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권하는 운동만 해왔으니…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매년 이맘때에는 왠지 운동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해에는 요가를 등록했다. 말 그대로 작심삼일이었는데, 잘 나가다가 괜히 사흘째 되던 날 척추와 자세에 좋다고 하여 플라잉 요가 수업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분명히 ‘초급’ 수업이었으나 일단은 그 초급도 해먹을 잡고 올라갈 만한 근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 턱이 없었다. 내 몸은 골반에 해먹을 끼운 채 거꾸로 매달리는 것까지가 한계였다. 그렇게 45분간 매달려 있었다. 아주 긴 45분이었다.그보다 1년 전에는 복싱을 등록했었다. 모두가 뛰고 있는 체육관 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지난해 가을 어설프게 알고 지내던 지인과 밥을 먹었다. 10월치고는 날이 쌀쌀해서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고,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말들을 이으며, 바람이 부는 언덕길을 걸어 맛집 프로그램에 나온 적 있다는 사람 많은 가게에서 따뜻한 닭 요리를 시켰다. 이 모든 것이 매우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그가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면 진짜 X 된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곰탕집 성폭력 사건 이야기였다. 그는 정말로 두렵다고 했다.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선고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판결을 규탄하는 온라인 카페 ‘당 죽더라도 결코 죽임당하지 말자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여성 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전화상담원 활동을 시작한 지 석 달이 넘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동안 작은 방에 앉아 전화를 기다린다. 얼마 전 전화를 건 여성은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을 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고, 나아진 자신의 모습이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도 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저는 그렇지 않다고 믿겠습니다.” 어딘가에는 당신의 이야기를 믿고 당신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고 당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그것이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닐지라도 분명히 있다고, 범인은 왜 항상 남자인가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8월3일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21세 백인 남성이 대형 쇼핑단지 내 월마트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해 20명을 죽이고 26명을 다치게 했다. 이튿날인 8월4일, 오하이오 데이턴 시내 번화가에서 24세 백인 남성이 역시 총을 마구 쏘아 9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당했다. 불과 13시간 사이에 29명이 죽고 40명이 넘는 이들이 다쳤다. 데이턴의 용의자는 현장에서 사살되었고, 엘패소의 범인은 순순히 투항했다. 그는 자신의 타깃이 멕시코 이민자, 즉 히스패닉이었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백인우월주의와 ‘여성’ 방문 노동자가 날마다 겪는 일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바깥이 소란스러워 잠에서 깼다. 옆집에 누가 온 모양이었다. 잠결에 들리는 말들로 짐작하건대 이웃이 맡긴 매물의 재개발 건을 이야기하러 부동산에서 나온 듯했다. ‘서명을 해주셔야 하는데 자꾸 전화를 안 받으셔서 직접 찾아왔다’고 설명하는 직원의 말을 옆집 남자가 한사코 들으려 하지 않아 승강이가 이어지고 있었다. 직원이 성실하게 설명을 반복하는데도 남자는 자꾸 “왜 왔냐”라고만 묻다가 끝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여자가 왜 혼자 왔어! 내가 무슨 짓 하면 어떡할 거야!”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벽 건너의 여성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