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함으로써 잊어버리는 것들, 두 개의 〈너의 이름은〉을 보며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영화 〈너의 이름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여기 일본 청소년 두 명이 있다. 17세 소녀 ‘미츠하’는 깊은 산골 이토모리에 사는 신관 집안의 무녀다. 다음 생에는 산골 말고 화려한 도쿄의 남자로 살고 싶다. 또 다른 소년 ‘타키’는 바로 그 도쿄에서 고교 시절을 만끽 중이다. 어느 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둘의 몸이 바뀐 것이다. 불규칙하게, 자는 동안 몸이 바뀐다. 처음에는 실수를 연발하다가 상황을 깨닫는다. 서로의 생활을 위해 규칙들을 정하고, 몸이 바뀐 날 생긴 일을 스마트폰에 남겨 준다. 이 이상한 현상을 극복 〈로봇 드림〉, 내 옆에 없는 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비장의 무비]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외로웠다. 밥을 먹어도 외로웠고 TV를 봐도 외로웠고 게임을 해도 외로웠다. 하품은 전염된다는데 덩달아 하품하는 친구가 곁에 없는 것도 참 외로웠다. 소파에 혼자 앉은 자기 모습이 텅 빈 화면에 반사되는 게 싫어서 얼른 다시 TV를 켰다. “외로우신가요?” 자막과 함께 나오는 반려로봇 광고. 바로 주문. 택배 도착.즐거웠다. 같이 밥을 먹어서 즐겁고 TV를 혼자 보지 않아서 즐겁고 2인용 게임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즐거운 추억을 더 쌓고 싶어 바다에 갔다. 물놀이가 끝난 뒤 나란히 해변에 누워 기분 좋게 낮잠도 잤다. 집에 가 ‘똥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방법 [비장의 무비]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1858년 늦여름.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 두 남자. 폐지를 한 바구니 안고 선 청년 추지(간 이치로)에게 야스케(이케마쓰 소스케)가 깐족댄다. “그거 팔면 얼마나 쳐줘? 얼마 벌지도 못하겠네.” 약이 올라 되묻는 추지. “그러는 넌. 그거 팔면 얼마나 받는데?” “종이 따위론 돈이 안 되는구나?” 씨익 웃으며 넌지시 속을 떠보는 야스케. “내 동료가 그만뒀는데 말이지….”이어지는 장면. 한적한 시골 오솔길. 야스케가 끄는 수레를 추지가 밀고 있다. 폐지 장수 그만두고 야스케의 동료가 되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잔뜩 얼굴을 찌푸린다 ‘세계관’이라는 두꺼운 겉옷을 벗어던진 케이팝 [K콘텐츠의 순간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요즘 케이팝을 이야기하며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면, 아마 십중팔구 ‘세계관’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2024년 케이팝에는 그동안 케이팝의 핵심이자 원천기술, 필수 불가결한 요소처럼 여겨지던 세계관이 사라졌다. 올해 상반기 차트에서 인기를 끈 케이팝 면면을 보자. 지난해 연말 분위기를 타고 차트를 거슬러 오른 르세라핌의 ‘퍼펙트 나이트(Perfect Night)’는 이들의 첫 영어 싱글이자, 복잡한 메시지를 내세우지 않은 편안한 팝 넘버였다. 지난 1월5일 발매된 신인 보이 그룹 라이즈(RIIZE)의 ‘러브 119 ‘높이’ 대신 ‘멀리’, 청춘의 비행 [비장의 무비]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1)의 마지막 장면. 평생 자신을 뒷바라지한 아버지 앞에서 빌리가 힘껏 날아오른다. 한 마리 새처럼 멋진 자세로 하늘 높이 솟구친다. 그 아름다운 비상의 순간에 영화가 멈추고 우리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자, 조금 고약한 상상을 더해 다음 이야기를 써보자. ‘그 아름다운 비상의 순간’ 뒤에 곧바로 최악의 순간을 맞이한다면? 착지할 때 발목을 접질리며 쓰러져 공연을 망쳐버렸다면? 적어도 2년 동안 무대에 서지 못할 심각한 부상 때문에 무용수의 전성기를 하릴없이 흘려보내야 한다면?영화 〈라이즈〉의 주인공 엘 우리는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포토IN] 이명익 기자 “여기 구미공장은 LG에, 평택공장은 삼성에 납품을 합니다. 구미공장에서 화재가 난 뒤 여기서 납품해야 할 물량을 평택에서 납품하려고 저희 조합원들이 올라가서 스펙 정합(LG의 납품 기준에 맞추는 작업)도 하곤 했어요. 그렇게 일을 해왔는데, 고용승계는 안 된다고 합니다. 다른 법인이라고···.”전화 통화를 하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38)은 ‘다른 법인’이라고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LCD 편광필름을 생산하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엔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 공장들이 멈춰 서면서 시사IN 제854호 - 총선 앞 선심? 차형석 편집국장 편집국장의 편지REVIEW IN 독자 리뷰 퀴즈 말말말 기자들의 시선/이종태 기자 기자들의 시선/나경희 기자 포토IN/우리는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 아닙니다COVER STORY IN재건축은 어쩌다 총선용 선심이 되었나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가 담긴 1·10 대책은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는다.정책이 실현될 가능성도, 정책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주식시장에 등장한 ‘윤석열식 낙수효과’?ISSUE IN 제3지대 신당이 처한 딜레마 “절실함 나눌 정당 아직, 여전히 필요하다” 친중과 친미 넘어 타이완이 선택한 〈경성크리처〉에 부족한 2%는 뭘까 [K콘텐츠의 순간들] 김선영 (칼럼니스트) 1945년 3월, 추운 계절의 끝자락에 서 있던 조선은 그 어느 때보다 술렁였다. 동경대공습 이후 패망의 그늘이 짙어진 일제의 만행은 더 극악해졌으나, 변화를 예감한 이들은 만개할 봄을 기다렸다. 그 시기 경성은 ‘부녀자 연쇄 실종 사건’으로 유달리 더 들썩였다. ‘경성 제일의 정보통’이라 불리는 금옥당 대주 장태상(박서준)은 경무국 이시카와(김도현)의 강제 명령으로, 실종된 기생 명자(지우)를 찾아 나선다. 때마침 금옥당에는 10년째 행방불명인 모친을 찾고 있는 윤채옥(한소희)이 나타나고, 태상과 채옥은 실종 사건의 모든 단서가 무례한 시대, 스타도 팬도 함께 울었다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1939년 6월23일, 경기도 인천부 경정 203번지에 사는 소학교 5학년생 유윤순(15)이 돌연 집을 나선 후 종적을 감췄다. 끝내 딸을 찾지 못한 어머니 한씨가 경찰에 수색원을 냈다. 배우를 동경하던 딸이 기어코 배우가 되려고 가출했다며 하소연이다(〈매일신보〉 1939년 7월12일, ‘꿈 많던 처녀시대, 배우를 동경코 가출’).” 윤순은 어쩌다 배우를 꿈꾸게 됐을까? 기사에는 단서가 없다.주소를 보다가 혹시나 싶어 검색을 해본다. 극장 ‘애관’이 인천부 경정 238번지에 있었으니 윤순의 집과 지척이다. 애관이 어떤 곳인가? 1 겨울날 젊은 작가들의 희곡을 읽다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28년 전에 읽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드러눕는 개〉가 〈엎드리는 개〉(안온북스, 2023)라는 제목으로 새로 번역되었다. 1954년 열여덟의 나이로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한 사강은 이 한 작품으로 단번에 한 시대의 문학 영웅이 되었다. 비평가들은 ‘사강의 세계’ 또는 ‘사강스럽다’를 뜻하는 ‘Univers Saganesque’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사강이 고작 20대 중반일 때 두 권이나 되는 전기가 나왔다. 사강의 남자친구 베르나르 프랑크는 마리 도미니크 르비에브르의 〈사강 탐구하기〉(소담출판사, 2012)에서 “전쟁 이후 프랑 정부의 퇴행 속에서도 등불처럼 빛난 올해의 책들 [2023 행복한 책꽂이] 김영화 기자 “출판부터 결과까지 그 모든 과정이 출판계에 던진 하나의 문제 같다.” 〈세이노의 가르침〉을 올해의 책으로 뽑은 한 응답자의 답변이다. 최근 몇 년간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 목록 가운데 자기계발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이노의 가르침〉이 그 기록을 깼다. 1955년생 1000억원대 자산가가 자수성가하면서 경험한 바를 담은 자기계발서로, 2000년부터 세이노(SayNo, 현재까지 믿어온 것들에 대해 ‘노’라고 말하라는 의미)라는 필명으로 써왔던 글을 엮은 것이다. 출간 9개월 만에 75만 부를 돌파하며 교보문고·예스24 등에서 올 ‘장태완 수기’ 특종한 정희상 기자의 12·12 쿠데타 30년 취재기 [금요시사회] 장일호 기자·최한솔 PD 영화 〈서울의 봄〉의 마지막은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수경사령관)이 보안사 서빙고실에서 조사받는 장면입니다. 실제로 그날 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12월13일 새벽 4시30분 쿠데타군에게 체포되어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되었습니다.전두환·노태우 등 반란군들이 샴페인을 터트릴 때 장태완은 보안사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를 받던 장태완은 실패한 진압 작전이었지만 잊기 전에 그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보안사 수사관들이 식사하러 나간 틈을 이용해 장태완은 조서 용지에 그날 밤 10시간 작전 일지를 메모 형태로 작성 독자 리뷰 시사IN 편집국 블랙겟타 (닉네임·2019년 전자책 구독, 부산)여당의 ‘서울 메가시티’ 공약으로 수도권이 시끄럽다. 관련 내용을 다룬 〈시사IN〉 제843호 커버스토리 기사(청년의 서울 집중 핵심은 20대 여성)를 읽고 고민이 더 깊어졌다. 기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구직 중인 청년 여성층이 대체로 선호하는 일자리는 비수도권에서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설사 일자리가 있다고 해도 수도권에 비해 조건이 좋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20대 여성들은 서울로 몰리게 된다. 개인의 청춘과 자원을 빨아들이는 힘으로 ‘서울’이 지탱되고 있다면 이들이 겪고 있을 청년인구 집중의 핵심 키워드, 20대 여성의 상경 김동인 기자 2017년에 방영한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는 경상남도 남해군 출신 1988년생 윤지호라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드라마 속 지호는 반동적이다.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을 거스른다는 뜻에서 그렇다. ‘여자는 당연히 집 근처 교대에 가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몰래 서울 대학에 원서를 넣고, 입학식 전날 야반도주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려는 친구들과 달리 드라마 보조 작가의 길을 택한다. 월세방을 전전하느라 생계 걱정에 연애를 포기했지만, 수제 맥주라는 자신의 취향만은 포기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당시 드라마는 서 영화광들의 시대와 청년 봉준호, ‘노란문’을 아시나요? 임지영 기자 1993년 봄, 〈노란문〉 제1호가 세상에 나왔다. 28쪽짜리 ‘영화 연구 자료집’으로, 표지 한가운데 놓인 노란색 문 이미지가 시선을 끈다. 최종태 소장의 발간사가 비장하면서도 어딘가 느슨하다. ‘한국 영화의 새물결을 일으킬 새로운 영화세대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내부의 적’으로 자만과 조급함을 꼽은 데 이어, ‘한 화학원소를 발견하기 위한 어느 과학자의 끊임없는 실험의 반복처럼,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가기보다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무르익어 넘칠 수 있기를 노력하며 인내할 생각’이라고 밝힌다.1990년대 초 만들어진 노란문 영화연구소 모차르트는 정말 천재였을까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스핑크스는 단 하나의 수수께끼로 사람들을 벌벌 떨게 했지만, 모차르트는 더 많은 수수께끼를 낸다. ‘모차르트는 천재였는가’ ‘모차르트는 혁명가였는가’ ‘모차르트는 독살당했는가’ ‘모차르트는 가난했는가’.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먹었지만 모차르트는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그의 일생이 빚어낸 수수께끼들은 그의 음악을 더욱 풍요롭고 깊이 있게 해준다. 이채훈의 〈모차르트 평전〉(혜다, 2023)은 그동안 제출된 답안들을 복기하고 종합하면서 새로운 답안을 작성하는 재미를 준다.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스물 산불처럼 번지는 청춘의 여름 [비장의 무비]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였다. 갑자기 TV 앞에 사람이 모여들었다. 전쟁이라도 터진 것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와 발표문을 읽었다. “내일부터 전면적인 록다운을 시행합니다.” 새 영화 〈운디네〉(2020) 파리 홍보 일정이 중단되는 순간이었다. 급히 독일로 돌아가는 감독과 배우에게 미안했는지 배급사 관계자가 선물을 건넸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의 DVD 박스 세트.귀국 직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매일 영화만 보았다. 에릭 로메르의 〈여름 이야기〉(1996)를 틀어놓고 생각했 시사IN 제835호 - 이념 전쟁 차형석 편집국장 편집국장의 편지REVIEW IN 독자 리뷰 퀴즈 말말말 기자들의 시선/이상원 기자 기자들의 시선/김연희 기자COVER STORY IN자유민주주의 앞세운 십자군 대통령의 성전윤석열 대통령이 이념 논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총선을 앞둔 여당 내에서도 위기감이 감지된다. 정치학자들은 이념의 내용보다 그 반정치적 활용 방식이 문제라고 말한다. 홍범도 ‘참변’ 가담, 증거로 따져보자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서명국으로 참가했다면ISSUE IN 교사들이 모였다, 살려달라고 여성단체들이 ‘지명 철회’ 말하는 이유 내년 8월 대법원이 확 바뀐다 영장에 어른에게도 통할 영어 공부법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딸에게 들려주는 영어수업조영학 지음, 비아북 펴냄“어른이 되어 시작하는 영어 공부에는 그만의 장점이 있다.”저자는 스티븐 킹, 데니스 루헤인 같은 영미권 대중소설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어로 맛깔나게 옮겨온 번역가다. 처음부터 영어를 좋아하진 않았다. 검정고시로 뒤늦게 영문학과에 들어간 것은 오로지 장학금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어는 단어나 숙어가 아니라 ‘생김새’ 즉 구조로 읽어야 한다는 선배의 가르침을 새기며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이후 영어 교사와 결혼하고 영어책을 번역하며 살다가 영어에 미숙한 딸로부터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았 다양성과 ‘국뽕’ 사이, 여행 유튜버가 보여주는 것 김영화 기자 이집트 피라미드 앞, 터번을 쓴 사람들이 ‘헤이’ ‘익스큐즈 미’ 하며 줄기차게 따라온다. 낙타를 태워주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호객꾼들이다. “옷 가게도 혼자 못 들어가는 성격”인 유튜버 ‘원지’가 “노 팁! 노 모어 머니!” 하고 외쳐보지만 소용없다. 공짜라고 해서 낙타를 탔는데 걷기 시작하자 돈을 내야 한단다. 은근슬쩍 다가와 터번을 씌워주더니 팁을 요구하기도 한다. “뭔가 호구가 된 기분” 탓에 피라미드를 둘러보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16분짜리 영상을 지켜보는 구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2021년 5월 유튜브 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