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차려주는 밥상 항정살은 항상 옳다 김진영 (식품 MD) “진영이는 장가를 집 근처로 가겠네.” 돌아가신 아버지가 언젠가 나에게 했던 말이 젓가락을 잡을 때마다 귓가를 맴돈다. 젓가락을 짧게 잡고 밥을 먹으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설화 같은 이야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서식지 근처의 인연을 만나 결혼했다. 생전에 아버지는 내 행동에 가타부타 별말은 하지 않으셨다. 다만 딱 한 가지 예외는 젓가락질이다. 어디 가서 밥 먹을 때 젓가락질을 못하면 채신없어 보인다며 늘 바로잡아주었다. 그 덕에 제대로 된 젓가락질로 밥을 먹는다. 윤희랑 짜장면을 먹을 때였다.... 김치라면의 굴욕 김진영 (식품 MD) 아주 가끔 밥하기 싫을 때가 있다. 전날 과음으로 몸이 무겁거나(주된 이유다), 반찬이 진짜로 애매할 때다. 저녁 반찬으로 무엇을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톡 하고 솟아나는 메뉴가 없을 땐 구호물자에 손을 댄다. 라면이다. “김윤~ 라면 먹을까?” “콜” 가끔 가련한 눈길을 보내긴 해도 거절하지는 않는다. 윤희의 눈길에는 “쯧쯧, 어제 조금만 마시지. 이번 한 번만 봐준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라면은 간단하게 한 끼 때울 수 있으면서도, 개인적 취향이 도드라지는 음식이다. 봉지 뒷면에 적힌 설명대로 곧이곧대로 끓이는 사람... 두부 맛은 콩 맛 김진영 (식품 MD) “뭐가 이렇게 싱거워. 아무 맛도 없네.” 두부를 소금에 찍어 먹던 윤희가 툭 볼멘소리를 던진다. 두부 브랜드가 바뀐 것을 단박에 눈치 챘다. 윤희는 두부나 구운 만두나 모두 소금에 찍어 먹는다. 어묵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 거지, 튀긴 것은 소금에 찍어 먹는 게 제일이라 생각한다. 군만두를 만들면 내가 먹을 양념간장과 윤희가 찍어 먹을 소금 종지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아무리 간장이 맛있다고 꾀어도 늘 도리질이다. 일관성이 있어 좋긴 한데 귀찮다. 아무튼 이날의 문제는 두부였다. 14년 전이었다. 식품박람회에 가서 이곳저곳... 식품 전문가의 쌀 고르는 노하우 김진영 (식품 MD) “왜 떡국이야?” 밥 대신 떡국을 차린 아침 밥상을 본 윤희의 외침이다. 윤희는 아침에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 원칙이 철저하다. 새벽에 눈 뜨기 싫어서 가끔 “내일 아침엔 빵 어때?” 하며 살살 꼬이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똑같다. “빵은 밥이 아니야. 밥하기 싫어?” 그래서 아침마다 밥을 한다. 그것도 돌솥밥으로. 등교 시간이 오전 8시30분까지라 적어도 6시30분에는 일어나야 아침밥을 차릴 수 있다. 교육청에서 오전 9시 등교를 권한 지 꽤 오래됐지만 학교장 재량으로 8시30분 등교를 고집하는 학교가 여전히 꽤 있다. 아침에는... 당면이 국물에 빠진 날 김진영 (식품 MD) 밤 10시, 나는 서울 신당동, 아니 ‘신월동의 마복림’으로 변신한다. 집에서 눈이 마주친 윤희가 대뜸 “아빠 배고파~” 할 때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 뚝딱 만들어내는 메뉴가 떡볶이다. 물론 전화 한 통이면 갓 만든 따끈한 떡볶이가 배달되고, 집 앞 슈퍼에만 가도 즉석 떡볶이 상품이 즐비한 세상이다. 심지어 쿠팡 식품팀장으로 일할 때 즉석 떡볶이 상품을 기획한 적도 있지만, 정작 우리 집에선 그런 걸 먹지 않는다. 자극적인 맛이 강해서 나나 윤희나 즐기지 않는다. 인스턴트 음식을 멀리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몸을 더 움직이는 ... 스테이크는 숙성육! 김진영 (식품 MD) “윽, 이 빨간 피는 뭐야~.” 스테이크를 처음 본 윤희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양새에 질겁했다. 그랬던 윤희가 스테이크를 잘 먹게 된 계기는 별것 아니다. 집에서 구워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 스테이크에 도전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비싼 고깃값도 그렇지만 맛있게 굽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다. 한 번 정도 고기 굽기에 실패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누구든 확실히 잘 구울 수 있다. 게다가 외식 1인분 비용으로 4인 가족이 스테이크를 즐길 수도 있다.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울 때... 달걀찜은 뚝배기에 김진영 (식품 MD) 누구나 쉽게 만들면서도, 쉽지 않은 요리가 몇 가지 있다. 라면과 달걀 요리다.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라면과 달걀은 그 자체로 서로 어울리기도 한다. 달걀의 풍미가 밀가루 냄새를 없애거니와 노른자가 라면에서 나온 기름을 물과 결합시켜 국물이 깔끔해진다. 나만의 라면 끓이기 방법이 있다. 나는 면이 좀 꼬들꼬들하다 싶을 때 달걀 하나를 넣고 불을 끈다. 그런 후 뚜껑을 닫고 1분 정도 뜸을 들인다. 밥도 아닌 라면에 무슨 뜸을 들이느냐고 할 수 있다. 한번 해보시라. 어떤 브랜드의 라면도 다 먹을 때... 그 어려운 브라우니를 김진영 (식품 MD) 윤희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텔레비전에서 윤희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브라우니를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윤희가 대뜸 물었다. “아빠, 저거 만들 줄 알아?” “물론이지!” “아니, 떡 말고 브라우니.” 브라우니 이야기에 웬 떡? 다 사연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 식품가공학을 전공하면서 제빵 연구회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당근 케이크, 스펀지케이크, 식빵, 쿠키 등등 갖가지 빵을 만들어 학교에서 판매까지 했던 실력자였다. 결혼하고 윤희를 키우면서 옛 실력을 발휘하겠다며 식빵을 만든 적이 있었다. 20년 전의 실력은 온데간데없었다... 목심 곰탕도 좋구나 김진영 (식품 MD) 얼마 전 일본에 출장 가 있을 때였다.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이 타오른 토요일 오후 윤희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아빠 11월12일에 더 큰 시위가 있대. 우리도 가자~” “그래 가자~” 일 때문에 광화문에 함께 있지 못해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침 최순실씨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시켜 먹은 곰탕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할 때였다. 곰탕이 암호냐 아니냐 왁자지껄한 뉴스를 보노라니, 식품 MD로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곰탕은 윤희가 무척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곰탕은 끓이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한번 만들어놓으면... 가을엔 삼치를 굽겠어요 김진영 (식품 MD) “아빠, 요즘 많이 부실해~.” 아침 밥상에서 첫 숟가락을 뜨던 윤희가 볼멘소리를 한다. 내가 봐도 요사이 반찬에 통 신경을 쓰지 못했다. 주부 노릇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매일 반찬을 새롭게 만든다는 게 여간 귀찮고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저절로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자라면서 어머니께 쏟아냈던 반찬 투정에 대해 말이다. 엄마! 미안해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재료가 있다. 삼치다. 가을이 되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생선들이 일제히 기름기가 돌고 살이 오른다. 등 푸른 생선은 그 맛이 다른 계절과 비교... 오징어엔 고추기름이지 김진영 (식품 MD) “오징어채 볶음 만들어줘.” 윤희가 아주 오랜만에 오징어채 볶음을 먹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집 앞 슈퍼에 가서 오징어채를 사왔다. 오랜만의 ‘주문’인 만큼 이번에는 좀 색다르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핵심은 고추기름이다. 야단법석을 피우며 고추기름을 직접 만들었다. 고추기름 레시피는 이렇다. 매운 고춧가루와 안 매운 고춧가루를 1:1 비율로 섞은 다음 마늘·대파·올리브오일과 함께 볶는다. 프라이팬 손잡이를 높여 기름이 모이도록 하고는 가장 약한 불에서 가열한다. 기름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매운 향에 ... 너는 피망을 먹고 있다 김진영 (식품 MD) 매일 반찬을 기획한다. 마치 중요한 프로젝트 보고서를 작성하듯 말이다. 보고서 쓸 때 첫마디가 풀리면 그다음이 저절로 풀리는 것처럼 반찬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도 한 가지 메뉴가 결정되면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다. 오늘은 카레라이스(카레)다. 다른 반찬도 필요 없고, 잘 익은 깍두기만 있으면 된다. “아빠 기억나?” “뭐?” “거기 있잖아? 우리 일본에서 카레 먹었던 곳.” “후쿠오카 하카타역 백화점 지하 말하는 거야?” “응.” 카레를 하면 윤희는 꼭 일본 여행에서 먹었던 카레 이야기를 한다. 자기 평생이라고 해봤자 14년이... 중학생 딸이 한뼘 자란 날, 아빠는 항정살을 구웠다 김진영 (식품 MD) “아빠, 윤희 배고파~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윤희의 톤 높은 목소리다. 중학생이 된 뒤로 한 달 넘게 윤희는 풀 죽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조마조마 숨죽이며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윤희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 3명밖에 없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등교를 하고 일주일이 지날 즈음부터 조금씩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같은 학교 출신 남학생 한 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었다. 동호라는 남학생은 윤희랑 초등학교 2학년부터 쭉 같은 반이었다. 호남형에 키가 170㎝가 ... 1치킨 1안타 김진영 (식품 MD) “아빠, 친구랑 야구 보러 가도 돼?” 지난 여름방학 때 윤희가 통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집에서 서울 고척 돔구장은 택시 기본요금 거리다. 아무리 가깝다고는 해도 ‘아빠 야구 보러 가자’가 아니라 다녀올게라니, 섭섭함이 앞섰다. 아빠만 찾던 녀석이 이제 친구를 찾는구나. 그러다 보니 누구랑 가는지 궁금했다. “근데 누구랑?” 남자친구는 아니었다. 다른 팀을 좋아하는 여자친구랑 간단다. “걔는 다른 팀인데 이번에 같이 가고 다음에는 걔네 팀 경기할 때 같이 가주는 조건이야.”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윤희를 보내고 집에 멍... 김치볶음밥엔 항정살이 찰떡궁합 김진영 (식품 MD) 윤희는 배추김치를 안 먹는다. 먹어도 아주 조금 먹는다. 라면을 먹을 때도 그렇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을 때도 친구들은 김치를 사서 같이 나눠 먹는데 윤희는 그냥 물과 함께 먹고 만다. 왜 안 먹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맛없어”다. 김치 중에서 그나마 잘 먹는 것은 총각김치나 오이소박이 정도다. 아, 깍두기도 좀 먹는다. 그런 윤희가 김치로 오리불고기 했네? 헤헤헤 김진영 (식품 MD) 윤희는 고기를 좋아한다. 돼지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순서다. 다행히 비싼 쇠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나이 또래와 달리 독특하게도 오리불고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가끔 뜬금없이 메뉴 요청을 한다.“아빠. 우리 오리불고기 먹은 지 좀 오래되지 않았어?” “왜? 오리불고기 먹고 싶어?” “응, 오리불고기 안 먹은 지 오래됐잖아.”우리 부부는 맞벌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