통신원 지난 5월24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튜버 위고 트라베르와 인터뷰를 했다. 대통령은 인터뷰를 하는 이유에 대해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 가지를 설득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여러분 자신,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해 이틀 뒤에 치를 유럽의회 선거에 투표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여론조사로는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다. 경제 일간지 〈레제코〉의 5월16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지지율은 24%였다. 여당인 ‘전진하는 공화국(LREM·앙마르슈)’의 지지율(22%)보다 2 윤상원 열사가 죽어간 곳에서 동생은 발길을 돌렸다 광주·정희상 기자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1980년 5월26일 전남도청 2층 외신기자 회견장에서 5·18 광주 시민군 윤상원 대변인이 남긴 말이다. 미국 〈볼티모어 선〉지 브래들리 마틴 기자는 그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광주의 도청 기자회견실 응접탁자 바로 건너편에 앉아 윤상원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 젊은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받았다.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바로 그의 두 눈이었다. 바로 코앞에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잃지 않은 “법관 한 명만 탄핵해도 엄청난 일이 생긴다” 김나래 인턴기자 "법관 한 명만 탄핵해도 엄청난 일이 생긴다" 이탄희 전 판사의 직언 ===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으니 그것을 비밀리에 관리하라' 이탄희 전 판사의 새 임무였다. 이것만 잘 해내면 탄탄대로 출셋길은 보장돼 있었다. ===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탄희는 '판사 뒷조사 파일' 이야기를 들은 바로 다음날, 사표를 낸다. === 그의 소신은 나비효과가 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세상에 드러내는 출발점이 됐다. ===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소집돼 그의 원칙에 동감한 동료 판사들이 목소리를 냈고 2017년 ... 막말 대잔치에 환호하는 당신 엄기호 (문화 연구자) 막말이 문제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달창’이라는 말을 썼다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모르고 한 말이라고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쓸 수가 있는 말이 아니었다. 정치인이라면 말 하나하나도 가려서 써야 하는 법이다. 집회에서 좀 ‘흥분’했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하면 정치인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당연히 나오게 된다. 막말만 문제가 아니다. 같은 당의 황교안 대표는 “군과 정부의 입장은 달라야 한다”라고 말을 해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항명을 부추기는 말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뿐만 아니다. 황교안 대표... 브렉시트로 시작해 브렉시트로 끝나다 이상원 기자 결국 브렉시트(Brexit)로 시작해서 브렉시트로 끝났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62)가 보수당 대표직에서 6월7일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24일 메이 총리는 “고되어 보이는 역경도 인내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새 총리가 그 노력을 이끄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는 점이 명백하다”라고 말했다. 메이 총리 집권의 제1 키워드는 단연 ‘브렉시트’이다. 전임자인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브렉시트 여파로 사퇴한 직후 취임했기에, 이 문제는 메이 총리의 주된 국정 과제였다. 내무장관으로 준수한 행정 능력을 보여준 그가 혼란... “음악가가 내는 소리는 그가 통과한 세계다” 고재열 기자 기자로 치면 참 성실한 기자다. 밴드 허클베리핀의 리더 이기용씨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시사IN〉에 연재했다. 그는 직접 인터뷰 대상을 고르고 섭외하고 내용을 정리해서 자료 사진과 함께 송고했다. 3시간 넘는 인터뷰를 그대로 옮기면 A4 용지로 20쪽을 훌쩍 넘긴다. 그러나 이기용씨에게 허용된 〈시사IN〉 지면은 단 두 쪽, 200자 원고지로는 17.5장 분량이었다. 뮤지션의 이야기 중 핵심적인 고갱이만 건져 지면에 담았다. 그의 인터뷰는 글로 끝나지 않았다.... ILO 비준이 전교조에 미치는 영향 전혜원 기자 문재인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의 비준 절차에 들어갔다. ILO는 노동·기업·정부 대표 3자가 참여해 노동과 고용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유엔 산하 기구다. 187개국이 가입해 있다. ILO는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등 4개 부문에서 각 2개씩 모두 8개 협약을 ‘핵심협약’으로 규정한다. 또한 모든 회원국에게 핵심협약의 비준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있다.한국은 1991년 152번째로 ILO에 가입했지만, 핵심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제87·98호), ‘강제노동 금지’(제29·1 미국과 이란 전쟁 가능성은?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최근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에서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전통적인 중동 국가들의 맹주이자 반미 선봉장인 이란을 상대로 조만간 군사 행동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군사 전문가들은 상호 불신이 어느 때보다 심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쪽의 사소한 움직임이 상대방을 자극해서 전쟁으로 폭발할 가능성을 염려한다. 특히 페르시아만 일대로 미국 항공모함을 비롯한 미군 전략자산들이 속속 집결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싸우길 원한다면 그것은 이란의 공식적 종말이 될 것이다”... 불평등과 기후변화 한 방에 해결 이상원 기자 소득 불평등은 오래된 문제다. 기후변화는 비교적 근래에 등장한 문제다. 강상구 정의당 전 대변인은 두 문제를 접목해 한꺼번에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그가 최근에 낸 책 제목처럼 ‘걷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걷기·자전거 타기·대중교통 이용하기’를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의 구상은 이렇다. 원칙적으로 시민 전체에게,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 정도의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다만 자가용 외의 수단으로 일정 거리를 이동하는 게 조건이다. 저자는 이 개념에 ‘녹색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