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바닷길 전쟁의 바닷길은 이제 끝났을까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제주대 석좌교수) 무역길을 제외하면 바닷길 중에 으뜸은 역시 ‘전쟁의 길’이 아닐까 싶다.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니는 동북아의 전쟁 바닷길은 산둥 반도 등주(덩저우)쯤에서 발해만의 섬들을 건너 요동(랴오둥) 반도로 건너가는 길이다. 자잘한 섬들이 발해만에 포진해 그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랴오둥 반도를 공략할 수 있다. 수·양·당 제국의 전쟁 행보가 그러하였다.지금부터는 임진 동해에 있다는 미지의 섬… 그 섬을 찾고 싶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제주대 석좌교수) 무더운 계절에는 많은 이들이 섬을 꿈꾼다. 그 섬에 가면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환상에 젖는다. 막상 섬에 가보면 환상은 깨진다. 그래도 좋다. 존 레넌의 ‘이매진’이 아니더라도 상상은 삶을 충만케 한다. 역사가 홉스봄이 말했던가. “민중은 어떤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지만 희망이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무수한 바닷길은 삶의 길이고 현실의 길이기도 홋카이도에 살았던 아이누인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제주대 석좌교수) 실크로드의 동단은 과연 경주에서 끝나는 것일까. 중앙아시아에서 만주를 거쳐 한반도 경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북방 루트는 끝이 나는 것일까. 그러한 주장은 사실 한국인들의 소망일 뿐,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북방 루트의 동쪽 끝은 한반도가 아니라 연해주와 사할린, 홋카이도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동해를 관통해 일본 열도와 대륙을 연결해주던 일본로는 발해를 경유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제주대 석좌교수) 바닷길 문명 교류의 기본 동력은 바람이다. 바람은 돛을 밀어내어 문명과 문명을 접촉시키고, 마침내 여러 문명을 교직하였다. 바람이 없었더라면 문명의 바닷길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도양에서의 문명 교류도 그러했다. 말레이시아 이슬람예술박물관에서 펴낸 〈몬순에 실려 온 소식〉을 보면 이슬람 문명 역시 바람을 타고 온 다우선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그마한 카누로 대양을 누볐던 그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제주대 석좌교수) 태평양은 가장 많이 언급되는 바다이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태평양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 내내 태평양을 통과하지만 그 밑 바다에는 무심한 채 한국과 미국의 관계만 생각한다. 우리가 속한 태평양에 누가 언제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그저 ‘남의 동네’ 이야기다.태평양 사람들이 우리와 동일 아시아계이며, 아시아인이 태평양으로 나아갔던 대항해 대구의 원래 이름은 ‘생선’이라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제주대 석좌교수) 서해안 조기의 소멸이 가져온 서해안 어촌 삶의 근본적인 변화 양상(〈시사IN〉 제404호 ‘조기 생일은 1년에 세 번이었지’ 기사 참조)을 썼더니 ‘그게 문명사와 뭔 관계인가’ 하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생선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면서 그 의문점을 풀어보자.이번에는 ‘대구’다. 조기가 황해 권역의 미시사라면, 대구는 드넓은 대서양 권역의 미시사라고 할까. 조기 생일은 1년에 세 번이었지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제주대 석좌교수) 동해에 명태라면, 남해와 제주는 멸치, 황해는 조기가 으뜸이다. 명태를 말리면 북어, 조기를 소금에 약간 절여 말리면 굴비가 된다. 이들 명태·조기·멸치는 동·서·남해의 ‘삼걸(三傑)’이다. 이들의 세력균형(?)은 황해 조기와 동해 명태가 급거 역사의 전면에서 퇴장하면서 깨져버렸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조기 떼는 황해와 동중국해의 경계 해역까지 발달한 돈 대신 말린 해삼 받습니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제주대 석좌교수) ‘인삼과 산삼 위에 해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해삼은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피동물인 해삼은 그 종류가 많아서 무려 1100여 종이 확인되고 있다. 해삼은 세계 모든 바다에서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얕은 바다에 산다.한국인들은 해삼을 날로 먹는 방식을 선호한다. 해삼이 싸고 흔했던 1970년대까지는 길거리에서 해삼과 멍게를 잔술과 함께 팔았 콜럼버스보다 우리가 먼저거든?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제주대 석좌교수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1988년 매우 묵직한 자료집을 출간했다. 빙하시대에 얼어붙은 베링해를 넘어서 아시아인이 아메리카로 넘어간 행적을 추적하는 문명사적 보고서였다(Cross the Continental). 유라시아에서 온 아시아인이 아메리카로 건너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태가 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인류가 바닷길을 통해 이동한 가장 중요한 사 ‘용왕의 자식’에게 건넨 막걸리 한 잔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제주대 석좌교수 10년 전, 국립제주박물관에서 〈한국-오키나와의 조개 제품을 통한 선사시대 문화의 재발견〉 기획 전시를 한 적이 있다. 5세기에 이미 한국 남부에 오키나와산으로 보이는 고후우라제 팔찌가 전해졌음이 밝혀졌다. 한반도와 일본 본토, 제주와 일본 본토, 한반도와 오키나와, 제주와 오키나와 간의 다면적 네트워크가 확인된 것이다. 시각을 타이완과 필리핀으로 넓힌다면 ‘푸른 눈’이 건너온 믿음과 침략의 바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제주대 석좌교수 마젤란이나 바스코 다가마 같은 대항해가가 만들어낸 바닷길은 초등학생도 알 정도로 익숙하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거쳤던 ‘선교의 길’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특히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남긴 선교의 길은 대항해를 뛰어넘는 규모와 진정성이 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해양강국의 제국 확장과 무역로 확충을 위한 공격적 선교와 맞물리기는 하지만, 하비에르의 뱃사람의 간절함 “나무관세음보살…”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제주대 석좌교수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의 남보타사에 가면 바다를 조망하는 관음(관세음보살)상을 볼 수 있다. 항저우(杭州) 저우산(舟山) 보타락가사에서도 그렇다. 일본 나가사키 현 시마바라(島原) 반도에서는 관음상 모양을 한 성모마리아를 볼 수 있다. 관광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관음상이다. 그런데 뭔가 낙산사(강원도 양양)의 관음상과 비슷한 모양새다. 분명한 검은담비의 길, 세계를 바꾸다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제주대 석좌교수 검은담비(sable)의 털은 예나 지금이나 최상으로 꼽힌다. 그래서 가격도 최고다. 모피 거부 운동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지난겨울도 세계의 많은 귀부인이 모피를 걸치고 환상적 기분에 빠졌을 것이다. 동물의 죽은 껍데기에 산사람이 대신 들어서는 독특한 문화는 아직도 전성기다. 이런 모피광들에게 검은담비는 묘한 열망을 부여한다. 담비는 족제빗과 동물로 털이 조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