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시설에서 23년… “나오니까 더 좋고 자유가 있어” 이명익 기자 “아빠가 어느 날 저에게 ‘너 학교 가자’고 했는데 느낌이 이상했어요. 저는 학교에 다닌 적 없이 맨날 집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안 가겠다고 했지만 엄마 아빠가 가라고 해서 별수 없이 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곳은 학교가 아니었어요.”뇌병변 장애를 가진 김희선씨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집에만 있었다. 그러다 학교를 가라는 부모의 말에 이끌려 간 곳은 경기도 남양주의 한 장애인 거주 시설이었다. 그에게 그곳은 지옥과 다름없었다. 큰 거실을 칸막이 하나 쳐서 남자 방 하나와 여자 방 하나로 갈랐다. 55명이 지냈다. 한글도 모르는 그에게 군부독재 저항에 미얀마와 한국의 경계는 없다 이명익 기자 “저희는 지난 60여 년간 미얀마 군부의 발아래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올라오면서 5년 동안 민주화를 경험했지요. 민주주의를 체감한 국민들이 다시 군부의 발아래로 들어갈 수는 없어요.”미얀마 출신 유학생인 수라 피아 아웅 씨(25)는 요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2년여 전에 한국으로 들어온 그녀는 숭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에 거주 중인 가족 때문에 최근엔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 지난 2월1일 미얀마 쿠데타에 저항한 시민들은 군경의 실탄사격 등 노골적인 폭력에 노출됐다.군 아들을 잃은 지 1년, 아버지는 걷는다 이명익 기자 지난해 3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당시 의료 공백으로 사망한 정유엽군(당시 17세)의 아버지 정성재씨(54)가 도보 행진에 나섰다.경북 경산에 살던 정 군은 40℃가 넘는 고열에도 ‘코로나 의심환자’로 분류되어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코로나 검사만 열세 번 받다가 사망했다. 그 후 1년, 정성재씨는 K방역 뒤에 숨은 의료 공백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다.“할 수 있는 게 더는 없었습니다.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이렇게 온몸으로 호소하는 게 마지막 방법이라는 절박한 심정입니다.”‘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 방역 자구책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글·사진 이명익 기자 지난해 4월15일 국회의원 선거는 다소 생경했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껴야 가능했던 ‘미끌한’ 투표의 경험은, 동시에 5800만 장이라는, 63빌딩 4개 높이에 해당하는 비닐장갑 사용 기록을 남겼다. 코로나19 시대는 일회용품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택근무와 영업제한 그리고 방역 사이에서 아찔한 속도와 규모로 일회용품이 쌓여간다. 추석과 설이라는 두 번의 명절은 그 정점이었다. 코로나 시대 그리고 일회용품의 시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을 4컷에 담아보았다. 굽히지 말고, 날아라 펜 이명익 기자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앞마당에 있는 ‘굽히지 않는 펜’은 언론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세워진 상징물이다. 2007년 ‘〈시사저널〉 삼성 기사 삭제’ 사건으로 촉발된 기자들의 파업 당시 〈시사IN〉을 탄생시킨 거리편집국의 ‘날아라 펜’과도 닮았다.펜을 창처럼 들고 과녁을 노리던 사람들을 상징했던 ‘날아라 펜’의 〈시사IN〉이 제700호 발행을 맞이했다. 700호라는 걸어온 길보다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시사IN〉 앞에 ‘굽히지 않는 펜’은 독자들에게 보여줄 우리의 또 다른 ‘날아라 펜’이다. 언제까지 같은 요구를 되풀이해야 하는가 글·사진 이명익 기자 서울의료원 코로나19 병동 담당 간호사인 김석찬씨(28)는 요즘에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지난해 2월 서울의료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며 시작된 혼란은 1차, 2차 대유행을 지나 3차 대유행 때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 병원은 자체 매뉴얼을 만들어 간호인력 공급을 늘리는 식으로 3차 대유행의 파고를 비교적 순조롭게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당초부터 인력난에 시달렸던 서울시 산하의 서울보라매병원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난해 대구의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을 때부터 간호인력 증원을 요구했던 보라매병원 측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감염 2021년 어느 아침에는 북적이고 있을 것이다 이명익 기자 2020년 12월21일 오전 9시. 서울 세종대로사거리에 북적이던 출근 인파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 1000명을 오르내리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방역 단계의 사실상 격상은 출근 인파를 감춘 대신 선별진료소 앞만 불안한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놓았다.2021년의 어느 아침엔 기필코 다시 북적이는 출근길의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잃어버렸던 일상이 다시 돌아온 그 광경을 촬영할 것이다. 작은 학교 두륜중학교의 행복한 ‘특권’ 이명익 기자 전남 해남의 작은 학교인 두륜중학교에서는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정해진 방법이 없다. 인터넷 동영상을 봐도 괜찮고 친구에게 질문해도 좋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선생님한테 슬쩍 물어보면 된다. 아이들은 그렇게 떠들썩한 교실 안에서 하나둘씩 답을 찾아간다. 2020년 10월 중순 현재의 이야기다.두륜중학교는 한국의 대다수 학교와 마찬가지로 올해 1학기를 온라인 비대면 수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새로운 수업 방식에 대한 호기심은 얼마 못 가 사라지고 말았다. 학생도 교사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전남교육청이 지난 5월 중순부터 두륜중학 퇴직 5개월 앞두고서야 해고가 멈췄다 이명익 기자 “교실이라는 공간은 희극과 비극의 공간이거든요. 행복하거나 소외된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그 아이의 눈높이에 내가 들어갔을 때 느끼는 기쁨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을 때의 안타까움…. 그 사이의 공간을 좁혀내고 싶어요.”다시 교실로 돌아온 조창익 교사(62·해남제일중학교·전 전교조 위원장)는 덤덤하게 복직의 소회를 토로했다.1989년 전교조 창립과 함께 다가온 첫 번째 해고. 5년 만에 복직했지만 2016년 전교조가 법외노조 판결을 받으며 시작된 두 번째 해고.퇴직을 불과 5개월 앞둔 2020년 9월3일 대법원의 법외노조 취소 판결을 좁은 세상 위에 펼친 넓은 무대 이명익 기자 벌써 9회를 맞는 ‘서울이주민예술제’는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이 꾸리는 작은 예술 축제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중계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주노동여성이자 무슬림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니샤(Sajdarun Nessa, 방글라데시)도, 예맨 힙합팀 ‘블랙 앤 그레이 뮤직’을 이끄는 엘 갓파더(El Godfather, 예맨)도 무대를 통해 차별과 편견을 뛰어넘는다.그러나 무대 밖 현실은 다르다. 니샤는 아버지의 병문안을 위해 한 달간 고향을 갔다오겠다고 공장장에게 허락을 받았다 이를 반대하는 사장 부인의 눈밖에 나 고향에 가지도 투명인간 되기 1시간40분 전 이명익 기자 새벽 2시30분에 눈을 뜬 청소노동자 박영숙씨(64)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새벽 4시5분에 출발하는 146번 버스를 타야 회사가 있는 서울 강남역에 6시 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계동 종점에서 강남역까지 걸리는 시간이 1시간40분 정도이니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렇게 새벽 첫차부터 청소·경비 노동자들로 만석에 이르는 버스를 ‘노회찬 버스’라고도 한다.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그는 아주머니 또는 미화노동자라고만 불리던 이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을 모르나이다” 이명익 기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교인들이 방역 요원과 취재기자들을 폭행했다. 교인들은 특히 방역 요원과 기자들을 겨냥해 마시던 생수를 뿌리고 침을 뱉는 등 위협적인 행위를 했다.서울 성북구청과 보건소 공무원들은 8월18일 오후 3시쯤부터 장위2동 주민센터(사랑제일교회 주변) 앞에 모여 사랑제일교회 일대에 대한 방역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교회 교인들은 방역 작업을 준비할 때부터 주민센터 주변에 모여 “방역 차량 치워라” “성북구청장 나와라” “문재인 퇴진” 등을 외치며 방역 작업을 방해했다.오후 3시30 사라진 갯벌이지만 또다시 SOS 이명익 기자 2000년 7월2일, 환경운동연합 회원 1000여 명이 전북 부안 해창갯벌에서 회원대회를 열었다. 새만금 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갯벌 위에 모인 회원들은 인간 띠로 ‘SOS’를 만들었다.군산에서 부안까지 33.9㎞의 새만금방조제가 연결된 후 새만금의 수질은 1등급에서 6등급으로 악화됐다. 어업 생산량이 75% 감소하고, 도요새의 서식지도 파괴되었다. 공업단지와 신재생에너지 단지 등으로 인한 경제효과를 외면할 수 없다지만, 주변 환경은 지속적으로 파괴되었다.지난 7월18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0년 만에 해창갯벌에 다시 모였다. 사람이 있었다 이명익 기자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고 최희석씨(59)가 앉았던 자리. 입주민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한 그는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계장 이야기-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 저자 조정진씨는 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최씨의 책상 위 말라버린 제수용 사과와 창문 가득 채워진 추모의 글. 이 작은 공간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다치고 아파하는. 10년11개월, 3925일, 9만4200시간 이명익 기자 2009년 8월6일, 77일 ‘옥쇄 파업’을 끝낸 한상균 당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조합원들을 안으며 눈물을 참았다(위쪽 사진). 5월4일, 그가 마지막 복직자 35명과 함께 10년11개월 만에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다(아래쪽 사진). 일부 언론은 회사가 어려운데 해고자 복직은 시기상조라고 보도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노동자들을 그렇게 많이 잘라(해고)놓고도 경영 위기가 초래됐다면 이제는 경영진의 무능을 탓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코로나19에 갇힌 ‘사천왕상’ 이명익 기자 조계종은 코로나19 탓에 부처님오신날(4월30일)을 맞아 매년 열던 연등회 행사 등을 5월로 연기했다. 파주시에 있는 등 제작 공방(전영일 공방)의 일상도 바뀌었다. “연등회 참석하려고 트럭에 실려 줄 지어 가는 사천왕상을 보면 뿌듯했는데 올해는 이렇게 서서 보기만 하네요.” 이렇게 봄이 피었다 창원·부산 이명익 기자 사람들이 사라진 길 위로 벚꽃이 만개했다. 진해 군항제가 코로나19로 취소되었다. 창원시청의 허가를 받고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이들을 위해 벚꽃을 렌즈에 담았다. 부산의 대저생태공원에 만개한 유채꽃도 담았다. 지면으로라도 꽃피는 봄을 맛보시길. 이토록 소중한 한 끼 이명익 기자 생수, 단무지, 떡 그리고 주먹밥. 비닐봉지에 한 끼가 담겼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보궁 노인무료급식소에서 매일 주먹밥을 나눠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고 있다. 자원봉사자도 줄었고, 다닥다닥 붙어 앉아 식사하면 감염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 노인무료급식소 책임자인 자광명(법명) 보살이 낸 아이디어가 주먹밥이다. 다른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여기를 찾아오는 노숙인과 저소득층 노인들이 코로나19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노인들에겐 바이러스보다 당장 한 끼가 더 걱정이다(원각사 보궁 노인무료급 비에 젖은 장미 웃음 잃은 노동자 평택·이명익 기자 밤새 내리던 비가 멈추지 않았다. 1월7일 아침, 평택 쌍용자동차 앞. 해고 10년7개월 만의 출근길.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의 꽃을 든 손에도 비가 내렸다.2018년 9월 회사, 쌍용차 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4자’가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이 합의로 복직을 희망한 해고자 119명 가운데 상당수가 단계적으로 채용되었다. 지난해 7월1일 남은 46명이 회사에 재입사했지만 무급휴직 처리되었다. 새해에는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46명은 무기한 유급휴직(임금의 70% 해가 바뀌어도 ‘하늘 감옥’에서··· 대구·이명익 기자 74m ‘하늘 감옥’에 사람이 있었다. 영남대의료원 옥탑. ‘수감자’는 14년째 해고노동자인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2006년 주 5일제 시행에 따른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사흘간 파업을 주도했다. 이듬해 영남대의료원은 그를 포함한 노조 간부 10명을 해고했다. 그들 중 7명은 2010년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 복직했다. 그를 비롯한 3명은 패소해 복직하지 못했다. 이들의 해고 과정에 노조 파괴로 악명을 떨친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1월2일 그는 옥탑에 설치된 천막에서 186일째 농성을 이어갔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