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 변호사의 법정에서 본 현대사 교사가 시국선언하면 왜 안 돼? 김선수 (변호사) 2008년 5월 촛불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자,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 뒤 정부는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검찰을 앞세워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다. 〈PD수첩〉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졌고, 특히 인격 모욕적인 검찰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등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고 촛불집회에서 경적을 울렸다. 7년간 재판받았다. 김선수 (변호사) 2008년 4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4개월 정도 지속됐다. 촛불집회 관련 재판은 2016년까지 8년간 계속되었다. 지난 5월에 발행된 〈민변 촛불백서 Ⅱ〉에 따르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법률지원단이 촛불집회 사건과 관련해 변론한 피고인 수는 무려 939명(약식명령 사건 858명, 정식기소 사건 81명)에 이른다.촛불자동차연합 사건도 촛불 법질서 우롱하는 우리 사회 ‘슈퍼 갑들’ 김선수 (변호사) 근로자 파견은 근로자 공급의 한 유형으로 간접고용에 해당한다. 간접고용은 ‘고용’과 ‘사용’이 분리되어 본질적으로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중간착취’를 가능하게 한다. 실제 노동력을 사용하는 자가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차별 대우를 초래하며, 근로자의 단결권을 사실상 유명무실화하는 등 근로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큰 고용 형태다. ‘위험 딱 걸렸어 불법파견 사장님들 김선수 (변호사) 2008년 5월 중순, 민주노총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한테서 연락이 왔다. 불법파견 근로자의 직접고용 간주 조항 적용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데, 대법원으로부터 공개변론을 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권 변호사는 공동 대리인으로 공개변론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기꺼이 동의했다. 대법원 공개변론에 참여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교조 정보 공개해 하루 3000만원 쓴 그 사람 김선수 (변호사) 2010년 3월26일 교과부는 학교별로 교원단체 및 노동조합에 가입한 교사의 실명, 담당 교과, 가입 단체 등이 포함된 자료(이하 ‘이 사건 정보’)를 조전혁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했다. 이 자료에는 6만여 명에 이르는 전교조 조합원과 16만명에 이르는 교총 회원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전교조를 대리해 나는 다른 변호사 두 명과 전기세 할인이 잠보다 더 중요한가 김선수 (변호사) 내가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 1988년 5월 초순께 충북 단양군 매포읍 우덕2리 주민 몇 명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들이 사는 지역에는 한일시멘트 공장이 있었다. 주민들은 1964년 6월부터 가동한 공장 때문에 시멘트 분진, 발파작업과 기계운전으로 인한 소음과 진동에 시달렸다. 1976년 12월20일 마을이 청와대에서 찾아왔다 “소송 하나 맡아주오” 김선수 (변호사)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6월2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참여정부평가포럼 주최 모임에 참석해 ‘21세기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아래 사진). 당시 한나라당은 강연 내용이 공직선거법 제9조 제1항 등에 위반된다며 노 대통령을 중앙선관위에 고발했다. 중앙선관위는 6월7일 전체회의를 연 뒤 공직선거법 제9조가 정한 공무원의 종편이 태어난 날 일식이 있었단다 김선수 (변호사) 2009년 7월22일은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이 있었던 날이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3개 언론관계법(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원안))이 날치기 처리됐다.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이날 오후 3시35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출입문 봉쇄로 본회의장에 진입하지 못 친일파의 재산 후손이 갖는 게 맞나요 김선수 (변호사) 친일재산위원회의 국가귀속 결정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 왕족인 이해승 후손이 상속받거나 소유권을 회복한 토지다. 이해승은 이씨 왕족으로 한일합병 후 일제로부터 후작(侯爵)의 작위를 받고,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친일 행적을 했다. 이해승은 서울 진관동·응암동, 경기도 포천 등에 있는 많은 땅을 사정(査定)받았고, 그 후손이 이를 상속받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명 헌법재판소의 역대 1위 결정 김선수 (변호사) 1980년대 후반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들이 자기네 조상이 일제로부터 사정(査定:조사하거나 심사하여 결정)받아 보유했던 재산을 되찾겠다며 그 재산의 환수 소송을 시작했다. 실정법에 근거해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 법원으로서는 몇몇 친일 재산의 환수 소송에서 친일파(이완용·이재극 등) 후손의 청구를 인용하고 국가를 패소시키는 사례가 발생했다. 법원은 친일 열차 운전실 바닥에 신문 깔아야 했던 시절 김선수 (변호사)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 된 1988년.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덕선 아빠(성동일)’ 등 그 시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철도 기관사들도 마찬가지였다.1988년에 철도 기관사들은 철도청 소속 공무원(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 다른 표현으로 현업공무원)으로서 전국철도노동조합(이하 ‘철도노조’)에 소속되어 있었다. 근무 장소인 기관차의 역사가 진보한다고? 한국은 아닌 것 같아 김선수 (변호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교원과 공무원의 노조 설립이 금지되던 시절인 1989년 5월28일 ‘참교육’을 기치로 내걸고 설립되었다. 교원들은 1958년께부터 단결권 등의 확립을 구하기 시작했으나, 정부 당국의 부정적 유권해석과 법 운영으로 조직을 만들지 못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인 7월17일 서울에서 전국조직인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한국교조 황교안 검사, 수사기록 열람을 거부한 이유 김선수 (변호사)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1994년 ‘문민정부’ 때 일이다. 당시 검찰은 기소와 동시에 수사기록 전체를 법원에 제출하고, 변호인은 법원에서 모든 수사기록을 복사한 후 재판 준비를 했다. 그런데 변론기일도 열지 않고 증거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기록 일체를 법원에 제출하고, 법관이 미리 수사기록을 다 읽어본 다음 재판을 하는 것은 공소장일본주의( 화가를 고문한 그들, 몽타주를 남기다 김선수 (법무법인 시민·변호사)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출범했다. 민변 창립 멤버인 김선수 변호사는 노동·인권·공안 사건 등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법정에서 변론을 해왔다. 〈시사IN〉은 김 변호사의 ‘법정에서 본 현대사’를 격주로 연재한다.첫 번째 편은 형사소송절차를 한 걸음 진보시킨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민미련 간첩 조작 사건’이다. 간첩죄의 법정형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