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시니스트 올해의 책 by 굽시니스트 1만원권 뒷면에는 망원경이 있다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1만원권 지폐의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뒷면 바탕에는 별 지도가 엷게 깔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잘 보면 북두칠성을 찾을 수 있다. 북두칠성의 끝에서 두 번째 별이, 실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것까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둥근 원이 여러 개 겹쳐 있는 기구도 보인다.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 관측기인 혼천의이다. 혼천의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지폐에 혼천의가 들어가 있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면화는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나 위민복 (외교관) 미국 남북전쟁 하면, 항상 남부의 면화(목화) 밭에서 면화를 수확하고 있는 흑인 노예를 떠올릴 때가 많다. 하필이면 왜 미국이고, 왜 면화인가? 게다가 흑인 차별은 이후에도 심했거늘, 노예는 왜 해방시켰단 말인가? 아니 근본적으로, 제국주의는 어째서 탄생했는가?하나같이 대충 설명할 수 없는 주제인데, 여기에 공통적인 한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바로 면화다. 산업혁명을 거론할 때 증기기관과 더불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면화 관련 산업이었으며, 이는 최초로 범세계적인 공급망과 소비망을 연결해놓았다. 800쪽이 넘는 이 크고 아 독서 리더가 꼽은 올해의 책 시사IN 편집국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책으로 정리하는 방법만큼 근사한 것이 있을까? 독서 리더들이 꼽은 올해의 책 목록을 보니 조용한 충고가 들려온다. 그리고 ‘웅크린 말들’을 길어 올리기 위해 노심초사한 ‘출판하는 마음’을 헤아린 섬세한 배려가 엿보인다.독서 리더들은 좀 더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좀 더 근본적으로 들여다보자고 설득한다.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화두를 던지는 책을 과감히 추천한다. 추천된 책의 제목만으로도 고된 한 해를 보낸 이들을 위로하...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 시사IN 편집국 출판인들이 2016년 ‘올해의 저자’로 꼽은 은유 작가가 한 말이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제각각 분주했던 이들이 잠시 호흡을 고르고 올 한 해 동료들이 만든 책을 떠올려보았다. 인상적인 국내서와 번역서, 선전한 출판사와 저자 등 질문에 답하는 동안 어떤 걸 보태고 어떤 걸 덜어야 할지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각각의 결과가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 ‘올해의 출판계 이슈’ ‘올해의 저자’ ‘올해의 출판사’ ‘올해의 루키 출판사’로 나왔다. 질문은 던졌지만 기사로 담기 어려운 내용도 있다. ‘예상보다 반향이 적어 ... 고령사회 난제 푸는 색다른 시선 박태근 (알라딘 MD) 고령자와 대화를 나누다 답답해하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이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곧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게 분명하지만, 앞선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령자를 공경하는 문화의 쇠퇴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가정책의 층위, 사회 공동체의 맥락, 상호 존중하는 문화의 영역은 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 늘 필요하겠지만, 이제는 시선을 바꿔 다른 접근법을 찾아볼 필요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고령자를 진찰할 기회가 많은 안과 전문의다. 자연스레 고령자가 겪는 증상과 그... 선택지 적은 사회에서의 선택 박혜진 (문학평론가) 한 번 더 살 수 있다고 치자. 그때 그 비극을 피해 갈 수 있을까? 글쎄, 두 번 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닐까. 인생의 길은 웨딩 로드가 아니다. 나만을 위해 깔려져 있지 않은 그 길 위에는 통제할 수 없는 방해물이 곳곳에 숨어 있다가 불시에 튀어나온다. 벌어질 일은 기어이 벌어지고 만다. 한 번 더 산다 해도 반복된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눈앞에서 비극의 파고가 몰려올 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택지가 청기 아니면 백기, 예스 아니면 노밖에 없을 가능성. 이를테면 막다른 길에서 백기 들기. 생존을 위한 ... 동서양의 철학은 하나의 결이었다 배일동 (명창) 이 책은 수리에 함축된 고대인들의 우주적 질서와 법칙, 그리고 철학의 이치에 대해서 매우 쉽게 풀어놓았다. 고대 동양 역서인 〈주역〉도 우주의 이상수(理象數)를 논한 학문이라고 했다. 지구상의 모든 개체는 모두가 그에 마땅한 이치가 있고, 그 이치는 반드시 상(象)으로 나타나며, 그 상에다가 인간들이 수적 계산을 해놓았다는 것이 이상수 철학이다. 이것은 마이클 슈나이더의 책에서 말하는 고대 서양의 수리철학과 그대로 일치한다. ‘인간들이 약속으로 정해놓은 수적 나열 속에는 우주에 펼쳐지는 시공간의 무수한 작용이 담겨 있다.’ 저... ‘심리적 심폐소생술’ 숙지하라 오지혜 (배우) 정신과 전문의라는 말보다 ‘치유자’로 불리길 원하는 정혜신은 ‘나’의 정의부터 내리고 책을 시작한다. ‘나’ 혹은 ‘너’의 실체는 그가 느끼는 ‘감정’ 즉 마음 상태라는 거다. 양심이나 거룩한 이념 혹은 세계관이 아니고 말이다. 심지어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래서 나 스스로도 그 가치를 폄하했던 ‘나의 감정’이 곧 ‘진짜 나’라는 거다.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고 나니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말들이 머리를 쪼개듯 이해됐다. 우리가 살면서 상처와 오해를 주고받거나 그토록 상대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내 가치관이나 이념... 내 머릿속의 사기꾼 이다솔 (〈동아사이언스〉 기자) 내 몇 없는 장점 중 하나는 기분을 잘 숨긴다는 거다. 나처럼 기쁨과 슬픔을 크게 느끼는 사람은 이런 능력이 중요하다. 감정 기복도 심한데 숨기지도 못하는 상사를 상상해보라. 여러 사람 신경 쓰이게 했다는 걸 알게 되면 본인은 얼마나 창피할까. 다만 나도 감정을 못 숨기는 예외가 있는데, 애인이다. 얼마 전에도 우울한 기분을 숨기지 못해 ‘이불 킥’ 할 일을 벌였다. 옆에서 다가오는 자전거를 미처 보지 못하고 길을 건너려던 나를 애인이 급히 잡았다. 그 순간 어이없게도 눈에서 물이 나오고 말았다. 얘가 평소보다 세게 잡아당긴 ... 그려질 수밖에 없는 그림 이승문 (KBS PD)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다. 뭔가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에도 막상 필기구를 들면 머릿속에서 그럴싸한 생각만 많아질 뿐이다. 그런 생각들은 도무지 손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머릿속 가득한 말들로는 은하수를 그리지만 정작 손은 실개천 하나 이어내지 못한다. 소질이 없는 자가 논평할 일은 아니겠지만 화가는 원시적인 직업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언어를 배열해 말하기 전부터 농부는 열매를 수확하고 어부가 물고기를 채집했듯 누군가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날아가는 새와 그 위로 솟은 태양을, 누군가는 부지런히 손으로 옮겼을 것이다. ‘... 김시종은 너무 늦게 왔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우리에게 김시종은 “너무 늦게 왔다”라고 해야 할 듯하다. 1955년 출판된 그의 첫 시집 번역본인 이 책 말미의 해설에서, 재일조선인 연구자 오세종은 그를 두고 “동아시아 최고 시인 중 한 명”이라고 말한다. 이를 믿든 말든, 시의 내용이나 표현 모두 일본 문학계에서 결코 쉽게 싸안을 수 없는 시인인데도, 문학을 조금 아는 일본인이라면 적어도 그가 일본의 현존하는 최고 시인 중 한 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김시종 컬렉션’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저작집이 10여 권으로 출판되고 그의 시에 대한 심포지엄, 그에 대한 문학지들의 반... 새로 읽어야 할 문명비평가 이희중 (시인·문학평론가·전주대 교수) 20세기 후반에 열정적으로 활동한 문명비평가 이반 일리치(1926~2002)의 저서 대부분은 1980년대 이후 국내에서 출간됐다. 그런데 국내 한 출판사가 전집을 새롭게 꾸리면서 그의 첫 저서인 〈깨달음의 혁명〉이 지난 8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미국에서 1970년에 나온 이 책이, 나중에 나올 본격 저작들의 싹을 보여줄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30대와 40대 초반 일리치의 패기에 찬 육성을 들을 수 있어서 읽는 보람이 크다. 청년 일리치는 학자 또는 신부로서 전화에 휩싸인 중부 유럽을 주유하다가 미국 빈민가로 들어... 그의 사유와 문장을 만져보고 싶다 임지영 기자 캡슐 커피 머신을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 김원영 변호사와의 만남은 그것에 대한 논의로 시작되었다. 서울대 인권센터의 한 회의실이었다. 캡슐을 넣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물 넣는 걸 깜박해 실패한 참이었다. 마침내 묵직한 진동과 함께 커피가 흘러나왔다. 인권센터는 그가 종종 들르는 공간이다. 학내에서 드물게 차 한잔 기꺼이 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인권센터 홈페이지 첫 화면에 걸린 토론회 사진 속에도 그가 보였다. 센터는 가끔 그에게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조언을 구한다. 〈시사IN〉은 올해도 출판인들에게 기획편집자로서 꼭 한번 ... 동네서점이 꼽은 올해의 책 시사IN 편집국 책을 선별하고 내보이는 동네서점 운영자들은 올해 어떤 책을 읽었을까. 이들은 기성 출판물에서 찾기 힘든 다양한 책을 소개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해왔다. 이들이 추천한 독립출판물은 기성 출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시사IN〉은 동네서점 애플리케이션 퍼니플랜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에 이어 ‘동네서점이 꼽은 책’을 꾸렸다. △우리 책방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인기 도서) △가장 많이 팔고 싶었던 책(추천 도서) △올 한 해 출판물 키워드 등을 묻고 추천 사유도 부탁했다. 동네서점 79곳에서 보내준 답변을 추려보니 인기 도서 230... 책을 펴내는 마음을 찾아서 엄지혜 (예스24 기자) 올해 출판계는 에세이의 압승이었다. ‘~했어, ~이야, ~괜찮아’로 끝나는 장문형 제목을 마주하며 나는 홀로 오글거렸지만 어떤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싶은 마음. 일로 읽어야 하는 책을 제외하고, 온전히 나의 책 취향을 존중하고 싶었다. 정말 당기는 책, 기꺼이 읽고 싶은 책만 보기로 마음먹은 한 해였다. 2018년 3월, 기다렸던 책이 나왔다. 작가 은유의 〈출판하는 마음〉. 어떤 책을 써도 따라 읽겠다고 다짐한 작가 중 한 명. 더욱이 인터뷰집이니 안 읽을 재간이 없었다.... 지옥의 지붕 위를 걷다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단테 〈신곡〉 지옥 편을 현실에서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 오스트레일리아의 소설가 리처드 플래너건의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동남아시아의 정글에서 일본군의 포로가 된 오스트레일리아 참전 군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일본 천황의 명에 따른 철도 건설을 위해 노예처럼 동원돼 구타와 기아 그리고 질병으로 비참하게 죽어간다. 평범한 인간이 지옥을 관장하는 자(일본군)와 그 지옥을 통과하는 자(참전군)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책은 한 발짝 떨어져서 들려준다. 수십만의 포로들은 철로 건설에 동원되어 일본군의 학대 호르몬의 왕은 죽었다 최태섭 (문화평론가·〈한국, 남자〉 저자)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순간들이 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불평등이 그것의 발현을 방해한다고 주장할 때, 갑자기 어지러워 보이는 숫자와 도표와 해부학적인 사진 등을 꺼내들고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론을 마주할 때다. 여기 우리가 안심하고 계속해서 성평등을 주장해도 좋다고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활동하는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은, 수컷은 번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문란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기질을 갖고 있으며, 그것의 근원에 ... 총성이 멈춘 후의 전쟁 한승태 (〈고기로 태어나서〉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가 헤쳐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잭 런던이 떠오른다. 두 사람 모두 디킨스의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었다. 독학으로 당대 최고의 작가이자 지식인의 위치에 섰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막대한 수입을 올리게 된 이후에도 글 쓰는 걸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1909년에 태어난 마쓰모토 세이초는 잭 런던이 숨을 거둔 나이 무렵인 마흔한 살에 데뷔해 1992년 죽을 때까지 40여 년간 장편 100여 편과 중단편 350여 편을 발표했다(이 기록이 깨지느냐 마느냐... 책을 덮으니 몹시 부끄러웠다 허은실 (시인) #1. 그는 주말에 왔다. 냉장고가 내내 앓는 소리를 내 AS를 요청했을 때였다. 필요한 부품의 재고가 없다며 다른 동료에게 연락해 구해오느라 두 번 걸음을 해야 했다. 떠나며 그가 내민 명함을 받아들고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가 불친절했다거나 무례했다거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지나친 친절과 과하다 싶은 웃음과 깍듯함이 오히려 나를 불편하고 착잡하고 슬프게 만든 것이다. 그도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해피콜과 대책서와 CS 롤플레이와 마이너스 성과급과…. 그러니까, 한 달 전 삼성서비스센터 하청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