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편서풍의 영향으로 방사능은 한국으로 넘어올 수 없다.’ 이것이 후쿠시마 원전 폭발 후 한국 정부가 내놓은 공식 입장이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3월21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일본의 방사성 물질은… 바람의 방향과 상관없이 우리나라까지 날아올 수는 없”으니, “근거 없는 소문이나 비과학적인 억측에 결코 흔들리지 말라”고 전 국민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이 확고하고 단호한 입장은 3월29일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방사능 검출을 인정함으로써, 그리고 이미 3월26일께에 검출되었는데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이와 함께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붕괴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인 4월6일에는 그 다음 날 방사능이 동남풍을 통해 한반도로 유입된다는 일본과 독일 기상청의 발표를 인정했다가 다시 부정함으로써(〈한경닷컴〉 〈한겨레〉 4월6일자) 신뢰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한국으로 유입되는 방사능이 인체에 미칠 영향은 정부의 발표대로 대단히 적다. 4월7일 내린 비를 1년 내내 맞는다고 해도 자연 방사능 수준의 피폭이 이루어질 뿐이다. 우산을 쓰면 피해율 0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 발표를 원칙적으로 신뢰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방사능의 피해 가능성 여부가 아니다. 핵심은 정부가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방사능 피해와 관련해서 정부는 무조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사능 재난이 닥쳤을 때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피해가 발생한다.

정부 불신당하면 방사능 사고 시 엄청난 혼란 초래

한국은 원자력발전소의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부산과 울산은 고리 원전의 반경 25㎞ 안에 고스란히 들어간다. 고리 원전에서 후쿠시마 수준의 사고가 일어난다면, 두 도시의 500만명 가까운 인구가 한꺼번에 어디로든 대피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이때 혼란을 최소로 낮추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모든 주민이 정부를 믿고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정부만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피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사고가 일어났을 때 어떤 이유로든 주민들이 정부의 말을 믿지 못하고 각자 살길을 찾겠다고 한다면? 그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지금과 같은 기회에 반드시 신뢰를 쌓아두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거꾸로 갔다. 방사능이 유입될지 모른다는 정보를 친구에게 알린 시민을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체포했고, 편서풍에만 집착해 이미 3월25일께에 외국 기상청(www.zmag.ac.at)에서 예측한 캄차카 반도로부터의 방사능 유입을 부정하다가, 검출된 지 며칠 지나서야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신뢰가 아니라 불신만 키워놓았다. 4월6일에는 불안해하는 국민 앞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불신을 극대화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런데 4월7일 제주를 비롯한 남부 지방의 방사능 양은 뚜렷이 증가했다(www.kins.re.kr). 외국 기관의 예측은 적중했고 한국 정부의 예측은 빗나간 것이다.

신뢰란 우리가 열심히 하는데 왜 믿어주지 않느냐고 하소연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직하고 투명하게 한다고만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연구자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정부의 창구가 원자력안전기술원과 기상청으로 나뉘어서 각자 다른 소리를 내면 투명함이나 최선의 노력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신뢰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책임자들이 흔히 선택하는 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우크라이나 당서기가 바로 이 방법을 택했다. 그는 수도 키예프가 방사능으로 심하게 오염되었는데도 시민에게 알리지 않고 오히려 메이데이 행사에 참가하라고 명령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와 화창한 봄날을 즐기며 행진했고, 모두 심각한 수준의 방사능 피폭을 당했다. 그 후 방사능 재난의 전모가 드러났고, 우크라이나 당서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 우리 정부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하는 것이 나만의 바람은 아니리라.

기자명 이필렬 (방송통신대학 교수·전 에너지대안센터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