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 엄마 김순덕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4] 이명익 기자 세월호 참사 생존자 장애진씨 어머니 김순덕씨(54)는 생존자의 부모로 참사 이후 10년 내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유가족 엄마 여섯 명과 함께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에서 연극배우로 활동 중이다. 계획된 연극 10편 가운데 다섯 번째 연극인 〈연속, 극〉에 출연하고 있다. 또한 수년 전부터 서울 광화문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피켓시위를 이어가고 있다."세월호 참사 있고, 이태원 참사 일어났을 때 모든 부모는 똑같았을 거예요. 저도 바로 전화를 했거든요. 어디 있니? 거기 있었니? 그때 애진이는 다른 곳에 있었거든요. 애진이가 잃은 이를 돌려드릴 수 없을지라도 [2023 올해의 사진] 사진 이명익·신선영·박미소, 글 정세랑(소설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언제나 경계했어야 했는데 처참히 실패했다. 하지만 책임자들은 1년이 지나도록 그 실패의 앞뒤와 구조적 원인을 살피기는커녕, 미흡한 조사를 서둘러 마무리 짓기 위한 변명과 거짓말만을 남발하는 중이다.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그런 말들이 아니라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다. 잃은 이를 돌려드릴 수 없고 다친 곳을 지워드릴 수 없어도 함께 듣는 것으로 그다음을 향할 수 있다. 미래의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진실뿐이라는 걸 깨달은 이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2023 올해의 사진] 사진 이명익·글 이동은(영화감독·그래픽노블 작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에서 소년은 교장에게 말한다. 좋아하는 애가 있는데 말할 수가 없다고. 나는 행복해질 수가 없는 사람이란 걸 들키게 될 거라고. 교장은 답한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 가질 수 있다면 그건 행복이 아닐 거야.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게 행복 아닐까?”“주여! 동성 커플에게도 우리와 같은 지옥을 맛보게 하소서.” 십 년 전 한 동성 커플의 청계천 결혼식장 근처에 걸린 현수막 문구다. 아래엔 ‘한국기혼자협회’라고 쓰여 있었다.혼인은 사회적 구속력을 가진 전통적 제도다. 2015년 6월, 미국 연방 대법원 아이들에게 염치없지만 [2023 올해의 사진] 사진 이명익·글 금정연(작가) 잼버리라는 이름에서 내가 떠올리는 건 많지 않았다. 젊음, 초록색 혹은 모래색의 스카우트 유니폼, 스카프, 배지, 챙이 둥근 모자, 텐트, 모닥불, 그리고… 마시멜로? 2023년 8월 이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이제 나는 잼버리라는 이름에서 폭염과 습기와 벌레 물린 자국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다리와 곰팡이 핀 달걀과 밥과 두부 두 조각이 전부이던 자원봉사자용 비건 식단과 바가지요금을 떠올린다. 나는 그게 단순한 무능함이나 무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모든 불편과 불쾌를 ‘칼라베라 카트리나’ 가면을 쓰고,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외치다 [시선] 이명익 기자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인 11월25일,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이 시민들과 함께 '제3회 친족성폭력피해자 생존기념축제'를 열고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칼라베라 카트리나' 가면을 쓴 채, 종로 보신각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가면은 '죽음 같은 삶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참가자들은 "국가는 대답하라, 생존자가 여기 있다",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하라" "오늘 하루 우리 서로의 집이 되어주자" 같은 구호를 외쳤다.친족성폭력은 대부분의 피해자가 가정 내에서 미성년자일 때 발생한다. 가해자가 가족이기 때문에 당시의 경 작은 시골 학교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아름다운 기적’ [포토IN] 이명익 기자 “자 얘들아, 선생님을 봐야지. 선생님 손 올라갈 때 어떻게 하라고 했어, 자 다시 해보자.” 9월19일 오후 전남 곡성군 석곡중학교의 방과후 교실. 지휘봉을 든 안서은 음악 교사의 목소리가 커진다. 아이들은 숨을 한번 내뱉은 뒤 다시 선생님 손끝을 바라본다. 지휘봉이 움직이자 빠르고 강한 템포의 행진곡이 합주실을 가득 채운다. 오늘의 연습곡은 ‘대한의 기상’. 학생들 모두 음악 연주에 집중했다. 조금 전 카메라를 보며 부끄러워하던 모습들은 온데간데없다.전남 곡성군 석곡면의 석곡중학교는 작은 시골 학교이다. 곡성역에서도 차를 타고 세계 청소년은 이 잼버리를 어떻게 기억할까? [포토IN] 부안·이명익 기자 “낮에도 더운데 밤에도 더워요. 씻는 것도 힘들고요. 샤워장에 물이 안 빠져서 사람들 씻던 물이 여기까지 차요.” 까맣게 탄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린 박서현 양(가명·16)은 발목 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8월2일 오후 전북 부안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장. 기자들에게 공개된 델타 구역 편의점 앞에서 만난 박서현 양은 연방 땀을 닦아냈다. 친구들과 잠시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잼버리장에 하나밖에 없는 편의점. 그것도 참가자들로 들어찬 셔틀버스를 한 대 보내고 나서야 겨우 그다음 버스에 몸을 싣고 올 수 있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두 동성 부부 [시선] 이명익 기자 "이것 봐. 이게 임산부 뱃지야." 분홍색 뱃지를 든 김규진씨(31)가 배우자 김세연씨(34)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김규진씨가 임산부 뱃지를 들자, 그를 둘러쌓은 사람들 사이에서 "와" 하며 탄성이 흘러나왔다. "자 이제 부케 던지러 가자."7월1일 오후 폭염주의보가 내린 서울 을지로 명동성당 앞. 또 다른 동성 부부인 10년 차 커플 킴과 백팩도 함께 나섰다. "하나, 둘, 셋"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두 부부의 부케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하늘을 날아올랐다.9월 출산을 앞둔 김규진씨와 배우자 김세연씨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 하루 BTS ‘아미’들의 ‘버터 비치’는 화력발전소 공사로 어떻게 바뀌었나 [시선] 이명익 기자 “석탄발전소 부두 있는 데서 누가 해수욕을 하겠어요? 석탄이 됐든 원전이 됐든 발전소가 들어선 해변은 다 망가졌어요. 맹방은 항만 공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해변이 쓸려나가 저렇게 공사 중이잖아요.”6월 10일 강원도 삼척의 맹방해변에서 만난 하태성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위원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지역 상인이기도 한 그는 삼척 석탄화력발전소의 석탄 항만을 지을 때부터 공사를 지켜봐 왔다. 길고 고운 명사십리 모래로 유명했던 해안은 방파제 건설과 함께 침식이 발생했고. 2m가 넘는 모래 절벽이 만들어지 해고 500일의 밤 [포토IN] 이명익 기자 1966년 서울 명동에 첫 호텔이 들어섰다. 이름은 ‘세종호텔’. 세종대학교의 재단인 대양학원이 운영한다. 명동에 있는 대표 호텔 중 하나였다. 고진수 세종호텔 노조 지부장은 이 호텔에 2001년 일식 조리사로 입사했다. 그에게 세종호텔은 최고의 직장이었다. 사람들은 호텔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호텔리어라고 부른다. 세종호텔에서 일하는 호텔리어 250여 명 대부분이 정규직이자 노동조합원이었다.구조조정 상시화, 사업부 외주화, 정규직 노동자 자리의 비정규직화 등 노동조건이 악화되었다. 세종호텔은 110명의 정규직 노동자만 남은 채로 코로 전쟁터 같았던 강릉 산불의 흔적 [포토IN] 강릉·이명익 기자 “아침에 밭에 나가려고 하는데 바람에 불이 겅실겅실(겅정겅정의 방언) 날아서 뚝 떨어지고 또 뚝 떨어지고 집을 뺑 돌려가며 다 붙더라고. 옷도 다 못 챙겨 입고 나만 이래 나왔어.” 4월11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산불 이재민 대피소(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만난 김정임씨(70·가명)는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손쓸 틈도 없이 번진 산불에 집은 삽시간에 주저앉았고 버선에 털신만 겨우 구겨 신고 나왔다.4월11일 오전 8시22분, 강릉시 난곡동 일원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다. 소방 당국은 소방대응 3단계를 경비복 입은 우리도 사람입니다 [포토IN] 이명익 기자 3월28일 아침,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이 아파트에서 경비반장으로 일하던 A 씨(74)는 지난 3월14일 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A 씨 사망 나흘 전, 신임 관리소장은 신입 경비원의 실수를 묻겠다는 사유로 A 씨를 경비반장에서 경비원으로 강등했다. A 씨가 동료들에게 전송한 유서엔 복명복창 요구와 염색 여부 확인 등 신임 관리소장의 ‘갑질’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이 아파트 경비대장과 경비원들은 관리소장의 사과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경 이 팽나무를 지켜주세요 [포토IN] 이명익 기자 “아버지는 한잔 드시고 집에 오다가 미군 사격에 그냥 돌아가셨어요. 그때는 보상금 천원짜리 한 장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어요.” 여정진씨(72)는 다섯 살 때인 1956년 아버지 여옥배씨(당시 31세)를 마을 옆 미군기지 탄약고 앞에서 총격 사고로 잃었다. 이후 국방부가 하제마을 일대를 강제수용하기 전까지 40년. 반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어린 시절 여씨의 놀이터이기도 했던 팽나무가 유명해진 건 2020년 국방부가 전북 군산시 옥서면 하제마을 일대 201만㎡를 미군 탄약고 안전지역권으로 공여하는 협상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마을 분향소에 걸린 자식의 영정을 꼭 껴안았다 [포토IN] 사진 이명익 기자·글 주하은 기자 2월15일 오전 10시쯤 서울광장에 위치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빨간 목도리를 두른 유가족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앞서 서울시는 이날 오후 1시까지 유가족들이 세운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라고 통보한 상태였다. 서울시가 제시한 행정집행 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약 3시간. 그러나 유가족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분향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시든 국화꽃을 치우고 영정을 마른 수건으로 닦았다. 분향소를 반드시 철거하겠다는 서울시의 엄포에 많은 유가족이 분향소를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서로 안부를 물었다. 한 유족은 “요새 “다른 지자체들이 설악산만 바라보고 있다” [포토IN] 횡성·이명익 기자 ‘권금성 케이블카’라고도 불리는 ‘설악 케이블카’는 설악산 소공원에서 권금성 탑승장까지 5분 안에 해발 700m의 설악산 자락을 오르게 해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씨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1년 전인 1969년 허가를 받아 1971년부터 운행을 시작했으니 52년이 흘렀다. 지금의 권금성은 민둥산이 되었다.‘설악 케이블카’의 수익이 늘자 강원도는 1982년부터 설악산에 제2의 케이블카를 허락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오색약수터에서 끝청봉에 오르는 ‘오색케이블카’다. 환경 훼손을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던 행정부는 박근혜 정부 참사 이후 첫 설, 분향소에서 지내는 차례 [포토IN] 이명익 기자 1월22일 오후, 시민사회단체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80여 명이 서울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서 합동 차례를 지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첫 설이다.유가족들은 평소 ‘희생자’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상에 올렸다. 자식의 영정을 앞에 두고 차례상 앞에서 오열하는 이들이 많았다. 장한나씨의 어머니 임영주씨는 “날이 가면 갈수록 우리 딸 너무 보고 싶고, 내가 그때 장례식장에서, 영안실에서 우리 아이 얼굴만 보고 손을 한 번도 못 잡아봤다. 그게 너무 한이 맺혀서 자꾸만 생각이 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종철 10·29 이태원 참 그래도 우리는 지하철을 탄다 [포토IN] 이명익 기자 “왜 여기 와서 이 난리야. 국회로 가, 국회로 가라고.” “세금 받아먹고 사는 것들이 어디서….”날 선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휠체어를 잡은 손이 부르르 떨릴 때쯤, 보다 못한 경찰이 시민들에게 다가가 말했다.“이제 그만하시죠.”1월3일 오전 4호선 서울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지하철 타기 선전전에 나섰다. 전날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관용 원칙’ 적용으로 단 한 명의 전장연 활동가도 지하철에 타지 못했지만 이튿날 유일하게 한 팀이 지하철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지하철에 오른 활동가들에게 돌아온 건 투표지에는 성별이 없다 [2022 올해의 사진] 사진 이명익·글 김멜라(소설가) 그러나 빨간 인주로 찍은 기표 무늬에는 어딘가 사람의 소리가 스며 있는 듯하다. 손톱만 한 동그라미 안의 글자(卜)는 누구의 목소리를 담고 있을까. 여성가족부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일 거라던 성폭력 피해자의 외침을 기억한다. 그 용기들이 메아리가 되어 아스팔트 거리로 나가 피켓을 든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하울링에 깃발이 나부끼고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흔들, 좁좁하게 둘러싸인 빌딩의 유리창이 덜컹거린다. 투표지를 넣는 투표함에는 성별 구분이 없지만, 그 선거를 뒤덮은 증오와 눈속임들에는 기울어진 성차별이 있었다. 공동체가 함께 상처를 품는다면 [2022 올해의 사진] 사진 윤무영·박현성·이명익, 글 김원영(작가·변호사) 어떤 상처는 영원히 남으며 이를 피할 길은 없다. 올해 우리는 다시 한번 커다란 협곡 같은 상처를 공동체의 몸에 새겼고, 그것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냉철하고 단호한 허세에 기반한 화장술 따위는 이 깊은 상처를 결코 메꾸고 덮을 수 없다. 상처는 오직 상처로만 드러날 때 흉터에 불과하다. 그 상처가 한 사람의 몸이자 그 일부로서 드러나면, 상처는 몸이 겪은 사건과 그로부터 치유를 위해 애쓴 시간을 상징할 수 있다.공동체라는 몸에 난 상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처를 낸 사건을 피해자와 피해 그 자체의 것으로만 고립시키면, 상처는 영 우린 레인 같은 건 따라가지 않아! [2022 올해의 사진] 사진 이명익·글 이기호(소설가)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동메달을 땄다고 전화를 걸어온 적 있었다. 그게 벌써 6년 전 일이다. 으응? 동메달이요? 갑자기? 나는 좀 어리둥절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그때 막 칠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무슨 노래자랑이 열렸나? 그런 내게 해준 어머니 말씀. 강원도 사회체육인 수영대회에 나갔다는 것. 어머니는 동네 수영장 대표로 노년부 100미터 자유형 종목에 참가했고, 총 다섯 명이 열전을 벌인 결과, 동메달을 땄다는 것이다. 와우! 대단해요, 어머니! 나는 진심으로 축하드렸다. 근데 말이야… 어머니가 슬쩍 부끄러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