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할 준비 우리는 누구의 죽음을 더 무겁게 생각할까 하미나 (작가) 20~30대 여성의 우울증을 다루는 르포를 쓰는 중이다.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내 또래 여성을 만나 질병 서사를 듣고 기록한다. 여자들은 만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가수 설리와 구하라 이야기를 꺼낸다.“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제일 괴로울 때가 자살할 때야. 구하라 죽었을 때 아침에 일어나면 두 시간씩 울었어. 머리로는 이게 과하다는 걸 알지만 너무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 이 사람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정말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잖아. 공론화도 자기 힘으로 했고, 정준영 사건의 피 ‘돈 안 되는 약’이라고 공급을 중단하면…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환자분, 이 약은 단종되었어요.” “아니, 병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환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요?” “(차마 ‘돈이 안 돼서’라고 말할 수가 없어) 다른 계열의 약으로 처방해드릴게요.” “그 회사에서 뭐 받아먹는 거 아니에요? 됐어요.”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해 7월에는 폐경기 호르몬 보충제인 크리안이 판매 부진을 이유로 공급이 중단됐다. 먹는 호르몬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은, 바르는 호르몬제인 에스트레바겔과 에스젠 크림은 2015년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다. 폐경 후 호르몬 보충요법이나 영아의 음순 유 ‘코로나 블루’의 심상치 않은 징후들 오수경 (자유기고가) 처음 ‘코로나 블루’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름이 참 예쁘기도 하네~”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속 문장이 떠오른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도 푸릅니다.” 요즘 자주 너무 깊고 푸르러, 오히려 까맣기까지 한 아득한 심연으로 가라앉는 경험을 한다.방역 당국이 지난 8월30일부터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시행하면서 내가 일하는 곳도 본격적으로 근무 방식을 바꾸었다. 집에서의 일상도 달라졌다. 작은 원룸은 집이자 사무실이 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출근하기까지 3초면 충분 성 관련 이야기는 요리 강습처럼 담담하게 심에스더 (성교육 전문가)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이 몇 년 전 유명 토크쇼에 나왔을 때 일이다. 진행자가 메릴 스트립에게 오트밀 레시피·교통정보·위키피디아 정보가 적힌 지문을 주고 섹시한 셰프, 방송 중 진통이 온 캐스터, 짜증 난 10대 아이 버전으로 각각 연기해달라고 했다. 메릴 스트립이 요청에 응하자마자 침이 꼴깍 넘어가도록 섹시한 오트밀 요리와 지금 당장 아이를 낳아도 이상하지 않을 숨 가쁜 교통정보 캐스터, 엄마의 질문에 귀찮고 짜증 나 죽겠다는 듯이 위키피디아 정보를 읽어대는 10대 아이가 연달아 ‘뿅뿅뿅’ 나타났다(뿅뿅뿅은 원피스 하나로 국회의원이 성적으로 소비되다니 오지은 (프리랜서 콘텐츠 기획자) 2012년에 있었던 일이다. 20대 중반에 갓 입사한 회사에서 업무에 적응하고, 20년 나이차의 상사를 포함한 동료들과 친숙해질 무렵이었다. 신입인 내가 모르는 업계 관계자들이 사무실에 찾아올 때면 상사가 나를 소개하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상사가 갑자기 내 이름 앞에 이상한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우리 팀 비주얼을 담당하는 기자입니다.” ‘엥?’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실수일 거라고 속으로 되뇌며 넘겼다. 그러나 ‘이상한 소개말’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고심 끝에 비주얼 이야기는 꺼내지 마시라고 요청한 언니들이 알려준 욕망과 실수의 내 인생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혼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학원 가고, 과외 선생님이 매주 오고, 유학을 가는 게 무슨 의미인지 솔직히 잘 몰랐다. 혼자서 뭔가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돈을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피아노곡을 배우고 싶으면 악보를 뽑아 교회 피아노로 연습했다. 예배를 마치고 다들 밥 먹고 있을 때 조지 윈스턴이니 히사이시 조의 악보를 인터넷 어딘가에서 구해다 주보용 프린터로 뽑아서 쳤다. 아무도 내가 뭘 치는지, 지난주보다 얼마나 잘하게 되었는지 관심이 없었다.커서 보니 ‘남들’이 어릴 때 흔하게 했다는 수영·태 여성이 글을 쓸 때는 이중의 억압이 발생한다 하미나 글쓰기를 하면서 나를 재정립해 나간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같은 기억도 다르게 소환된다. 때로는 과거의 나를 배반하기도 하면서, 여러 종류의 자아를 새로 발견하고 실험하듯 글을 쓴다. 내게 글쓰기는 곧 나의 가장 진실한 목소리를 지키는 일이다.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이미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보상이다. 칭찬받기 위해 쓰지 않는다.그동안 페미니스트의 글쓰기를 생각하며 자주 혼란을 겪었다. 여성의 목소리를 지키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고 느낀다. 자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를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두 가지의 커 여성이 생략된 여성의 성기 시술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여성 성기 성형의 역사를 보는 것은 여성 억압의 역사를 보는 것과 같다. 정조를 중요시하던 시대에는 처녀막 복원술이 유행이었고, 상대 남성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한 성적 능력으로 꼽히던 시대에는 질 축소술이 유행했다. 미용과 항노화가 각광받는 시대가 되면서 지금 시장은 모든 것이 뒤섞인 혼종들로 가득 차 있다. 소음순 축소술이 있는가 하면 대음순에 자신의 지방을 채워 넣는 확대술도 있다. 질과 음핵에 필러와 줄기세포를 주사하고, 성감을 높여준다면서 음핵의 포피를 도려내기도 한다.시술 광고는 다양한 성기 모양을 병리적 현상으로 묘사하 자녀의 성과 본은 출생신고 때 선택하자 오수경 (자유기고가) “나의 씨를 세상에 남기고 싶어.” 결혼과 출산을 강력하게 희망하는 남성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너무 솔직해서 당황했지만 이해는 되었다. 인류 역사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신의 명령을 따라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애쓴 역사이기도 하니까. 가부장 사회에서 대를 이어야 하는 남성이 ‘씨’를 남기는 게 과업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닮은 인간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욕망이 어디 남성에게만 있겠는가. 그 욕망은 여성의 것이기도 하다. ‘성씨’도 마찬가지다. 여성에게도 자신의 성을 물려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 아버 성관계의 전제는 섬세하게 살피는 일 심에스더 (성교육 전문가) ‘성폭력 예방교육’을 주제로 중·고등학생들과 성교육 워크숍을 진행하던 중에 ‘임신과 임신중지’ 하면 떠오르는 생각·이미지·질문을 자유롭게 적어보자고 했다. 익명이라 그런지 비교적 솔직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조건 임신 안 하는 방법 없나요?’ 같은 질문부터 ‘제대로 된 피임 교육이 필요함’ ‘보건 선생님이 콘돔 이야기를 부끄러워해요’ 따위의 ‘웃픈’ 현실 비판도 있었다. ‘임~신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난자는 계속 내 안에 있고~’ 같은 귀여운 반응도 나왔다. 하나하나 읽어가며 웃기도 하고 묻기도 하던 중에 시선 집안일은 왜 자꾸 눈에 보일까 오지은 (프리랜서 콘텐츠 기획자)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로 지낸 지 1년이 지났다. 직장 생활 8년 차에 퇴사를 한 건 일이 싫어졌거나 조직이 불편해서는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획일적인 ‘생태계’와 오래된 ‘문화’ 때문이었다. 이 괴리가 만드는 불편함을 돌파해보려고 30대 저널 〈삼〉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을 스스럼없이 공유할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마침 그때는 애인과 동거할 생활공간을 구하던 시기였다. 두어 달 동안 ‘집 구하기’를 반복하다 애당초 선택지에 없던 혼인신고를 고려하게 되었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신혼부부 “인간이 왜 그렇게 돈 버는 데 시간을 써요?”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10대 후반부터 ‘알바’를 시작해 노동하게 된 지 14년째다. 일하는 게 좋아서 한 적은 없다. 쉬는 날이면 집에 누워만 있었다. 이제는 돈 받지 않아도 하는 일, 재밌는 일, 의미 있는 일이 우리를 살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원활히 하며 살기 위한 방편으로서 기본소득을 원한다.페미니스트 경제지리학자 캐서린 깁슨은 2017년 한국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지불노동(돈 받는 노동)’을 하지 않고 장애연금을 받아 생활하며 마을에서 기꺼이 학생 돌봄, 학교 시설관리, 정신장애인의 자조 네트워크 운영 등을 담당하는 사람의 사례를 공유했다. 할머니의 최선은 왜 〈미스터 트롯〉뿐인가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할머니가 집에 왔다. 일 때문에 서울로 향하는 어머니에게 불쑥 “나도 따라가겠다”며 짐을 챙기셨다고 한다. 누구도 권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서울에 가겠다고 선언하다니. 생전 처음 있는 일에 어머니도, 나도, 아버지도 내심 어리둥절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감히 머릿속을 맴돌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침구를 정리하다 문득, 코로나19로 인해 당신이 바깥에 나가지 못한 지 석 달이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코로나19 국내 발생 시점인 2월 말부터 전국의 노 내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 하미나 (작가)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을 가장 싫어했다. 체육 선생은 꼴찌로 들어오는 다섯 명에게 꼭 운동장을 한 바퀴씩 더 돌게 했다. 나는 늘 두 번씩 달리는 아이였다. 그때마다 수치심을 느꼈다. 피구를 할 때면 어서 빨리 ‘아웃’되기를 바랐다. 날아오는 공은 공포 그 자체. 공을 받을 생각은커녕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 수비가 되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성인이 되어서도 남과 같이 하는 운동은 필사적으로 피하곤 했다. 헬스장에 가거나 홈트레이닝을 하고 어두운 밤에 홀로 달렸다. 땀 흘리는 모습을 누군가 보지 않도록, 조용히 혼자서만 못하기 위해서.피 드라마 속 연애는 이미 ‘표준’이 아니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사랑하는 딸이 독거 상태로 외롭게 늙을까 봐 걱정이 많은 엄마는 마치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오듯 부지런히 소개팅을 주선했다. 그런 엄마의 노력이 너무 싫었지만, 보수적인 가정에서 성실하게 자란 ‘K-장녀’인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조건을 걸고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을 한 날이면 결과와 상관없이 이제 당분간 엄마에게 덜 미안해도 된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졌다. 어쩌다가 소심한 저항을 한 날도 있었다. 엄마가 다니는 문화센터 옆자리에 앉은 어느 아주머니의 친척을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은 날 울분을 터뜨리 산부인과 산재 사례 없어도 너무 없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서울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 위원이 되어 활동한 지 2년 남짓이다. 질판위는 노동자에게 질병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업무상 질병(이하 산재)에 합당한지를 심의하는 기관이다. 6개 지역 질판위는 뇌혈관계·근골격계·내과계·정신건강을, 서울 판정위는 직업성 암·자살·산부인과·안과·이비인후과·피부과·비뇨기과 등을 심의한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와 관련 분야 전문의 등 위원 7명의 다수결로 결정되는 구조이다.산부인과 관련 산재는 전국에서 서울 질판위로만 모이는데, 2년 동안 심의를 한 건수가 10건도 되지 않는다. 한 해 산재 판정이 1 성교육 강사도 당황케 한 ‘초등 여학생의 질문’ 심에스더 (성교육 전문가)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 30여 명과 성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한창 남성과 여성의 몸, 음순과 음경의 모양, 성기 결합 섹스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뒤 혹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경우 연령과 지위를 떠나, 질문이나 의견을 말하는 경우가 적다. 성 이야기는 특히 그렇다. 뭔가 말을 하려고 나서는 여학생의 존재는 무척 반갑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려는데 맨 앞에 앉아 있던 학생이 손을 들었다.“선생님 그럼, 남자끼리나 여자끼리 섹스하는 방법도 알려주실 수 있어요?” 훅 들어온 질문에 머릿속에 ‘삐-’ n번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지은 (프리랜서 콘텐츠 기획자) 완연한 봄이다. 오후에는 산책을 하고 전면 개방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코로나19가 소강되는 것 같아 들떴다. 서울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재확산 사태가 불거졌지만, 방역 당국은 대체로 여전히 신뢰받고 있다. 사람들은 코로나19 국면에서 국민 생명을 보호하는 ‘컨트롤타워’와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믿는다.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는 포스트 코로나19의 ‘뉴노멀’을 사회구조 안으로, 일상 안으로 가져와 이야기하고 있다.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삶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반면 ‘이후’를 논할 조건이 아직도 갖춰지지 않은 또 하나의 사태 ‘사회가 정해준’ 관계에서 우리는…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영화 〈이장〉에는 낡아버린 가부장이 등장한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5남매의 큰아버지는 외딴섬에서 한평생을 살았다. 이 노년 남성은 재개발 부지에 들어가버린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러 어렵게 시간을 내서 모인 네 자매에게 ‘오느라 고생했다’는 인사치레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머슴아’처럼 입은 넷째 조카 혜연을 유일한 아들인 막내 조카와 헷갈려 하는 와중에 첫마디로 “장남도 없이 어떻게 무덤을 파냐!”라고 대뜸 소리를 지른다. 자신의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싶으면 더 설명하는 대신 마당의 항아리를 들어서 깨버린다 여자들은 그렇게 편지를 쓴다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정말로 편지가 도착했다.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의 이민경 작가가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라는 단기 메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하여 구독을 신청한 지 몇 주 후였다. 누구든 작가에게 글을 보내면 작가는 일주일에 한 편 정도를 골라 공개 답장을 쓰고 구독자들의 이메일로 전송했다. “여자들은 그렇게 자꾸만 서로에게 응답해…. 시은이 너뿐만 아니라 원래 여자들이 그렇게 편지를 쓴다는 것을 아니?”라고 말했던 첫 번째 편지가 출발한 지 2주째. 뒤이어 네 통의 편지가 수신함에 도착했다. 비슷한 시기, ‘자매애’ 고취 방송 〈시스터후드〉 등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