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진학하는 학생을 격려하는 슬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6학년 담임의 연말 업무 중 하나는 중학교 배정 원서를 쓰는 일이다. 우리 학교가 위치한 도계읍에는 남중, 여중이 하나씩 있다. 아이들은 별도의 추첨 절차 없이 중학교에 진학한다. 나름 수월하게 보일지도 모르나 남모를 고민거리가 있다. 도시지역 중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는 학생이 꽤 된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6학년은 4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중 한 명이 2학기 말에 전학을 갔고, 3명이 졸업 후에 학군을 옮길 예정이다.학교 선택은 학부모와 학생의 권리이므로 교사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시골 탈출 정서를 발 진짜 ‘도농 격차’가 뭔지 아세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강원도 벽지 초등학교로 전근 왔을 때 가장 놀란 건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놀 공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시골에도 학원은 있다. 학습지 선생님이 가정을 방문하고, 원한다면 그룹 과외도 받을 수 있다. 대신 문화시설이 귀했다. PC방도 있고 LTE 전파도 빵빵 잘 터져서 게임을 하는 데 무리가 없었지만, 수준 있는 공연이나 전시를 즐기기 어려웠다.아이들은 어린이날, 생일 따위로 용돈 주머니가 차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동해시로 놀러 나갔다. 도계읍이 소속된 삼척시의 시내도 아니고, 교통은 불편하지만 거리는 더 가까운 태백 다문화가정 아이 향한 동정과 혐오의 화살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다문화 사회를 실감하려면 시골로 가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강원도의 경우 매년 다문화 가구가 증가하고 있고, 2017년 현재 3897명의 학생이 등록되어 있다. 전체 학생의 2%, 초등학생만 따지면 3.4%나 되는 수치다. 나도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여럿 가르쳤다. 모두 어머니가 외국 출신이었다. 대부분 남편과 나이 차이가 열 살 이상 났고, 한국 출신 학부모에 비하면 어렸다. 이건 내가 강원도 벽지에 근무하기 때문에 경험하는 특수한 상황일 수도 있다.다문화가정 아이들은 한국어만 썼다. 어머니가 중국, 필리핀 출신이라고 해서 이중 언 아이들 싸움에 경찰서 가자고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일이 잦아졌다. 예년보다 학부모, 학생 연락 빈도가 대폭 늘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6학년들의 담임교사로 살아가려면 문자 한 줄, 전화 한 통도 놓칠 수 없었다. 사실 고학년 담임을 자원했다. 학교폭력 사안이라도 터지면 최소 일주일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온갖 행정 절차와 상담 등으로 진을 빼야 한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간 6학년 담임을 못 해봤기에 직접 경험하고 배우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학기 초, 아이들 정보가 거의 없었다. NEIS(교육행정 정보시스템)에 탑재된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 정 “요번에 성과급 뭐 받았어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요번에 뭐 받았어요?” 지난해 같은 학년에 근무한 선생님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A 받았어. 선생님은?” 답변을 듣고 고개를 떨구었다. 선생님의 성과급은 B였다.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어서 우리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협의했다. 선생님은 통합 학급의 담임을 맡아 수업과 생활지도에 어려움이 많았다. 나만 A를 받아서 무척 미안하고 면목 없다고 하자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며 이게 우리만의 일이냐며 오히려 위로했다. 성과급이 입금되는 5월 말이면 이런 상황을 자주 만난다. 매년 반복되는 교원성과급 문제를 겪으며 나는 무척... 남자 평교사들, 공포심 때문에 교장 된다?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나는 강원도 탄광촌 벽지학교에 근무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편도 31.97㎞, 40분을 운전해서 간다. 일반인은 이 상황을 두고 ‘출퇴근 거리가 멀어 불편하겠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교사끼리는 ‘벽지 가산점 따려고 갔구나’ 하는 판단이 먼저 선다. 맞다. 나 역시 3년 전 관내 학교 이동을 신청할 때 승진 가산점을 얻기 위해 시골 학교에 지원했다. 벽지학교 근무 가산점이 없으면 사실상 교감 연수 대상자 순위에 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교육전문직 시험을 통한 방식은 예외로 한다). 교장이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장기간 준비해야 한다.... 누구나 유튜버가 될 수는 없잖아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 남자애 두 녀석의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었다. 그 둘은 서로 자기가 진짜 대통령이 될 거라고 걸핏하면 으르렁거렸는데, 주변 친구들은 친한 녀석을 편들기 바빴다. 그 와중에 나는 ‘백화점 사장’이 되겠다는 내 꿈과 겹치는 아이가 없어서 안도했다. 돌아보면 우습지만 어릴 적 꿈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달리 생각하면 당시의 진로 교육은 장래 희망 발표하기 수준을 맴돌았다. 사정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진로 교육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와 같은 철학적 차원이 아니라... ‘마음의 독감’은 왜 치료하지 않나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독감 철에 22명이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교실은 기침 소리로 가득하다. 감기에 걸린 아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는다. 아침에 병원 들르느라 조금 늦을 수 있다는 문자와 전화를 받는 일도 잦아진다. 만일 몸 상태가 평소보다 유난히 나빠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보건 교사에게 체온 측정을 부탁하고, 필요하면 부모에게 연락해서 전문의 진찰을 권한다. 몸이 아픈 문제는 학부모와 이야기하기가 쉽다. 초등 교사가 의사는 아니지만 등교부터 하교할 때까지 한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며 수시로 관찰하기에 아이 몸의 이상을... ‘노는’ 아이가 걱정되나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노는 땅을 뭐라고 번역해야 하지.’ 학교 영어 원어민 강사와 대화하던 중 말문이 막혔다. 예전에 닭과 토끼를 길렀던 공터를 지나는 참이었다. 지금은 동물이 없고 텅 비어 있기에 드문드문 잡초와 들풀이 솟아 있었다. 그 땅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수식어가 ‘노는’이었다. 뭔가 특별한 쓰임 없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는데, ‘playing ground’라고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노는 땅, 세상에 노는 땅이 어디 있나. 한국인 기준에는 상추라도 심어야 땅이 한량 신세를 면한다. 사실 ‘노는 땅’이란 보는 사람만 애타고 초조하지... 아이를 조건 없이 믿나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어쩌다 보니 발령 이후 3, 4학년 담임을 연거푸 맡았다. 올해는 여섯 번째 4학년 담임이었다. 학교 사정과 학생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3, 4학년은 교사들에게 선호도가 높다. 왜냐하면 저학년을 거치며 어느 정도 학교에 적응했고, 사춘기의 격렬함이 폭발하기 전의 아이들이라 비교적 평화롭고 즐겁게 학급 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부모의 관계도 크게 삐거덕거릴 일이 적다. 일단 부모 손이 예전보다 덜 간다. 머리 감고, 이 닦고, 옷 입기 같은 기본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다. 또한 인지능력이 발달해 추상적... 아이가 ‘착해서’ 노심초사하는 부모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다른 아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합니다. 남에게 양보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습니다.” 학기말 행복성장기록부(통지표와 유사)를 작성하다가 키보드 누르는 손가락을 자주 멈춰야 했다. 아이마다 생활 모습과 특징을 적어줘야 하므로, ‘착하다’를 구체적 맥락을 살린 표현으로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착한 아이를 ‘착하다’라고만 적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상담 주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혹시 맞고 다니거나 그런 건 아니죠?” 나는 그저 아이가 학교생활 잘 하느냐는 질문에 “착해서 친구들과 원만하게... 교실에서 하는 ‘똥 이야기’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똥 마려워요. 화장실 갔다 올게요.” 부끄러워 똥의 쌍디귿자도 꺼내지 못하던 아이들이 변했다. 〈마법사 똥맨〉을 읽은 이후부터였다. 올해부터 4학년에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교사 재량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독서 단원이 신설되었다. 우리 반은 책 속 주인공인 똥수와 귀남이에게 푹 빠져 3주를 보냈다. 아이들과 함께 고른 책으로 국어 수업을 하다니, 돌이켜보면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교육과정이 개정되기 전, 교과서로 수업하지 않는 날은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앞문도 뒷문도 꼭꼭 닫고 혹여 누가 들을까 ... 교사의 일상 흔드는 ‘스승’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저도 꿈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에요.” 스승의 날 한 제자가 곱게 접은 손편지를 내밀었다. 카네이션 생화와 선물은 모두 돌려보냈지만 커서 친절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편지까지 거절하지는 못했다. 형광펜과 색연필로 알록달록 꾸민 편지지에는 ‘가르쳐주셔서 고맙다’는 인사와 ‘자기도 남이 모르는 걸 알려줄 때 기쁘다’는 문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올해로 발령 10년차,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제자들을 만나면 대견함과 우려가 동시에 밀려온다. 그러나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열의를 지켜주고 싶었기에 늘 격려되는 말... 인성 교육도 이벤트가 되는 학교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학부모 총회와 상담 주간을 준비하며 학습 관련 자료를 잔뜩 쌓아두었다. 올해부터 ‘2015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니 학업에 신경 쓰는 학부모들이 많으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이가 즐겁게 생활했으면 좋겠어요. 친구 관계가 제일 걱정이에요.” 새로 바뀐 교과서를 잠시 옆으로 밀어두어야 했다. 특히 여학생 학부모들은 뉴스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학교 폭력 사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근래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 등 청소년 강력 범죄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이... “왜 교대 교육과정에 행정 업무는 빠져 있나”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제발 정보 업무만은 아니기를.’ 2018학년도 업무 배정 발표를 앞두고 간절히 기원했다. 담임을 주어도 좋고, 어떤 학년을 배정해도 좋으니 정보·전산 업무만 맡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다행히 올해는 수영부, 학생자치회, 록밴드 업무를 맡았다. 주말 수영대회 인솔 4회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아주 나쁘지는 않다. 업무 분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교사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교사들은 왜 이렇게 수업 문제도 아닌 것에 예민하게 구는 걸까? 앞서 예를 든 정보·전산 담당자의 학교 생활을 보면 답이 나온다. 명칭이 정보니까 최신 IT... “지금 영어 안 시켜도 괜찮나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요사이 생전 없었던 영어 교육 관련 질문을 몇 차례 받았다. 내게 질문이 날아오는 이유는 엉뚱하게도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 교육이 금지될 거라는 소식 때문이었다(1월16일 교육부는 어린이집 영어 교육 금지 정책을 전면 보류했다). “진짜 지금 영어 안 시켜도 괜찮아요? 초등학교는 어때요?” 초조한 목소리였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영어를 안 배워도 나중에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그렇게 하겠는데 도통 갈피를 못 잡겠다고 했다.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작년에 3학년 담임을 했고, 3학년부터 영어 수업이 시... 선생님 수능이 뭐예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지난 12월12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이 발표되었다. 대입 스트레스와 결별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수능을 떠올리면 왠지 주변 공기가 차갑게 느껴지고 긴장된다. 대학생이 되고, 졸업할 때까지 남들도 다 그런 줄 알고 살았다. 수능은 온 힘을 다해 준비해야만 하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라는 완고한 사고는 강릉에 첫 발령을 받고 나서야 깨지기 시작했다. 스물세 살 초임 교사는 다소 무리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생활 여건이 열악한 곳이니,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을 위해 내 모든 지식과 교양을 기필코 전수하고 말겠다는 과격한 의지가 있... “선생님요, 강원도로 오시래요!”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강원도에서 교사 할 만해?” 고향인 울산에 내려가면 지인들은 이 질문을 꼭 빼놓지 않았다. 울산도 지방이면서 삼척에서 일한다 하면 약간 망설이거나 걱정하는 투로 말했다. 본인은 괜찮다는데 자꾸 걱정하는 남들이 늘어나던 차에, 강원도교육청이 제작한 홍보 영상이 화제였다. “강원도 선생님은 너야 너, 너야 너. 아이들 가르칠 사람 너야 너.” 낯익은 얼굴들이 칼 같은 군무를 추며 예비 교사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제발 좀 강원도에서 임용고시를 쳐달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사람들. 교육청은 영상으로 모자랐는지 ‘강원도 선생님만 할 수 ... 준비물로 눈치 보지 않을 권리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목요일 미술 시간이었다. 교실 앞에는 4절 머메이드지와 색종이, 유성펜이 색상별로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미술 재료들을 필요한 만큼 가져갔다. 자, 붓, 물통 같은 기본 용품은 모둠 바구니에서 꺼내 썼다. 온갖 물건이 섞이고 부딪치며 자근자근 소음을 냈다. 자잘한 웅성거림 속에서 “찰캉!” 하는 금속성 마찰음이 귀를 때렸다. 안경을 쓴 아이가 색연필 보관함을 내려놓으며 실수로 낸 소리였다. 찌릿! 그 아이와 같은 모둠인 친구 두서넛이 따가운 눈총을 주었다. 그것도 잠시, 교실은 이내 만들기에 몰입하는 아이들... 자식 맡긴 부모의 처지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공개수업 참관 신청서 다 냈죠?” 학기마다 한 번씩 있는 공개수업을 앞두고 학부모 참관 신청서를 받았다.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스카우트 선서식, 체육관 청소, 어린이날 체육대회….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이었다. 달리 이야기하면 학교에는 늘 오는 학부모만 왔다. 공개수업 당일, 복도에는 수업 20분 전부터 기다린 엄마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부모의 존재를 확인한 아이들은 기세가 올랐다. 쉬는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와서 엄마가 근무 교대를 했다느니, 휴가를 썼다느니 하며 귀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