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조선인이 말을 건다면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19세기 말의 교양 있는 한국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방금 서울에 왔다고 생각해봐. 그 사람이 우리랑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고작 100년 남짓 전 사람인데 당연히 말이 통할 거라고? 음, 전혀 안 통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한국의 평범한 고등학교 졸업자가 미국인 관광객과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거보다 더 힘들 거야. 왜냐고? 그 100년 남짓 동안 한국어 어휘부가 완전히 변해버렸거든.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어 어휘의 반 이상은 한자어야. 그런데 그 시절의 한자어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말이 대부분이었어. 반면에 지금 우리가 ‘기부병’ 걸린 남자 고재열 기자 티메카코리아의 김태진 대표(46)는 요즘 심각한 ‘기부병’을 앓고 있다. 〈시사IN〉 지령 200호 기념 프로젝트 ‘기적의 책꽂이’에 무려 5900여 권의 어린이 영어책을 기증했다. 금액으로는 7100만원어치다. ‘기적의 책꽂이’에 보낸 책은 다시 아름다운재단을 통해서 2300권, 고종 손녀 “나는 프린세스가 아니다” 뉴욕·이나윤(컬럼비아 대학 한국학생회 임원) “나는 ‘프린세스’가 아닙니다. 왕조는 오래 전에 끝났습니다.” 고종과 귀인 장씨 사이에 태어난 의친왕의 딸로, 현재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이해경 여사(82)는 2월18일 컬럼비아 대학 한국학생회가 주최한 강연회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영친왕의 끝없는 한 마르지 않는 눈물 고재열 기자 1950년 서울신문 기자였던 김을한(사진)은 도쿄 특파원 발령을 받았다. 도쿄에 도착한 그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을 찾아갔다. 인질로 잡혀갔던 영친왕은 나라가 해방되었지만 이승만 정권의 견제로 입국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고립무원이던 영친왕은 그를 반겼다.1970년 영친왕이 서거할 때까지 김을한은 20년 동안 망국의 충신처럼 헌신했다. 그러나 냉정한 기자의 시선을 잃지 않았다. 일본 황실로부터 귀족 대우를 받으며 제1항공군사령관(육군 중장) 지위에까지 오르며 물질적으로는 일본 방계 황족보다 풍족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