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주부 ㄱ씨(49)는 서울 공덕동에 있는 한 대형 슈퍼마켓의 생수 코너에 갔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늘 ‘제주 삼다수’가 품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축 매몰지에서 나오는 침출수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가 확산되면서 구제역 청정 지역인 제주도 생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탓이었다. 삼다수는 2월 한 달 동안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 대형마트에서 40~70%까지 판매량이 늘었다. ㄱ씨는 “삼다수를 (우리 집에도) 대량으로 사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ㄱ씨는 지난 3월31일 또 다른 대형마트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제주 삼다수를 판매하고 있었다. 다행히 품절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업체의 인터넷 쇼핑몰에는 “수급이 불안정하여 최대 수량 6개(2ℓ짜리 삼다수)까지 구매 가능하다”라는 공지문이 올라와 있었다. 제주 삼다수를 생산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의 한 관계자는 “제주 삼다수는 최대 2100t으로 1일 취수량이 제한되어 있다. 생산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가 늘면서 일부 매장에서 제품 품절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AP Photo도쿄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자 일본 정부는 8만여 가구에 생수를 전달했다.

생수 시장이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통상 더운 여름철이 생수 판매 성수기인데, 올해는 연초부터 계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제주 삼다수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가진 농심에 따르면, 올해 들어 2월까지 출하된 삼다수는 7만3000t. 지난해 같은 기간 5만2000t에 비해 40% 이상 증가한 양이다. 이 업체만이 아니다.

2월 현재 롯데칠성음료가 생산하는 ‘아이시스’ 매출은 전년 대비 20% 성장했고, 진로의 석수와 하이트맥주의 퓨리스가 합병한 ‘석수와퓨리스’도 ‘공장을 풀가동할 정도로 주문이 밀려드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마트 홍보팀에 따르면, 올해 3월28일 기준으로 전체 생수 판매 매출 신장률은 25%에 달한다. 생수 특수로 생수업체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다.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업계에서는 생수 시장을 연간 5000억원 규모로 추정한다. 업계에 따르면, 80개 회사에서 100여 개 브랜드를 내놓고 매출을 다투고 있다. 생수 시장은 그동안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18.9ℓ짜리 ‘말통’ 제품 판매는 정체되어 있는 반면 페트병 제품의 성장 추세가 뚜렷하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아웃도어 활동이 많아지면서 수요가 늘었다고 분석한다. 삼다수의 국내 판매권을 가진 농심만 해도 2008년 이후 생수 판매 매출액이 매년 20%씩 증가해왔다(2008년 1188억원, 2009년 1478억원, 2010년 1780억원). 농심은 올해 생수 판매 매출 목표액을 1930억원으로 잡고 있다.

기본적으로 성장세에 있는 시장 상황에다가 올해는 연초부터 생수 시장이 활황세를 띠었는데 여기에는 구제역이 한몫을 했다. 최근에는 일본 원전 사고 여파로 생수 수출에 대한 문의가 각 생수업체에 잇따르고 있다. 일본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며 최근 업무차 귀국한 김현근씨(38)는 일본의 ‘생수 품귀’ 현상을 이렇게 전했다. “도쿄 같은 경우 다른 생필품을 사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생수는 구입하기가 힘들다. 슈퍼마켓에서 2ℓ짜리 생수는 찾기 힘들고 500㎖ 생수를 구입할 수 있었는데, 오늘(3월30일) 일본 쪽과 통화해보니 500㎖ 생수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생수 수출, 국내 판매량의 2~3% 수준

일본은 생수 품귀 현상이 나타나면서 생수 수입을 크게 늘리고 있다. 가까운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생수를 들여오려 한다. 캐나다의 한 생수업체는 4월 말까지 생수 200만 병을 일본으로 수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전년도 4월 실적의 10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한국은 예상과는 달리 일본으로 생수를 수출하는 양이 미미한 편이다. 생수는 환경문제 때문에 일일 취수량이 정해져 있다. 수요가 많다고 해서 업체가 마음대로 생산을 늘리기 어렵다. 생산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그동안 국내 시장이 꾸준히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에 굳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생수 수출을 많이 하는 것으로 업계에 알려진 석수와퓨리스의 백권기 차장은 “수출량은 국내 판매량의 2~3%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본은 애초부터 생수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었다. 일본에 오랫동안 거주한 김현근씨는 “일본에서는 수돗물을 수출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이 깨끗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녹차나 수돗물을 마시고, 생수를 별로 마시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후생성의 검사 절차 등 일본의 생수 수입에 대한 규정이 까다로워 중소업체들이 수출 거래를 트기도 쉽지 않았다. 


ⓒ조우혜한국을 방문했던 재일한국인들이 출국하면서 생수와 라면을 구입해 탑승 수속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대지진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면서 한국 생수업체에 주문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석수와퓨리스가 3월 일본에 수출한 생수는 2435t으로 2010년 3월(808t)과 비교하면 200% 증가했다. 석수와퓨리스 관계자는 “현재 도쿄를 중심으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주문이 느는 추세다. 하지만 5월까지는 주문이 꽉 차 있는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 주력했던 제주 삼다수와 롯데칠성음료에도 일본 바이어로부터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양이 늘어나면서 국내에 생수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양이 아직은 적기 때문이다. 농심 등 생수업계 관계자나 대형마트 관계자들도 생수 수급 상황이 구제역 침출수 불안 심리가 컸던 2월 말보다는 나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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