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뉴스는 없다더니… 정희상 기자 박정희·전두환 두 군사정권 시절 언로는 막혀 있었다. 바른말 하는 기자는 고문과 구속 끝에 현장에서 쫓겨났다. 마침내 1985년 6월, 군사정권 아래서 해직된 기자들이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를 꾸리고 ‘말다운 말의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다. 〈말〉지는 그렇게 창간됐다. 1986년 〈말〉지 기자들은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이 일로 3명이 감옥에 갔다.나는 선배들이 투쟁으로 열어놓은 공간을 비집고 1989년 〈말〉지에 입사해 1992년까지 현장을 누볐다. 이렇다 할 독립 언론 매체가 드물던 그 무렵 〈말〉지는 민주화 <남산의 부장들>과 김형욱 암살 사건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2007년 가을, 1970년대 중앙정보부(중정)가 양성한 북파 특수공작원 조박씨가 편집국을 찾았다. 그는 기자에게 1억원대 현금이 입금된 통장을 보여줬다. 입금자는 국가정보원(원장 김만복)이었다. 조씨는 2005년 4월, 〈시사저널〉 기자로 있던 나에게 “내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파리 외곽 양계장 파쇄기에서 암살했다”라고 고백해 파문을 불렀던 인물이다. 1979년 봄부터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라인의 부름으로 김형욱 암살 공작을 기획한 뒤 파리 외곽의 한 양계장에서 파쇄기를 통해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2005년 국정원은 이른바 로스앤젤레스 총영사, 야생마가 되다 정희상 기자 그랜드캐니언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품은 미국 서부 네바다주에는 국립공원 내에서 뛰노는 3000여 마리의 야생마가 있다. 야생마에게 일일이 고유 이름을 지어주고 보존한다. 지난 1월8일 네바다주 공원관리국이 리노 지역 파크웨이 일대에서 뛰노는 신생 야생마에 처음으로 한국인 이름 ‘Wan Joong(완중)’을 명명해 화제다. 완중은 김완중 로스앤젤레스 총영사(57·가운데)다.‘완중 야생마’에는 사연이 있다.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3월 말 미군과 중공군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매향리 일대에서 휴전협상을 앞두고 치열한 전투 “유신의 심장 쏜 뜻을 왜곡하지 말라” 정희상 기자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26 사건 전 40일을 다뤘다. 박정희 대통령을 정점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중정) 부장과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김형욱 전 중정 부장 간의 권력 암투를 재구성했다. 영화는 얼마나 사실에 기반하고 있을까? 10·26 사건 평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자는 1990년대 초부터 ‘김재규와 10·26 사건’을 심층 취재해온 바 있다. 김형욱 제거 사건도 취재 목록에 있었다. 이 사건 취재기를 모아 지난해 〈팩트와 권력〉(2019)이라는 책을 썼다.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부장의 국선 변호 “1980년 그때 하여튼 무슨 사태가 있었죠?” [말말말] 정희상 기자 “1980년 그때 하여튼 무슨 사태가 있었죠?”2월9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모교인 성균관대 앞 분식집에서 한 말. 이 발언으로 황 대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에 휩싸여. 그는 자신이 말한 사태는 ‘휴교령’을 의미한다며 오히려 폄훼 지적에 법정 대응을 경고하기도. 전두환 신군부가 ‘휴교령’을 왜 내렸는지는 알고는 있겠죠?“나도 고발하지. 나는 왜 뺐는지 모르겠네.”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와 〈경향신문〉 칼럼 담당자를 서울남부지검에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실이 알려진 2월 기자들의 시선 정희상 기자 역사 속 오늘1894년 2월15일 전라북도 고부에서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돼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다. 도화선은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이었지만 조선 봉건사회 전반의 억압적인 구조에 저항하는 전국적 농민운동으로 확대됐다. 세 차례에 걸친 봉기를 통해 동학농민혁명군은 평등·자유·자치의 원칙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의 수립을 목표로 내걸었다. 초반에는 농민군이 관군과 싸워 이겼지만 기세에 놀란 조정과 양반계층은 외세를 끌어들여 토벌에 나섰다. 이로 인해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동학군은 일본군에 패했다. 동학농민혁명의 맥은 일제강점기 독자와의 수다 정희상 기자 독자번호:117010153이름:정인승(35)주소:전북 군산시 장산로“군산은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군산시 소룡동에 사는 정인승씨는 요즘 지역 근황부터 전했다. GM 군산공장 폐쇄조처에 이어 전라북도 최초로 코로나19 확진 환자까지 발생해 한마디로 지역민들은 ‘죽을 맛’이라고 한다. 정씨는 울산의 한 정유회사에 첫 직장을 잡았다가 3년 전 고향 군산에 있는 저유소로 파견 나와 근무하고 있다. 저유소란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정유회사의 중간 유류 저장시설이다.〈시사IN〉과의 첫 인연은 후원독자로 맺었다. 그러다가 “일반 인쇄 매체 기사 후~폭풍 정희상 기자 변진경·나경희 기자의 ‘아동 흙밥 보고서’ 기사가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불렀다. 〈시사IN〉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sisain)과 인스타그램 계정(instagram.com/sisain_editor)에서 관련 기사가 모두 호평받았다. ‘먹어도 먹는 게 아닌 아동 흙밥 보고서’는 아이들의 식사권과 건강권을 짚었고, ‘배고픈 아이들 위한 밥 거점이 필요하다’는 대안을 제시해 “이게 진짜 기사다” “이 기사를 읽고 눈물이 났다” 등 평가를 받았다. 특히 ‘대치동 아이들이 뭘 먹는지 아시나요?’ 기사에는 페이스북에서만 댓글이 “5·18 행불자 가족 전원 DNA 채취할 기회 줘야” 정희상 기자 “누구든 5·18 행방불명자(행불자)와 아픔을 나눌 순 있어도 그 한을 같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남동에 사는 정호화씨(48)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80년 5월20일 오후 아버지와의 마지막 순간을 잊지 못한다.그의 아버지 정기영씨(당시 43세)는 당시 광주시 중흥동에서 어머니와 ‘왕대포집’을 운영했다. 마침 그날 가게 음식 조리용 석유곤로에 기름이 떨어지자 아버지는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아들 호화가 뒷자리에 태워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석유를 사온 뒤 태워주마” 하고 아들을 달랜 뒤 집주인 아저 군사반란 피해자는 아직도 고통받는다 정희상 기자 트라우마는 40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광해 예비역 중령은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반란군 진압 진영이던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전속부관(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는 그날 밤 육군본부를 기습한 반란군(1공수여단)한테 총격을 받고 머리와 얼굴, 복부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김씨는 현재 서울 강동구 둔촌동 중앙보훈병원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1979년 12월12일 저녁 7시 김광해 중령은 퇴근했다가 ‘총장 유고’ 소식을 듣고 육군본부(육본)로 달려갔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납치 평화통일 외치다 목숨 잃은 언론인 정희상 기자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조용준씨(85)는 1961년 12월22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그는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한 형 조용수(〈민족일보〉 사장)의 시신을 인계받았다. “아침에 형에게 면회 갔더니 부모님을 잘 부탁한다고 당부하더라. 이틀에 한 번꼴로 면회를 다녔는데 그 말이 형의 마지막 유언이 될 줄 몰랐다.”면회를 마치고 나온 용준씨는 12월21일 오후 4시 라디오로 형의 사형 집행 소식을 들었다. 당시 조용수의 나이 31세. 〈민족일보〉 창간을 문제 삼아 사형까지 시킨 박정희 쿠데타 세력에 대한 분노가 컸다. 이튿날 전두환 반란군에 맞서다 스러져간 군인 김오랑 김해·정희상 기자 1979년 12월12일 밤,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있는 특전사령부. 2층 집무실에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그는 휘하 부대에 반란군을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12월13일 0시30분, 중무장한 군인 10여 명이 사령관실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왔다. 맨 앞에 선 이는 12·12 쿠데타에 가담한 특전사 3여단(최세창 여단장) 휘하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이었다. 이들은 사령관실에 붙은 비서실로 밀고 들어갔다. 10여 분간 콩 볶는 듯한 M16 소총 소리가 건물을 뒤흔들었다. 12월12일 오후 6시30분 한남동에 있던 정 기자들의 시선 정희상 기자 이 주의 인물문재인 대통령은 12월5일 추미애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지 52일 만이다. 추 후보자는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이제 시대적 요구가 됐다.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그는 ‘헌정사상 최초’ 기록이 여러 개다. 판사 출신 첫 여성 의원, 최초의 지역구 5선 여성 의원이다. 별명은 ‘추다르크’. 여당에선 검찰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라는 평가다. 자유한국당은 ‘사법 장악 의도’라며 인사청문회를 벼르고 있다.이 주의 보도자료직장 내 괴롭 독재의 종언 예고한 ‘여공들의 투쟁’ 정희상 기자 “보고 싶은 엄마! (중략)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 많은 회장은 미국으로 도망가서 없고 사장들은 자기들만 잘살겠다며 지금 우리 근로자들을 버렸습니다. 회사 문을 닫겠다며 폐업 공고까지 내버렸답니다. 그러나 저희 근로자들은 비록 힘은 약하나 하나같이 똘똘 뭉쳐 투쟁하고 있습니다. (중략) 준곤이는 이 누나가 대학까지 공부를 가르쳐주겠다고 엄마가 대신 말 잘 해주세요. 이 누나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회사가 정상화되면 꼭 찾아뵐게요. (중략) 1979년 8월7일 서울에서 경숙 올림.”1979년 8월11일 새벽 2시께 유혈 참사 막은 ‘죄’로 고문받고 파면되고… 정희상 기자 이향진씨(62)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목포 지역 치안 책임자였던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둘째 딸이다. 그는 지금도 39년 전 아버지가 고문당하던 보안사 근처에 속옷을 전달하러 갔다가 받은 충격으로 불안증에 시달린다.전두환 신군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직후 1980년 6월 초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을 보안사로 연행했다. 90일간 감금하고 고문했다. 5·18 시위에 강경 대처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신군부는 그를 파면하고 군법회의에 회부했다. 계엄보통군법회의는 그에게 징역 1년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90일 동안 온 역사의 진보를 믿지 못하겠는가 정희상 기자 유신정권 시절, 동학혁명을 무지렁이 백성들의 난동 정도로 해석되는 ‘동학난’이라 가르치고 배웠다. 그러다 대학 시절 통념을 깨는 역사철학 책을 접했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외교관이던 에드워드 핼릿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그의 다른 저서 〈러시아 혁명〉도 잊히지 않는다.‘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저자의 정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역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으로든 자신의 시대적 위치를 반영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내가 배운 역사는 독재자들의 입지를 위해 역사를 은폐하고 조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승만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원폭 피해자 2세 무덤을 지켜주세요 정희상 기자 “한국 원폭 피해자에게 김형률은 노동계의 전태일 열사 같은 존재다.” 10월23일 서울시의회가 주최한 ‘원폭 피해자 지원방안 모색 정책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강제숙씨(55)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합천평화의집 운영위원장과 원폭 피해 2세 환우들을 지원하는 김형률추모사업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강원도 태백산 자락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차별 문제를 다루는 사회학을 공부했다. 1995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할머니 그림전’을 열기도 했다. 검찰이 셀프 개혁한다고?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8년 전 〈검사와 스폰서, 묻어버린 진실〉이라는 단행본을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와 공저로 펴냈다. 부산 지역 건설업자 정용재씨가 1980년대부터 20여 년에 걸쳐 부산·경남 지역 검사들은 물론이고 서울로 원정까지 다니며 이른바 ‘스폰서’ 노릇을 한 과정에서 겪은 내용을 담았다. 검사 개인의 일탈이 빚은 개인적인 비리가 아니었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검찰 비위에서도 확인됐다. 정씨는 자신이 접대한 검사가 무려 200여 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상습적으로 접대를 받은 전·현직 검사 56명의 실명을 책에 공개했다. 검사장 기자들의 시선 - 김복동 할머니 정희상 기자 이 주의 ‘어떤 것’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이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여성 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일대기를 담았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했던 27년에 걸친 인생 역정이 영화에 담겼다. 전 세계를 돌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한 김복동 할머니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한다. 김 할머니가 죽는 순간까지 원했던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 의미, 피해자가 지키고자 했던 ‘인간 본연의 가치와 존엄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독자와의 수다 정희상 기자 독자 번호:118010057이름:송인선(35)주소:대전시 중구대전에서 충북 청주로 출퇴근하는 송인선씨는 결혼한 지 1년이 안 되었다. 반도체 공장에서 나오는 환경폐기물 수거 업체에서 근무한다. 최근 아내가 임신하면서 무거워진 어깨를 더욱 실감한다. 한때 언론인의 길을 걷고 싶어 한 매체에서 인턴 기자 생활도 했다. 몇 달 해보니 ‘적성에 맞지 않는다’ 싶어 환경 관련 사업체로 전직했다. 인턴 기자 시절 〈시사IN〉을 처음 접하고 구독을 시작했다.생업에 바쁘다 보니 〈시사IN〉을 제때 읽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서야 읽는다는 송씨는 난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