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추천하는 책 소월의 시는 왜 슬픈가 이진선 (강출판사 편집자) 얼마 전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각각 한국과 프랑스의 샤먼(무당)인 성미와 콜레트의 삶과 우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샤먼로드〉라는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샤먼축제’ 때 처음 만난 둘은 콜레트가 한국으로 와 내림굿을 받게 되는 과정에서 서로 교감하고 위로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이후 ‘신엄마’와 ‘신딸’로 맺어진 그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샤먼으로, 또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뭔가 처연하면서도 벅찬 기분을 느끼게 했다. 무당굿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책이나 영상을 통해 접한 것이 전부다. 그럼... 그의 소설이 마음을 흔들어서 김수현 (〈한겨레출판〉 편집자) 내 취향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만들 때면 마음이 크게 흔들려서 ‘내가 좋아하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이 책을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 그렇다. 〈그의 옛 연인〉에서 트레버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뒤흔드는 사건과 남들보다 조금 더 선한 본성으로 인해 다른 이들과는 다른 무게의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을 그려낸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일이 그들에게는 다시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대한 사건으로 작용하고, 결국... 유럽의 그물망을 통과하는 묘미 이정우 (도서출판 책과함께 인문교양팀 팀장) 책 표지에서 저자는 ‘지은이’로 소개된다. 여기에 짧은 글을 쓰는 일과 책을 쓰고 만드는 일의 차이가 드러난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듯, 저자는 목차라는 구성과 얼개를 세워서 책을 짓는다. 저자들 중에서도 특히 구성에 매우 공을 들이는 이가 있다. 이들의 작품은 집필에 들어가기 이전에 기획안이나 최초의 목차만 보아도 책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저자들은 문장 역시 간명하고 논리적이라 술술 읽히곤 한다. 이 책 〈문명의 그물〉이 바로 그렇다. 10대 때부터 유럽에서 살아오면서 유럽의 역사와 정치, 유럽 통합을 공부해온 조... 우리 안에 갇힌 우리, 진짜 집을 찾아서 김구경 (고래뱃속 편집장) 책장을 넘기면 동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물원’을 소개합니다. 목이 기다란 기린을 배려한 키다리 식탁, 방귀 냄새가 지독한 스컹크를 위해 강력 탈취 시스템을 갖춘 청결한 화장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수달을 위한 수상 주택, 몇 대가 모여 사는 미어캣을 위한 공동주택…. 각 동물의 특징과 생활 습관을 섬세하게 고려해 설계한 건물과 시설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동물들. 하루 종일 놀기만 해도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는 부럽기만 한 모습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멋지게 집 소개를 마친 동... 편집자를 사로잡은 마성의 출판사 천혜란 (남해의봄날 편집자) 새로운 책을 접할 때면 보통 작가나 그 책 자체에 먼저 집중하고 이후에 그 책을 낸 출판사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핸드메이드 아트북 〈나무들의 밤〉과 〈물 속 생물들〉은 독서가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을 출간한 인도의 출판사 타라북스를 모르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모든 ‘입덕’의 길이 그러하듯 타라북스를 모를 수는 있지만, 타라북스를 알게 되는 순간 누구나 출구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타라북스는 천으로 만든 수제 종이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고 손으로 제본해 그 어디... 또 다른 ‘쓰치’에게 손 내밀어주길 이승희 (비채 1팀 편집장) 작년 여름의 일이다. 십대 딸을 키우는 남자 선배가 딸이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걱정된다는 얘기인 줄 알고 몇 마디 거들었는데, 이런 대답을 들었다. 자신의 딸이 소설 같은 것을 많이 읽지 않아 다행이라고. 나는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읽고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요약하면 이렇다. 열세 살 소녀 팡쓰치가 쉰 살의 문학 선생님 리궈화에게 5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하는 이야기. 이를 눈치챈 어른도 있고 힘겨운 고백을 들은 친구도 있었으며 가해자를 도운 사람까지 있었지만, 아무... 직관을 따를 수 있는 용기 박지석 (도서출판 항해 대표) 직관(直觀)은 무의식의 발현이다. 가령 특정 기기의 조작 편의성을 판단할 때, 우리는 그 사용법이 ‘직관적이냐, 그렇지 않으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직관적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직관은 자연스럽고, 초논리적(meta logical)이다. 우리는 자주 직관의 근거 없음을 의심하고 거기에 그럴듯한 논리를 끌어다 붙이지만, 사실은 직관이 먼저 오고 논리가 그 뒤를 따른다. 누구보다도 직관을 따른 인간이자, 스마트폰 창시자이기도 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회사 스트레스를 통찰로 바꾸려면 백지선 (흐름출판 편집자) 남들이 선호하는 직장에 다니다가도 사표를 던지고 이제 내 삶을 찾겠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부쩍 많이 들린다. 다른 좋은 일을 찾았다면 축하할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표는 최후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회사언어 번역기〉는 대기업에서 전략기획 실무를 맡고 있는 저자 피터(Peter)가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해 ‘브런치북 프로젝트 #2 은상’을 수상한 〈흔한 전략기획의 브랜드 지키기〉에 기반하고 있다. 독자가 주인공이 되어 회사의 부조리한 실상을 느끼고 스스로 고민해볼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으로 극화할 것을 저자에게 제안했... 40대에 ‘울림’으로 다가온 책 김남중 (한권의책 대표) 10대에는 그랬다. 껌을 돌리며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소리쳐 설명하는 사람을 보면 주머니를 뒤져서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털어 주었다. 뭔가 불공정하다 느꼈고 뭐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20대. 어설프게나마 눈뜨기 시작한 사회에 대한 의식은, 1000원짜리 한 장을 건넸던 내 행동을 그저 값싼 동정이나 자기만족 정도로 전락시켰다. 거대 독점 권력과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 구조에 대한 싸움만이 우리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이라 여겼다. 그 후 거리에서 동냥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주머니 속 작은 돈을 꺼내는 일은 없었다. 직장에 들... 정말로 삶은 책이 되었다 김정옥 (어떤책 대표) ‘어떻게 원망이 없을 수 있지?’ 김달님 작가의 글을 처음 읽으면서 한 생각이다. 나를 낳자마자 떠난 엄마, 철없는 아빠, 건설 노동자라 수시로 집을 비우던 할아버지, 다리를 저는 할머니, 그리고 가난까지. 조손가정이라면 텔레비전에서 종종 봐왔다. 그들은 대체로 가난했고 불행했고 시청자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나의 두 사람〉에서 김달님 작가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 조손가정을 다루는 두 형태 사이에는 단 한 가지, 그러나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두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 우리 인생 3분의 1 얼마나 아시나요 김호주 (현암사 일반편집팀장) 장마가 끝나면 곧 불면의 밤이 돌아온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잠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시기가 바로 한여름 열대야 시즌일 것이다. 기온이 한밤중에도 25℃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그런 밤이 며칠간 이어지면 업무와 학습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그런데 그런 불면이 일상인 이들이 있다. 바로 코골이, 이갈이, 주기성 사지운동장애 같은 수면장애가 있거나 여러 이유로 불면증을 겪는 사람들이다.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를 쓴 작가 마이클 맥거 역시 수면무호흡증으로 거의 평생을 고통받았다. 한때 신부로 봉직했던 그는... 팟캐스트 명성 넘어 세상에 온 책 이기웅 (박하출판사 편집자) 〈그것은 알기 싫다〉를 비롯해 유수의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팟캐스트 전문 방송사 XSFM의 유승균 PD는 〈일본 VS 옴진리교〉 추천사에 이런 말을 썼다. “저널리스트가 세상을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은 그 저널리스트가 가지는 인간에 대한 철저한 예의만큼만 바뀔 수 있다는 점입니다.” 출판계의 편집자들이 이른바 필자라는 이들로 인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요샛말로 바꾸자면 그야말로 감정노동이다. 다시 유승균 PD의 표현대로 “소위 ‘필자 시장’을 돌며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분노에 잠식된, 고삐를 꿰지 않은 나르시... 희대의 살인마와 ‘사냥꾼’의 덫 최종인 (인디페이퍼 대표) 노남용. 말하자면 그는 범죄계의 슈퍼스타다. 거침없는 살인과 강간으로 ‘희대의 살인마’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럼에도 막대한 재산과 배경을 가진 부모 덕에 지은 죄에 비해 적은 형벌을 받았고, 출소를 앞두고 있다. 그런 노남용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자유를 잃는 것이다. 여기, 그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내가 있다. 보호를 전문으로 하는 특별한 회사에서 ‘사냥꾼’이라 불리는 이 사내는 긴 시간 준비한 덫으로 그를 자유 없는 교도소로 다시 돌려보낼 생각이다. ‘놈은 충분한 벌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 아버지와 함께 떠난 한 번의 파리 여행 김현정 (책읽는고양이 대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행복한 아들은 얼마나 될까? 늘 일로 바쁜 아버지, 툭하면 어머니와 싸우며 외골수의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 아버지는 이런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아버지에게 여행사 대표인 저자는 한참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건다. “아버지, 저랑 파리 여행 가실래요?” 이 책은 파리를 100번도 더 가본 여행사 대표인 아들이 오랜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떠난 단 한 번의 파리 여행을 계기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가족 내 상처 치유와 관계 회복은 물론, 2... ‘너’를 살게 하는 쿠바 여행 김경미 (숨쉬는책공장 대표) 예전에 함께 책 작업을 한 작가가 다른 책 작업으로 먼저 연락을 해온다면? 우선은 반갑다. 다음으로 함께한 작업이 나쁘지는 않았나 보다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든다. 쿠바 여행 에세이 〈너는 쿠바에 갔다〉도 그랬다. 책 작업으로 인연이 있는 박세열 기자가 기획안과 샘플 원고를 준비해 먼저 연락을 해줬다. 반가움과 안도감 말고 걱정이 더해졌다. 기존에 작업한 책도 쿠바를 배경으로 한 여행 책이었고, 새로 건네준 기획안과 샘플 원고도 쿠바를 배경으로 한 여행 관련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는 여... 용기 내어 건넨 뒤늦은 작별 인사 박상문 (인물과사상사 편집장) 아버지는 지붕에 올라가셨다. ‘아버지, 이제는 내려오셔야 해요. 하늘은 그만 색칠하시고 내려오세요.’ 아버지는 내 말을 들었을까? 넓고 깊은 하늘에 파란색 물감으로 색칠하시는 아버지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묵묵히 파란색 물감을 하늘에 흩뿌리시며 하늘을 더욱더 파랗게 색칠하셨다. 내가 보기에 하늘은 파란색을 덧입혔어도 아름답거나 찬란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내가 만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차디찬 몸이었다. 영안실에 안치된 아버지는 숨도 쉬지 않은 채 딱딱하게 굳은 몸뚱어리...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사회를 위하여 김주희 (궁리 편집자) 2013년 이맘때였다. 한 시민 강좌에서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를 처음 봤다. 미국 뉴스쿨에서 〈정치적 적들 간의 화해를 위한 헌법 짓기〉라는 논문을 마치고 10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온 그였다. 처음 시민 강좌를 한 날, 그는 눈물을 내비쳤던 것 같다. 한국 땅에서 모국어를 쓰며 정치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 후 변함없이 그는 대중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정치사상 텍스트를 길잡이 삼아 한국 사회와 국가를, 정의를, (불)평등을, 자유주의를, 민주주의를, 정치를 시민들과 함께 탐구하는... 혼술의 시대 돌아온 칵테일 김교석 (벤치워머스 편집자) 주류 산업만큼 비주류가 주류를 압박하는 형국도 보기 드문 것 같다. 크래프트 맥주 혁명 이후 개성과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는 음주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술은 취하기 위한 음료나 사회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음미하는 기호 식품이자 라이프스타일로 격상했다. 그래서 ‘혼술’ ‘홈바’ 문화 확산과 잔술 판매 보편화를 취향의 다양화, 문화 탐닉의 즐거움으로 보는 시각이 생겨났다.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새로이 주목받은 주종이 바로 칵테일이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칵테일은 1990년대 말 뉴욕에서 시작한 이른바 크래프트 칵테일 혁명이라 불리... 마주 앉아 나누는 ‘보통의 행복’ 최진규 (포도밭출판사 대표) 이 책의 번역 초고가 들어왔을 때다. 한달음에 읽고는 마음이 들떴다. 편집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얻고자 저자들의 근황을 검색하는데, 이런… 공저자 중 한 명인 아마미야 마미의 부고가 보였다. 깜짝 놀라 역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먹먹한 침묵만을 한참 주고받았다. 아마미야 마미를 많이 좋아하게 되었는데. 역자도 같은 마음이었기에 우리는 함께 애석해했다. 또 다른 저자인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읽고 진작부터 그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그를 생각하면 이런 이미지가 그려진다. 어느 사회학자라는 사람이 새... 과학은 잘 몰라도 과학적이면 좋겠어 임지영 기자 저자 이름만 보고 일단 집어 드는 책이 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의 책도 그중 하나인데, 과학에 문외한인 내게 이미 몇 차례 한없이 친절한 ‘과학 대중서’의 세계를 맛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과 대중을 잇는 자칭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다. 과학에 대한 본격적인 지식보다 과학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에세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어떤 사회적 이슈나 일상의 풍경에서도 과학의 그림자를 발견해 과학적으로 빗대거나 설명해내고야 마는 경지가 놀랍다. 가령 한 중소기업의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낸 단체 ‘카톡’에 불평하는 직원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