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월의 시는 왜 슬픈가 새창
- 얼마 전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각각 한국과 프랑스의 샤먼(무당)인 성미와 콜레트의 삶과 우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샤먼로드>라는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샤먼축제’ 때 처음 만난 둘은 콜레트가 한국으로 와 내림굿을 받게 되는 과정에서 서로 교감하고 위로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이후 ‘신엄마’와 ‘신딸’로 맺어진 그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샤먼으로, 또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뭔가 처연하면서도 벅찬 기분을 느끼게 했다. 무당굿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책이나 영상을 통해 접한 것이 전부다. 그럼...
- 이진선 (강출판사 편집자) 2018-10-09
- 새로 나온 책 새창
- 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왼쪽주머니 펴냄 “그러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이탈리아와 한국 등은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태도이다.”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자, 일본 사회에 큰 혼란이 찾아온다. 2년 후부터는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죽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극단적인 해결법이다. 도요코 가족의 일상에도 이 법안이 들어온다. 남편 시즈오는 회사에 사표를 낸 뒤 세계여행을 떠나고 도요코 혼자 남아 시어머니의 수발을 든다. 시어머니는 10년째 며느리 없이는 용변 처리도 불...
- 시사IN 편집국 2018-10-01
- 그의 소설이 마음을 흔들어서 새창
- 내 취향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만들 때면 마음이 크게 흔들려서 ‘내가 좋아하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이 책을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 그렇다. <그의 옛 연인>에서 트레버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뒤흔드는 사건과 남들보다 조금 더 선한 본성으로 인해 다른 이들과는 다른 무게의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을 그려낸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일이 그들에게는 다시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대한 사건으로 작용하고, 결국...
- 김수현 (<한겨레출판> 편집자) 2018-09-21
- 수십 년 뒤 누군가 이 책을 집어들겠지 새창
- 고등학교 3학년 때 ‘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 고전 선’이라는 전집을 산 적이 있다. 공부는 하기 싫고 놀기엔 죄책감이 들면 그 책을 집었다. 괜찮은 판단이었다. 도무지 10분 이상 잡고 있기 힘들었다. “우리가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하는 소설에 경탄하기에는 내가 너무 까졌었나 보다. 그러다 책 끝머리에 실린 김용준의 ‘추사 글씨’를 접했다. “어느 날 밤에 대산이 ‘깨끗한 그림이나 한 폭 걸었으면’ 하기에 내 말이 ‘여보게 그림보다 좋은 추사 글씨를 한 폭 구해 걸게’ 했더니 대산은 눈에 불을 번쩍 켜더니 ...
- 이상원 기자 2018-09-21
- 군대와 섹스 로봇 새창
- 지난 회에 나이절 캐머런의 <로봇과 일자리: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이음, 2018)에 대해 쓰면서 이해찬 민주당 신임 당 대표의 ‘20년 집권 플랜’에 비난 섞인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 인공지능 로봇의 심각한 또 다른 문제인 ‘군사 로봇’에 대해 언급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 아쉬움을 풀기 전에 20년 집권 플랜에 대해 한마디만 덧붙인다. 미국의 경우 10~20년 안에 전체 고용의 약 66%가 인공지능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고 한다. 한국이라고 해서 그와 같은 환난을 피해갈 수 없다면, 민주당 20...
- 장정일 (소설가) 2018-09-21
- 새로 나온 책 새창
- 금융의 모험 미히르 데사이 지음, 김홍식 옮김, 부키 펴냄 “금융은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상스러운 것.” 우리는 일상적으로 은연중에 ‘리스크와 수익’을 따진다. ‘오전 8시에 출근하면 지하철의 인파 때문에 좀 시달리겠지만 잠은 더 잘 수 있지’라는 식이다. 이는 ‘금융 행위’의 핵심을 이루는 사고방식이며 개념이기도 하다. 저자는 까다롭게 느껴지는 금융 개념들을 문학, 역사, 철학, 미술, 대중문화 등을 넘나들며 쉽고 흥미진진하게 풀어준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남편 고르기로 ‘리스크 관리’를 설명...
- 시사IN 편집국 2018-09-21
- 이 책을 보면 정상회담이 보인다 새창
- 다시 ‘정상회담 시즌’이다. 9월18~20일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 정상회담이 열린다. 2000년 6월 열린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2007년 10월 10·4 선언까지 7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4·27 판문점 선언까지는 11년 걸렸다. 올해 들어 4월 정상회담 한 달 만에 판문점에서 문재인-김정은 회담이 있었고, 다시 4개월 만에 평양에서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것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지극히 정상적이다. 정상회담 한 번 하는 데 10년 세월이 흘러야 했던 지난 시절이 비정상이었다. 적어도 대한민국 정부가 1989년 수립한...
- 남문희 기자 2018-09-19
- 당신은 마법사인가, 예언자인가 새창
- 당신은 어떤 편인가.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망해간다고 여기는가. 나는 본래 생겨먹기를 낙천적인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응원하던 권투선수가 KO패를 하기 직전까지도 역전승을 하리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아 빈축을 사곤 했다. 쇼핑을 할 때마다 눈에 띄는 족족 물건이 다 좋아 보여 결정 장애를 겪곤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의 쓴맛을 많이 보고 증상이 ‘호전’되기는 했으나 본바탕은 역시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겨울과 이번 여름을 겪고 나서는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삼한사온과...
- 문정우 기자 2018-09-19
- 무궁화호에서 삶에 밑줄을 그었다 새창
- 무궁화호 한 칸의 좌석은 72개다. 숫자에 A, B, C, D를 붙여 표기한 KTX와 달리 일련번호로만 좌석번호가 매겨져 있다는 사실을, 보따리를 든 할머니가 ‘기차표’ 들고 자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한 청년이 도움을 주는 장면을 보며 알았다. 알파벳을 모르는 ‘할매’들은 KTX는 어떻게 탈까, 왜 관절도 성치 않은데 할매들은 짐을 이고 지고 다니나 생각하는 사이 두 시간이 휙 지났다. 무궁화호만 닿는 지역에 강의를 가는 건 아마 처음 같다. “옥천에 처음이시죠?” 대합실 계단을 내려오자 아는 얼굴이 보인다. 서울에 누가...
- 은유 (작가) 2018-09-17
- 새로 나온 책 새창
-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 김미중 지음, 메디치 펴냄 “원래 아파트란 게 이렇게 피해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공간이 된 아파트. 아파트 입주민들은 독립된 생활을 원하지만 층간소음, 주차 문제 등으로 이웃과 갈등을 겪는다. 일단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모두 관리사무소를 찾는다. 모든 민원이 통하는 곳이고,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잘 아는 곳이기도 하다. 1999년 남편의 권유로 관리소장 일을 시작한 저자가 20여 년간 8개 아파트 단지에서 일하며 ...
- 시사IN 편집국 2018-09-15
- 유럽의 그물망을 통과하는 묘미 새창
- 책 표지에서 저자는 ‘지은이’로 소개된다. 여기에 짧은 글을 쓰는 일과 책을 쓰고 만드는 일의 차이가 드러난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듯, 저자는 목차라는 구성과 얼개를 세워서 책을 짓는다. 저자들 중에서도 특히 구성에 매우 공을 들이는 이가 있다. 이들의 작품은 집필에 들어가기 이전에 기획안이나 최초의 목차만 보아도 책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저자들은 문장 역시 간명하고 논리적이라 술술 읽히곤 한다. 이 책 <문명의 그물>이 바로 그렇다. 10대 때부터 유럽에서 살아오면서 유럽의 역사와 정치, 유럽 통합을 공부해온 조...
- 이정우 (도서출판 책과함께 인문교양팀 팀장) 2018-09-15
- 무이징게국에 침이 고인다 새창
- 정확한 뜻을 몰라도 마음에 와닿는 말이 있다. 백석의 시가 그렇다.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도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로 끝나는 ‘연자간’은 조사와 어미 정도만 빼면 모두 해독 불가다. 그런데도 고요한 시골 방앗간에 앉은 듯 한가로운 기분이 든다. “흥성거리는 부엌으로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여우난골족’)도 마찬가지다. 무이징게국이 뭔지도 모르면서 입안에 침이 고인다. 연자간도 무이징게국도 생소한 21세기 한국의 독자는 시대도 지역...
- 변진경 기자 2018-09-12
- 로봇에 아웃소싱되는 일자리 새창
- 나이절 캐머런의 <로봇과 일자리: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이음, 2018)는 제목보다 표지 그림이 지은이의 전언을 한층 압축적으로 웅변해준다.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이 ‘의자놀이’를 벌이는 그림은 로봇공학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간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하는 상황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 주제를 다룬 책으로는 나이절 캐머런도 몇 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 (세종서적, 2016)이 워낙 유명하지만, <로봇과 일자리: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의 장점도 분명하다. 얇고 간명하다는 것. 기후변화와 ...
- 장정일 (소설가) 2018-09-12
- 새로 나온 책 새창
-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권보드래 외 지음, 민음사 펴냄 “남성의 관점에 동일시해야만 ‘문학’이라는 세계에 겨우 접속할 수 있었던 ‘해석 노동’을 과감히 멈추겠다.” 지난해 2월 열흘간 열린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강좌는 매회 100여 명이 넘는 청중으로 북적였다. 강연이 끝나면 질문도 빗발쳤다. “가부장제의 재생산 장치로 기능해온 한국 문학을 왜 여전히 읽고 공부해야 하는가.” “남성 중심주의와 무관한 페미니즘 문학작품을 알려달라.”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강연자 10명을 비롯해 새 필진...
- 시사IN 편집국 2018-09-07
- 우리 안에 갇힌 우리, 진짜 집을 찾아서 새창
- 책장을 넘기면 동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물원’을 소개합니다. 목이 기다란 기린을 배려한 키다리 식탁, 방귀 냄새가 지독한 스컹크를 위해 강력 탈취 시스템을 갖춘 청결한 화장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수달을 위한 수상 주택, 몇 대가 모여 사는 미어캣을 위한 공동주택…. 각 동물의 특징과 생활 습관을 섬세하게 고려해 설계한 건물과 시설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동물들. 하루 종일 놀기만 해도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는 부럽기만 한 모습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멋지게 집 소개를 마친 동...
- 김구경 (고래뱃속 편집장) 2018-09-07
- 이렇게 말해도 될까 ‘불행에 몰두하세요’ 새창
- “그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어느 날 이메일 말미에 붙어 있는 저 인사말에 눈길이 머물렀다.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구문인데 그날따라 아리송했다. 왜 행복해야 되지? 꼭 행복해야 하는 건가? ‘행복해라’는 말은 ‘부자 돼라’는 말보다 덜 속되고 선해 보이지만 도달 확률이 낮다는 점에선 더 잔인한 당부이기도 했다. 아무리 용쓰고 살아도 불행이 속수무책 벌어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행복하라는 건지 의심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안 행복하니까 심통이 나서 삐딱해졌으며 ‘덕담’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불만분자가 됐는지도 모른다고 스스...
- 은유 (작가) 2018-09-06
- 이렇게 재미있는데 소개되지 않은 책방 새창
- 지난겨울, 운 좋게 혼자 떠난 일본 여행에서 2박3일 동안 주로 서점에 머물렀다. 거기서 계속 사진을 찍었다. 일본어를 몰라 구글 번역 앱을 켜고 책 표지를 찍었다. 그러면 기특하게도 무슨 말인지 금세 알려주어, 밤늦도록 그러고 있었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해가 짧은 데다 늦게까지 문 여는 상점이 거기밖에 없었다. 얼마 전 <꿈의 서점>을 읽으며 좀 더 다양한 서점에서 ‘죽 때리고’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전국의 현역 서점 직원 22명이 좀처럼 믿기 힘든 콘셉트의 서점을 소개한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 임지영 기자 2018-09-05
- 새로 나온 책 새창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그가 사단장일 뿐 남자가 아닐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 노골적으로 평가한다면, 중국 공산당의 지고지엄(地高至嚴)한 혁명 전통을 성애(性愛)로 희롱하는 발칙한 작품이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어느 군부대 사단장이 성적 불능을 감추고 젊은 여성과 결혼한다. 그녀는 관사의 취사와 청소를 담당하는 군인에게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마오쩌둥의 혁명 구호)”며 성적 서비스를 요구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갈수록 그들 사이에선 새로운 권력관계가 형성되는데…. 세...
- 시사IN 편집국 2018-09-01
- 편집자를 사로잡은 마성의 출판사 새창
- 새로운 책을 접할 때면 보통 작가나 그 책 자체에 먼저 집중하고 이후에 그 책을 낸 출판사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핸드메이드 아트북 <나무들의 밤>과 <물 속 생물들>은 독서가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을 출간한 인도의 출판사 타라북스를 모르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모든 ‘입덕’의 길이 그러하듯 타라북스를 모를 수는 있지만, 타라북스를 알게 되는 순간 누구나 출구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타라북스는 천으로 만든 수제 종이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고 손으로 제본해 그 어디...
- 천혜란 (남해의봄날 편집자) 2018-09-01
- 기자가 추천하는 책 새창
- 이 책의 출판 계획을 저자에게 직접 들었을 때 이렇게 물었다. “선배, 은퇴해요?” 기사 모음집이라니? 퇴직하는 교수나 법관에게 후배들이 헌정하는 논문집은 알아도, 기사를 엮어 책을 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낯설고 도전적인 시도는 성공했다고 <천관율의 줌아웃>을 읽으며 생각했다. <시사IN> 지면으로 봐온 천 기자의 기사가 새롭게 읽혔다. 2009년부터 2018년 사이 쓴 기사 27편을 촛불체제의 탄생, 보수는 어디로, 진보가 지나온 터널, 공정의 역습으로 나눠 재배치한 데다 기사별로 후속 코멘트를 달았다....
- 김은지 기자 201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