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과 함께 불거져 나온 ‘영포 라인’이라는 말은 이명박 정부에서 특정 지역 인맥의 권력 전횡을 일컫는 표현이 되었다. 이상득·박영준으로 이어지는 권력 핵심부를 정점으로 하는 지역 인맥이 권력을 사유화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 최종석 청와대 행정관, 이강덕 당시 공직기강 비서관, 이인규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원충연 사무관 등…. 민간인 사찰 의혹의 주요 등장인물 명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포 라인으로 채워졌다.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이상득 의원이 포항에서만 6선이다. 박영준 차관은 이 의원 보좌관 시절 지역구 관리를 10년 넘게 했다. 포항에서 웬만한 유지급은 이 의원과 형·동생 하는 사이고, 박 차관은 ‘박보(박 보좌관)야’ 하고 편히 하대할 정도로 네트워크가 쌓였다”라고 말했다. 
 

ⓒ뉴시스그동안 이상득·박영준(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영포 라인’이 권력을 사유화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박보’가 권력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지역 인맥에도 출세 길이 열렸다는 얘기다. 정권 출범 당시, 각 정부 부처에서는 인수위에 파견할 포항 출신 직원을 찾는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포 라인’의 흔적은 경제계나 금융권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를 쥐락펴락하며 핵심 포스트를 장악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떡고물 챙기기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금융권에서는 “고대 마피아에 비하면 영포 라인은 ‘귀여운’ 수준이다”라는 말도 들린다.

‘동지상고 졸업장’ 덕에…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4월 김덕수 전 청와대 행정관을 상임이사로 임명했다. 김 행정관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방송통신대와 단국대 행정학 석사를 거쳐 부패방지위·국가청렴위 등에서 일했다. 김씨는 증권·금융 관련 학위나 경력이 특별히 없다. 나머지 상임이사 5명이 증권·금융·정부 부처에서 뼈가 굵은 인사들인 것과 견주면 차이가 크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한국거래소가 김씨에게 마련해 준 관사가 이사장 관사보다 더 크고 매입가도 1억5000만원 더 비싸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기도 했다.

조직 구성원들이 ‘영포 인맥’을 더 적극 원하기도 한다. 2007년 12월27일 제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는 최원병 후보가 중앙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최 후보는 1986년부터 20년 넘게 경북 경주 안강농협 조합장을 지내기는 했지만, 1991년부터 경북 도의회 4선 의원을 하며 도의회 의장까지 오르는 등, 오히려 정치권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농협의 핵심 사업 영역인 금융과 농산물 유통 영역에서는 이렇다 할 경력이 없었다.

하지만 최 회장의 당선을 이변으로 받아들이는 목소리는 거의 드물었다. 중앙회장 선거 8일 전인 12월19일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최 회장의 ‘동지상고 졸업장’이 큰 구실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 대통령의 동지상고 5년 후배이다.

이 외에 금융권의 대표적인 동지상고 인맥으로는 유중근 우리은행 부행장,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 장지활 SC금융지주 준법감시 부사장, 하인국 하나로저축은행장 등이 꼽힌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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