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오리들케이트 비턴 지음, 김희진 옮김, 김영사 펴냄“인생에 금이 간다는 걸 알면서 왜 여기에 올까요?”캐나다 앨버타의 한 오일샌드 개발 현장에 있던 큰 연못에 죽은 오리 수백 마리가 떠올랐다. 석유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유독성 물질을 걸러낸 물을 그대로 흘려보낸 것이 집단 폐사의 원인이었다.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떼죽음 당한 오리들은 이곳 ‘싱크루트 오일샌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비유임을 깨닫게 된다. 가난이 싫어서 공장으로 온 ‘평범한’ 사람들이 가난보다 더 서늘한 노동권 침해와 성폭력, 산업재해, 환경파괴를 겪으며 그 의사는 왜 배관공을 찾아갔을까 김연희 기자 ‘코드블루.’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병원에서 쓰는 말인지는 잘 몰랐던 이 단어가 심정지를 뜻하고, 병원 내에서 유일하게 안내 방송으로 알리는 진단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다른 장기는 기능이 멈추면 몇 분, 몇 시간 또는 며칠 후에 죽음이 찾아온다. 뇌사의 경우는 수년 동안 생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심장이 멈추면 불과 몇 초 차이로 생사를 오간다.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기는 심정지가 “전기적인 문제”라면 심근경색은 “배관의 문제”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 중 하나에 연필심처럼 아주 작은 혈전(피떡)이 생기면서 산소와 영양 아흔이 넘어서도 죽음을 공부한 엄마 김이경 (작가) 어느 날 죽음이 내 삶에 질문을 던졌다. 공부란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는 것. 죽음 공부를 시작했다. 스무 해 만에 간신히 마무리하고 책 〈애도의 문장들〉을 썼다. 공부를 마치면 두려움과 슬픔에서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힘들게 공부한 보람이 뭔가, 회의가 들었다. 출간 뒤 몇 차례 북토크를 하며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절박하게 죽음과 애도의 의미를 궁구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소용없는 일을 한 건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도 더 이상 죽음 책을 보고 싶진 않았다.평생을 함께한 어머니가 다른 세상으 피노키오가 진정 되고 싶었던 것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피노키오로 철학하기〉(효형출판, 2023)에는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1883)과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이 동화를 해석한 〈피노키오. 두 번의 해설과 세 번의 그림이 있는 인형의 모험 이야기〉(2021)가 합본되어 있다. 475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반도에는 1400여 년간 통일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1861년, 마침내 이탈리아 건국이 이루어지자 콜로디는 지역주의와 전근대성으로 낙후된 조국을 근대적으로 계몽하기 위해 저 교훈적인 동화를 썼다. 나무토막에서 꼭두각시 인형으로 탄생한 피노키오는 인 사람들 틈의 귀신을 잡아라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명탐정의 창자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내친구의서재 펴냄“여기에 귀신이 있다!”‘특수 설정’ 미스터리는 유령이나 절대자, 좀비, 부활 등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황이 실존한다고 전제한 가운데 이 세계관의 논리에 맞춰 사건을 풀어가는 장르다. 산촌의 연쇄방화 사건에 대한 탐정과 조수의 논리 경합으로 시작된 도입부가 갑자기 ‘쓰야마 사건’ ‘제국은행 사건’ ‘아베 사다 사건’ 등 20세기 초반 일본의 흉악 범죄 가해자들을 지옥에서 지상으로 소환하는 오컬트로 돌변하더니, 사람들 틈에 숨은 인귀(人鬼)들을 잡아내는 수수께끼 풀이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공멸의 길이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경제학 퇴치 가이드현동균 지음, 진인진 펴냄“‘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공멸의 길이다.”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국내 주류 경제학계의 비웃음을 받았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까지도 ‘흑역사’로 여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는가? 서방국가의 저명 경제학자와 언론들은 ‘아베노믹스 때문에 일본 경제는 돌이킬 수 없게 망할 것’이라고 10년째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나라 경제는 의외로 멀쩡하다. 혹시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최근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기준 “맞아. 우리는 미쳤어.”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레이크사이드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하빌리스 펴냄“맞아. 우리는 미쳤어.”한국에도 수많은 팬을 가진 일본 장르문학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입시 서스펜스’. 학폭, ‘괴물 학부모’, 입시 비리 등 교육을 둘러싼 이슈들이 최근 한국에서 연이어 터지고 있지만,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유치원부터 유명 사립대까지 그대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식’ 진학 시스템 때문에 이른바 상류층 아이들은 빠르면 만 3세부터 입시를 준비한다. 이 소설에선 네 가족이 자녀들의 명문 사립중학교 입시를 위해 풍경 좋은 교 교실에서 희망을 보다,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여여한 독서] 김이경 (작가) 이 지면에 타이완의 디지털부 장관 오드리 탕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기억나시는지? 그때는 다루지 못했지만 탕이 디지털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디지털 기술보다 소양을 강조하면서, 중요한 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프로그래밍 사고를 배우는 것”이고, 이는 “하나의 문제를 몇 단계로 나눠 여럿이 함께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프로그래머 장관 오드리 탕, 내일을 위한 디지털을 말하다〉). 이 말은 현실이 되고 있다.타이완은 탕의 주도로 일찍이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시작했 “나는 늘 뚱뚱했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우리가 살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들오브리 고든 지음, 장한라 옮김, 동녘 펴냄“나는 늘 뚱뚱했다.”‘뚱뚱한’ 저자가 비행기에 타자 옆자리에 앉은 남자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군.” “이런 식으로 자리를 더 확보하는군요.” “이봐요, 제가 보행 보조기를 쓰는 사람이나 임신한 사람한테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결국 옆자리 남자는 온갖 불평과 항의 끝에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한다. 언제부터 획일적인 사이즈의 몸만 허락되고, 인정받게 됐을까? 저자는 굴하지 않는다. “인간이 존엄성을 누리는 데 필요한 전 자본주의는 도대체 어떤 짐승인가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낸시 프레이저의 〈좌파의 길〉(서해문집, 2023)은 초석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자본주의는 정확하게 무엇인가?” 오랫동안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이 질문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임금노동. 마르크스가 〈자본〉을 통해 이 정답을 찾기까지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은 ‘감춰진 장소’였다. 프레이저는 마르크스의 업적에 경의를 바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자본주의가 무언인지 다 밝혀졌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감춰진 장소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장소”가 있다.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밝힌 것과 같은 ‘경제적 시스템’도 아니고 제2부 출판인이 꼽은 올해의 책 시사IN 편집국 팬데믹 2년 차, 작년과는 또 다른 어려움을 체감한 한 해였다.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다른 출판사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한 편집자의 질문이 오래 남았다. 그런 와중에도 의미 있는 시도와 크고 작은 결과가 이어졌다. 격려하는 마음으로 그 흔적을 담았다. 동료들의 활약에 주목한 출판인 52명이 동참해주었다. 설문에 응해준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가나다순).가나출판사·갈매나무·갈무리·김영사·북극곰·두번째테제·루아크·마음산책·모로·문학동네·미디어일다·미디어창비·민음사·북콤마·비채·뿌리와이파리·사계절·사이언스북스·산책가 정보라 이전, 정도경의 이야기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아무도 모를 것이다정보라 지음, 퍼플레인 펴냄“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부커상 후보’ 정보라는 20여 년 전 정도경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퍼플레인이 펴내는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는 정도경 시절을 모르는 정보라 독자를 위한 선물 같은 책이다. 〈저주토끼〉의 뿌리라 할 만한 작품 10편을 모았다. 함부로 용서하지 않는 엄격함이 쾌감으로 읽히는 까닭은 이야기보다 현실이 더 비정하기 때문일 터. 작가의 표현대로 “오래되고 단단히 갇힌 이야기”이기도 하다. 성별이분법과 정상성의 고정관 과학과 가치의 공존을 위해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케빈 엘리엇 지음, 김희봉 옮김, 김영사 펴냄“가치는 과학적 추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과학은 가치중립적이다’라는 명제는 헛된 이상이다. 과학이 적용되는 현실 사회가 가치중립적인 무균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적인 추론이 가치에 의해 영향을 받는 방식을 살펴보고 특히 그중에서 부적절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여러 단계에 걸쳐 설명한다.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는가? 불확실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가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가치에 어떻게 참 인간의 성숙은 더는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나이트 러닝〉(한겨레출판, 2022)은 2015년에 등단한 이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작가의 등단작 ‘얼룩, 주머니, 수염’의 남자 주인공은 ‘신의 직장’이라는 공항에 취직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그보다 여섯 살 많은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작가는 그녀를 신경증과 성격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는 인물로 묘사한다. “신경증이 있는 사람은 배려심이 과해 자신을 괴롭히고, 성격장애인 사람은 남을 괴롭힐망정 본인은 태연자약하기 마련인데 그녀는 신기하게도 이 둘을 한 몸에 아주 자연스럽게 장착했다.”그녀는 신경증과 성격장애 모두를 [기자의 추천 책] 낡지 않은 생각의 기록 문상현 기자 “40년 만에 처음으로 손 글씨를 쓴다. 컴퓨터 자판으로 써왔는데 이제 늙어서 더 이상 더블클릭도 힘들게 되면서 다시 옛날의 손 글씨로 돌아간다. 처음 글씨를 배우는 초딩 글씨가 될 수밖에 없다. 손 글씨를 쓸 때마다 늘 미안하다. 한석봉의 어머니에게.”올해 2월 세상을 떠난 이어령(1934~2022)이 2019년 노트에 적은 글이다.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번의 수술을 받은 그는 항암치료 대신 책을 썼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이 힘들게 되자 오랫동안 놓고 있던 펜을 집었다. 2019년 10월24일 밤부터 2022년 1월2 우리는 러시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벨랴코프 일리야 지음, 틈새책방 펴냄“한국에서 러시아를 설명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서구식 세계관에 익숙한 한국에서 러시아의 행보는 자주 ‘해석’을 요구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 세계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JTBC 예능 〈비정상회담〉 러시아 대표로 활약했던 지은이는 한국에서 러시아를 설명하는 일이 늘 어려웠다. 한때 미국과 패권을 겨루던 강대국이자, 다민족·다문화 국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한국의 그것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빨갱이’ 취급을 받고, 러시아에서는 ‘배신자’ 취급 [기자의 추천 책] 리추얼이 사라진 시대의 우리 김연희 기자 손에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은 한계 없는 접속을 약속한다. 간단한 터치로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각종 SNS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고, 쏟아지는 데이터 세례에 흥건히 몸을 축일 수 있다.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듯하지만 ‘언제든’ ‘어디서든’이라는 제한이 사라진 세계에서 삶은 종종 갈 곳을 잃는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근작을 엮어 지난해 10월 출판된 〈리추얼의 종말〉의 부제는 ‘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리추얼은 세계를 안심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다. 시간 안에서 리추얼은 공간 안에서 거처에 해당한다.” 생텍쥐페 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게일 콜드웰 지음, 이윤정 옮김, 김영사 펴냄“어느 저녁엔가는 손으로 벽을 짚고 서서 큰 소리로 ‘할 수 있어’라고 혼잣말했다.”혼잣말은 때로 내가 나를 돌보는 법이 된다. 생각이나 마음이 몸을 입어 목소리가 될 때 감정 역시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다.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말은 꽤 식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이라서 우리는 자주 시행착오를 겪는다. 읽는 이의 삶이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느냐에 따라 매번 새롭게 읽힐 이야기가 도착했다. 자신의 삶을 낱낱이 세어 들려주는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인생 “무조건 행복하라”는 암묵적 공식 [독서일기] 장정일 (소설가) 현대인들은 점점 자기중심적이 되고 나르시시스트가 되어간다. 그것도 아니면 우울증과 소진(burnout)에 멍들어간다. 이들은 간혹 가해자나 피해자로 뉴스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이 시대의 가장 예리하고 독창적인 사회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한병철은 〈리추얼의 종말〉(김영사, 2021)에서 이런 현상을 리추얼(Ritual)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은이가 사용하고 있는 독일어에서 리추얼은 ‘의례’ ‘의전’ ‘의식’ ‘잔치’ ‘예식’ ‘축제’ 등의 의미를 두루 포괄하고 있는데, 영어 사전에도 리추얼은 ‘의식’ ‘제사’ ‘절차’로 기후위기와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당신에게 [시사IN X 오늘의행동] 장일호 기자 기후위기에 관한 각종 데이터는 보는 이를 ‘압도’하곤 합니다. 나아지는 부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합심해 나쁜 방향으로만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기력을 느끼는 게 ‘나’만의 일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호프 자런 교수(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지구진화 및 역학센터)는 ‘지구에 희망이라는 것이 있느냐’라고 묻는 학생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물론 희망은 있지.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나는 강하게 믿는데, 네가 그 희망을 스스로 지켜갈 수 있다면 좋겠구나.(〈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김영사, 2020)”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