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다의 전쟁, 인플레 재발로 치달을까? 이종태 기자 ‘홍해-수에즈운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장 인기 있는 바닷길이다. 동아시아에서 출발하는 선박의 경우, 일단 인도양으로 나간 뒤 아라비아반도 쪽으로 북상하다 보면 바다가 점점 좁아지다가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이르게 된다(〈그림〉 참조).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의 이 해협은 홍해로 들어가는 좁은 문이다. 길고 좁은 회랑 같은 홍해를 거슬러 올라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면 지중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동쪽으로 항해하면 이스라엘과 레바논·시리아, 서쪽으로는 그리스와 이탈리아·프랑스의 항구들에 닿는다.19세기 중반 수에즈운하가 완 천안 416연대 이용후씨, 박은순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4] 신선영 기자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천안 416연대 활동가 이용후씨(50)와 박은순씨(41)는 참사 직후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50일 동안 촛불을 들었다. 지역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벌이고, 유가족들을 응원하는 동조 단식 참가자들을 꾸리기도 했다.“청소년 지도사를 하면서 오랫동안 아이들과 가까이 지냈어요. 천안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세월호를 탈 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매년 추모 행사를 하지만 2021년에 했던 ‘게릴라 가드닝’이 기억에 남아요. 천안에 독립군 폄하가 일제 강점 ‘합법화’인 까닭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20세기 일본은 우리를 두 번 점령했다. 한 번은 대한제국에 대한 식민지 강제 점령이다. 다른 한 번은 대한민국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배제한 것이다. 일제에 의한 2차 점령이나 다름없다. 일제가 저지른 식민지 강점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광복 78주년이 된 오늘날까지 친일 논쟁으로 나라가 시끄럽다.선조들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 강제 점령에 저항했다. 을미의병에서 시작해 신흥무관학교로 이어진 투쟁으로 3·1운동 이후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봉오동 전투는 청산리 전투와 대전자령 전투와 함께 무장투쟁 3대 고속도로 아스팔트 위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극한 기후, 극한 노동⑤] 변진경 기자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연곡졸음쉼터 주차장에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한국도로공사 로고가 박힌 조끼와 모자를 착용한 차미애씨(53)가 동료들과 함께 차에서 내려 잰걸음으로 쉼터 여기저기를 쓸고 닦았다. 쓰레기통에서 포대를 꺼내 묶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화장실에 세제를 뿌려 솔로 문지르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주차장 아스팔트 위 오물을 쓸어 담았다. 지저분하던 졸음쉼터가 말끔해지자 차씨와 동료들은 다시 차에 올라타 다음 작업장인 입장졸음쉼터로 향했다. 아스팔트 열기가 가득한 7월7일에도,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지던 7월11일에도 울산으로 간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1년, 그곳에 미래가 있었다 울산/글 김영화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차창 밖으로 아파트 단지가 쉴 새 없이 휙휙 지나가더니 어느 순간 풍경이 달라진다. 공장 굴뚝이며 조선소 크레인들이 울산대교 너머로 솟아 있다. 바닷가 선적 부두에는 자동차 수천 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반도 동남쪽 끝자락, 울산 동구로 들어가는 길목이다.공업도시를 채운 건 외지인들이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세계적 규모의 조선소 두 곳이 있었다. 타 지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 아파트와 학교가 하나둘 생겨났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0년대 조선업 불황이 시작되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한국의 첫 인정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은 명백한 불법” 정희상 기자 한국인이 즐겨 찾는 베트남 중부 휴양도시 다낭에서 12㎞ 떨어진 꽝남성 디엔반현에 퐁니·퐁넛이란 마을이 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2월12일 오전, 이 마을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수색 정찰 도중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에게 “빵을 나눠줄 테니 모여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이 모이자 일제히 사격을 가해 74명이 즉사했다. 희생자는 대부분 부녀자와 어린이 등이었다.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 중에는 8세 소녀 응우옌티탄도 끼어 있었다. 올해 63세인 응우옌티탄 씨에게는 그날의 참상 미얀마 쿠데타 2년 ‘침묵시위’로 싸운다 양곤·마 감 (필명·미얀마 독립언론 기자)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2년이 지났다. 예전만큼 반군부 시위는 격렬하지 않다. 국제사회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그사이 미얀마 군부는 ‘군정 체제 굳히기’에 돌입했다. 미얀마 시민 저항은 이대로 실패한 걸까. 미얀마의 마 감 기자가 〈시사IN〉에 보내온 아래 기사는 국제사회가 가진 의구심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올해로 10년 차 기자인 그는 미얀마의 한 독립언론에서 쿠데타로 피폐해진 현실과 시민 저항을 보도했다. 군부에 맞서 ‘저항의 불씨’를 이어가는 미얀마 시민들의 이야기를 전한다.미얀마 쿠데타가 일어난 지 2년째 되던 지구를 위해 달력을 분해하세요 장일호 기자 새해 첫 주말에 하기 좋은 일은 뭘까? 지난해 달력을 처분하려다가 주저하며 내려놓았던 경험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종이로 분류하면 될 것 같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재활용 분리배출은 ‘제대로’ 하려면 꽤 번거롭거나 까다롭다. 달력만 해도 그렇다. 달력을 묶고 있는 철사 스프링을 분리하는 게 첫 번째 난관이라면, 종이도 다 같은 종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팅 여부 등을 꼼꼼히 따져보면 사실은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인 경우가 더 많다.버려진 철사를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와이어 아티스트 좋아은경(활동명)씨에게 연말연시는 재료를 수급하 결코 홀대받을 수 없는 의병과 독립의 깃발 김형민(SBS Biz PD) 나폴레옹이 유럽을 호령하던 즈음 스페인은 한심한 왕가의 지배하에 있었어. 카를로스 4세(1748~1819)는 왕비가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것도 몰랐고, 되레 그 남자를 요직에 기용하며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만든 멍청한 남자였다. 왕비의 정부(情夫) 고도이는 나폴레옹과 이런 거래를 하지.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영국과 교역하는 포르투갈이 괘씸하시죠? 스페인이 길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대신 포르투갈을 나눠 가지시지요.” 이유는 간단했어. “포르투갈을 3등분하여 스페인과 프랑스가 나눠 가지고 3등분한 땅의 하나를 고도이와 그의 가족에게 공국 물에 잠긴 서울, 컨트롤타워는 어디에 있었나 변진경 기자 재난이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폭우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비가 쏟아부었다. 중부지방, 그중에서도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이 특히 심했다. 8월8일 하루 동안 내린 비의 양이 서울 동작구 381.5㎜, 서초구 354.5㎜, 금천구 342.5㎜, 강남구 326.5㎜를 기록했다. ‘사상 최고’ 기록이 여러 개 경신됐다. 이번 폭우로 전국에서 사망 11명, 실종 8명, 부상 18명(8월11일 기준) 등의 인명 피해가 났다. 이 가운데 사망 6명과 실종 3명은 서울에서 발생했다.서울의 지표면 절반 가까이가 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땅이다. 서울 사형 집행 강행한 미얀마 군부, 그 다음 단계는? 김영화 기자 미얀마 인세인 교도소에서 연락이 온 건 7월22일 오전이었다. 사형수 코 지미에 대한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지난해 10월23일 체포된 이후 그의 소식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가족들은 8개월간 지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피신 중인 아내 닐라 테인 씨를 대신해 지미의 여동생이 그날 오후 황급히 교도소를 찾았다. 죄수복 차림의 지미가 그곳에 있었다. 다만 쇠창살이나 유리창이 아니라 줌(Zoom) 화면 너머였다.1988년 8월 미얀마 민주화 항쟁을 주도한 ‘88세대’의 학생 지도자였던 초 민 유를 미얀마에서 ‘지미’라고 부른다. 걱정하 ‘3대 혁명’ 못지않은 아이티 노예들의 투쟁 김형민(SBS Biz PD) 카리브해에 있는 히스파니올라섬. 이 섬의 이름을 처음 지은 사람은 다름 아닌 신대륙의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어. 1492년의 첫 항해에서 그는 이 섬을 발견했고 이후 ‘작은 스페인’이라는 뜻의 라틴어 히스파니올라섬으로 불리게 되지. 17세기 이후 프랑스가 히스파니올라섬의 서쪽 3분의 1을 장악했고 프랑스 사람들은 이 지역을 생도맹그라고 불렀어(이곳이 현재의 아이티공화국이다). 프랑스의 지배하에서 생도맹그는 번창했다. “생도맹그의 플랜테이션 작물은 대서양 무역을 통해 유럽에 수출됐는데, 설탕과 커피의 경우 유럽 전체 소비량의 각 생명을 키우고 도시를 살리는 폭탄 장일호 기자 산수유·개나리·목련·벚꽃·라일락·철쭉이 폭죽처럼 동시에 피고 지는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만발한 꽃을 보며 시야가 환해지는 것도 잠시, 이 계절의 이름을 봄이라 불러도 좋을지 마음에 그늘이 집니다. 개화 순서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은 기후위기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꽃이 순차적으로 피지 않자, 꿀벌들 역시 지속적으로 꽃가루를 얻는 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그 어느 때보다 현화식물의 다양성이 요구됩니다. ‘게릴라 가드닝’은 이를 위한 실천 중 하나입니다. 게릴라 가드닝은 1973년 뉴욕에 거주하는 화가 리즈 크리스티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베트남의 ‘붉은 나폴레옹’을 아시나요 김형민(SBS Biz PD) 전쟁의 천재를 꼽자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을 들 수 있을 거야. 이후 ‘나폴레옹’의 이름은 여러 나라에서 군사 지도자를 높이는 표현으로 사용됐다. 공산 진영에서도 ‘붉은 나폴레옹’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이가 두 명 있다. 먼저 등장한 붉은 나폴레옹은 소련군의 젊은 원수 투하쳅스키였어. 탁월한 전술로 백군(白軍) 즉 러시아 제국 재건을 외치는 구세력을 족족 무찌른 명장이었지. 또 하나의 붉은 나폴레옹은 지구 반대편에서 등장한다. 베트남의 보응우옌잡(1911~2013).동방의 붉은 나폴레옹은 어떤 면에서 원조를 넘어서는 위업을 자랑한다. 미얀마의 봄, 혁명의 우먼파워를 비추다 메리초 (필명·미얀마 시민기자) 메리초 씨는 미얀마 동북부 샨주에서 활동하는 기자다. 그는 쿠데타 발발 이후 시민기자로 뛰어들었다. “군이 기자들을 탄압한 이후로 누구도 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군부의 만행을 취재해서 이 혁명에 함께하고 싶다.” 전국 곳곳에서 무장투쟁이 확산되자 시민방위군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거기서 그는 수많은 여성 방위군들을 만났다. 최전선에 서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여성 방위군들의 역경과 투쟁을 조명해야겠다고 다짐한 까닭이다. 아래는 메리초 씨가 여성 게릴라군들을 취재해 쓴 글이다.미얀 [미얀마 쿠데타 300일] 여기서는 여전히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 마 감 (필명·<프런티어 미얀마> 기자) 마 감(29) 씨는 2013년부터 미얀마의 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이후, 그는 소수민족 지역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와 반인륜 범죄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아웅산 수치는 2017년 로힝야족 학살을 방관하고 침묵했다. 주류 언론에서는 정부를 비판하기 어려웠다. 그는 소수민족 지역 기반의 매체 〈힌타르 미디어〉, 독립언론 〈미지마〉 〈프런티어 미얀마〉 등으로 옮겨 미얀마 국경에서 벌어지는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탄압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2021년 2월1 네 원수를 사랑하라지만 ‘그를 위해’ 기도하기는 어렵구나 김형민(SBS Biz PD) 지난 1년간 아빠는 네게 외국과 한국에서 일어난 범죄와 범죄자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오늘 아빠는 우리 현대사 최대의 범죄자, 아빠가 살아오면서 가장 증오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이며, “내가 그를 죽인다 해도 양심의 가책은 없을 것 같은” 어쭙잖은 살의(殺意)를 품게 만들었던 악한 하나를 네게 꼭꼭 씹어 알려주고자 한다. 짐작하다시피 그 이름은 전두환이야. 성경 잠언 6장 16절에 이런 구절이 나오지. “여호와께서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교만한 눈과, 거짓말하는 혀와, 죄 없는 자를 죽이는 손과, 악한 계획 [대선 뒷담화] 김종인 주변이 분주하고, 양정철이 여의도에 오고 김은지 기자 2022년 3월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주요 대진표도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 대선 시계가 빨라질수록, 선거는 뉴스의 블랙홀이 된다. 그런 것치고는 마음을 정하지 않은 유권자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선거다.이럴 때일수록 현장을 뛰는 기자들의 바지런함이 필요하다. 〈시사IN〉 정치팀 기자들이 대선까지 매주 ‘대선 뒷담화’를 나눈다.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각 대선주자들의 표정과 속내를 풀어헤쳐, 독자들에게 다양한 ‘선택 미국과 탈레반의 ‘2라운드’, 적과의 동침 가능할까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적과의 동침은 가능할까? 미국이 8월31일을 기해 20년째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을 점령해온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킨 뒤 지긋지긋하던 아프간 전쟁에서 완전히 손을 뗀 모양새다. 하지만 타도 대상이던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간을 재장악한 뒤 미국은 탈레반 새 정부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지 딜레마에 빠졌다. 현재 미국은 아프간 내 반미 테러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서도 현실적으로 탈레반 정부와 협력관계를 구축하지 않을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이다.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미국인과 아프간 조력자들의 대피 과정에서 탈레반이 미얀마 군부의 끝없는 위협, 결국 무기 든 시민들 제이 파잉 (미얀마 사진기자 모임(MPA) 편집장) 제이 파잉 씨(35)는 미얀마 사진기자 모임 ‘MPA(Myanmar Pressphoto Agency)’의 편집장이다. 사진기자 17명이 소속된 이 비영리 매체는 지난 넉 달간 미얀마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쿠데타 시위 현장을 최일선에서 기록했다. 30만명이 팔로하는 MPA의 페이스북에는 쿠데타 초기 대규모 집회부터 총격 현장, 게릴라 시위 등이 매일 업로드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MPA 기자 2명이 양곤과 만달레이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제이 파잉 씨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릴 것이다”라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