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 기술과 의학이 장애를 없앨 거라고?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코니 윌리스가 쓴 〈여왕마저도〉는 여성들의 생리가 사라진 미래를 그린다. 미래 여성들은 단결해서 생리로부터 해방을 쟁취했다. 암메네롤이라는 생리 억제 장치가 보편화된 근사한 사회다. 나는 대학생 때 페미니즘 스터디에서 이 소설을 소개하며 ‘기술은 여성을 해방할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사실 SF에는 여성의 재생산으로부터 해방을 그리는 소설이 꽤 많은 편인데, 일부러 이 단편을 다룬 이유는 〈여왕마저도〉의 암메네롤과 비슷한 기술이 현실에도 있어서였다. 바로 체내 장기 피임장치다. 임플라논, 미레나 등 체내 삽입형 피임장치는 피임 로봇, 타인, 동물과 ‘연립’하는 삶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활동지원사는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급여를 받고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사람을 말한다. 덕분에 많은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와 독립적으로 생활한다. 다만 활동지원사와 관계를 맺는 일이 현장에서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상호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지원을 요청하고 받는 관계가 적지 않지만, 갈등도 많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기에 장애인 이용자는 활동지원사에게 종속될 수 있고, 반대로 장애인 이용자를 통해 일자리를 얻은 활동지원사가 이용자에게 종속될 수도 있다. 인격과 인격이 자존심을 걸고 충돌하기도 하며, 신체와 감각이 변형된 우리들의 질문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스물세 살의 가을 어느 날, 나는 포항에서 서울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장애 대학생 기업 채용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컨벤션 센터에 도착했을 때 설명회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홀 아래층에서 열리는 보조공학기기 박람회였다. 박람회를 둘러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신기하다거나 놀랍다는 감정이 아니라 ‘낯설다’는 감정이었다. 보조공학이라니, 그런 기계들이 있다고는 알았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휠체어용 차량, 특수 모니터와 특수 키보드, 의족과 의수, 점자 단말기를 지나 전시장의 구석진 곳으로 향하자 보청기를 ‘아름다움’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이보그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고 황건성 한양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내가 두 살 무렵부터 나를 진료해서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주치의였다. 목소리가 굵고 풍채가 좋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명절이 되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내 안부를 묻는 엽서를 보내주었다. 그는 30대 중반 의과대학 교수 경력 초기에 나를 만났는데, 내 신체는 그에게 중요하고 흥미로운 사례였다. 수많은 정형외과 레지던트들이 병실에 찾아와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다리를 만지고 사진을 찍었다.10여 차례 수술을 받으며 내 상태는 차츰 안정되었다. 1년에 한두 번은 정기 검사를 위해 서울 투박하게, 쿨하지 않게 장애인으로 살기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처음 ‘연사’로서 초청받은 때는 2016년이었다. 재학 중이던 대학에서 TEDx 강연회가 열렸는데, 당시 대학원생인 나를 섭외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왜 평범한 대학원생인 나를 초청했지?’ 의아함을 느꼈다. 강연회 주제를 듣고 의문이 풀렸다. 주제는 ‘Unlimited(한계를 넘어선)’였다. 기획자는 내가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대학 시절 다양한 학내외 활동을 해왔던 경험을 말해주기 원하는 것 같았다.당시 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역경을 극복한 경험’을 듣기를 원하는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주변의 존재자와 결합하는 사이보그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2011년 가파른 경제성장의 궤도에 올라 있었다. 비 온 뒤 도심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다음 날까지 남았고, 유목 생활을 접고 올라온 사람들의 판잣집이 도시 입구에 줄을 서듯 길게 들어섰지만, 현대식 건축물과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력이 넘쳤다. 그해 8월, 몽골에 장애인 인권을 위한 사회·정치적 인프라를 놓기 원하는 인권운동가들이 울란바토르에 모였다(당시 나는 로스쿨 학생이었다).한국·몽골·네팔·타이완·일본·파키스탄 등지에서 온 장애인·비장애인 인권활동가들이 함께 거리에서 장애인 이동권 캠페인을 펼 ‘실패한 사이보그’들이 활보하는 도시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내가 다닌 대학은 자연과학과 공학 단과대학만 있는 학교였다. 재학생 다수가 연구직을 고려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교양수업에서도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주제를 흔히 다뤘다. 로봇, 실험동물, 키메라, 인공지능, 그리고 무인 자동차와 지구환경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주로 ‘기술문명의 설계자로서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어떻게 사유하고 책임질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마주했다.그날 강의도 그랬다. 과학기술에 의해 탄생할 새로운 인간, ‘포스트휴먼’이 주제였다. 기계와 결합한 인간의 예시 자료로 인공 귀와 제3의 팔을 단 행위예 나는 채치수에게 맞서고 싶었다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자 친구들이 모두 말렸다. 우리 학년에는 외모, 책임감,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슬램덩크〉의 채치수를 닮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 욕심에 회장 출마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열다섯 살에 처음 구매한 휠체어로 특수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중학교 과정을 마친 후 우여곡절 끝에 2000년 일반 고교에 진학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애가 없는 아이들 990여 명과 교복을 입고 함께 학교생활을 시작하자, 일상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어떤 종류의 어려움을 돌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아예 더 어려운 일에 맞서보는 장애가 시작된다는 것의 의미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18만원짜리 대형 휠체어에 처음 앉은 날은 열다섯 살 가을이었다. 작은 몸에 휠체어가 지나치게 컸다. 푹 들어간 몸으로 양팔을 치켜올려 팔꿈치를 직각으로 만든 후, 간신히 바퀴에 손끝을 댈 수 있었다. 첫 휠체어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제품으로 무거운 철제 프레임, 낡고 두꺼운 가죽으로 이뤄진 등받이와 시트,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울퉁불퉁한 디자인의 플라스틱 핸드림(휠체어 바퀴를 따라 부착되어 손으로 바퀴를 움직이게 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애초부터 직립보행을 하던 사람들이 처음 휠체어에 앉으면, 그들은 태어나 ‘엉터리 사이보그’로 살아가는 이야기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요즘 다들 안경 많이 끼시잖아요? 보청기도 안경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속상해하실 필요 없어요.” 처음으로 보청기를 맞추러 간 날 청능사는 내게 말했다. 중학생 나이에 난청 진단을 받게 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말을 꺼냈는지는 몰라도, 보청기센터는 정말로 여느 안경점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었다. 청능사는 카탈로그를 펼쳐 보청기의 종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격을 듣고 충격받았다. 보청기는 안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쌌는데, 복잡한 첨단기술이 적용된 초소형 기계이다 보니 별수 없어 보였다. 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