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진보신당 대의원대회는 ‘국회의원 1석, 정당 지지율 2% 내외’의 군소 정당이 연 행사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이 팽팽하고, 열기가 뜨거웠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독자파’와 ‘통합파’는 각각 선전물을 나눠주며 지지 대의원을 확보하려고 동분서주했다. 더욱이 재적 대의원 중 80%인 382명이 당대회에 나와 창당 이후 가장 높은 참석률을 나타냈다.

이날 분위기는 참관하러 온 일반 당원이 삼삼오오 모여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당대회 이틀 전 조승수 대표가 당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통해 “창당할 때 내건 진보의 재구성이 실패했으며, 과거 낡은 진보로 규정했던 세력들과 함께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자”라고 역설한 내용에 대한 반응이 그랬다. “대표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3년 만에 벌써 독자 노선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냐?”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뉴시스당대회에 참석한 조승수 대표(왼쪽)와 심상정(가운데)·노회찬(오른쪽) 전 대표.

대회는 당의 진로에 관한 첨예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민주노동당·사회당·민주노총 등 ‘진보 정치 대통합을 위한 8자 연석회의’ 대표들이 나와 축사 겸 격려사를 하고 난 후 안건 심의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심상정 전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연립정부론에 대해 독자파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변형된 수혈론이나 다름없으며, 새로운 진보 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수정 동의안을 제기하자,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독자파의 웅변이 이어지고, 이에 관망파 대의원들이 가세하면서 61%라는 높은 찬성률로 수정 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심상정 전 대표뿐 아니라 ‘가설정당론’을 편 노회찬 전 대표의 입지까지 축소되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새로운 진보 정당’에 어떤 세력까지 참여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다. 당초 진보신당 지도부의 원안에는 “과거에 반신자유주의 등의 가치 기준에 반하는 정치 활동을 했던 세력에 대해서는 조직적 성찰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결국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어온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경우 공개적 노선 전환 내지 반성이 있어야 통합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복지국가 단일정당론(복지국가란 가치 중심의 정치세력 통합)’을 주장하는 일부 통합파들은 이 조항을 삭제하자는 수정 동의안을 냈다. 이는 물론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가치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통합 논의의 범위를 오른쪽으로 더 확장시켜도 ‘복지국가’라는 가치만 확고히 하면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목표까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국민참여당 등에 공개적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의미가 없으며 통합에 괜한 걸림돌을 만들 뿐이라고, 복지국가 단일정당 세력은 판단하고 있었다.

수면 위로 떠오른 ‘복지국가 단일정당파’

이 수정 동의안 역시 ‘진보 양당 우선 통합파’와 독자파가 반대하는 가운데 20%에도 못 미치는 찬성률로 부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진보신당 내에서 처음으로 복지국가 단일정당파가 수면 위로 떠올라 독자파 및 ‘진보 양당 우선 통합파’ 사이에서 3자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세를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독자파는 9월까지 진보 대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합의되는 세력들과 선(先)통합하자는 수정 동의안, 그리고 ‘북한의 핵 개발 및 3대 세습에 반대’한다는 수정 동의안을 제출해 모두 통과시켰다. 이는 지금까지 진보 양당 통합을 중시하는 견해(노회찬·심상정·조승수)에 반대해, 민주노동당이 북한에 대한 노선을 완전히 바꿔야 통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더욱이 민주노동당과 대화가 순조롭지 않을 경우, 사회당과의 통합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독자파는 새로운 진보 정당 추진위원장을 당대표가 임명하자는 원안에 대해서도 전국위원회에서 인준을 받도록 하자는 수정안을 발의했다. 이에는 당대표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반론이 나왔으나 격렬한 토론 끝에 통과되었다.

겨우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당원 여론조사나 서울시당 위원장 선거 결과를 보면 ‘진보신당에서는 통합파가 다수’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3·27 당대회는 이 같은 인식이 180°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뉴시스진보신당 당대회 결과 당내 명망가 대신 중간 활동가 중심의 독자파가 신주류로 떠올랐다. 당내 분화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당대회에서 가장 타격을 입은 세력은 ‘진보 양당 우선 통합파’였다. 전직 의원 같은 당내 명망가, 지방선거 당선자, 출마 예비자 등 현실 정치에 ‘선수’로 나설 당원들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중간 활동가 중심의 진보적 정체성을 중시하는 독자파가 신주류로 떠올랐다.

그동안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 탈당파와 2008년 촛불 정국 이래 입당한 새로운 당원이 반반이어서 당내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 당대회를 통해 상층부가 중심이 된 통합파와 중간 허리 구실을 하는 활동가들이 중심이 된 독자파, 침묵하는 다수 평당원이 중심이 된 통합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통합파도 둘로 분화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을 중시하는 세력과 모든 야권 정당에 개방적인 복지국가 단일정당파가 그들이다. 이에 따라 당대회 이후 진보신당의 진로는 다른 당과 시민사회 진영의 통합 논의와 맞물려 다시 한번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요한 점은 이번 당대회 결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이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년 총선 일정을 감안할 때 다양한 진보통합 논의들이 오는 6~9월 사이 절정에 달하리라 보이는데 이와 함께 진보신당 내의 논의도 계속 전개될 것이다.

논의 구도도 지금까지의 ‘통합파 대 독자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서, 범통합파 내부 충돌도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진보신당의 현 지도부가 민주노동당과의 ‘세력 중심’ 정치 재편 노선을 가진 데 비해, 복지국가 단일정당파는 집권을 분명한 목표로 모든 야당에게 개방적인 ‘가치 중심’ 정치 재편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수권 정당의 전망과 운동권 정당의 고수 여부 등을 둘러싼 통합파의 ‘분화’가 가속화할 것이다.

진보신당 내 논쟁은 현재 다양하게 제기 중인 각종 정치 재편론의 ‘압축판’이기도 하다. 독자론-진보 양당 우선 통합론(혹은 비민주 통합론)-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이 3파전 양상을 띤다는 점에서 비록 규모는 작지만 향후 전체 야권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기자명 안유택 (진보신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