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카이스트(KAIST) 재학생 세 명이 연달아 자살했다. 이게 단순히 우연일까. ‘베르테르 효과’일까. 아니면 정말 KAIST의 학생 관리에 문제가 있는 걸까. 아마 여러 개인 사연이 섞여 있을 테고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라는 말처럼 환경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KAIST 자살 뉴스를 들을 때마다 1993년 여름에 있었던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그해 나는 KAIST 학부 2학년생이었다. 여름 학기가 한창이던 어느 주말, 한 청년이 기계공학동 옆 테니스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비원은 신원을 밝히려고 숨진 사람 얼굴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고는, 기숙사 각 방문을 두들기며 학생들을 불러서 “이 사람 누군지 아느냐”라고 묻고 다녔다. 휴일에 낮잠을 자다 깬 친구들은 난데없이 죽은 학우의 사진을 보며 한동안 상처를 받아야 했다. 캠퍼스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시사IN 양한모


며칠 뒤 학내 게시판에 공지문이 붙었다. “고인은 공학동 옥상에서 실수로 다리를 헛디뎌 떨어진 것이며, 유족도 이 조사 결과에 동의했다”라는 내용이었다.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점심을 먹던 한 친구가 “이건 자살이야”라고 단호히 말했다. 친구는 시신이 발견된 테니스장과 기계공학동까지의 거리, 공학동의 높이, 중력가속도 등을 공식에 넣어 계산하더니 “옥상에서 힘껏 점프를 해서 떨어져야 가능한 위치다. 자연 낙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리다”라고 설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수식을 논박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는 이 물리학적 발견을 대자보를 붙이는 식으로 외부에 알리지는 못했다. 유족도, 경찰도, 위신을 생각하는 대학본부도 모두 이것이 사고이기를 바랐다. 그렇게 한 청춘의 자살(?)은 실족사로 처리되었고, 시나브로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은폐는 계속되지 못했다. 1995~1996년 사이에 학생 네 명이 자살하면서 결국 문제가 공론화됐다. 당시 학생들은 가혹한 학사경고와 제적 조치로 고통받았다. 전교생의 15%가 학사경고를 받고, 전체 입학생의 9%가 졸업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상황이었다.
1990년대 중반 학교 측은 학사경고 제도를 완화했다. 이후 유행병처럼 번지던 자살은 크게 줄어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KAIST에서 자살한 학생은 10명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근 KAIST 상황은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등록금-학점 연계 제도는 과거 학사경고제의 악몽을 재현한 것처럼 보인다. 부디 적절한 개선책이 있기를 바란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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