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김재규의 마지막 하루 [사람IN] 임지영 기자 조성기 작가가 초등학생일 때의 일이다. 육군 소장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직후였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용공분자로 몰렸다. 누군가 교실 문을 열고 수업하던 아버지를 데려갔다. 당시 목격자인 반장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자습을 지시한 아버지는 교실 위쪽을 쳐다보며 밖을 나섰다. 위층 교실에 아들 조성기 작가가 있었다. 가까스로 아버지가 육군교도소에 갇힌 걸 알게 됐지만 면회가 되지 않았다. 단체로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알아내 가족들과 교도소 뒤쪽 숲에서 기다렸다. 안부를 적은 편지지를 말아 창문 없는 화장실 안쪽으로 던 시사IN 제820호 - ‘거부권’ 후폭풍 차형석 편집국장 편집국장의 편지REVIEW IN 독자 리뷰 퀴즈 말말말 기자들의 시선/이상원 기자 기자들의 시선/김연희 기자 포토IN/노동정책 예산 줄었다고 폐쇄가 답인가COVER STORY IN돌봄을 ‘거부한’ 정치, 간호사들이 싸우는 이유간호법 정국의 키워드는 ‘돌봄’이었다. 입장은 달랐으되 돌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이를 ‘직역 간 갈등’ 프레임으로 변질시켰지만, 사회적 논의가 진전될 수밖에 없다.ISSUE IN ‘심리적 G8 국가’가 놓치고 있는 것 “그때 이상민 장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검사의 나라’ 1년, 무너지 “여러분, 기권만은 하지 맙시다.” 김형민(SBS Biz PD)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봤듯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경호실장과 술자리 중에 대통령을 쐈다. 이른바 10·26 사태. 유신 선포로부터 7년 만의 일이었어. 유신헌법은 헌법 자체로 황당했지만 연이어 내려진 ‘긴급조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에 대한 거역이었지. 1974년 1월8일 내려진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는 물론이고 그 개정을 ‘청원’하는 것조차 금지한다고 선언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민주공화국이겠니.그렇게 국민들의 정치적 욕구를 바위처럼 찍어 12·12 군사 쿠데타와 인권유린의 현대사 정희상 기자 공교로운 일이었다. 전두환씨가 90세 일기로 사망한 11월23일 오후 광주광역시 봉선동 소화자매원에서는 조비오 신부 5주기를 기리는 ‘쌀 나눔식’ 행사가 열렸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고 조비오 신부를 전두환씨가 회고록에서 ‘사탄’ ‘거짓말쟁이’ 같은 단어를 사용해가며 비방한 데 대한 사자명예훼손 사건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분노한 광주시민의 민심을 재판부에 전달하려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였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5·18 때 진압군의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판시하고 전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2번째의 10·26, 동생은 재심을 기다린다 정희상 기자 1979년 가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궁정동 만찬장 총격으로 유신 철권통치가 종식된 지 42년이 흐른 지난 10월26일, 노태우씨가 유명을 달리했다.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일이 겹쳤다. 노씨는 전두환씨와 함께 ‘10·26 사건’을 빌미로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등 내란 과정을 거쳐 정치 전면에 부상하면서 훗날 나란히 대통령을 지냈다. 전두환씨도 현재 노인성 치매를 앓는 등 건강이 급속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군사 반란과 내란의 원죄를 안은 이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하나둘 퇴장하는 “보도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편집국장의 편지] 이종태 편집국장 〈조선일보〉는 백신접종 첫날부터 ‘아스트라제네카(AZ)는 찬밥’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후엔 ‘AZ 맞은 20·30대 의료진 85%에서 이상반응’이라고 보도하더니 ‘태권도 전 챔피언 AZ 맞은 후 다리 절단, 붓더니 다리 폭발’이라며 부들부들 떨더군요. 이상반응의 대부분이 근육통과 발열이라거나 불행한 일을 당한 분에게 관련 질환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쏙 뺐습니다. 이 신문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기를 바라진 않았을 겁니다. 단지 문재인 정부가 너무 미웠나 봅니다. 이런 보도 행태의 지속에 따른 역풍을 예상했기 41일간의 #WatchingMyanmar 캠페인,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장일호 기자 바깥세상에서 보내오는 관심은 미얀마 시민사회에 늘 필요한 자원이었다. 미얀마 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국제사회의 관심은 절실했고, 그 압력은 때로 변화를 가져왔다. 아웅산 수치는 1997년 2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당신들의 자유로 우리의 자유를 북돋아주십시오”라고 썼다. 안타깝게도 이 요청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4월7일부터 5월18일까지 41일간 〈시사IN〉과 오늘의행동이 펼친 #WatchingMyanmar 캠페인은 미얀마의 요청에 대한 일종의 응답이기도 했다.군부가 민간으로 권력을 이양하기 시작한 2010년 이래 미얀마를 향한 연대, 빨간풍선 타고 날아오르다 장일호 기자 ‘용감한 빨간풍선’은 #WatchingMyanmar가 새겨진 빨간풍선 다섯 개를 장미꽃 모양으로 접어 만들었다.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에 저항하며 빨간풍선과 장미꽃을 들었던 것에 착안해 오늘의행동이 제작한 캠페인 행동 도구로, 모두 200세트(1000개)가 배포됐다. 이를 〈시사IN〉 구독자 모두에게 제공할 방법은 없을까. ‘용감한 빨간풍선’을 디자인한 어라운드랩 김소은 대표가 대답했다. “한 세트 만드는 데 빨리 작업하면 2분 정도 걸리더라고요. 3만 세트 만든다고 하면… 180일 걸려도 되나요?”정기 구독자에게 제공되는 이번 호 “응원이 소용 있을까?” “역사로 남을 거야” 장일호 기자 익숙한 것들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아라비아숫자조차 쓰지 않는 낯선 나라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김준성씨(인스타그램 @junsengi)의 생애 첫 배낭여행지는 미얀마였다. 김씨가 ‘당신이 본 곳이 미얀마입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MyMyanmar 해시태그와 함께 올린 사진 속 미얀마는 여행 당시 새로 알게 된 친구들의 모습으로 왁자했다. “2020년 초에는 미얀마가 한국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기뻤다. 지금은 더 많은 한국인들이 미얀마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을 미얀마 친구들이 오늘도 무사하고 앞으로도 필기구 코너에서 ‘try 캠페인’ 어떠세요? 장일호 기자 “WE MUST WIN.” 급하게 쓴 듯 보이는 메모의 마지막 문장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시사IN〉 제711호에 ‘경찰이 휴대전화를 쏘자 모자가 날아갔다’라는 원고를 기고한 흐닌 누 트웨 〈틴간준 포스트〉 기자가 한국 시민들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메시지였다. “미얀마 군부독재를 근절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한국인 여러분, 가능한 한 지속적으로 압력을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미얀마 언론인들과 연락을 담당하고 있는 〈시사IN〉 김영화 기자는 요즘 서울에서 양곤의 시 김정남, 민주화 운동의 ‘위대한 투사’ 김은지 기자 영화 〈1987〉 속 설경구는 벙거지를 쓰고 절과 성당에 숨어 지내며 민주화운동을 하는 재야 활동가다. 영화 속 설경구가 맡은 배역의 이름은 김정남. 실제 김정남(78) 전 문민정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이름과 역할에서 따왔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알리기 위해 경찰에 쫓기며 성당 위로 올라가는 장면은 “영화의 언어로 수습”된 허구지만, 현실의 고생은 영화보다 더했다.1987년 1월 당시 전두환 군사정부의 치안본부(경찰)는 대학생 박종철을 고문하다 숨지게 만들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고문 사실을 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누가 백인인가?진구섭 지음, 푸른역사 펴냄“인종과 인종 혐오의 역사는 짧다.”한국에서 인종은 아직 낯선 문제다. ‘블랙 페이스’ 사건처럼 불현듯 사회문제로 떠올랐다가 금세 침잠하곤 한다. 세계적으로 인종문제는 가장 중요한 갈등 요인 중 하나다. 특히 미국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주요 코드로 인종을 꼽는 이들이 많다. 필자는 인종이란 원초적 산물이 아니라 ‘창안’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태어날 때부터 차이가 나는 피부색이나 이목구비의 생김새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생물학자들은 외모와 무관하게 인간 유전자의 99.9%가 같다 독자와의 수다 이상원 기자 이름:김택훈(58)주소:강원도 양구군김택훈 독자는 선생님이다. 원래 물리를 가르쳤는데 1년여 전 교감이 됐다. 그는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니 감이 떨어져서 애들을 못 가르치겠더라”고 말했다. 김택훈 독자가 있는 학교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등교를 강행하면 어떻게 될지 물었다. “절대 안 된다. 학생 간 거리도 가깝고 서로 몸을 부대끼는 학교는 코로나19 감염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시사IN〉 정기구독은 지난 1월부터 시작했다. 구독하게 된 과정을 묻자 김 독자는 멋쩍게 웃으며 ‘약속’ 때문이라고 했다. “적어도 전두환이 말한 것은 거짓이다” 정희상 기자 1980년 5월24일 새벽,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서울 서대문형무소 교수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직후, 셋째 여동생 김정숙의 서울 잠실 자택에 전화벨이 울렸다. 중정 최종대 비서가 비통한 목소리로 “부장님 방금 떠나셨습니다”라고 전했다. 충격을 받고 전화기를 떨어뜨린 김정숙은 자지러지듯 어머니를 불렀다. 김재규 부장의 모친인 권유금 여사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아들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하늘 아래 있고 싶어 당시 고향 경북 선산에서 올라와 잠실 딸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딸의 외마디 비명과 통곡을 듣고 권 여 40년 만에 공개된 ‘김재규 재판’ 녹음 테이프 정희상 기자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었다.”1979년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10·26 사건 재판 당시 변론을 맡은 안동일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1979년 12월의 1심 4차 공판부터 김재규·박흥주·이기주·김태원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을 맡았다. 안 변호사는 국선이었다.원래 이 재판엔 사선변호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김재규 피고인 등에 대한 1심 재판 과정에서 ‘민주 회복’이라는 10·26 거사의 동기를 부각시키며 맹렬히 재판에 임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합수부장)이 이끌던 보안사령부(보안사)는 김재규 피고인의 가 시사IN 제 666호 - 학교란 무엇인가 이종태 편집국장 편집국장의 편지REVIEW IN 독자와의 수다·기사 후~폭풍·퀴즈 말말말 이 주의 그래픽 뉴스 기자들의 시선 포토IN/ 5·18의 ‘이전 페이지’, 사북항쟁COVER STORY IN학교를 왜 가야 하나 답해야 하는 시간코로나19 이후 학교 현장은 딜레마로 가득하다. ‘굳이 학교를 왜 가야 하나’라는 질문이 공교육의 핵심 의제가 되었다. 방역과 학습, 안전과 배움의 균형을 찾는 일 또한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학교가 위기 대처도 잘하고 있다. 함께 위기에 맞서는 학교의 ‘빛과 소금’ISSUE IN 우리는 ‘미국식 자유’와 <남산의 부장들>과 김형욱 암살 사건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2007년 가을, 1970년대 중앙정보부(중정)가 양성한 북파 특수공작원 조박씨가 편집국을 찾았다. 그는 기자에게 1억원대 현금이 입금된 통장을 보여줬다. 입금자는 국가정보원(원장 김만복)이었다. 조씨는 2005년 4월, 〈시사저널〉 기자로 있던 나에게 “내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파리 외곽 양계장 파쇄기에서 암살했다”라고 고백해 파문을 불렀던 인물이다. 1979년 봄부터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라인의 부름으로 김형욱 암살 공작을 기획한 뒤 파리 외곽의 한 양계장에서 파쇄기를 통해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2005년 국정원은 이른바 “유신의 심장 쏜 뜻을 왜곡하지 말라” 정희상 기자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26 사건 전 40일을 다뤘다. 박정희 대통령을 정점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중정) 부장과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김형욱 전 중정 부장 간의 권력 암투를 재구성했다. 영화는 얼마나 사실에 기반하고 있을까? 10·26 사건 평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자는 1990년대 초부터 ‘김재규와 10·26 사건’을 심층 취재해온 바 있다. 김형욱 제거 사건도 취재 목록에 있었다. 이 사건 취재기를 모아 지난해 〈팩트와 권력〉(2019)이라는 책을 썼다.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부장의 국선 변호 ‘민의의 전당’에 X칠한 입신출세의 달인 김형민(SBS Biz PD) 의전 서열이라는 게 있어. 법적으로 명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국가원수 이하 삼부 요인들과 공무원, 군 고위급,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대상으로 관행적으로 적용되고 있지. 일단 누가 뭐래도 국가 서열 1위는 대통령이다. 그럼 2위는 누구일까? 대통령 유고 시 국가원수를 대행하게 돼 있는 국무총리를 꼽겠지만 행정부 내 권력 승계 순서일 뿐, 대한민국 국가 의전 서열 2위는 국회의장이야.입법부의 수장이요 ‘민의의 전당’ 국회의 가장 높은 곳에 좌정한 분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오랫동안 국회의장이 그 정도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게 역사적 사실이야. 기자들의 시선 이상원 기자 역사 속 오늘2012년 2월2일, 한나라당이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색을 빼고 ‘박근혜당’으로 변모한 새누리당은 선거에 강했다. 19대 총선에서 단독 과반을 얻었다. 같은 해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2014년, 2015년 재보선에도 좋은 결과를 냈다. 그러나 2016년에는 20대 총선에서 ‘옥새 파동’ 등 친박 공천 논란이 일었고, 결과적으로 참패했다. 그해 10월 ‘박근혜 게이트’가 몸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의원들의 탈당과 분당을 거친 새누리당은 2017년 2월 자유한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