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게 ‘노브라’에 도전하는 여성들 양정민 (자유기고가) “1겹의 속옷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임현주 MBC 아나운서가 하루 동안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생활하는 ‘노브라 챌린지’를 마치면서 자신의 SNS에 남긴 소감이다.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1인치의 장벽(자막)’에 빗대, 브래지어 없는 하루가 자신에게는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음을 담은 글이었다.그의 도전은 2월13일 방송된 MBC 교양 프로그램 〈시리즈 M〉에서 이뤄진 실험의 일환이었다. ‘인간에게 브래지어가 꼭 필요할까?’라는 주제로 남성 셋은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2020년, ‘뛰는’ 여성 더 만날 수 있기를 양정민 (자유기고가) “체육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스포츠계 미투와 성폭력 문제 해결 등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 지난 12월20일 문화체육관광부 최윤희 제2차관이 첫 출근을 하며 밝힌 각오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외치며 2019년을 열었다면, 그 외침이 2020년에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임을 재확인하며 한 해를 마무리 지었다.최 차관 임명은 최초의 여성 선수 출신 차관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행정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차관직은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만큼 앞으 11년 전처럼 또 그냥 그렇게? 양정민 (자유기고가) 10개월 전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를 상습적인 성폭력 혐의로 고소했을 때 세상은 두 번 놀랐다. 우선 미성년 선수에 대한 폭행과 성폭력이 3년간 지속적으로, 그것도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이뤄졌다는 점이 던진 충격이 컸다. 이미 11년 전인 2008년 KBS 〈시사기획 쌈〉이 ‘스포츠 성폭력’ 문제를 보도하면서 여러 대책이 나오는 듯했지만, 아무 진전이 없었다는 점도 새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심 선수의 폭로 직후 국회는 이번에야말로 체육계 성폭력을 뿌리 뽑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지난 1월 이후 국민체육진흥법 ‘따옴표 저널리즘’의 폭력성 양정민 (자유기고가) 흰 화면 위에 검은 글자가 떠오른다. “그는 말했다(He said).” 그 뒤에 “그녀는 말했다(She said)”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같은 패턴이 지루하게 반복되다가 갑자기 끝없이 “그녀는 말했다”의 행렬이 화면을 뒤덮는다. 30초 남짓한 영상은 이렇게 끝난다. “진실은 힘이 있다. 진실은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2018년 1월, 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중간에 방송된 미국 〈뉴욕타임스〉 광고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혐의를 최초로 보도했다. 아르바이트생 98% “외모 품평을 들었다” 양정민 (자유기고가) “외모 평가 자체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연예인 설리가 7월12일 JTBC 〈악플의 밤〉에 출연해서 던진 말이다. 의아해하는 사회자를 향해 설리는 “칭찬도 계속 들으면 기분이 썩…. 평가잖아요”라며 외모에 대한 언급에 곧 “너는 이게 나아. 이렇게 해”라는 평가가 따라온다는 점을 지적했다. 늘 아름답고 순종적일 것을 요구받는 여자 연예인으로서 “칭찬이라도 평가이기 때문에 달갑지 않다”라고 말하는 데는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평범한 우리의 일상도 외모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텔레비전을 켜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성희롱 즐긴 이들이 선생님이 된다면 양정민 (자유기고가) 지난 3월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남자 대면식’ 행사에서 성희롱이 벌어졌다는 폭로가 있었다. 남학생만 모여 진행된 이 행사는, 재학생이 새내기 여학생들의 동의 없이 사진과 신상 정보를 모아 졸업생에게 건네고 외모 등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악습은 수년간 이어졌다. 사회 전반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폭로 직후 서울교대 김경성 총장은 “조사 결과에 따라 엄중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두 달여가 지난 5월10일, 가해 학생에 대한 징계 결과가 발표됐다. 국어교육과 16 혐오를 위한 혐오가 표현의 자유라고? 양정민 (자유기고가) “메갈×들 다 강간, 난 부처님과 갱뱅(gangbang·난교) (중략) 내 이름 언급하다간 니 가족들 다 칼빵.” 3월30일 래퍼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이 작업한 신곡 ‘머니 로드(Money road)’가 발표되자마자 SNS가 뜨겁게 달궈졌다. 이 노래는 19세 미만 청취 금지조차 되지 않은 채로 음원 사이트에 유통됐다. 비판이 거세지자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은 하루 만에 사과문을 올리고 가사를 수정하겠다고 약속했다.그동안 힙합 음악에서 여성혐오는 일종의 장르적 특성으로 널리 용인되어 왔다. 랩 하나로 ‘정상까지 왔다’라는 성공 신화를 3·1운동 100주년 여성 운동가의 자리 양정민 (자유기고가) 2월27일 개봉하는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이하 〈항거〉)는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서 2차 만세운동이 시작됐다’라는 기록에서 출발한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8호실에 수감된 여성들은 3·1운동 1주년을 맞은 1920년 3월1일을 기해 감옥에서 독립을 외친다. 영화에는 실제 유 열사의 이화학당 선배인 권애라 지사를 비롯해 여러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 〈항거〉는 유관순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은 여성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다. 2018년을 망친 성차별 발언 퍼레이드 양정민 (자유기고가) 서지현 검사를 표지 인물로 내세운 〈시사IN〉 송년호(제589호)를 마주한 순간, 독자가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가슴이 벅찼다. 정면을 응시한 서 검사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 눈빛에서 한 해 동안 내가 만난 수많은 여성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성차별과 성폭력을 끝장내자는 외침이 그 어느 해보다도 컸던 2018년은 서 검사를 비롯한 용기 있는 여성들의 눈빛으로 기억될 것이다. 서 검사의 사진을 보고 떠오른 또 한 사람이 있다. 도로시 카운츠는 195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위치한 해리 하딩 고등학교에 흑인 최초로 입학 [미쓰백]을 불러준 관객들의 외침 양정민 (자유기고가) “미쓰백이라고 불러.” 영화 〈미쓰백〉의 주인공 상아는 같은 동네에 사는 여자아이 지은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터인 세차장과 마사지 숍에서 그는 이름 대신 그저 ‘미쓰백’으로 불린다. 세상을 향해 가시를 바짝 세운 채 남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는 상아에게는 그런 호칭이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독 지은이 불러주는 ‘미쓰백’이란 이름은 마음에 쿡 박혀서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미쓰백 엄마는 어디에 있어요?” “미쓰백은 미쓰백이 싫어요?”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상아는 아동학대에 시달리는 지은에게서 어린 시절 자 ‘출산 해법’이 아니라 ‘염장지르기’ 양정민 (자유기고가) ‘명절증후군’은 몸에만 남는 것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 사이에서 화젯거리가 떨어지면 으레 나오는 ‘오지랖’은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다. “결혼을 왜 안 하느냐?” “결혼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아이가 없느냐?” “외동은 외로우니 둘째를 가져라” 따위 말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상대방이 겪었을 고민을 생각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던지는 속 편한 소리에 일일이 대꾸하느니 얼른 대화를 끝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든다.정부가 공식 SNS를 통해 공개한 ‘저출생 극복 프로젝트’ 광고를 보면서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광 40˚C 여름에 맞는 여성 인권의 한겨울 양정민 (자유기고가) 8월14일은 제1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최초로 공개 기자회견에서 피해 사실을 밝힌 이날은 그동안 시민단체 차원에서 기념해왔으나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외침은 국내외 연대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됐다. 그 덕분에 국내 피해자는 물론이고 네덜란드·중국·타이완·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의 피해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일본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 교수는 7월24일 〈아사히 신문〉 계열의 웹사이트 〈웹 론자(WEB RONZ 또 하나의 축구 국가대표팀 양정민 (자유기고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은 1승2패로 막을 내렸다. 16강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대회 우승팀인 독일을 잡으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축구 팬을 자처하는 몇몇에게는 그조차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입국장에서 선수단을 향해 날달걀과 쿠션을 던지는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졌다.조별 예선 기간에는 선수는 물론이고 가족의 SNS까지 악플로 뒤덮였다. 급기야 조현우 선수의 아내는 “아이가 나중에 글자를 알게 되면 상처가 될까 봐” SNS를 중단했다. 차범근 전 감독은 독일전을 앞두고 칼럼을 통해 “가족을 괴롭히고 ‘진짜 영웅’의 성난 외침 양정민 (자유기고가) 여성들의 성난 외침이 연일 서울 도심의 하늘을 가득 메웠다. 5월17일에는 강남역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서울 지하철 7호선 신논현역 인근에서 성차별·성폭력 반대 시위가 열렸다. 폭우 속에서도 1000명(이하 경찰 추산 인원)이 모여들었다. 이어 5월19일에는 불법 촬영 범죄에 경찰이 공정하고 엄격하게 수사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집회가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부근에서 개최됐다. 1만명이 넘게 참가해 규모 면에서 역대 여성 집회 기록을 새로 썼다. 다음 날인 5월20일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임신중절 합법화를 미투에 대한 농담이 가볍지 않은 이유 양정민 (자유기고가) 지난 1월 말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을 폭로한 지도 80여 일이 지났다. 석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예술·정치·종교계 인사의 추악한 면면이 드러났다. 이제는 대학과 중·고등학교까지 미투 운동이 퍼지고 있다. 지난 2009년 성상납을 강요한 인사들의 명단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고 장자연씨 사건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었던 수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겼다. 최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 대해 검찰에 사전조사를 권고했 연극무대 뒤안, 그 참을 수 없는 ‘야만’에 대하여 양정민 (자유기고가) 누군가가 공연을 보는 것이 왜 좋으냐고 물으면 나는 자주 “스포츠 경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라고 답했다. 일생에 단 한 번,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율이 있다. 배우와 스태프 사이에 느껴지는 끈끈한 팀워크도 감동을 준다.요즘에는 이 아름다운 광경이 어쩌면 허상은 아니었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다.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실력 기준으로 공정하게 선발된 ‘선수’들이 아니라면? 커튼콜에 함께 감동을 나누던 이들이 사실 동등한 팀원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내가 지불한 티켓 비용, 그리고 박수와 환호 중 일부가 착취를 주 17년차 배우, 81년생 정려원 양정민 (자유기고가) “(성범죄는) 감기처럼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가해자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성폭력·성범죄 관련법이 강화돼서 가해자가 처벌받고 피해자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범죄 피해자 중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들은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드라마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지난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마녀의 법정〉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배우 정려원의 소감이다. 이 드라마에서 정려원은 ‘여성·아동범죄전담부(가상의 검찰 부서) 일터가 사람다워야 사람답게 살지요 양정민 (자유기고가) “법으로 기업에서 의무교육하잖아요. 대부분 거기서 하는 내용이 ‘상대방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본다’…. 새로운 지식은 없어요. 사실 다 알고 있는 거거든요. 누구도 성희롱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단 말이에요. 잘못인 줄 모르고 하는 거지.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제일 좋은 성희롱 예방 교육은 성희롱하다가 X된 새끼들 인터뷰를 한 시간 동안 틀어주는 거예요. ‘내가 왜 성희롱을 해가지고 내 인생 조지고 회사에서 잘리고!’ (관객 박수) 겁을 먹잖아요. 어떻게 보면 공포가 가장 좋은 교육일 수 있으니까.”최근 SNS에서 화제가 됐던 코미디언 문소리는 오늘도 앞을 향해 달려나간다 양정민 (자유기고가) “여자는 열등하다”라는 국장급 고위 인사의 발언에 외교부가 진상 조사에 나섰다. “나 때는 여자들이 공부도 못해서 학교에 있지도 않았다”라는 그의 안일함 앞에서 “가장 무섭고 해결하기 어려운 권력은 몰라도 되는 권력”이라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문장이 떠올랐다. 수는 적을지언정 그 시절에도 분명 존재했을 영특한 여학생의 이야기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좌절당하거나 심지어 태어나지도 못한 이들의 이야기는 알 턱이 없을 그 권력 말이다.시대착오적 발언 같지만 아주 낯선 모습은 아니다. 회사에서 여직원의 임신·출산·육아로 업무 단톡방 성희롱에 공감해주는 자의 죄 양정민 (자유기고가) ‘A씨/성감대 많음, 키 172㎝, B씨/가슴 큼…. 이걸 풀하고(공유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다.’ 30대 남성 기자 4명이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동료 여성들을 품평하며 나눈 대화 내용이다. 이미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지만, 이번 가해자는 전부 현직 기자라는 데서 오는 충격이 남다르다. 성폭력 사건을 취재하고 때로는 피해자를 직접 만날 수도 있는 직업군조차 이 정도로 왜곡된 성의식과 인권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니.이번 사건을 비롯해 그동안의 단톡방 성희롱 사건을 종합해보면 행인은 물론 동급생·선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