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되는 약’이라고 공급을 중단하면…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환자분, 이 약은 단종되었어요.” “아니, 병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환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요?” “(차마 ‘돈이 안 돼서’라고 말할 수가 없어) 다른 계열의 약으로 처방해드릴게요.” “그 회사에서 뭐 받아먹는 거 아니에요? 됐어요.”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해 7월에는 폐경기 호르몬 보충제인 크리안이 판매 부진을 이유로 공급이 중단됐다. 먹는 호르몬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은, 바르는 호르몬제인 에스트레바겔과 에스젠 크림은 2015년 이후 생산이 중단되었다. 폐경 후 호르몬 보충요법이나 영아의 음순 유 여성이 생략된 여성의 성기 시술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여성 성기 성형의 역사를 보는 것은 여성 억압의 역사를 보는 것과 같다. 정조를 중요시하던 시대에는 처녀막 복원술이 유행이었고, 상대 남성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한 성적 능력으로 꼽히던 시대에는 질 축소술이 유행했다. 미용과 항노화가 각광받는 시대가 되면서 지금 시장은 모든 것이 뒤섞인 혼종들로 가득 차 있다. 소음순 축소술이 있는가 하면 대음순에 자신의 지방을 채워 넣는 확대술도 있다. 질과 음핵에 필러와 줄기세포를 주사하고, 성감을 높여준다면서 음핵의 포피를 도려내기도 한다.시술 광고는 다양한 성기 모양을 병리적 현상으로 묘사하 산부인과 산재 사례 없어도 너무 없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서울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 위원이 되어 활동한 지 2년 남짓이다. 질판위는 노동자에게 질병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업무상 질병(이하 산재)에 합당한지를 심의하는 기관이다. 6개 지역 질판위는 뇌혈관계·근골격계·내과계·정신건강을, 서울 판정위는 직업성 암·자살·산부인과·안과·이비인후과·피부과·비뇨기과 등을 심의한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와 관련 분야 전문의 등 위원 7명의 다수결로 결정되는 구조이다.산부인과 관련 산재는 전국에서 서울 질판위로만 모이는데, 2년 동안 심의를 한 건수가 10건도 되지 않는다. 한 해 산재 판정이 1 n번방 시대의 사랑 그리고 섹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과 성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신뢰와 사생활 보호라는 기본적인 인간성을 기대한 당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 인간성을 저버린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고, 유포하는 행위가 부끄러운 것이다. 맞서 싸우기로 한 당신의 용기는 박수받아야 하며, 목소리를 내기 어렵더라도 당신을 도우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이라도 기억하자.신고나 법적 절차는 진행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피해자인 당신에게 달려 있다. 도움을 청한다면 당신이 받을 수 있는 지지는 다음과 같다. 전문 상 여자와 남자 섹스와 젠더 모두 변한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돌이켜보면 의학 교육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정상’을 배운다. 포도당이 세포 내로 들어가서 에너지를 만드는 회로, 어떠한 기계장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섬세한 뼈와 근육의 구조, 하나의 세포로부터 모든 장기가 분화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로운지를 새긴 다음 ‘이상(異常)’을 배운다. 유전자의 결함으로 하나의 효소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인데 면역체계가 발달하지 못해 무균실에서 살아야 하는 선천성 이상, 발생 과정에서 분화를 멈춰 자궁이 두 개인 기형, 오래 써서 콜레스테롤이 혈관 벽에 침착되고 무릎 연골이 닳는 노 ‘처녀성’이라는 단어 언제나 없어질까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미국 래퍼 티아이는 열여덟 살 딸에게 매년 ‘처녀성 검사(virginity test)’를 시킨다고 한다. 그가 팟캐스트에 출연해 한 말에 따르면 딸은 열여섯 살부터 산부인과에서 질주름이 손상되지 않았는지 의사에게 확인을 받는다. “딸이 성인이기 때문에 검사 결과를 아버지에게 알려주려면 동의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듣고서는 딸에게 동의를 종용했다.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방송에서 떠벌렸다. 방송 직후 여성단체는 물론 의료인들로부터 문제 제기가 쏟아졌고, 뉴욕 주의회는 처녀성 검사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이 에피소드는 어느 사회가 아프니 의사도 아프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쉬기로 결정했다. 잔병치레가 늘더니 급기야 대상포진을 진단받고 나서야 이게 ‘알람’이구나 싶었다. 직장과 활동가 동료들에게 ‘번아웃’을 선언하고 퇴직과 휴식을 준비 중이다.번아웃이라는 단어는 일터에서 에너지를 과도하게 요구받는 상황에서 불만·피로가 누적되고 좌절감·냉소에 빠지며 효율성이 저하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어떻게 노동조건을 개선할지, 어떻게 하면 노동자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노동을 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의료계에서도 의료인의 직무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진이 공중보건의 중요한 이슈이다. 고 박선 산부인과에 가는 걸 두려워 마세요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여름 감기 끝에 왼쪽 귀가 먹먹해지더니 소리가 잘 안 들리기 시작했다.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 간단한 문진을 마쳤다. 기구를 준비하는 의사를 보며 ‘귀를 들여다보겠구나’ 생각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한 손이 내 턱을 잡더니 다른 손으로 쥔 내시경이 내 콧구멍 속으로 쑥 들어왔다. 순간 펄쩍 뛰어오르고 싶었지만 온몸이 얼어붙고 힘이 들어가 의사가 더 기구를 집어넣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자, 힘 좀 빼볼게요. 옳지 잘한다, 착하다.”내 코 안에 금속을 집어넣고 있는 사람에게 차마 아무 말도 못하고 결국 마취와 재검까지 받는 동안 HPV는 여성만의 질환이 아니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사랑하니까 나도 맞을게”라고 말하는 남자 대학생을 등장시킨 HPV(Human Papilloma Virus·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 광고가 등장했다. ‘나를 지키자’는 메시지보다 ‘나, 이런 남자야’를 어필하는 초남성 자아를 더 중요시하는 광고라니, 고마워하기라도 해야 할까? HPV는 현재까지 200종 이상이 발견되었고 이 중 40여 종이 인간의 생식기 및 구강 점막과 피부에 감염될 수 있다. HPV는 아주 흔한데, 성 접촉이 있었던 모든 인구의 80%가 일생 한 번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상당히 훌륭 성소수자들의 ‘부모 되기’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퀴어 퍼레이드(퀴퍼)가 20돌을 맞았다. 혐오 세력의 확성기 공격을 뚫고 경찰 벽을 넘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무지개 깃발들을 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 책상 위에는 세 아이가 자라고 있다. 조카, 후원하는 에티오피아 소녀, 그리고 김민호씨(가명) 부부의 아이다. 민호씨는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호르몬 치료와 성기 절제 수술, 주민등록상 성별 정정까지 완료했다.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혼인신고까지 해 법적으로도 당당한 부부가 되었다. 두 사람은 2세를 고민하던 중 나를 찾아왔다. 민호... 낙태죄 위헌, 의료인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한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선생님께서 낙태 찬성 쪽이라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저는 낙태 찬성자가 아니라 ‘낙태죄’ 폐지 찬성자입니다.” 이 기자는 낙태 반대 쪽은 여성들을 설득해서 출산을 유도하고, 낙태 찬성 쪽은 여성들을 설득해서 낙태를 유도하는 식의 그림을 상상한 걸까.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해오면서 내가 제일 많이 한 말도 이 연장선에 있다. 우리는 지금 임신중지에 대한 신념과 가치체계가 아니라,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할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4월11일 이후 의료인들은 가까스로 그다음 단계 ‘그날’이 되면 여성이 이상하다고?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레지던트 시절 과장님은 수술실에서 굉장히 예민했다. 나도 집도의가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동료들끼리 뒷담화하는 게 낙이었다. “그날이신가 봐.” “요즘엔 더 심하신 듯, 폐경기인가.” 몇 년 뒤, 생리 강의를 준비하다가 불현듯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깨달았다. 나는 과장님을 ‘비이성적이고 불건강하고 변덕스러운 생리하는 여성’으로 치부하며 깎아내렸음은 물론이고, 생리하는 모든 여성들을 싸잡아 평가 절하해왔다는 것을. 생리주기는 호르몬의 주기적인 변화로 인해 생긴다. 난포기(생리부터 배란 직전까지)에는 에스트로겐이... 성 판매 여성 위한 의료 서비스 확대해야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적발된 성 판매자가 위계·위력에 의해 착취를 당했거나 청소년인 경우는 ‘피해자’로서 보호처분을 받는다. ‘자발적’ 성 판매자와 성 구매자는 처벌을 받는데, 이 중에서 초범에게는 보호처분이 내려진다. 성 구매자에게는 계도를, 성 판매자에게는 자립과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여기에는 사회봉사와 수강명령이 뒤따른다. 2018년 마지막 진료실 밖 강의는, 성 판매 여성들이 수강명령을 받고 들어야 하는 40시간짜리 보호관찰소 교육 중 3시간이었다. 교육은 직업관·자존감 회복·인권·재무관리... 피임에 1달러를 투자하면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미레나나 임플라논 같은 피임 시술은 생리통과 생리량이 줄어드는 부가적인 장점이 있다. 그래서 선근증이나 자궁내막증 같은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쓰였지만, 질환이 아니더라도 생리를 회피할 목적으로 시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 한 언론과 인터뷰하며 이 내용을 설명했다. 생리대 파동과 낙태죄 폐지운동 이후 생리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높아졌고, 피임 관련 인식과 실천이 확산되어 고무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촬영이 끝나자 PD는 이렇게 말했다. “이 주제로 몇몇 산부인과의 자문을 받았는데 ‘생리통이나 피임을 위해서라면 몰라도, ... 통증을 주셨다면 진통제도 주셨음을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출산은 생물학적으로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당연시된 의료화 과정에서 여성의 경험과 감정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앨리슨 M. 핍스는 〈The Politics of the Body〉에서 의료화 과정과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교차시켜 설명한다. 제1물결 페미니스트들은 출산과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남성 중심적인 생의학에 맞서 출산 시 통증 조절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제2물결 페미니즘은 의료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라마즈나 르부아예 분만, 수중분만 같은 자연주의 분만에 주목한다. 탈의료화가 의... 임신 전 관리가 못마땅하다고?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서울교통공사에서 내가 일하는 병원과 제휴를 맺어 의료 정보를 소개하는 게시판을 지하철역사에 운영하고 있다. 산부인과 차례가 와서 주제를 고심하다가 임신 전 남성에게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를 정리했다. 나름 참신하고 시의적절한 작업이라고 뿌듯해하고 있는데, 공사에서 내용을 변경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지하철은 불특정 다수의 승객이 이용하는 만큼 보수적이거나 교육적인 면을 강조하는 승객들이 있으며, 민원 제기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남성이 임신 전 관리가 왜 필요하냐’라며 일선 직원들을 못살게 굴 사람들을 떠올려보... 임신 중지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다큐멘터리 〈파도 위의 여성들〉과 웹사이트 위민온웹(Women on Web)으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가 7월5~7일 방한했다. 때마침 유산 유도약 도입에 관한 국회 토론회와 낙태죄 폐지 집회까지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임신 중단권’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충분치 않다. 지금껏 사회적 논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약물(인공) 유산이란 약제를 투여해서 유산을 유도하는 방법을 뜻한다. 임신 유지를 위해서는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필요한데, 미페프리스톤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프로게스테론을 억제하여 임신을... 보건복지부의 ‘의견 없음’이 부끄럽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낙태죄’에 관한 위헌 소송이 진행 중이다. 2012년 헌법재판소(헌재)에서 4대 4로 합헌 결정이 난 지 6년 만이다. 지난 5월24일 공개변론을 앞두고 헌재는 관련 부처에 의견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법무부가 낸 의견서는 이미 공분을 사고 있기에 언급하지 않겠다. 주목할 것은 보건복지부의 ‘의견 없음’이다. 보건복지부는 인공임신중절의 허용 사유 등을 규정한 모자보건법의 주무 부처다. 시술을 담당하고 있는 병·의원을 관리 감독하기도 한다. 그간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살펴보자. 2009년 전재희 전 장관은 저출산 타개책으로 “... 어떤 여자들은 자기 병명을 아는데 12년이 걸린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세리나 윌리엄스. 현역 여성 테니스 선수들 중 가장 많은 그랜드슬램 달성, 전 세계 여성 스포츠 선수들 중 최다 상금 기록 보유, (출산 직전까지인) 36세 나이에도 세계 랭킹 1위. 말 그대로 비교 불가 ‘톱’이다. 지난해 9월 딸 올림피아를 출산했다. 당시 죽을 뻔한 이야기가 잡지 인터뷰를 통해 크게 화제가 되었다. 제왕절개로 출산한 다음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을 느꼈다. 윌리엄스는 2011년 다리 수술 후 혈전으로 인한 폐 색전증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이게 무슨 증상인지 바로 알았다. 혈전색전증은 혈액이 끈끈해... 치유의 시작, 말하기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만약 당신이 성폭력을 당하게 된다면, 사건을 가능한 한 상세히 정리하고 문서로 남기라.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희미해져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구체적으로 기술해두면 일관된 진술에 큰 도움이 된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하면 기록이 자동으로 남는다. 어떤 방식으로 치유해 나갈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다. 피해 경험을 떠올리거나 가해자와 맞닥뜨리는 게 너무 힘들다면, ‘정의 구현’보다는 안정이 우선이다. 나로 인해 주변인들이 힘들어질까 봐 걱정하지 말자. 그들도 전문가는 아니며,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