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우생학, 그리고 인민 엄기호 (문화 연구자) 사람들이 ‘앞으로 뭘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게 좋으냐’고 물으면 ‘장애학’을 공부하라고 추천한다. 심지어, ‘앞으로는 장애학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답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점점 더 장애‘학’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먼저 ‘장애’학이 아니라 장애‘학’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장애’학이라고 하면 ‘장애에 대한 학문’이란 의미다. 장애의 역사와 현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정책 등을 아우르는, 학문의 한 분야다. 이에 비해 장애‘학’은 ‘학문 일반의 성격’ 시민적 무관심, 시민으로서의 관심 엄기호 (문화 연구자) 관심은 참 미묘하다. 지나친 관심도 문제고, 관심이 아예 없어도 문제다. 사람들은 늘 묻곤 한다. 관심의 선이 어디냐고. 선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주는 피곤함으로 관심을 끊고 사는 게 상책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혼술, 혼밥에 이어 일도 혼자 하는 게 대세다. 혼자면 외롭다고 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외로움이 인간의 실존이라는 생각도 한다. 게다가 혼자이면서도 고립되지 않는 연결도 가능하다.사람들은 ‘선’의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선이 아니라 공간이 문제다. 어떤 공간이냐에 따라 관심이 폭력일 수 있고, 무관심이 폭력일 ‘생존’이 아닌 ‘삶’이어야 한다 엄기호 (문화 연구자) “조선소에서 돈 모아서 유럽 여행도 갔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피렌체예요. 두오모 성당이 되게 유명하거든요. 노을 질 때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다 주황색이에요. 성당 위에 올라가서 노을 질 때까지 기다렸어요. 하늘도 주황색, 지붕들도 주황색, 정말 아름다웠어요. 원래 이틀만 있으려고 했는데 일주일을 있었어요. 매일 저녁 올라가서 노을을 봤어요. 지금도 눈 감으면 그 장면이 기억이 나요. 그리워요(〈나, 조선소 노동자〉).”최근 글을 읽고 쓴다는 사람에게 가장 충격적이며 감동적인 글은 11월21일 〈경향신문〉 1면이었다. ‘오늘도 용서할 자격, 용서받을 자격 엄기호 (문화 연구자) 용서는 하되 잘못은 잊지 말자고 말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상에서 용서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내가 속한 집단 전체를 향한 범죄이거나 살육일 때 더 그렇다. 개인적으로 내가 용서하고 싶다고 해도 내가 무슨 자격으로 용서를 하고, 그는 무슨 자격으로 용서를 받을 것인가.유대인 수용소의 생존자이자 나치 전범 1100여 명을 추적해 심판대에 세운, ‘나치 헌터’로 유명한 시몬 비젠탈이 세계에 던진 질문이다. 그는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유럽의 여느 유대인들처럼 강 사다리인가, 미끄럼틀인가 엄기호 (문화 연구자) 곧 발간될 〈특권〉이라는 책에 추천사를 썼다. 이 책에 ‘과거의 특권계층은 세상을 피라미드로 인식했다면 현재의 특권층은 사다리로 인식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세상을 사다리로 인식하면 위계의 의미는 달라진다. 피라미드에서 위계가 불평등을 의미했다면 사다리에서 위계는 기회다. 세상이 위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개인이 재능과 노력을 통해 그 사다리에 오를 수 있기에 나쁘지 않다. 능력주의를 정당화하고 작동시키는 방법이다.이 내용이 흥미로워 경희대 교육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자고 제안했다 헌혈은 어떻게 사회를 결속시키나 엄기호 (문화 연구자)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느낌에 뿌듯함이 있다. 뿌듯함을 느낄 때 사람은 자기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뿌듯함을 느끼는 여러 방법이 있다. 못할 것을 해냈을 때 뿌듯함이 든다. 성취를 넘어 자기 평가가 상승한다.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질 때 오는 뿌듯함이다.뿌듯함을 느끼는 또 다른 방법은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했을 때다. 언덕길에 리어카를 끌고 올라가는 노인을 도와주었을 때나 곤란한 일을 당한 사람을 기꺼이 도와줬을 때 사람은 뿌듯함을 느낀다. 이 뿌듯함은 성취로부터 오지 않는다. 누군가를 위해 기여하고 참여해서 드는 권력, 책임으로부터 도망가다 엄기호 (문화 연구자) 위험이 만성화되고 일상화된 사회에서 권력은 위험을 얼마나 피할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권력은 재난으로부터의 거리다. 홍수가 나면 만성적으로 침수되는 곳에 사는 사람과 그 홍수를 텔레비전으로 보며 “걱정이야” 하고 읊조리는 사람의 차이가 바로 재난 시대에는 권력의 차이다. 물론 가끔 이런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닥치기 때문에 지금이 진정으로 재난의 시대이지만 말이다.〈나, 조선소 노동자〉는 2017년 5월1일 노동절, 경남 거제에 있는 삼성중공업에서 벌어진 사고 생존자들의 증언집이다. 밀양에서부터 공정을 넘어 ‘공공’으로 엄기호 (문화 연구자) 이른바 ‘조국 사태’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기에 나경원 의원의 아들 문제까지 겹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기득권층의 특권의식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며 실망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교육과 입시 문제이기에 반감이 더욱 크다. 교육과 입시는 계층 이동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다.‘고등학생이 무슨 논문이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고등학생도 우수한 논문을 쓸 수 있다. 우수한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잘 갖추어진 실험실과 그 실험을 함께 수행할 우수한 ‘동료’가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실험 두 교사가 일으킨 ‘교육 혁명’ 엄기호 (문화 연구자) 〈독서 동아리 100개면 학교가 바뀐다〉(학교도서관저널 펴냄)는 홍천여고 서현숙·허보영 교사가 독서토론 교육을 이끈 3년을 기록한 책이다. 책 부제(함께 읽고 토론한 홍천여고 3년의 기록)에 ‘기록’이라고 적혀 있지만 연대기적 서술은 아니다. 두 교사가 제안하는 방식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매뉴얼’ 형태로 기술됐다. 중간 중간에 두 교사의 조언도 실려 있다. 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 교육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교육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두 교사가 한 일은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교사 ‘존엄한 삶’을 살고 싶다면… 엄기호 (문화 연구자) 오래 사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건강하지도 않고, 몸과 마음을 챙기지 못하면서 연명하는 게 무슨 삶이냐고 묻는다. 비참하게 목숨을 유지하기보다 스스로 결정해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존엄한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존엄에 대한 관심이다. 사는 것답게 살다 죽는 게 존엄한 죽음이다. 사는 것답게 산다는 의미는 바로 생명다움이다. 생기가 없는 삶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생명의 생기를 볼 줄 알고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 존엄이라고 할 수 일본 ‘리버럴’의 책임을 묻다 엄기호 (문화 연구자) 자이니치로서 비판적 지식인인 서경식은 오래전부터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일본의 저항 세력인 ‘리버럴’의 책임을 끈질기게 질문하던 사람이다. 그는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인 다카하시 데쓰야와 나눈 대담을 묶은 책 〈책임에 대하여〉에서 일본이 왜 이렇게 극우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리버럴의 책임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묻고 있다.먼저 이 두 사람은 일본이 일종의 ‘도금(鍍金)’된 상태였다고 진단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일본 사회는 전쟁을 낳은 근본 원인을 돌아보고 철저히 발본색원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이런 불철저한 반 읽기와 보기, 한국의 세대 갈등 엄기호 (문화 연구자)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만나면 묻곤 한다. ‘학생들의 읽기가 어떤 것 같으냐.’ 읽기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읽는 방식이 달라지고, 읽고 파악하는 것이 달라진 듯한 양태를 오랫동안 관찰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제였다. 무엇보다 책을 빨리 읽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건성으로 읽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물어보면 신기할 정도로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전 사람들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도 많다. 반면 맥락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물 계급 격차 확대하는 학교 엄기호 (문화 연구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직전에 출판된 로버트 D. 퍼트넘의 〈우리 아이들〉은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이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교육과 양육의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 공공정책 분야 교수인 저자는 1950년대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빈부의 양극화가 어떤 양상으로 교육과 양육에 반영되어 소위 ‘아메리칸드림’을 파괴하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드러낸다.단적으로 말해 195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에는 ‘사회적 혼합’이 존재했다. 그때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고 부유한 사람은 부유했지만 두 계급이 완전히 분 공동체는 사회를 구원하는가 엄기호 (문화 연구자) 〈단속사회〉를 내고 나서 사람들은 종종 나를 ‘곁의 인문학자·사회학자’라고 소개한다. 상찬 같아서 감사하지만 그 자리에서 늘 우려를 전하곤 했다. 곁은 곁일 뿐 사회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곁으로 사회의 문제를 대체하거나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시도를 위험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제인스빌 이야기〉는 공장이 문을 닫고 난 다음 지역사회가 서로의 곁을 지키고 만들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제인스빌은 자동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M)의 미국 최대 공장이 있던 곳이다. 금융위기 이후에 GM은 미국 내 많은 공장의 문 “내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마라” 엄기호 (문화 연구자) 영화 〈기생충〉이 개봉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계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반지하의 끔찍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바퀴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여름이면 벽지에 눅눅하게 피어오르던 곰팡이 냄새를 다시 맡는 듯 끔찍해한다. 어떤 이는 영화를 보는 내내, 또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지 킁킁거리며 맡는다. 가난이 어떻게 삶을 파괴하고, 존엄이 파괴된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복수를 하는지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지구적 이야기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경제적 양극화와 가난한 이들의... 막말 대잔치에 환호하는 당신 엄기호 (문화 연구자) 막말이 문제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달창’이라는 말을 썼다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모르고 한 말이라고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쓸 수가 있는 말이 아니었다. 정치인이라면 말 하나하나도 가려서 써야 하는 법이다. 집회에서 좀 ‘흥분’했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하면 정치인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당연히 나오게 된다. 막말만 문제가 아니다. 같은 당의 황교안 대표는 “군과 정부의 입장은 달라야 한다”라고 말을 해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항명을 부추기는 말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뿐만 아니다. 황교안 대표... 데이터가 이야기를 압도하는 시대 엄기호 (문화 연구자)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낫겠지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결국 병원에 갔다.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고 지인이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2차 병원이라 그 친구 ‘실적’도 올려줄 겸 해서 방문했다. 의사는 어떻게 아픈지 물어본 뒤 침상에 누우라고 한 다음 이것저것 해보라고 했다. 손으로 여기저기를 만져보기도 하고 눌러보기도 했다. 엑스레이도 보면서 약간의 척추측만증과 디스크가 있고 협착도 의심된다고 했다. 협착은 엑스레이로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단계에... 서지현, ‘노바디’로 말하다 엄기호 (문화 연구자) 서지현 검사가 지난 1월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한국 지배 엘리트들의 ‘주류 의식’에 대한 중요한 문서로 여겨져야 한다. 이들이 누구를 비주류로 여기며 자신들을 구분하고 있는지, 또한 비주류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은 어떻게 정당화되고 있는지를 이 문서는 짧지만 강력하게 드러내주었다. 한 줄 한 줄 의미심장하게 읽어야 한다. 한국의 주류에 대해서 두꺼운 읽기가 가능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서지현 검사가 문제 제기하는 법조 분야에서는 김두식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과 최근에 나온 〈법률가들〉이 독보적이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