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노동 ‘무늬만’ 말고 진짜 선진국 되기위한 두 개의 키워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한국 사회만 한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선진국의 시선’에 민감하다. 어떤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고, 한국 관련 순위에 촉각을 세운다. 하지만 정작 해당 제도가 도입된 맥락과 운영 과정, 주체들의 조건과 상태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법조문’만 빌려오기 일쑤다. 노동 분야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는 사용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활용한다. 노동조건이 좋지 않을수록,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척도를 그대로 인용하기도 한다.그런 한국이 유엔이 인정한 ‘선진국’이 되었다고 한다. 노동기본권 수준은 최하위 직장은 원래 괴로운 곳? 삭이지 말고 이렇게 해보라 이수운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 홍보국장) 네이버 직원들을 대상으로 고용노동부가 최근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5명이 최근 6개월 동안 한 차례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겪었다고 답했다. 고용노동부는 네이버 조직문화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결과는 ‘직장 내 괴롭힘’이 특별한 누군가에게 발생하는 비극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일임을 보여줬기에 안타까움을 더했다.무엇보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겪은 네이버 직원 10명 중 4명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대부분 혼자 참는다’고 응답한 점은 동료들이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지켜줘야 표준계약서 있지만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는 사람들 권지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영남지회 부지회장) 방송작가들은 오랜 기간 계약서 없이 일해왔다. 그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2017년 말 처음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를 마련했지만, 그것은 노동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패막이라기보다 지금까지 관행을 명문화해놓은 것에 불과했다. 계약서 시행 이후에도 방송사의 말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는 작가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아직까지 계약서를 쓰지 않는 곳 또한 수두룩하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계약서가 있으나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아무 제재를 받지 않는 고용주,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이 지속 너무 빨리 ‘실패한’ 20대 노동운동가의 새로운 시작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김병철(28)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이었다. 열여덟 살에 당시 막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던 청년유니온에 가입하고 10년 넘게 집행부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7년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되었다. 그의 목표는 언젠가 청년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국가정책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이가현(28)은 알바노조 위원장이었다. 열아홉 살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노동현장에서 동료 친구들의 삶을 개선해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알바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당시 시급 4500원 아파도 태풍이 와도 “연차휴가 남았어요? 없으면 출근하세요” 김민아 (노무사) 백신을 맞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감염병 시대로부터 빠른 탈출을 기대하기도 했다. 이번 여름만 지나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인원수 제한 없이 실내에 모여서 맛있는 것을 나눠 먹을 수 있을까. 그러나 최근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고 변이 바이러스 소식이 들려오면서 덜컥 겁이 났다. 코로나19가 종식되기만 하면 과거에 살던 방식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는 그저 바람일 뿐이다. 지금 이 상황은 갑자기 일회성으로 닥친 사고가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펼쳐질 환경 변화의 맥락에서, 더 악화되는 속도를 잡아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하다 다쳐도 보호받을 권리, 산재보험이 중요한 이유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한 중년 남성 노동자가 일하다 무릎을 살짝 부딪쳐 병원에 갔더니 연골이 파열되었다 하여 수술을 하고 나서 산재 신청을 했다. 불승인되었다. ‘업무상 사고로 인한 손상은 아니고 퇴행성 질환이다’라는 판단을 받고 나서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업무상 질병으로 다시 산재 신청을 했다. ‘무릎 부담 작업’이 인정되어 산재 승인이 되었다.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가 아니라고 해서 1년 동안 억울했던 마음은 조금 풀렸다.갓 스무 살이 된 여성 노동자가 손목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산재 신청을 했다. 일하던 식당에서 몇 달 동안 무거운 접시를 나르면 정치권 뛰어드는 노동계, 세력화할 것인가 연대할 것인가 박태주 (노동 연구자) 우스개 질문 하나. “미국에서 주요 노조들은 왜 본부를 워싱턴에 두고 있을까?” “정치하려고.” 우스갯말 같지만 유명 학자의 논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실제로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조합이 추진하는 두드러진 전략의 하나다. 정치세력화 전략이 선거를 하나의 변곡점으로 삼는다면 그중에서도 대선은 정치적 기회의 절정이다.내년에 열릴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출신 인사들이 속속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후보 캠프에 합류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산별노조(연맹) 간부를 지낸 인사들 이름도 잉크처럼 번져간다. ‘그분’이 가진 노동 한계 다다른 의료인력, 환자 돌보다 환자 될 판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안전수칙 가운데 ‘성인의 산소마스크 우선 착용’이 있다. 기체 이상으로 기내 산소량이 부족해지는 위기 상황에서 성인이 먼저 마스크를 착용한 뒤 어린이나 노약자 등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취약층을 먼저 돕다가 정작 자신의 체내 산소포화도 저하로 행동력과 판단력, 집중력이 떨어지면 취약층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장기화하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은 기체 이상이 발생한 기내 상황과 유사하다. 그만큼 감염병 예방과 진단, 확진자 진료를 위한 보건의료 좋은 게 좋은 거? 전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는데요 권지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영남지회 부지회장) “좋은 게 좋은 거지, 너무 깐깐하게 그러지 맙시다.”누구나 알고 있는 이 말은 너무도 일반적이어서 무슨 정언명령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시간과 공간, 위치 등 모든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도 이 말은 언제나 필요할 때 외울 수 있는 주문처럼 살아 있다. 그러나 그 주문은 아무나 외지 못한다. 권력의 우위를 점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고3 수능을 마친 나는 피자집에서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느 날, 사장님은 주말은 아무래도 손님이 많으니 평일보다 한 시간만 더 일찍 나와 준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열아홉 살이었 IT 업계의 그늘, 네이버‘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수운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 홍보국장) 지난 5월 한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 조합원이었다. 추모 기간이 끝나고 24일간 노동조합은 자체 진상조사에 나섰다. 안타까운 죽음 뒤에 존재했던 부당함과 불합리를 마주할 때마다 노동조합조차 고인의 울타리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 고인이 특정 조직 소속이란 이야기에 이미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해당 조직 소속 조합원의 요청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홍보물을 제작하고, 노조에 신고를 권하는 자석을 만들어 해당 조직에 나눠준 일, 2019년 1월 이후 잇달아 해당 조 IT 기업의 자회사 쪼개기는 ‘신종 노동조합 괴롭히기’?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몇 년 전 한 공기업 산하 자회사의 노사갈등을 중재한 적이 있다. 같은 업무를 하는 민간과 비교하더라도 저임금이 분명했고 인사·노무 관리의 부재로 인한 체불임금 규모도 만만치 않았다. 문제는 이러저러한 노사 간 현안을 조율하려 해도 대부분 모회사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는 점이다. 한정된 모회사의 자원을 놓고 내려야 하는 판단이기에 결국은 모회사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했다. 같은 상급단체를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회사 노동조합과 자회사 노동조합의 협력이나 조율은 없었다. 자회사 경영진과 노동조합의 갈등은 더 격화되기만 했다.얼마 전 화학물질 노출 산재 인정, 영세기업에선 아직 먼 일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한 반도체 공장에서 11년 동안 일한 뒤 파킨슨병에 걸린 여성 노동자가 산재 불승인되었다가 이후 행정소송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받았다. 파킨슨병이란 신경이 퇴행해서 생기며, 노인에게 흔한 병이다. 영화 속에도 나온다. 신경과 의사 겸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회고록을 토대로 만든 〈사랑의 기적〉이라는 영화에서 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가 엘도파라는 약물로 치료를 받고 나서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완치란 없다. 진행을 늦추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망간에 노출된 용접 작업자에게 파킨슨병이 발생한다는 직장에서 차별하면 ‘이 만큼’ 처벌 받습니다 김민아 (노무사) 나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운영한다. 뉴스레터를 통해 노동법의 내용을 설명할 뿐 아니라 구독하는 사람들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고통당하거나 차별받은 사연을 익명으로 제보받는다. 주로 차별 사례가 많다.우선 비정규직이라서 차별받고 있다는 사례다. 기간제(계약직) 노동자 또는 단시간 노동자(일주일 동안 정해진 노동시간이 그 사업장에서 같은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일주일 동안 정해진 노동시간에 비해 짧은 노동자)라는 이유로 아예 성과급 지급 대상이 되지 않거나 복리후생 명목의 선물 또는 명절수당을 전혀 지급 벼농사 유전자 넘어선 산업별 노조의 역사 박태주 (노동 연구자) “한국의 진보는 그동안 엉뚱한 데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다. 산업별 노조다. 내가 보기엔 절대로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산별노조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초기업적인 연대체라는 이념이 (마을 단위로 협업하는) 벼농사 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아니, 이게 뭔 말? 지난 3월 〈시사IN〉 제703호에 실린 이철승 서강대 교수의 인터뷰다(‘50대 노조원의 밥그릇, 스마트하게 건드리자’). 지금에야 글을 쓰지만 이 구절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산별주의자를 자처하며 쏟아부은 내 삶의 노력은 낮달처럼 무용했을까. 지금도 산별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 대안은 공동교섭과 연대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교섭권도 없는 노조가 얼마나 오래갈까?”최근 20~30대 사무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이른바 ‘MZ 세대 노조 설립’을 두고, 적지 않은 노조 활동가들이 던진 질문이다. 노조는 만들었는데 교섭은 하기 어렵다고? 무슨 말인가?법상 노동조합은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갖는다. 문제는 하나의 사업장에 노조가 2개 이상 있을 경우 단체교섭 방법에 관한 것인데, 노동법에서는 노조 쪽의 교섭창구를 하나로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다. 법에서는 이를 ‘교섭창구단일화제도’라고 한다. 그 방법은 첫째, 복수의 노조가 자 ‘노조를 한다는 것은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일’ 권지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영남지회 부지회장)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오전 11시라는 시간 조건상 참여자는 대부분 오전 시간이 편한 주부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모임을 거듭하다 보니 책 읽자고 모인 자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시작은 늘 책이었으나 어느 순간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 것이다. 행복의 이유는 비슷하지만, 불행의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이야기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사노동의 고단함부터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가정사까지 대개가 어디 가서 말하자니 못난 사람 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입 IT 기업의 성과급 논란과 울타리 밖 노동자 이수운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 홍보국장) 올해 초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IT 라운지(직종별 게시판)는 성과급 분배 논란으로 뜨거웠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일부 IT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성장했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에 미치지 못하자, 성과 분배의 공정성과 적정성을 두고 문제 제기가 확산됐다. 각 기업의 노동자와 노동조합들은 메일, 댓글, 주주총회 참여 등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끊임없이 공정한 배분을 요구했다. 네이버 노조도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기업들은 성과급 재조정, 자사주 지급 같은 해법을 제시했 '멋진 신세계'와 '시시한 노동시장정책' 조성주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많은 국가에서 언제부터인가 ‘능력주의’ ‘공정’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보통 진보는 ‘불평등의 심화’가 불러온 현상이라고 이야기하고, 보수는 ‘진보의 내로남불과 조급증’이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최근작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미국의 능력주의가 상당 부분 ‘일의 존엄’을 무시한 미국 진보파에게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운다. 흥미로운 사실은 샌델 교수가 이런 ‘일의 존엄’을 무시함으로써 발생했다고 보는 미국판 ‘능력주의 및 공정 담론’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아파트 경비원의 한마디가 알려준 것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지난 4월19일 경비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 사회를 보러 갔다. 토론회의 발제자와 지정 토론자 모두 이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이자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온 분들이었다. 발제자는 현재 근로계약서상 노동시간과 휴게 시간이 실질적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을 공들여 만든 많은 표로 보여줬다. 한 지정 토론자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으로 이제 주차·분리수거·청소 등의 업무를 근로계약에 포함하게 되면 감시단속 노동자로 구분되어 긴 세월 장시간 노동을 당연하게 수행했던 경비노동자들이 일반 노동자로 인정받아 노동시간은 노동강도 낮추기보단 임금체불로 붙잡아두는 회사 김민아 (노무사) 건설 현장의 임금체불은 상습적이다. 노동자가 그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면 처음 한두 달치의 임금을 두세 달 ‘깔고 있다가’ 지급하는 것(손톱을 잘라먹듯 임금이 미뤄진다고 해서 현장에서는 일본어 ‘쓰메끼리’라고 불렸다)이 상습적인 임금체불의 시작이다. 이렇게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다가 업체가 망해버리거나 사업주가 고용노동부에서 찾을 수 없도록 도망가버리는 경우도 많다. 건설 현장에서는 이렇게 임금을 받지 못한 채로 일만 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생활고 때문에 죽기도 한다. 심지어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한 노동자가 현장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