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꼼수 막은 한·일 법률가의 승리 정희상 기자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무려 13년8개월이나 걸렸다. 최근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 재판 거래 의혹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소송사건이다. “상식의 승리, 한·일 양국 법률가의 승리, 동아시아 일제 피해자에게 큰 희망을 준 판결.”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 뒤늦은 재심과 무죄 그리고 비운의 가족사 정희상 기자 1967년 3월22일 이수근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이 판문점을 넘어 귀순했다. 그는 1953년 휴전 이후 당시까지 가장 거물급으로 꼽힌 귀순자였다. 그해 5월3일 치러질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정희 후보에게 그의 귀순은 큰 호재였다. 중앙정보부(중정)는 그를 박정희 정권의 치적과 체제의 우월함을 알리는 선전 도구로 이용했다. 이후 중정은 이수근에게 ‘정세판단관’이라는 1급 직책과 자동차와 집을 내주며 환대했다. 또 서울에 있는 그의 처가 쪽 사람들도 찾아내 인사시켰다. 1924년 황해도 서흥 출생인 이수근은 해방 후 개성에... “형제복지원은 법의 사각지대였다” 정희상 기자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은폐된 억울한 죽음이 있다.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이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발생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일대에서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는 과정에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1975년 12월 내무부 훈령 410호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 법적 근거였다. 1986년 기준 전체 수용자 3975명 가운데 경찰을 통해 입소한 인원이 3117명, 구청을 통해 입소한 인원은 25... ‘꼼수 쓰는’ 전두환씨가 법정에 서야 하는 까닭 정희상 기자 전두환씨를 법정에 반드시 세우고자 하는 이가 있다.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다. 조비오 신부는 ‘5월의 사제’다. 1980년 광주 계림동성당 주임신부였던 조 신부는 시민수습위원으로 앞장섰다. 1980년 5월26일 오전 9시 광주 지역 민주 인사들과 맨몸으로 계엄군의 탱크를 막아낸 ‘죽음의 행진’에 참여한 주인공이다. 그해 5월 이후 조비오 신부는 구속 기소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조비오 신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5·18의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2016년 9월 선종하기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한... “내 손으로 안두희를 응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희상 기자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 택시 운전기사 박기서씨(71)가 살고 있다. 박씨는 35년 전 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한 번도 이사한 적 없이 부인과 세 자녀를 키우며 가정을 꾸려왔다. 운전을 천직으로 삼아 트럭 및 버스 운전기사 20년, 택시 운전기사 15년을 합쳐 35년 동안 ‘무사고’ 외길을 걷고 있다. 겉보기에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왔다. 정의감만은 남달랐다. 1996년 10월23일 박씨는 운전대 대신 ‘정의봉’을 잡았다. 그는 이날 정의봉을 들고 안두희를 찾아갔다. 육군 포병 소위이자 주한 미군 방첩대... 힘 커진 군 정보기관, 그대로 두면 일낸다 정희상 기자 윤석양. 28년 전인 1990년 육군 이등병 신분이었던 그는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바꾸게 만든 주인공이다. 군 입대 직후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가 ‘망원(스파이·프락치)’ 활동을 강요받다가 양심의 가책으로 보안사 민간인 사찰 문건을 들고 나와 폭로했다. 세상이 뒤집히고 보안사는 기무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기무사가 다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지원사)로 바뀐다. 기무사 개혁 과정에서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이 관심을 끌고 있다. 윤석양씨는 그동안 언론과 인터뷰를 꺼렸다. ... ‘장자연 사건’으로 [조선일보]와 싸우는 전 경찰청장 정희상 기자 검찰이 9년 만에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들어간 가운데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입을 열었다. 2009년 장자연 사건 당시 그는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 수사 지휘 라인에 있었다. 경찰은 2009년 3월 분당경찰서에 전담 수사본부를 꾸린 뒤 경기지방경찰청 수사 인력을 대거 투입했다. 하지만 초기부터 ‘부실 수사’ ‘축소 수사’ 논란이 일었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조 전 청장도 경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했다. 경기경찰청장 시절 ‘장자연 사건’을 수사 지휘한 배경은? 2009년 장자연씨가 자살하자 처음에는 분당경찰서에서 단... 대한민국은 왜 ‘흑금성’을 버렸나 정희상 기자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특수공작원 출신 박채서씨는 ‘흑금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특수공작 일대기를 담은 영화 〈공작〉이 개봉되었다. 2권짜리 책 〈공작〉도 출간됐다. 저자는 박씨를 원 〈시사저널〉 때부터 취재했던 김당 〈UPI 뉴스〉 선임기자다. 박씨는 원래 국군정보사령부 대북 공작관이었다. 박씨의 공작 능력에 주목한 국정원이 그를 스카우트했다. 그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에 위장 침투해 1997년 6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까지 만났다. 그를 만나 파란만장한 생애와 대북 특수공작 활동의 이면을 들었다. 박씨는 충북 ... 한반도 평화 향한 절묘한 궁합 정희상 기자 우리는 전쟁의 논리가 빗발치는 한반도를 떠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산다. 그 숙명을 부여안고 지난 30여 년간 전쟁과 평화 문제를 민주적 공론장으로 불러내며 대안을 제시하는 외길을 걸어온 학자가 있다. 이삼성 한림대학교 교수다. 그의 문제의식 한가운데는 늘 ‘미국’이 관통한다. 미국 예일 대학 박사과정을 마친 1989년 〈광주민중봉기와 미국의 역할〉이라는 350쪽짜리 논문을 펴낸 이후부터다. 광주와 미국에 관한 글쓰기에 이어 그가 주목한 것은 한반도 평화의 아킬레스건이 된 북한 핵 문제였다. 그가 올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군 정보기관의 대담한 ‘과거 회귀’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독자들은 군사정권이 지난 뒤에도 군 정보기관이 언론을 ‘사찰’한다고 하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사찰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자가 직접 당한 경험이 있다. 군 기무사령부 소속 영관급 장교가 2~3명씩 〈시사IN〉 사무실 근처로 찾아와 몇 차례 만났다. 기자는 오랫동안 김훈 중위 사건을 비롯한 군대 내 인권유린 실태를 추적 보도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 관계인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 일가의 군납 비리 의혹도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아마 이런 보도가 군으로서는 못마땅했던 것 같다. 물론 군사정권 시절처럼 ... 젠더 해방 외치는 마르크스주의자 정희상 기자 올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는다. 세계 각국이 그를 소환하고 있는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7월19일부터 나흘 동안 노동자연대가 주최하는 ‘맑시즘 2018’ 포럼이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에서 열렸다. 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트랜스 여성’이자 영국 대학노조 활동가인 로라 마일스 씨(67)가 방한했다. 그는 영국 최초로 노동조합 전국 집행위원으로 선출된 트랜스젠더이다. 지난 1월에는 그가 쓴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책갈피)이 출간됐다. 이번 포럼에서 ‘트랜스젠더, 성소수자의 차별과 해방’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1987 비둘기’ 날린 어느 민주 교도관 정희상 기자 ‘민주 교도관’으로 퇴직한 뒤 ‘민주 경비’로 인생 2막을 살고 있었다. 한재동씨(71). 지난해 개봉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에서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의 실제 모델이다. 그는 2004년 교도관을 정년퇴직했다. 지금은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출근한다. 근무처는 경비실. 그를 만나 ‘1987 비둘기(감옥에서 몰래 보내는 편지)’부터 물었다. “부영이 형이 자료를 넘겨주면서 ‘재동아, 일이 잘못되면 큰일 난다. 발각되면 너나 나나 죽을 수도 있어. 무덤까지 가지고 가자’고 했다. 긴장... 기사 후~폭풍 정희상 기자 7월14일 신선영 사진기자와 인턴 기자들이 퀴어 퍼레이드를 취재한 사진과 동영상이 〈시사IN〉 페이스북 계정(faccebook.com/ sisain)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퀴어 퍼레이드를 반대하는 개신교의 탑차에서 찬송가를 연주하며 시위대를 향해 설교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에 댓글이 많이 달렸다. ‘십자가 앞세워 억지 부리지 마라’ ‘혐오는 예수님 방법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많았다. 김세영 인턴 기자가 올린,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무지개 현수막을 건물에 걸어 퀴어 퍼레이드를 응원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홍보 부스 동영상도 ‘좋아요... 독자와의 수다 정희상 기자 독자 번호: 112040704 이름: 정원배(47) 주소: 강원도 강릉시 강원도 강릉에서 아내와 함께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정원배씨는 8년째 〈시사IN〉을 구독하고 있다. 원 〈시사저널〉 독자였다가 독립 언론을 지향하며 창간한 〈시사IN〉으로 ‘갈아탔다’. 오랜 독자로서 그가 꼽는 〈시사IN〉의 장점은 일관성이다. “균형 잡힌 시각과 팩트 중심으로 보도하면서도 주요한 사회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뤄주는 꾸준함이 〈시사IN〉의 매력이다.” 정씨는 얼마 전부터 〈시사IN〉과 전자책을 동시에 구독하고 있다. 강릉에는 책이 매주 목요일이나... 기사 후~폭풍 정희상 기자 김종필 전 총리의 죽음으로 지난 기사까지 다시 주목받았다. 2016년 11월 김형민 PD가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 쓴, 김 전 총재와 조선 시대 유자광을 비교한 기사이다. 〈시사IN〉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 sisain)에 다시 소개된 ‘쓰러졌다가 벌떡 일어나 역사의 죄를 짓는다’ 기사가 5만여 명에게 도달했다. ‘Sang Kim’ 독자는 “참 기가 막힐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닮은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역시 허언이 아니로군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김 PD의 연재 코너는 에버그린 콘텐츠 (꾸준히 소... “대법원은 국가 범죄의 최종 완성처” 정희상 기자 전남 진도에서 양봉업을 하는 박동운씨(73)는 김명수 대법원장 앞으로 장문의 탄원서를 보냈다. “법원이 죄 없는 우리 가족에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씌워 일차적으로 죽이고,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오자 양승태 대법원이 2차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일부러 질질 끌어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기각해 또 죽이고 있으니 이를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진도 자택으로 찾아간 취재진에게 박씨는 대법원장 외에도 지난해 여름부터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국민권익위원장 앞으로 보낸 각기 다른 수많은 탄원서 더미를 방바닥에 펼쳐 보였다. “저와 우리 가족은 19... 23년 전 ‘그때 그 사람들’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1995년 봄, 홍준표 검사(전 자유한국당 대표)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당시 그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안기부에 파견근무 중이었다. 기자는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과정에서 경호 등을 담당한 한국계 야쿠자들을 만나 취재했다. 야쿠자들이 겪은 한·일 회담 뒷거래 의혹을 취재해 보도한 뒤였다. 한 일식집에서 마주한 홍 검사는 “정 기자, 김종필씨가 일본에 숨겨놓은 부동산 소재지를 나한테 넘겨주소”라고 요구했다. 그는 “김종필 같은 낡은 구태 정치인을 추방해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는... 삶이 힘겨울 땐 F조 순위표를 꺼내 봐요 정희상 기자 드라마였다. 각본이 없었기에 감동과 여운은 더욱 진했다. 국내외 누리꾼들은 FIFA 랭킹 1위 독일을 이긴 한국 축구에 열광했다. 16강 진출보다 더 값진 승리라거나 독일을 이긴 거면 8강에 진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댓글이 넘쳤다. 특히 독일전 승리의 수훈 선수인 조현우 골키퍼와 첫 골을 넣은 김영권, 두 번째 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에 대한 ‘댓글 헹가래’가 돋보였다. “살다 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골키퍼를 보다니…” “김영권은 까방권 5년” 등등. 독일 대표팀은 80년 만에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며 유구무언 신세가 되었다. ... 북한군으로 지목된 5·18 최후 결사대 정희상 기자 1980년 5월27일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한 32명의 광주 시민군 기동타격대원 대부분은 구두닦이·재수생·일용 노동자 등이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은 계엄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평생 트라우마에 신음하며 살고 있다. 당시 시민군 제1기동타격대 소속이던 양동남씨(58)는 그런 ‘무명의 전사’들을 대표한다. 양씨를 옛 광주 상무대 자리에 있는 5·18구속부상자회 서부지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5·18 당시 참여한 계기는? 재수생으로 학원에 다니던 중 5월19일 계엄군에게 살해당한 시신 2구를 보고 분노를 참지 ... 전남기계공고 3학년 서정열의 ‘38년’ 정희상 기자 서정열씨(57)는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지금도 수면제 없이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기계공고 3학년이었다. 서씨는 1980년 5월28일 자취방으로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끌려가 육군 31사단 영창에 갇혀 10여 일간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끝나지 않는 5·18 트라우마의 산증인인 서씨를 광주 자택에서 만났다. 5·18 때 고등학생이었는데? 전남 벌교가 고향인데 중학교 졸업 후 광주 북구에 있는 전남기계공고로 유학을 와서 학교 근처의 방 7개짜리 자취집에서 생활하다 5·18을 맞았다. 특별히 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