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의학이 장애를 없앨 거라고?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코니 윌리스가 쓴 〈여왕마저도〉는 여성들의 생리가 사라진 미래를 그린다. 미래 여성들은 단결해서 생리로부터 해방을 쟁취했다. 암메네롤이라는 생리 억제 장치가 보편화된 근사한 사회다. 나는 대학생 때 페미니즘 스터디에서 이 소설을 소개하며 ‘기술은 여성을 해방할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사실 SF에는 여성의 재생산으로부터 해방을 그리는 소설이 꽤 많은 편인데, 일부러 이 단편을 다룬 이유는 〈여왕마저도〉의 암메네롤과 비슷한 기술이 현실에도 있어서였다. 바로 체내 장기 피임장치다. 임플라논, 미레나 등 체내 삽입형 피임장치는 피임 신체와 감각이 변형된 우리들의 질문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스물세 살의 가을 어느 날, 나는 포항에서 서울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장애 대학생 기업 채용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컨벤션 센터에 도착했을 때 설명회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홀 아래층에서 열리는 보조공학기기 박람회였다. 박람회를 둘러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신기하다거나 놀랍다는 감정이 아니라 ‘낯설다’는 감정이었다. 보조공학이라니, 그런 기계들이 있다고는 알았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휠체어용 차량, 특수 모니터와 특수 키보드, 의족과 의수, 점자 단말기를 지나 전시장의 구석진 곳으로 향하자 보청기를 투박하게, 쿨하지 않게 장애인으로 살기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처음 ‘연사’로서 초청받은 때는 2016년이었다. 재학 중이던 대학에서 TEDx 강연회가 열렸는데, 당시 대학원생인 나를 섭외하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왜 평범한 대학원생인 나를 초청했지?’ 의아함을 느꼈다. 강연회 주제를 듣고 의문이 풀렸다. 주제는 ‘Unlimited(한계를 넘어선)’였다. 기획자는 내가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대학 시절 다양한 학내외 활동을 해왔던 경험을 말해주기 원하는 것 같았다.당시 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역경을 극복한 경험’을 듣기를 원하는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실패한 사이보그’들이 활보하는 도시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내가 다닌 대학은 자연과학과 공학 단과대학만 있는 학교였다. 재학생 다수가 연구직을 고려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교양수업에서도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주제를 흔히 다뤘다. 로봇, 실험동물, 키메라, 인공지능, 그리고 무인 자동차와 지구환경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주로 ‘기술문명의 설계자로서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어떻게 사유하고 책임질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마주했다.그날 강의도 그랬다. 과학기술에 의해 탄생할 새로운 인간, ‘포스트휴먼’이 주제였다. 기계와 결합한 인간의 예시 자료로 인공 귀와 제3의 팔을 단 행위예 ‘엉터리 사이보그’로 살아가는 이야기 김초엽 (SF 작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요즘 다들 안경 많이 끼시잖아요? 보청기도 안경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속상해하실 필요 없어요.” 처음으로 보청기를 맞추러 간 날 청능사는 내게 말했다. 중학생 나이에 난청 진단을 받게 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말을 꺼냈는지는 몰라도, 보청기센터는 정말로 여느 안경점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었다. 청능사는 카탈로그를 펼쳐 보청기의 종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격을 듣고 충격받았다. 보청기는 안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비쌌는데, 복잡한 첨단기술이 적용된 초소형 기계이다 보니 별수 없어 보였다. 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