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냉동 김밥은 어쩌다 미국에서 품절되었나? 김영화 기자 김밥을 생각하면 창피한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20년 전, 당시 초등학생이던 세라 안 씨가 어머니가 싸준 김밥을 학교에 가지고 간 날이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으. 그런 걸 왜 먹어? 완전 역겨워 보여.”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한국계 이민자 2세로, 그가 자라난 동네는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도 드문 곳이었다. 그날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된 김밥을 그는 고집스럽게 입에 욱여넣었다. 자부심이 수치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말했다. “엄마, 다시는 김밥 싸주지 마세요. 그냥 샌드위치 싸주세요.” 어머니는 이유 익숙한 듯 다른 오기가미의 식탁 [비장의 무비]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출근 첫날부터 일이 고되었다. 집에 와 목욕부터 했다. 머리를 말리며 찬 우유 한 잔을 마셨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똑똑똑. 문을 여니 땀에 전 아저씨가 인사를 건넨다. 옆집에 산다고 했다. “욕실 좀 빌릴 수 있을까? 온수기가 고장 나서 사흘째 목욕을 못 했거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남자를 힘껏 밀쳐내고 황급히 문을 닫는 야마다(마쓰야마 겐이치).한 달 뒤 첫 월급을 받아 제일 먼저 쌀을 산다. 깨끗이 씻어서 정확히 물을 맞춰 안친다. 갓 지은 밥의 냄새를 콧속 깊이 들이마시며 공기에 퍼 담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 아스파탐은 죄가 없다, ‘단맛 중독’이 문제일 뿐 이오성 기자 어제 저녁 당신은 친구들을 만나 막걸리에 돼지고기 수육을 먹었다. 맛있게 담근 보쌈김치와 오징어 젓갈도 곁들였다. 밑반찬으로는 고사리 나물과 고구마 튀김이 나왔다. 중간중간 담배를 피웠고 입가심으로 제로콜라도 한 잔 마셨다. 이렇게 당신은 어제 저녁 총 8종의 ‘발암성’ 식품을 섭취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 따르면 그렇다.7월14일 IARC가 결국 아스파탐을 발암가능물질로 분류한다고 밝혔다. 2주 전인 6월30일 로이터에서 이를 예측하는 보도가 나오면서 아스파탐에 대한 관심이 커질 대로 커진 터였다. 부모가 창피했던 열두 살 우리들에게 [비장의 무비]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시작은 종이 한 장이었다. 가정환경조사서. 엄마 아빠의 나이, 학력, 직업, 종교 따위를 모두 적어 내던 종이 한 장. 담임쌤이 앞으로 불러내 그걸 들고 이것저것 물어볼 때 다른 친구는 막힘없이 대답하는데 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던 기억을,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 척 양호실에라도 달려가 숨고 싶던 그 불편한 마음을, 언젠가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꼭 꺼내 보이고 싶었다.커서 영화감독이 되었다. 첫 장편영화를 만들 기회가 왔다. 내가 잘 아는 오래전 나의 마음을, 나를 잘 모르는 지금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주는 게 좋을까. 궁리 끝 장돌뱅이들이 왜 욕을 먹게 되었을까 변진경 기자 과일, 야채, 찐빵, 젓갈, 버섯, 때밀이 수건, 마늘, 옛날과자, 뻥튀기, 약초, 마술 돋보기, 쥐눈이콩, 닭, 달걀, 양말, 메추리알, 이불, 콩국물, 족발, 홍어회, 카세트테이프…. 6월15일 오전, 경기 용인시 처인구 금학천변 일대에 파라솔과 좌판이 깔렸다. 거대한 ‘장돌뱅이(장돌림)’들의 집합체가 천변 이면도로 700m를 가득 채웠다. 매 5일과 10일에 서는 용인 5일장 장날이다. 가격표도, 카드 결제 단말기도 드물고, 할인·적립·포인트도 없고, 주로 현금과 에누리와 때론 바가지가 오가는 곳. 하지만 상인과 손님, 구경꾼 사라지는 대폿집 겨우 찾아 아껴 먹는다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 (셰프) 대폿집이 사라진다. 나는 대폿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다니던 대폿집이 이제 없다. 실비집도 없다. ‘왕대포’라고 빨간 페인트로 궁서체, 함석판에 써서 붙여놓은 간판도 없다. 사라지는 것이다. 손님도 바뀌고, 왕년의 대폿집, 실비집은 삼겹살집이 됐다. 겨우 몇 개 찾아내어 아껴 먹는다. 광주 양동시장의 여수왕대포도 그런 집이다. 보라. 당당하게 대폿집이라 써놓은 집.“대폿집이라는 게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어. 대폿집은 안주가 공짜여. 그건 손님이 좋아. 막깔리(막걸리) 한 병 시키믄 안주가 나옹게. 근데 주인은 안 좋아 해외 여행 대신, 지금 당장 떠나는 국내 여행지 고재열 (여행감독) 2년 전 기자를 그만두고 ‘여행감독’을 시작했다. 저널리즘에서 투어리즘으로 적을 옮기던 바로 그때 코로나19가 발발했다. 이사 갈 마을을 언덕 위에서 조망하는데 불이 활활 타오르는 광경을 보는 기분이었다. 불길은 점점 거세져만 갔다. 그래도 언젠가 불이 꺼지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아서 마냥 기다렸다.영화 〈기생충〉과 BTS의 활약으로 한류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가운데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연달아 히트하고 애플TV플러스에서 〈파친코〉가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에 대한 해외의 나의 개처럼, 소·돼지·닭도 누군가에겐 가족일 테지 [반려인의 오후] 정우열(만화가·일러스트레이터) 이제 새해 결심 같은 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절치부심 끝에 올해는 성공적으로 아무런 계획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이른바 ‘비거뉴어리 캠페인’이라는 것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거뉴어리란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vegan)과 1월(january)의 합성어로서, 결심하기 좋은 1월 한 달만이라도 채식을 실천해보자는 제안이다. 지난 연말 친구에게서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별 고민 없이 나도 동참하겠다고 했다. 채식이라면 드물게 내가 좀 자신 있는 종목이었던 것이다. 이미 나는 만 명태 ‘밸따기’ 하던 그녀들의 노동 김만석 (독립연구자) 올해 초 명태가 강원도 고성 인근 바다에서 잡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다. 대구를 잡기 위해 쳐둔 그물에 명태가 걸렸던 것이다. 2008년 어획고 ‘0’을 기록하면서 한반도 동해 바다에서 명태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는데, 10년 만에 명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14년 해양수산부가 벌인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치어 방류와 양식 사업)가 부분적으로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명태의 귀환’이 확실시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명태는 아직 되돌아오지 못했고 올해부터는 아예 명태잡이 자체가 전면 금지되고 있 이 작은 물고기에 깃든 역사 오창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멸치에도 역사가 있다. 멸치는 현대 한국인의 일상에서 가장 친숙한 물고기 중 하나다. 너무 흔하고 일상적이어서 별다른 관심이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만 지난해 유명 음식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가 삶아서 말린 멸치나 멸치로 우려낸 국물이 일본에서 왔다고 언급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멸치볶음이나 멸치육수가 일본인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실제로 마트나 건어물 시장에 가보면, 멸치를 크기에 따라 ‘지리멘’ ‘가이리’ ‘고바’ ‘주바’ ‘오바’로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용어는 일본에서 유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김문영 (이숲 편집장) 시작은 다소 충격적이다. 주인공 혜진은 아버지가 고독사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것도 방치된 지 3~4주가 되었다는 통보였다. 흔히 상상하는 가족관계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혜진은 그 어떤 슬픔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다.어쩌다 아버지는 가족과 인연을 끊게 된 걸까. 아버지는 왜 두 딸이 있는데도 혼자 살다 외롭게 죽어간 걸까. 저자는 혜진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며 독자를 그녀의 가족사로 이끈다.아이 하나를 키우며 남편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30대 혜진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었다. 다만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한 비슷한 듯 다른 여정 오창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요즘 사람들은 음식에 관심이 많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객의 SNS, 텔레비전 프로그램, 음식 관광 정보를 담은 서적 등 음식 이야기가 이렇게 풍성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물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도 존재했다. 이런 일상의 입맛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은근하면서 강력한 힘을 경제와 정치에 미치고 있다.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너무 평범해 관심을 갖지 않는 일상의 입맛을 자본주의 발전 경로를 설명하는 중요한 변수로 고려했다. 밀·밀가루·빵의 기억에서 사라진, 가보지 못한 북한의 바다 고재열 기자 ‘겨울철 물고기잡이 전투를 힘있게 벌리자!’ ‘바다가(바닷가) 양식을 대대적으로 하자!’ ‘남포 갑문 건설을 힘있게 지원하자!’ ‘배마다 만선기 휘날리자!’ ‘모두 다 정어리잡이에로’ ‘청소년들이여! 모두 다 해양체육에로!’부산 영도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에 가면 이런 낯선 구호가 관람객을 맞는다. 〈잊힌 바다, 또 하나의 바다, 북한의 바다〉전(10월13일까지)에 전시된 북한 포스터에 쓰인 구호다. 요란한 구호 사이로 들어서면 또 다른 선전·선동의 바다가 관람객을 맞는다. 광복절 해양 기념식에서 북한 청소년들이 선상에서 매스게임을 ‘예술 섬’에서 보낸 하룻밤 천소현 (여행 매거진 〈트래비〉 팀장) “나오시마 알아요? 연홍도는 한국의 나오시마 같은 곳이죠.” 안다고 해야 할까? 워낙 유명한 일본의 예술 섬이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그러니 연홍도와 나오시마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육지와 섬만큼이나 동떨어진 비유처럼 들렸다. 어쨌든 좋은 힌트다. 연홍도는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섬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불린다. 매끄러운 입도였다. 서울에서 고흥까지, 밤새 달려온 버스는 소록대교-거금대교를 건너 신양선착장에 멈춰 섰다. 연홍도는 거금도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섬 속의 섬’이지만 실상은 거의 육지다. 그곳에서 연홍도까지는 ... 명란의 ‘쩡한 맛’ 느껴본 적 있나요 부산/글 고영(음식문헌 연구자), 사진 조남진 기자 명태(明太). 조선 후기 이후 오늘날까지, 이 땅의 사람들이 정말 많이도 먹어온 바닷물고기다. 부산 초량의 왜관에서 근무한 적 있는 일본인 아메노모리 호슈(1668~1755)는 그의 책 〈교린수지(交隣須知)〉에 명태를 언급하며 함경도에서만 난다고 썼다. 실학자 서유구(1764~1845)는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생물은 명태, 말린 것은 북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물고기가 나지만 명태어와 청어가 가장 흔하다”라고 했다. 이규경(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명태를 “매일 먹는 반찬거리”라 “아, 가성비 참 힘들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까다로운 인터뷰이다. 연출한 사진은 질색한다. ‘촬영에 응하다’와 ‘연출하다’를 기어코 구분한다. 빳빳하기 이를 데 없다. 그만큼 자기 음식에서도 까다롭게 기본을 지킨다. 요리사이자 음식 칼럼니스트인 박찬일 주방장은 ‘기본 중의 기본’부터 말했다. 음식점 종사자와 고객 모두를 위한 안전과 위생이다.“칼 잡는 손이랑 음식물 쓰레기봉투 묶는 손은 따로여야 해요. 업계 현실은, 그렇게 인력을 쓰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기본을 생각하고 적정 인력을 배치하는 음식점이 있어야 하고, 앞으로 늘어나야죠. 세상에는 보고 배우고 실감 진짜 ‘먹부림’을 위한 ‘푸드 바이블’ 이오성 기자 10년 전만 해도 음식 책 하면 요리책과 맛집 소개 책이 거의 전부였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방송과 인터넷의 맛집 소개가 빨아들였다. 먹방과 쿡방이 대세를 이루면서는 급기야 ‘푸드 포르노’ 시대를 탄식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반작용이었을까. 양질 전환이었을까.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양질의 콘텐츠에 목말라했다. 2010년 이후 진지하게 맛과 음식을 탐구하려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맛 콘서트’ 같은 행사가 열리고, 음식 칼럼니스트 양성 과정이 생겨났다. ‘음식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이었다. 책이 단비를 뿌려주... 길이 막히면 먹고 간들 어떠리 김진영 (식품 MD) 한 달에 2000~3000㎞ 차를 몬다. 한창 때는 매달 5000㎞ 정도 고속도로를 달렸다. 직업이 식품 MD인지라 지방 출장이 잦기 때문이다. 웬만한 고속도로 휴게소는 다 이용해봤다. 내게 고속도로 휴게소는 단지 허기를 때우고 배설하기 위한 장소일 뿐이다. 무엇을 먹어도 내가 지불한 돈만큼 값어치를 느낀 적이 없다. 쉽게 말해 ‘가성비’가 최악이다. 라면도 휴게소에서는 4500원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왜 비쌀까? 재료가 좋아서? 유명 셰프의 요리라서? 답은 장소에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운영 주체는 도로공사와 계약을 맺은... ‘맛알못’도 침이 고이는 음식 이야기 차형석 기자 어쩌다 유명한 맛집에 가서는 ‘이런 심심한 맛을 왜 그렇게 좋아하지(주로 담백한 맛의 음식들이다)’ 하며 속으로 투덜대는 ‘맛알못(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의 제목은 왠지 훅 다가왔다. 그래, 알고나 먹자.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자라고 어떤 유통 과정을 거쳐 내 입으로 들어오는지는 알아두어야지 싶었달까. 약력에 따르면 저자는 ‘밥을 팔아 밥을 버는 사람’이다. 한때는 막일꾼이었고, 화물트럭 운전사였고, 인쇄로 밥을 먹던 사람이다. 그리고 ‘농사꾼의 자식’이라고 했다. 식당에서 일했던 경험과 평생 농사만 지어온 ... 소금 굽기, 그 어려운 걸 해낸 사람들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달이 하현(下弦)이 되어 조수(潮水)가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그 땅을 갈아 소금기 머금은 밭을 만들고, 거기서 받은 소금흙을 굽는다네. 알갱이가 굵은 것은 결정이 수정 같은 소금(水晶鹽·수정염)이 되고, 가는 것은 결정이 싸라기 같은 소금(素金鹽·소금염)이 되지.”조선 문인 박지원이 스무 살에 쓴 〈민옹전(閔翁傳)〉(1757년)에 전통적인 소금 생산방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아니, 그런데 땅을 간다니? 소금을 굽는다니? 1907년 이후 한반도에서 천일염을 생산하기 전까지, 어렵게 생산해 귀하게 먹어온 ‘자염(煮鹽)’ 또는 ‘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