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의 수다 정희상 기자 독자 번호:118010072 이름:한서영(23) 주소:서울시 종로구 ‘춤 동아리’ 공연을 마치고 전화를 받았다는 한서영씨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기자가 이름을 밝히자 대뜸 “아, 정희상의 인사이드 인터뷰 코너가 끝나 아쉽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인 한씨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정치와 사회’에 대해 알고 싶은 갈증이 커졌다. 지난해 친한 선배한테 〈시사IN〉을 추천받아 정기 구독을 시작했다. 정기 구독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게 뭔지 묻자, 한씨는 “정기 구독을 한 뒤 신세계가 열렸다”라며 웃었다. 가장 기억에 남은 기사로 제55... 종로 네거리에 전봉준 동상을 세우다 정희상 기자 서울 종로에 ‘녹두꽃’이 피었다. 123년 전인 1895년 일본군에 붙잡혀 순국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 동상이 서울 종로1가 영풍문고 앞에 들어섰다. 동학은 구한말 탐관오리들의 적폐를 뒤엎고 백성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일어난 사회변혁 운동이다. 그 최고 지도자가 ‘녹두장군’ 전봉준이었다. 그는 1894년 3월 농민들을 이끌고 봉기한 뒤 전국 곳곳에 농민 자치기구인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해 개혁 운동을 폈다. 이후 일본의 침략에 맞서 그해 9월 2차 봉기에 나섰다가 충남 공주에 있는 우금치에서 관군... 0.75평 독방에서 19년을 산 사람 정희상 기자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는 사람.’ 박정희 정권 시절 고문 피해자인 서승 교수(리쓰메이칸 대학)를 이르는 말이다.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두고 재일동포 서울대 유학생 서승은 보안사로 끌려갔다. 당시 야당 김대중 후보에게 용공 혐의를 씌우려고 조작한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른바 ‘재일동포 유학생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조사를 받던 서승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분신을 기도했다. 난로를 끌어안아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그는 동생 서준식과 함께 기소되어 1심에서 사형을, 2... 빨간 베레모의 끝내지 못한 싸움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제주 4·3 70주년을 맞은 올해 똑같은 나이테를 가진 비극의 상처가 육지에도 있다. 제주에서 북촌리 주민 집단 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1949년 경북 문경 산북면 석달동에서도 군부대가 민간인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그해 12월24일, 중무장한 군부대가 들이닥쳐 남녀노소 마을 주민 86명을 아무 이유도 없이 무차별 학살했다. 당시 희생자 86명 중 42명이 여성이었으며 22명은 열 살 이하의 어린이였다. 5명은 한 살배기 갓난아기였다. 참혹한 현장에서 일가족 아홉 명을 잃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생존자가 당시 열한 살 난 소년 채의... 물이 튀었지만 뿌리지는 않았다? 정희상 기자 ‘땅콩 언니에 물바가지 동생.’ 4년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파문에 이어, 이번에는 여동생 조현민 전무(사진)의 물바가지 갑질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발단은 최근 대한항공 광고를 맡은 회사와 회의석상에서 발생했다. 조 전무는 광고회사 팀장이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고성을 지르며 병을 던지고 물컵을 바닥에 내던졌고, 해당 팀장은 물세례를 맞았다고 한다. 물바가지 갑질이 알려지면서 포털사이트뿐 아니라 SNS가 ‘갑질 자매’로 뜨거웠다. 대한항공 측은 오전에는 “사실... 기사 후~폭풍 정희상 기자 전국에 걸쳐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시사IN〉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 sisain)에서도 ‘미세먼지 팩트체크’ 기사가 큰 관심을 끌었다. 장재원 아주대 교수를 인터뷰한 ‘중국 탓하기보다 국내 오염 줄여야’ 기사와 이오성 기자의 ‘한국이 씌운 누명? 중국발 미세먼지’ 기사가 논쟁을 일으켰다. 독자들의 댓글 의견도 첨예하게 갈렸다. 중국에서 미세먼지 유입량이 심각한데 외교 노력을 하지 말라는 거냐는 의견과, 엄연히 확인되는 국내 화력발전소부터 대책을 세우는 게 맞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1975년 4월9일... 독자와의 수다 정희상 기자 독자 번호:117050165 이름: 황은비(24) 주소: 일본 지바 현 바다 건너 일본으로 전화를 걸었다. 일본어 전공자인 황은비씨는 현재 일본 지바 현에 교환학생으로 나가 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기자의 전화를 받고 무척 반갑다고 말한 황씨는, 기자가 쓴 제주 4·3 피해자 윤옥화 할머니의 인터뷰(제550호 ‘4·3 총탄의 상처, 지금도 욱신거려’) 기사를 인상 깊게 읽었다고 말했다. 과장과 왜곡이 심한 기사로 인해 언론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그녀는 지난해 “〈시사IN〉은 다르다”는 한 선배의 추천으로 용기를 내... “제주 아픔 보듬는 다크 투어리즘 정착되길” 정희상 기자 〈시사IN〉은 4·3 70주년을 맞아 3월24~25일 ‘소설가 현기영과 함께 걷는 4·3길’ 행사를 진행했다. 4·3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을 쓴,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와 독자 35명이 4·3길을 걸었다. 첫날 제주국제공항과 가까운 제주시 도두동에 자리한 도두봉에 올랐다.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공항 활주로에서는 항공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렸다. 동행한 ‘제주4·3문화해설사회’ 김성용 회장이 활주로 아래 묻혀 있는 비극의 역사를 설명했다. 4·3과 한국전쟁 당시 정뜨르 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은 최대 학살터였다. 1948... “4·3 총탄의 상처 지금도 욱신거려” 정희상 기자 4·3 한복판에서 가장 잔인했던 대학살이 1949년 1월17일(음력 12월19일) 일어났다. 세화리에 주둔한 2연대 3대대 병력이 대대본부가 위치한 함덕으로 가다 무장대 습격을 받았다. 군인 2명이 숨졌다. 북촌리 마을 원로들은 시신을 대대본부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총구였다. 군인들은 경찰 가족 1명을 빼고 모두 사살했다.이날 오전 11시 2연대 3대대 병력은 북촌리를 덮쳤다. 군부대는 마을을 포위한 뒤 할아버지부터 어린아이까지 1000여 명에 이르는 주민들을 전부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4 9년을 기다린 용산참사 진상조사 정희상 기자 2009년 1월20일 전재숙씨가 다급히 찾아간 용산 남일당 건물은 지옥이었다. 남편 이상림씨는 다른 철거민 5명과 함께 시신으로 돌아왔다(당시 경찰 특공대원 1명도 사망했다). 망루에서 뛰어내리다 크게 다친 아들 이충연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다. 법원은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 25명에게만 책임을 물었다. 당시 과잉 진압 의혹이 불거졌던 경찰은 전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최근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팀’ 구성을 마친 경찰청은 용산 참사를 비롯해 백남기 농민 사망, 평택 쌍용차 파업을 우선 조사하기로 했다. 지난... “학살보다 더 무서운 건 4·3을 잊는 것이다” 정희상 기자 1947년 3월1일 오후 2시45분께 제주읍 관덕정 앞에서 총성이 울렸다. 경찰의 총탄에 맞아 6명이 사망했다. 이 총격 사건 이후 제주는 혼란에 빠졌다. 이에 저항하는 제주도민을 경찰과 서북청년단이 탄압했다. 1948년 4월3일 5·10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남로당 제주도당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1954년 9월21일까지 7년7개월 동안 4·3사건으로 제주도민 2만5000~3만명 정도가 희생당했다. 과거 군사정권은 4·3사건에 대한 논의 자체를 철저히 금기시했다. 4·3사건의 진실 일부가 처음으로 알려진 계기는... “통일부 공무원들 자괴감에 빠져 지냈다” 정희상 기자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즉흥적 지시로 이뤄졌고, 이명박 정부의 5·24 대북 조치는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정책이었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혁신위)가 지난해 하반기 조사를 벌인 뒤 연말에 내놓은 보수 정권 9년 대북정책의 성적표다. 남북관계와 대북 통일정책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혁신위의 책임자는 성직자인 김종수 신부(가톨릭대 신학과 교수)다. 김 신부는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와 명동성당 보좌신부, 주교회의 사무총장 등을 지내면서 남북 민간 교류 활동에 앞장섰다. 2006년 말... “MBC가 충분히 반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희상 기자 복직이 극적이었다. PD로 해직된 지 1997일 만에 사장으로 돌아왔다. 지난 12월8일 취임한 최승호 신임 MBC 사장은 〈PD수첩〉이 낳은 간판 스타였다. 최승호 PD는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과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을 제작했다. 그는 2012년 해직된 뒤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에서 탐사보도를 이어갔다. 영화 〈자백〉(2016)과 〈공범자들〉(2017)을 만들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최승호 신임 MBC 사장은 ‘반성’과 ‘신뢰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다.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는 한편 ... “교회 세습 중지하고 세금 내는 게 예수의 길” 정희상 기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역사학자이자 교회사학자다. 2001년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을 맡았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역사학자로서 활동뿐 아니라 교회사학자로서도 교회 개혁 운동의 중심에 섰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대형 교회 세습 반대 운동과 기독교계 친일 청산 및 회개 운동, 종교인 납세 운동 등을 펴왔다. 최근 신도 수 10만여 명에 연간 예산 1000억원대의 대형 교회인 명성교회에서 담임목사 부자 세습 논란이 불거졌다. 이만열 명예교수를 만나 한국 대형 교회의 ... 독자와의 수다 정희상 기자 독자 번호:107101335 이름: 송동근(40·그림) 주소: 서울 강동구 상일로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역사에 남을 기록으로 여겨 한 권도 빠짐없이 소장했다. 초등 2학년생 아들이 자라면 훗날 유산으로 물려주려고 한다.” 창간 독자인 송동근씨의 다짐이다. 송씨와 〈시사IN〉의 인연은 원 〈시사저널〉 애독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기자들이 파업 끝에 〈시사IN〉을 창간하자 그도 〈시사N〉으로 갈아탔다. 얼마 전부터는 2부씩 구독한다. 한 부는 부모님께 보내드린다. 송씨의 부모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피란 온 실향민이다. ‘생각의 ... 기사 후~폭풍 정희상 기자 아파트에 태양광 미니 발전소를 설치하고 한 달 체험기를 쓴 차형석 기자의 ‘밥값 발전소 설치하니 절약 정신이 쑥쑥’ 기사 반응이 뜨거웠다. 〈시사IN〉 페이스북(facebook. com/sisain)에서 10만4705명에게 도달했고, 좋아요 1005회, 공유 174회나 되었다. 권상우 독자는 “여름철 누진 요금의 경계에 있는 가구들은 절약 효과가 크겠군요”라고 썼다. 김보성 독자는 “얼마나 전기를 쓰는지 바로바로 나오는 것이 절약하는 데 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측정기도 따로 보급하면 좋을 텐데요”라며 차 기자가 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박종철 이야기, 개봉박두 정희상 기자 1987년 6월 민주항쟁(이하 6월항쟁)의 도화선이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을 만난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던 박종철 사건을 다룬 영화 〈1987〉 제작에 ‘박종철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함께했다. 그 가운데 박종철씨의 아버지 박정기씨와 형 종부씨를 빼놓을 수 없다. 사건 당시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는 아버지의 말은 시위 학생들의 플래카드에 그대로 담겼다. 박정기씨는 이후 30여 년 동안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이끌다 최근 노환이 악화돼 요... 막말 대잔치의 싱거운 결말 정희상 기자 이명박·박근혜 정권 인사들 주변에서 ‘적폐 청산 피로감’ 얘기가 나오더니 이번에는 국회부의장이 직접 나섰다. 11월28일 자유한국당 소속 심재철 국회부의장(사진)이 ‘문재인 대통령 내란죄’를 들고나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비서실장, 서훈 국정원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법치 파괴의 내란죄와 국가 기밀 누설죄 등으로 형사 고발해야 한다.” 심 부의장의 발언에 박근혜 전 대통령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자신의 트위터에 ‘꼴값 사이다’로 대응해 누리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는 “한국당 심재철 의원 ‘문재인 대통령 내...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는 시효를 적용하지 말아야” 정희상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8월 기자간담회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언급하며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강기훈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사건에서 검찰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강씨는 지난 7월 1심에서 6억원 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수사 검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항소한 바 있다). 정부 측 대리인인 정부법무공단이 준비서면을 냈는데 여기에 검찰의 뜻이 반영되어 있다. “법원이 수사 과정에서의 진술뿐 아니라 법정에서의 진술을 비롯해 여러 증인들의 증언, 법정에 현출된 객관적인 증거... 내게는 19년을 취재한 사건이 있다 [프리스타일] 정희상 기자 고 김훈 중위가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기까지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지난 19년 동안 나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낸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지만 그에게 아들의 죽음은 더 남달랐다. 사건이 나기 얼마 전까지 그 자신이 군단장을 맡아 관할했던 1군단 인근에서 아들이 권총에 맞아 숨졌기 때문이다. 김척 장군의 고통은 아들을 군에서 잃었다는 비통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진실 규명에 동행한 나에게 늘 결연한 의지를 밝히곤 했다. “죽음의 진실을 밝혀낸다고 훈이가 살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