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아프가니스탄(아프간) 북부 마자리샤리프 지역에 있는 유엔 사무소가 현지인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 이날 시위는 이슬람 신도 수백명이 모스크에서 금요 기도회를 마친 뒤 일어났다. 이들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개신교 목사인 테리 존스가 코란을 불태운 데 항의했다. 시간이 갈수록 흥분한 군중들은 유엔 사무소로 몰려갔다.

마자리샤리프는 아프간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어서 수도 카불에 이어 두 번째로 유엔 사무소가 개설된 곳이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시위대는 유엔 사무소를 지키는 경비대에 총격을 가하고 건물에 불을 질렀다. 이날 현장을 지켜본 샤하프 〈아프간 통신〉 기자는 “미국 목사가 코란을 불태웠다는 사실에 흥분한 시위대는 무조건 외국인을 표적으로 삼은 것 같았다. 유엔 사무소에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은 마자리샤리프 사람 대다수가 알고 있어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군중이 그곳으로 향했다. 이어 총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유엔 사무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라고 당시의 급박했던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AP Photo

이날 공격으로 노르웨이·루마니아·스웨덴 국적의 유엔 사무소 직원 세 명과 네팔인 경비원 다섯 명, 그리고 시위대 세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충격적인 사실은 유엔 직원 두 명이 참수를 당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격렬했던 시위는 이후 전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와 동부 잘랄라바드, 심지어 한국군이 있는 파르완에서도 연일 수백명의 시위대가 시위를 벌여 사상자 100여 명이 발생한 상황이다.

코란 소각 사실, 카르자이 대통령이 전파

이 모든 사태는 테리 존스(59)라는 개신교 목사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소 이슬람을 공격해온 이 목사가 지난 3월20일 코란에 대한 모의재판을 열어 코란의 다섯 가지 반인륜 범죄 항목을 열거한 뒤 ‘소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50쪽 상자 기사 참조). 교인 3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당당히 코란을 불태웠고, 교회 측은 이 모든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아랍어 자막까지 첨부해 올린 이 동영상 때문에 시골 마을의 기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이 영상이 즉각 퍼지지 않았다. 아랍어 자막까지 넣어 이 동영상이 삽시간에 파급되는 효과를 노렸겠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인터넷이 그리 많이 보급된 나라가 아니다. 그러다가 의외의 사람에 의해 이 동영상이 알려지게 되었으니, 바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4월1일 금요 예배에서 이슬람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며 이 사건을 언급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분노했다. 카불 경찰청의 모하메드 하지르 씨는 “코란 소각 소식은 날개가 달린 듯이 전파되었다. 이야기가 퍼지면 퍼질수록 내용은 더욱 과장됐다. 결국 코란 소각 이야기가 지방에 전달될 즈음엔 미국 목사가 무슬림들의 목을 잘랐다고까지 부풀려졌다”라고 전했다. 그 결과 급기야 유엔 사무소 습격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유엔 사무소가 습격당한 뒤 일부에서는 카르자이가 종교 간 분쟁을 부추겼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으로서 안 해도 될 말을 공개적으로 해서 아프간 사람들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타판 드 미슈트 유엔 아프간 특사는, 카르자이의 코란 소각에 대한 비판은 이번 시위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뉴스를 알린 사람이 아니라, 코란을 태운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사실 카르자이의 이번 발언에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사이가 껄끄러운 그가 미국과의 외교에서 기선을 제압하고자 한 발언이라고 분석한다.

아프간 주둔 연합군도 피습될까봐 불안

기독교도가 많은 미국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간을 침략한 점은 미국에게 늘 불편한 사실이었다. 미국에는 이슬람이 어쩌면 최대 약점이다. 더구나 올해 미국은 미군을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하기 위해 서두르던 참이었다. 그 와중에 터진 ‘코란 소각’ 사건으로 미국은 다시 발목을 붙잡힌 형국이 되어버렸다. 미군 철수를 앞두고 그간 아프간 민심 달래기에 들여온 공이 목사 한 사람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미국과 유엔이 테리 존스 목사를 재판정에 세워야 한다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AP Photo카불 동쪽의 낭가르하르 주 주민들이 코란을 불태운 테리 존스 목사의 모형을 만들어 불태웠다.

코란 소각에 항의하는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자 다급해진 데이비드 패트리어스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성명을 내고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불태운 행동은 혐오스럽고 매우 경멸적인 행동이다”라며, 존스 목사에 대해서도 “혐오스럽고 극도로 무례하며 엄청나게 비관용적인 인물이다”라고 유례없이 강하게 비판했다. 마크 세드윌 주 아프간 미국 대사 또한 “성스러운 코란과 무슬림의 신념에 대한 불경을 우리는 비난한다”라고 밝혔다.

미국 의회와 정부도 나섰다. 이들은 코란 소각 행위를 비난하는 등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은 4월3일 CBS에 출연해 “의회가 코란 소각 행위를 비난해야 한다”라며 결의안 채택을 제안했다.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결의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로 각을 세우던 양당 의원들이 모두 코란 소각을 비난하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코란 화형식에 대해 “극도로 비관용적이고 심한 편견에 사로잡힌 행동이다”라고 비난했다.

한국군 기지, 로켓포 공격당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아프간 사무소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번 유엔 사무소 습격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프간 군중 시위대가 미국뿐 아니라 외국인 일반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아프간에 들어와 있는 모든 동맹국 군대에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이다. 나토는 즉각 “고립된 소수(존스 목사)가 코란에 불경스러운 행동을 저질렀고, 이들은 아프간을 지원하고 있는 동맹국들의 견해와 전혀 무관하다”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익명을 요구한 나토군의 한 장교는 “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미군과 동맹국 모두 느끼고 있다. 그래서 각 동맹국 지휘부에 주의 경보를 내린 상황이다. 아프간에 주둔 중인 모든 외국 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이번 시위의 불길은 여전히 꺼질 줄 모르고 전국을 휩쓸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프간 치안 상황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다. 4월5일에는 아프간 연합군에 속한 한국군 오쉬노 부대가 있는 파르완 주 차리카 기지에도 로켓포 공격이 있었다. 앞서 밝혔듯이 파르완 주에서도 수백여 명이 이번 코란 소각 사태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다행히 이번 공격으로 인한 사상자는 없었지만, 같은 북부에 위치한 마자리샤리프 사건이 보여주듯, 비교적 안전하다는 아프간 북부 파르완 주도 더 이상 외국인에게 안전지대는 아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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