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다쳐도 보호받을 권리, 산재보험이 중요한 이유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한 중년 남성 노동자가 일하다 무릎을 살짝 부딪쳐 병원에 갔더니 연골이 파열되었다 하여 수술을 하고 나서 산재 신청을 했다. 불승인되었다. ‘업무상 사고로 인한 손상은 아니고 퇴행성 질환이다’라는 판단을 받고 나서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업무상 질병으로 다시 산재 신청을 했다. ‘무릎 부담 작업’이 인정되어 산재 승인이 되었다.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가 아니라고 해서 1년 동안 억울했던 마음은 조금 풀렸다.갓 스무 살이 된 여성 노동자가 손목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산재 신청을 했다. 일하던 식당에서 몇 달 동안 무거운 접시를 나르면 화학물질 노출 산재 인정, 영세기업에선 아직 먼 일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한 반도체 공장에서 11년 동안 일한 뒤 파킨슨병에 걸린 여성 노동자가 산재 불승인되었다가 이후 행정소송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받았다. 파킨슨병이란 신경이 퇴행해서 생기며, 노인에게 흔한 병이다. 영화 속에도 나온다. 신경과 의사 겸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회고록을 토대로 만든 〈사랑의 기적〉이라는 영화에서 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가 엘도파라는 약물로 치료를 받고 나서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완치란 없다. 진행을 늦추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망간에 노출된 용접 작업자에게 파킨슨병이 발생한다는 아파트 경비원의 한마디가 알려준 것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지난 4월19일 경비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국회 토론회에 사회를 보러 갔다. 토론회의 발제자와 지정 토론자 모두 이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이자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온 분들이었다. 발제자는 현재 근로계약서상 노동시간과 휴게 시간이 실질적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을 공들여 만든 많은 표로 보여줬다. 한 지정 토론자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으로 이제 주차·분리수거·청소 등의 업무를 근로계약에 포함하게 되면 감시단속 노동자로 구분되어 긴 세월 장시간 노동을 당연하게 수행했던 경비노동자들이 일반 노동자로 인정받아 노동시간은 태아 산재 인정받기 위해 아이와 엄마는 싸운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그분이 산재 상담을 예약했다고 들었을 때 긴장을 좀 했다. 선천기형 출생이 직업과 관련 있는지 상담을 하러 온다고 했다. 아이랑 함께 온다고 하는 것은 직업병 의사로서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그때 엄마는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그 시절 그 공정에서 일했던 사람은 벤젠을 포함한 23종의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면담 도중 아이를 데려온 이유를 들었다. “이렇게 성장한 게 너무 자랑스럽고 보여주고 싶었다.” 여러 차례 큰 수술을 받는 고통을 이겨내고 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아이는 옆 과로란 무엇인가 기준을 다시 세울 때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서른 몇 살의 어느 새벽,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죽을 것 같아서 하던 일을 멈추었다. 사나흘을 거의 못 잔 상태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어린아이 둘을 기르며 병원 일에 학업까지 병행하려 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논문을 완료하고 대학병원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시간에 쫓기기는 매한가지였다. 물에 젖은 솜 같은 몸으로 퇴근하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눈을 붙였다가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일상의 반복.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과로 관련 질환으로 몇 번인가 병원 신세를 졌다. 과로와 목숨값 싼 나라의 질문 ‘적자가 나지 않느냐’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겨울이 온다. 재작년 겨울, 한 청년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참혹하게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고 김용균은 사망 62일 만에 당·정·청이 사고 진상규명, 정규직 전환 등 후속 대책을 합의하면서 겨우 장례를 치렀다.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위원회가 출범했다. 그 위원회는 김용균씨의 사망 원인을 ‘위험의 외주화, 관리의 공백에 의한 위험의 증폭’으로 진단하고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22개 권고안을 제시했다. 김용균씨 1주기에 특조위 권고안이 발전소 현장에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읽었다. 해를 넘긴 여름 무렵 ‘특조위 보고서 지적장애인 노동자는 ‘힘들다’는 말을 않는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지난 월요일, 내가 일하는 부서가 이화건강검진센터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지역사회 노동자와 주민에 대한 국가건강검진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어 확장 이전 개소가 결정되었다. 국가건강검진이란, 건강검진기본법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제공하는 모든 국민이 받는 일반 건강검진과 국가 암검진을 말한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사업주가 제공하는 유해작업자에 대한 특수 건강진단도 시행되고 있다. 그 밖에 연구실 종사자,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들도 각각의 직종에 관련된 법에 따라 유해작업에 대한 특수 건강진단을 받는다. 건강검진센터 개소가 기쁜 이유 ‘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 야간근로에서 제외하라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전공의 시절, 임신을 했다. 낮에는 병원 일을 하고, 밤에는 세미나 발표 준비를 할 때면, 뱃속의 아기는 쉬지 않고 발길질을 해댔다. 만삭에 연구용 설문지 더미를 들고 5층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조마조마했다. 출산 2주째 산욕열로 입원 치료 중 지도교수한테 “다음 주에 출근하지?”라는 말을 듣고, 이를 악물고 출근했다. 그때는 출산휴가가 1개월이었으나 요즘 여성 전공의는 법적인 출산 휴가 3개월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몇 년이 지나 우연히 간호사 후배를 만났는데 임신을 해서 제법 배가 불러 있었다. 누구누구도 아기를 낳았는데 조산이 가장 흔한 직업병 피부질환의 산재 신청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초보 전문의 시절, 중소 규모 제조업체들에 대한 보건관리 위탁업무를 수행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로 하여금 보건관리자 선임 의무를 정해놓았는데, 자체 고용이 어려울 때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한 번은 작은 공장을 방문했는데, 생산과장의 바지에 무엇인가 묻어 있었다. 그는 “그때 피부병이 세척제 때문이라고 해서 청소 방법을 바꾸었더니 작업복은 좀 더러워지네요” 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 이전 방문 때 청년 노동자 여러 명의 손바닥에 접촉피부염이 발생했다. 과도한 세척제 사용이 문제로 판단되어 사용량을 줄이고 적 삼성반도체 백혈병은 끝나지 않았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10여 년 전 일이라 이젠 기억이 희미하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고 황유미 등 5명에 대한 역학조사 평가위원회에 시민단체 반올림의 공유정옥 활동가와 함께 피해자 측 추천 임시위원으로 참관한 적이 있다. 반도체 산업 공정은 베일에 싸여 있던 시절이라 외국의 학술 문헌, 피해자들의 수첩과 같은 자료들을 읽으면서 반도체 공정의 유해성을 검토했다.황유미의 수첩에 ‘첫 월급, 빨간 내복’이라고 적힌 글자를 읽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 평가위원회에서 산업안전보건공단의 부실한 조사 결과를 들으며 공공기관이 대기업의 작업환경을 제대로 조사하 ‘태움’보다 더 큰 문제는 병원의 ‘현실’이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나는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산재 신청을 대리하는 노무사로부터 그의 자살이 산재에 해당하는지 의견을 제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사건은 언론을 통해서 먼저 알았다.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 중 한 곳에서, 갓 입사한 스물다섯 살 간호사가 ‘태움’과 관련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였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생명과 관계된 일에 실수가 있으면 안 되기에 엄격한 교육훈련 과정에서 가르침과 괴롭힘이 함께 나타나게 된다. 자살은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 근골격계 질환 노동자의 멀고도 먼 ‘산재 요양’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며칠 전 어떤 분이 우리 과 외래로 근골격계 질환 산재 상담 전화예약을 했다. 근골격계 질환이란 우리 몸의 뼈, 근육, 연골 등의 질환으로 업무 때문에 발생하거나 악화되어 4일 이상 요양이 필요하면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 환자는 처음에 산재병원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자 했는데, 산재병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업무관련성 평가 특진 시범사업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연고지 인근 민간병원인 우리 과를 소개했다고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2년 전부터 건설일용직, 보건의료업, 휴폐업 사업장, 물류 상하차 작업, 조리 종사자 등 일부 업종·직종의 다시 ‘출장검진’을 시작한 이유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2016년, 한 청소업체 노동자들이 특수건강진단을 받으러 병원에 왔다. 특수건강진단은 사업주가 법이 정한 유해인자 노출 작업자에 대해 정기적으로 건강문제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제도이다. 한 수검자가 청소 일을 시작한 지 1년째인데 피부, 눈, 코, 목 자극 증상, 기침 등이 비행기 기내 청소작업 이후 발생했다고 했다. 특히 비행기 전체를 소독한 뒤 바로 들어가야 할 때, 밀폐된 곳에서 작업을 할 때 증상이 심해진다며 증상이 더 악화되면 퇴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후에 만난 수검자들도 작업환경에 대해 일관된 이야기를 했다. 검진 직업병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까닭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어느 날 밤늦게 대학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멀리 남쪽 바닷가에 사는, 한 대학병원의 내과 교수였다. “제 환자가 중피종인데, 조선소에서 일했대요. 산재 신청 안내를 해도 될까요?” 중환자 치료만 하는 것으로도 바쁠 텐데, 직업성 호흡기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환자의 직업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한다. 이번에는 “양식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천식이 포름알데히드 취급과 관련성이 있을 것인가, 산재 신청 안내를 해야 하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포름알데히드는 냄새를 맡는 등 호흡기로 흡입했을 때 작업자에게 천 소규모 사업장 안전 이제 좀 바꿔보자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몇 년 전 외래로 30대 중반 남성이 찾아왔다. 두 달 전 제조업체에 취직한 그는 작업할 때 트리클로로에틸렌이라는 세척제를 사용해왔는데 이후 두통이 심해져서 병원을 찾아왔다고 했다. 종업원 수 약 20인 규모의 회사로 작업환경측정도 하고 특수건강진단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왜 멀리 대학병원까지 찾아왔을까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원래 자신의 업무를 하던 사람은 이주노동자였는데 온몸의 피부가 벗겨지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어 찾아왔다고 했다. 트리클로로에틸렌은 발암물질이지만 세척력이 우수해 금속 표면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 암으로 세상을 떠난 두 노동자의 공통점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듣는 순간 가슴에서 무거운 것이 툭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작년 연말에 대장암 환자가 불쑥 직업병 상담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가 예약만 잡고 돌아갔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노무사와 함께 찾아온 50대 남자. 반도체 및 LCD 제조공정에서 사용한 폐세정제를 재활용하기 위해 정제하는 작업을 했다. 스무 명 남짓 일하는 작은 공장에서 15년 동안 일했다. 그가 제출한 각종 서류들을 검토해보니 약 9년은 교대근무를 했고, 공휴일과 주말에도 일했다. 12년간 연차 유급휴가는 하루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 ‘산재’에 시달리는 여성 감정 노동자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2014년 여름,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KTX 여승무원으로 8년간 근무하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1년간 휴직한 뒤 더 이상 휴직이 불가해 퇴사한 사람이었다. 산업재해(산재) 신청을 위해 상담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나는 이직을 해서 질병의 업무 관련성을 평가하는 업무까지 할 여력이 없었다. 예약을 받지 않고 있었지만, 외래로 방문하도록 했다. 우울증의 원인이 감정노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010년에 ‘감정노동에 의한 직업병’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쓴 뒤로 간간이 질문을 받을 일이 있었지만 산재보상 상담은 처음 심신 망가뜨리는 야간 교대 근무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질병이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 또는 악화되었는지 직업환경의학 의사의 의견을 구하러 오는 이들이 가끔 있다. 얼마 전에는 대규모 제조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대동맥 박리라는 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이 찾아왔다. 딸(유족)은 아버지의 사망과 관련해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가 불승인되고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었다. 그에게 아버지의 사망이 업무상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물었다. “교대근무 때문에 잠을 못 자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교대근무를 하신 뒤로, 특히 야간근무를 할 때는 하루에 2~3시간도 못 주무셨어요.” 기계관리 및 정비 전문가다운 전문가가 직업병 판정하라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직업병 판정은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위원회에서 한다. 필요한 경우 역학조사를 하기도 한다. 직업병이 불승인되면 재심사를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통해 다시 판단받을 기회가 있다. 이 과정에는 의사, 산업위생사, 법조인 등 여러 전문가가 참여한다.2009년, 뇌종양에 걸린 27세 여성이 산재 신청을 했다. 열아홉 살에 LCD 제조업체에 들어가 6년간 일하다가 무월경이 지속되어 퇴사했다. 그 여성은 납을 포함한 화학물질을 취급하면서 천 마스크와 얇은 비닐장갑을 끼고 작업하거나 맨손으로 만지기도 했고, 환기장치는 근처에 없었다고 했다. 이에 직업병은 가족의 삶까지 파괴한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2017년 11월, 우리 병원 산재업무 담당자가 신체감정 의뢰가 있다고 내게 연락을 했다. 신체감정이란 법원의 요청으로 사건 당사자의 건강 문제와 원인 등을 확인·규명하기 위해 촉탁기관이 환자를 직접 살펴보는 절차이다. 2015년, 한 전구공장 철거 작업 이후 발생한 수은중독으로 건설노동자 스무 명이 산재 신청을 했고, 그중 여섯 명이 사업주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수은중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모자 장수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미친 모자장수(Mad hatter)’라는 말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